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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의 창고/계시록 설교

빌라델비아 교회 - 계시록 3:7-13

by Peartree 2014. 8. 19.

빌라델비아 교회

 계시록 3:7-13

 

오늘은 소 아시아에 있는 일곱교회에 보내는 편지 중 여섯번째, 빌라델비아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기 원합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서머나 교회와 더불어서 일곱 교회 중에서 책망은 전혀 받지 않고 칭찬만 받은 아름다운 교회입니다. 요즘 사회적으로 지탄받는 교회가 많은 이 시대에, 이 땅의 모든 교회들이 이 빌라델비아 교회처럼 칭찬만 받는 아름다운 교회가 되었으면 참으로 좋겠습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당시 소아시아에 있던 교회 중에서 가장 역사가 짧고, 교회 규모도 아주 작은 별 볼일 없는 교회였습니다. 빌라델비아라는 말은 헬라어로 필리아 란 뜻으로 사랑이란 말과 아델포스라는 말의 형제 라는 뜻의 합성어로 형제사랑 이란 의미를 지닌 도시인데 이름 그대로 형제에 대한 사랑이 특출난 교회였습니다.

 

이 빌라델비아 라는 도시는 다른 도시에 비해서 한 가지 큰 특징이 있는 도시였는데,  첫째는 지진이 아주 많았습니다. (일본처럼요)

본문 12절을 보시면 하나님 성전의 기둥이 되게 해 주시겠다 는 말씀이 나옵니다.  

말씀이 지진을 의식하고 하신 말씀입니다.

지진이 많아서 교회 건물이 흔들리는 것을 다 아시는 주님이, 교회를 칭찬하시면서 해 주신 말씀이, 성전이 기둥이 되게 해 주시겠다는 축복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교회가 지진으로 인해서 흔들릴 때, 가장 큰 축복은 무엇이겠습니까? 기둥이 든든한 교회, 기둥이 많은 교회는 축복이겠죠? 그래서 기둥의 축복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런 지역적인 단점에도 불구하고 빌라델비아 교회는 아주 믿음을 잘 지켰습니다. 당시 소아시아의 믿음의 보루, 신앙의 보루라 할 만큼 믿음이 살아있는 교회였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2천년이 지난 지금에도 빌라델비아 교회가 있던, 그 지역에는 천 여명의 신자들이 아직도 남아 있다고 합니다. 그 정도로 아주 믿음 잘 지키고 아주 흠모할 만한 교회가 바로 빌라델비아 교회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 빌라델비아 교회가 주님으로부터 칭찬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살펴 보기를 원합니다.

 

1. 첫째로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말씀을 지킨 교회였습니다.  

 

8절 하반절을 보시면,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었다.고 말씀합니다. 10절에도 말씀합니다.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 즉이라고 말씀합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능력이 많은 교회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작고 초라한 교회였습니다. 우리 꿈의교회와 같이 교인 숫자도 적고 별 볼일 없는 조그마한 교회였습니다. 일년 예산도 그리 많지 않고 교인들의 사회적 지위나 재산이나 학력으로 볼 때도 대단한 사람은 없었던가 봅니다. 그런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주님의 말씀을 다 지켰던 것입니다. 그래서 칭찬을 받은 것입니다.

 

우리가 많은 능력을 갖는 것은 참 좋은 것입니다. 재력, 학력, 권력, 그리고 건강. 그러나 그러한 것만 가지고는 주님 앞에 칭찬을 받지 못합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비록 능력은 적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말씀을 잘 지켰습니다. 다시 말해 순종했습니다. 누가 칭찬을 받습니까? 적은 능력, 어려운 형편 가운데서도 주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사람, 말씀은 순종하는 교회가 바로 칭찬을 받습니다.

고후 12:9을 보면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는 말씀 그대로 약한데서 온전하여진 교회가 바로 빌라델비아 교회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말씀이나 명령은 능력이 많다고 해서 지키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능력이 적어도, 가진 것 없어도, 얼마든지 충성할 수 있습니다. 바로 그럴 때 주님 앞에서 칭찬을 받는 것입니다.

 

2. 두번째로 빌라델비아 교회는 주님의 이름을 배반치 않은 교회였습니다.

 

8절 하반절을 다시 보시면,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다고 말씀합니다.  요즘 우리는 배반이라말, 배교란 말을 자주 합니다.

이 말은 배신이란 말로 바꾸어 말할 수 있습니다. 이 배신이란 말의 반대는 의리를 지켰다 라는 말로 바꾸어 말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주님을 배반하지 않을 때 칭찬을 받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주님을 배반할 때가 많습니다.

돈 때문에 주님을 배반합니다. 친구 때문에 주님을 배반합니다. 세상적으로 살고 싶어서 주님을 배반합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를 보세요. 그 안에 능력있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경제적 능력으로 능력있는 사람도 없었고, 사회적으로 능력있는 사람도 없습니다.

하지만 그 적은 능력을 가지고, 주님의 이름을 배반하지 않았습니다.

돈 때문에 주님의 이름에 먹칠한 적도 없었습니다. 먹고 살기 위해서 주님 배신한 적도 없었습니다.

당시에는 예수님을 믿으면,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불이익을 당하는 시대였습니다. 어쩌면 목숨도 위태로울 수 있는 시대였습니다.

그런데 절대 배반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한국의 일제시대에도 얼마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주님의 이름을 배반했습니까? 거진 다 넘어갔습니다. 거의다가 일본 천황에게 신사참배하고, 일본이 있는 동쪽을 향해서 절하는, 동방요배를 했습니다.

 

말세에도 똑 같은 일들이 일어날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믿음을 시험하기 위해서, 경제문제로 우리를 달아보실 것입니다.

세상 즐거움으로 우리를 달아 보실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기도하셔야 합니다.

물질로 인하여 주님과 멀어지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세상의 즐거움 때문에 주님과 멀어지지 않도록 기도하셔야 합니다. 

돈이 없어도 주님을 떠나는가 하면, 돈이 많아도 주님을 떠나는데, 그렇게 얕은 믿음 되지 않게 해달라고 매일 매일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마지막 시대를 사는 우리는 쉽게 믿음 생활 할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이제 앞으로는 점점 더 믿음을 지키기 어려워 질것입니다. 그때에도 주님의 이름을 배반하지 않을 수 있냐는 거예요.

원하옵기는, 우리 성도님들은 한분도 주님 뒤고 하고 돌아서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빌라델비아 교회처럼, 적은 능력을 가지고 인내의 말씀을 지키고, 적은 능력을 가지고 주님의 이름을 배반하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그러면  빌라델비아교회가 칭찬만 받았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칭찬에는 항상 상급이 따라옵니다. 칭찬에는 축복이 따라옵니다.

 

주님은 빌라델비아 교회에게 세 가지 축복을 약속하여 주셨습니다.

 

1) 먼저,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10절을 보면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라고 하였습니다.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한다는 것은 우리에게 전혀 시험이 없도록 해 주시겠다는 말이 아닙니다.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해 주신다는 말을 시험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시험을 능히 이겨 낼 수 있도록 주님이 함께 해 주신겠다는 것입니다.

영어성경에도 “I will protect you from the great time of testing”

그러니까, 시험을 스킵하도록 해 주시는 것이 아니라, 시험 중에 보호해 주시고, 이겨낼 수 있도록 보호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시험이 고통스럽지만 유익한 점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시험을 통하여 연단 받고 점점 더 순수해 질 수 있습니다. 시험을 통해 믿음이 자랄 수 있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일제 시대에 예수 이름 때문에, 모두가 천황에게 절하고, 신사참배하는데, 끝까지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해 주님을 붙잡은 주기철 목사님같은 분이 있습니다.

인간의 마음으로 얼마나 두려웠겠습니까? 그러나 주님이 힘 주시고, 용기주시고, 함께하시면, 능히 감당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복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시험과 고난을 비껴가는 것보다, 능히 이겨 나가는 것이, 영적으로 더 큰 축복인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2) 두번째로 주시는 축복은 12절을 보시면, “하나님 성전의 기둥이 되게 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주님의 교회의 든든한 기둥 같은 일꾼으로 사용하시겠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빌라델비아 교회와 관련하여 볼 때 기둥이 된다는 것은 참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이 지역은 지진이 많은 지역인데 아무리 지진이 나도 흔들리지 아니하는 하나님이 지키는 든든한 기둥 같은 존재가 되게 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또 교회에 기둥같이 쓰임 받는 일꾼이 되게 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 하나님께 쓰임 받아 가정의 기둥, 교회의 기둥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세번째 축복은,  하나님의 이름과 새 예루살렘 성의 이름과 또 주님의 이름으로 기둥에 새겨 넣는 축복입니다.

12절을 다시 보시면,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그러니까, 우리가 주님의 인내의 말씀을 지키고, 그 이름을 배반하지 않으면, 성전의 기둥처럼, 교회의 일꾼이 되게 해 주실텐데,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이름과 주님의 이름을 성전의 기둥에 새겨 넣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몸에 주님의 이름을 새기겠다는 것입니다. 문신을 새기겠다는 것이 아니라, 인쳐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너는 내 것이다.라고 찜해 놓시겠다는 것입니다.

 

미국 텍사스주의 광활한 들판에 가면 수 많은 소를 키우는 목장에서 모든 소의 엉덩이에는 주인의 이름의 이니셜이 다 새겨져 있습니다. 그래서 멀리서 봐도 누구의 소인지를 알아 볼 수 있게 하고 혹 도둑이 훔쳐가도 금방 들통이 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이름을 쓸까요? 주인이 누구인지 알아보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저와 여러분에게는 하나님의 이름과 주님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는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마직막 때에는, 마귀사탄도 이와 비슷하게, 666이라는 짐승의 숫자를 사람의 몸에 새기겠다고 요한 계시록 13장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의 이름으로 반드시 인침 받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소유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새 예루살렘의 이름이 새겨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천국의 시민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이름을 기록한다는 것은 우리는 주님의 거룩한 신부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빌라델비아 교회에 주신 주님의 영광된 축복의 약속들이었습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오직 주님 앞에서 적은 능력으로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한 교회였습니다. 그래서 책망대신 칭찬만 받은 아름다운 교회였습니다.

오늘 주님께서 빌라델비아 교회를 향해서 마지막으로 하시는 말씀을 무엇입니다. 13절입니다. “귀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의 교회에게 하시는 말씀을 듣고 순종해야 이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원하옵기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여 칭찬만 받는 여러분의 일생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