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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의 창고/계시록 설교

편지를 쓰시는 예수님 _ 요한 계시록 2:1-7

by Peartree 2014. 8. 19.

편지를 쓰시는 예수님

요한 계시록 2:1-7

교회 역사에서 편지 는 참으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합니다.

신약성경의 대부분은 편지입니다. 마태복음은 유대인들에게 보내는 편지, 사도행전은 누가가 데오빌로에게 쓴 편지입니다. 로마서는 로마에 흩어져 있는 성도에게, 고린도전후서는 고린도 교회 성도에게, 빌립보서는 빌립보교회에게 쓴 편지입니다. 그리고 요한 계시록은 소아시에 있는 일곱교회에게 쓴 편지입니다.

 

그래서 신약성경은 전체가 편지라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편지는 아주 친숙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시면, 우리 예수님께서도 편지를 쓰는 것을 좋아하셨습니다.

1절을 보시면,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고 말씀합니다.

사도바울만 편지를 쓴 것이 아니라, 우리 예수님께서도 교회들에게 편지를 쓰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에베소교회를 향한 예수님의 사랑의 편지에 나타난 주님은,  어떤 분이신지를 몇가지 찾아 보며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1.  첫째로, 예수님은 교회를 너무나 잘 아시는 분이십니다.

 

오늘 본문 3절을 보시면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안다고 말씀합니다. 다 알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 때문에 고난 당한 것도 알고, 열심으로 전도하며 교회를 섬긴 것도 다 아신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아십니까? 예수님은 전지 전능하신 분이시라, 모든 것을 다 아십니다.

 

그런데 특히, 본문 1절을  보시면, 예수님은 교회 사이를 걷고 계시기 때문에 다 아신다는 것입니다. 1절에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분이라고 말씀합니다. 또 바로 앞절 (1:20) 을 보시면,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 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니까,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주님 라는 말은, 교회 사이를 걷고 계시는 주님이라는 말씀입니다.

 

쉽게 말하면, 교인들 사이로 걸어 다니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니까 교회를 너무나 잘 아실 수 밖에 없죠.

 

성도들이 지금 어디 앉아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다 아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약점도 아시고 장점도 아십니다.

우리의 조급한 성격도 아시고 게으른 성격도 다 아십니다.

예배 시간에 일찍 나오는 것도 아시고 늦게 나오는 것도 다 아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도 다 알고 계십니다. 우리는 예수님 앞에서 홀이라도 감출 방법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일곱 교회에게 편지할 때 마다 하신 첫 말씀이  내가 너를 아노라라는 말씀이었습니다. “네 행위와 네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네가 참고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2:2-3)”. 안다. 안다.

 

목사는 여러분들의 수고와 인내를 다 알아 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여러분들의 수고를 모두 다 알아 주십니다.

목사는 여러분들의 어려운 사정을 다 알아 주지 못합니다. 가난한 사정을 다 알아 주지 못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여러분들의 가난한 사정 어려운 사정을 다 알아 주시고 억울한 사정도 모두 다 알아 주십니다.

목사는 여러분들의 사업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릅니다. 여러분들이 당히는 고통도 잘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다 아십니다.

 

누군가가 나의 모든 사정을 다 알아 주신다는 사실은 부담이 되기도 하지만 우리에게 얼마나 큰 위로와 힘이 되는지 모릅니다. 내가 너를 아노라.”

더군다나 사랑과 긍휼과 능력이 많으신 예수님이 우리의 모든 형편과 사정을 다 아신다는 사실은 우리들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고 위로가 되고 용기가 되는지 모릅니다.

 

그런 예수님께서 우리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서도 아시고 계신다는 것에 대해서 교회는 힘을 얻는 것입니다.

그래서 당시의 교회들은 다 아시는 예수님으로 인하여 용기를 얻고 복음을 전하게 된 것입니다.

 

2.  두번째로,예수님은 교회를 칭찬도 하시고 책망도 하시는 분이십니다.

 

4절을 보시면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교회가 잘 하는 것도 아시고 잘못 하는 것도 다 아시면서 잘한 것은 칭찬하시고 잘못한 것은 책망하시는 분이십니다.

 

저는 어머니로부터 칭찬도 많이 들었지만 책망도 많이 들었습니다. 칭찬과 책망은 우리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을 칭찬도 하시고 책망도 하시는 지혜로우신 분입니다.   

 

2절을 보시면 예수님께서는 에베소 교회 성도들의 수고와 인내를 칭찬하셨습니다. 그러면서도 4절에는 책망도 하셨습니다.

어떤 책망이었냐면,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다.” 는 책망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자기의 교회를 너무나 사랑하시고 너무나 아끼시기 때문에 칭찬도 하시고 책망도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칭찬도 고맙게 받고 책망도 고맙게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잠언 6:23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훈계의 책망은 곧 생명의 길이라

 

성경에서 하나님의 책망을 업신 여기고, 듣기 싫어한 사람들은 다 죽었거나,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자녀도 마찬가지 입니다. 부모의 책망을 싫어하는 자녀는 잘 되지 않습니다.

성도도 마찬가지 입니다. 목사의 말은 영혼을 사랑해서 하는 말입니다.

 

이 모든 것들을 들어야, 복이 되는 것입니다.

 

3.  세번째로, 예수님은 회개를 촉구하시는 분이십니다.

 

본문 5절을 보시면 그러므로 회개하라.” 고 말씀하시며 회개를 촉구하는 주님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7교회 중 5 교회에게 공통적으로 하신 말씀은 그러므로 회개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사실 회개하라는 말씀은 예수님이 공생애 처음부터 부활 승천하신 다음에도 계속해서 하신 말씀입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4:17).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5).

 

 예수님께서 왜 자기가 그렇게도 사랑하는 교회들을 향해서 회개하라는 말씀을 반복해서 하셨습니까? 두 가지 이유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첫째는, 회개 해야 천국에 가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두번째로, 회개는 이 땅에서 승리하는 삶을 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다윗이 회개할 때 다시 일어나 승리하는 삶을 살고, 결국에는 천국에 들어갔습니다.

한편 강도가 죽기 전에 회개 했을 때, 천국에 들어갔습니다.

베드로가 회개 했을 때, 다시 일어나 사명을 회복하고, 천국에 들어갔습니다.

 

이 회개가 이렇게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회개 하지 않는 크리스천은 진짜 크리스천이 아닙니다.

회개는 뉘우치는 것이 아니라, 끊어 버리는 것입니다. 앞으로 더 이상 하지 않는 것입니다.

 

1907년에 한국교회가 회개할 때 이 나라가 복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전 세계적으로 회개라는 말이 점점 약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 사회적으로 죄악의 세력에 무참히 짓밟히고 있습니다.

성적 타락이 극도로 문란해서 짐승처럼 되어 가고 있습니다.

돈 사랑이 극도에 달해서 부정부패가 만연되지 않은 곳이 없게 되었습니다.

돈을 위해서면 엄마와 형도 서슴치 않고 죽이게 되었습니다. (어제 뉴스)

 

오늘 본문의 에베소 교회는 처음 사랑을 버렸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예수님을 처음 믿었을 때는, 주님을 위해서면 돈 사랑하는 것도, 자기 사랑하는 것도, 쾌락 사랑하는 것도 얼마든지 포기했습니다. 그런데 그  주님 사랑이 점점 식어지고, 자기 사랑, 돈 사랑, 쾌락 사랑을 위해서 주님 사랑하는 것을 기꺼이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처음 사랑을 버린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주님 사랑하는 마음 다시 되 찾으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에베소교회 성도들의 이런 마음을 다 아시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책망도 하시고, 회개하라고 촉구도 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이 에베소교회가 혹시 우리교회는 아닌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면서, 처음 사랑을 회복하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