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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의 창고/ 비전나리의 설교

2013년 7월 21일 주일설교 : 믿음의 역사, 사랑의 수고, 소망의 인내 - 살전 1 : 2 - 7

by Peartree 2013. 7. 21.

믿음의 역사, 사랑의 수고, 소망의 인내

살전 1 : 2 - 7

 

과연 지상에 완벽한 교회가 있을까요? 물론 그렇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신약시대의 모델이 될만한 교회, 좀 더 주님의 뜻에 합당한 교회는 분명히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이 데살로니가 교회라고 주저 없이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교회는 사도바울이 개척하여 세운 교회로 바울은 이 교회를 매우 자랑스럽게 여겼습니다.  본문 7절을 보시면 그러므로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있는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느니라

사도바울은 하나의 교회를 세우는 것도 중요하게 여겼지만, 단지 하나의 교회가 세워질 뿐 아니라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는 교회를 꿈꿔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교회가 바로 데살로니가 교회였습니다.

 

세계정복의 꿈을 가졌던 나폴레옹이 잡혀서 유배생활을 했던, 센트 헤레나 섬에서 나폴레옹은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나의 군대는 다 사라지고 지금은 아무 것도 없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군대는 십자가의 군기를 들고 지금도 전진을 계속하고 있다 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반석 위에 세워진 그리스도의 교회는 여러 제국이나 왕국이 사라져 가는 것을 지켜보면서 지금도 견고히 서 있습니다.

2000년 동안 그리스도의 교회 는 환난과 핍박을 받으면서 두들겨 맞고, 허물어지고, 불타버려도 생명되는 복음 진리 붙들고 지금도 이렇게 견고히 서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

교회의 주인은 주님이십니다. 교회의 머리도 주님이십니다. 교회는 하나님을 예배하고, 예수님을 사랑하는 백성들이 모이는 곳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놓치 않고 붙들고 계십니다.

비록 여러가지 사정으로 교회가 Close 되는 교회도 있습니다.

제가 지난달 한국을 방문 했을 때도, 저희 큰 매형이 시무하시는 행복한 교회 주변에 다른 4개의 교회가 더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희 매형이 말하길, 이 근방에 5개의 교회가 거의 동시에 개척을 했는데, ‘행복한 교회만 교회를 유지하고, 나머지 4개교회는 이미 Close 했거나, Close 할 것 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지역 교회적으로 보면, 없어지는 교회도 있지만, 전 우주적 교회로 보면, 지금도 교회는 든든히 서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과거 2000년 교회역사동안 교회가 얼마나 많은 핍박을 받았습니까? 그런데도 남아 있다는 것이 기적인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크리스천 인구가 전세계적으로 몇 %인지 아십니까? 저도 2013년 발표한 도표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전세계 인구의 6.1% 밖에 되지 않습니다. 크리스천들이 이렇게 적습니다. 우리가 미국에 살아서 많아 보이는 같지만, 크리스천이 얼마 없습니다. 6% 중에, 3% () 은 명목상의 크리스천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Real 크리스천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전세계인구의 3% 도 채 되지 않습니다.

100명 중에, 3명 꼴인 것입니다.

 

그래도 없어지지 않는 이유는, 교회의 주인이 주님이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붙잡고 계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본문의 데살로니가 교회는 대체 어떤 교회였길래, 사도바울이 자랑하는 교회가 되었을까요? 그 이유를 몇가지 찾아보며 말씀에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1. 첫째로, 데살로니가 교회는 믿음의 역사가 있는 교회였습니다.  

 

본문 3절을 보시면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라고 말씀합니다. 달리 말하면 믿음의 History 가 있는 교회였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오래 되었다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의 간증거리가 많은 교회였다는 것입니다.  이런 믿음의 간증이 많은 교회일수록 건강한 교회입니다. 사도바울의 말 처럼, 본이 되는 교회라는 것입니다.

 

교회가 이런 믿음의 간증이 없다 보니까, 교회 건물 자랑하게 되고, 교회 성도 많은 거 자랑하게 되고, 교회 프로그램 자랑하게 되는 거예요.

원하옵기는, 우리 교회는 믿음으로 승리한 간증이 많아지길 소원합니다. 믿음으로 극복한 간증 같은 것입니다. 믿음으로 이겨낸 이야기 같은 것입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이 있는데, 말씀에 하지 말라고 하면, 믿음으로 포기한 일들 같은 것입니다.  

 

실제로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은 복음을 받아들이자 마자 아주 철저하게 믿었어요. 그들은 우상을 단호하게 버렸습니다. 데살로니가인들이 섬기던 우상들은 크게 두 개였습니다. Dionysus Cabirus였습니다. 이 종교들은 번영의 종교였습니다. 지극히 물질적이고 물질 번영의 종교였습니다. 그런데 데살로니가에서는 이 우상들을 섬기지 않으면 행세를 하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그럼에도 데살로니가교회의 성도들은 이 우상들을 과감하게 버렸습니다. 믿음 때문에, 과감하게 포기하는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이것이 믿음의 역사입니다. 이런 일들이 많이 일어나면, 그것이 교회의 힘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바울이 칭찬했습니다.

 

여러분, 지금 이 시대에 우리가 무엇으로 우리의 삶을 버티어 나가겠습니까? 돈이 많아 돈으로 버티겠습니까? 아니면 세상 즐거움으로 버티겠습니까? 몸이 건강해서 건강으로 버티겠습니까? 여러분, 성도는 믿음으로 버티는 것입니다.

주일 아침인데, 몸은 피곤하죠, 또 나가면 즐거운 것도 없죠, 생기는 것도 없죠, 그래도 믿음으로 일어서서 달려 나올 때, 그것이 믿음인 것입니다.

그런 다음에 여러분들이 성도들과 대화중에 뭐라고 하십니까? , ‘정말 피곤하고 그냥 집에 있고 싶었는데, 나오니까, 잘 한거 같아!라고 한다면, 지금 한 그말이 믿음의 간증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들이 많은 교회가 본이 되는 교회인 것입니다.

 

 2. 두번째로, 데살로니가 교회는 사랑의 수고가 있는 교회였습니다.

 

사랑


본문 3절을 보시면 사랑의 수고라고 말씀합니다. 여러분 사랑에는 수고가 따릅니다. 야고보서에도, 말로만 사랑한다고 하면, 그건 사랑이 아니라고 말씀합니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섬긴다고 한다면, 몸이 움직여야 합니다. 때로는 물질이 들어갈 때도 있습니다.

지금 데살로니가 교회는 예수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서 서로가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랑에는 수고가 따르되 수고가 수고로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 아십니까? 사랑하는 자를 위해 하는 희생과 섬김은 오히려 본인에게 기쁨이 됩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서 섬기고 수고한 다음에, 그 사람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면 기쁘지 않습니까? 그래서 사랑의 수고는 결국엔 자기 자신에게 더 좋습니다.

 

축구의 꽃은 골입니다. 그러나 혼자 골을 넣을 수는 없습니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서 골잡이가 골을 성공시킵니다. 결정적인 도움을 주는 사람을 어시스트 라고 하는데 서로가 욕심을 내면 절대로 골을 넣을 수가 없습니다. 골을 넣는 사람도 중요하지만 어시스트의 역할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이 어시스트가 도움을 주어서 동료 선수가 골을 넣으면, 골을 넣은 선수도 기쁘고, 도움을 준 선수도 기쁜 것입니다.

 

세계역사에서 삼대우정 중 하나가 다윗과 요나단의 우정입니다. 다윗은 왕이 되었고, 요나단은 비참하게 죽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많은 사람으로부터 알려져있고 요나단은 많이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 두 사람중 과연 누가 더 훌륭한 사람이겠습니까? 사실, 다윗에게 있어서 요나단은 친구이면서, 적군의 아들입니다.

또 요나단에게 있어서 다윗은 아버지의 적입니다. 만일 다윗만 없었다면 요나단이 아버지 사울의 왕위를 물려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다윗을 죽이려는 아버지의 계획을 미리 알려주고, 다윗을 자신의 생명처럼 사랑했습니다. 요나단의 이러한 희생과 수고와 헌신과 양보가 없었다면 다윗은 빛을 볼 수 없었을지 모릅니다.

이렇게 사랑에는 수고가 따른다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교회는 아주 역사가 어린 교회였습니다. 사도행전17:1-9을 보면 불과 3주 만에 세워진 교회입니다. 데살로니가에 있는 유대인들이 조직폭력배를 동원해서 사도바울을 죽이려고 해서, 급하게 사도바울은 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더 가르치고 싶어도 가르쳐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불과 3주 만에 복음을 전하고 세운 교회가 데살로니가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이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바울도 없는데, 얼마나 사랑으로 똘 똘 뭉치는지, 유대인들이 교회를 없애려고 해도 없애질 못하는 거예요. 사랑의 힘이였습니다.

모이지 못하도록 방해를 하면, 서로 도와가며, 수고하고 희생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 지역에서 소문이 나기 시작하는데, 사랑으로 똘 똘 뭉친 교회라는 소릴 듣습니다. 그래서 이 교회가 많은 사람에게 본이 된 것입니다.

우리 꿈의 교회도 이 데살로니가 교회를 본 받기를 소망합니다.

 

3. 세번째로, 데살로니가 교회는 소망으로 인내하는 교회였습니다.  


본문 3절 중반을 보시면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하는 교회였습니다.

 

제임스 와트의 소망이라는 그림은 한 소녀가 지구 위에 남루한 옷을 걸치고 앉아서 한 줄뿐인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있는 그림입니다. 그 남은 한 줄은 소망입니다. 인맥도 끊어지고, 학맥도 끊어지고, 혈맥도 끊어진 절망 가운데 있다하더라도 우리에게는 하늘로 연결된 마지막 소망의 줄이 있음을 아시기 바랍니다. 기도의 줄이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요셉은 감옥 속에서도 소망의 줄을 끊지 않았습니다. 다니엘은 사자굴속에서도 하나님에 대한 소망의 줄을 끊지 않았습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풀무불 가운데서도 소망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광풍 가운데서도 소망의 닻줄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소망은 역경을 이기는 힘입니다. 2차대전시에 나치 수용소에서 기록한 프랭클린 박사의 의미를 찾는 인간의 탐색 이라는 보고서에 의하면 소망을 포기한자는 몸도 마음도 곧 쇠약해졌다. 그러나 끝까지 소망을 가지고 있었던 자는 자신도 건강했고 남까지 도와주었다 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소망은 인내를 필요로 한다고 본문은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씨앗을 땅에 넣은 농부는 가을까지 기다리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알에 따라서 다르지만 알이 부화하는데도 일정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무엇이든지 품고 있으면 부화됩니다. 욕심을 품으면 죄가 되고 죄를 품으면 사망이 됩니다(1:15). 미움을 품으면 살인이 되고, 음욕을 품으면 간음이 됩니다. 마찬가지로 소망을 품으면 꿈이 실현되고 용서를 품으면 화해가 탄생하고, 인내를 품으면 소망을 이룹니다.

 

사람은 실수투성이요, 모순 덩어리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내하면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성경에 내노라하는 인물들 모두가 한 두 번의 실수 없는 사람이 있습니까?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겁쟁이에다, 의심까지 많았습니다. 이스라엘의 가장 존경받는 지도자인 모세도 살인을 하고, 반석을 치며 자기의 성질을 죽이지 못했습니다. 최대의 군주 다윗도 간음에다가 간접 살인을 했습니다. 수제자 베드로는 세 번이나 주를 부인하고, 부활을 확인하고도 고기 잡으러 갔습니다. 예수님 다음으로 위대한 사도 바울도 사소한 문제로 바나바와 결별하고, 마가와도 결별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내를 가지고 그들을 훈련 시키셔서 후대인들이 부러워하는 인물들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여러분! 타인이나 자신에 대해서 쉽게 절망하거나 포기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아주 평범한 사람들을 들어 하나님께서는 위대하게 사용하십니다.

 

오늘은 데살로니가 교회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고린도 전서 13장에, 믿음 소망 사랑은 항상 있을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우리 성도의 삶 가운데 항상 있어야 할 것은 믿음 소망 사랑인데, 데살로니가 교회는 믿음의 역사가 있는 교회, 사랑의 수고가 있는 교회, 소망의 인내를 가진 교회였다는 것입니다. 원하옵기는 우리 꿈의교회도 이 세가지가 충만 하시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