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설교자의 창고/ 비전나리의 설교

2013년 7월 7일 주일설교 : 주님의 놀라운 은혜 - 엡 2:1-10

by Peartree 2013. 7. 21.

주님의 놀라운 은혜

2:1-10

 

알코올중독자인 아버지 밑에서 자란 두 청년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나이가 들면서 파산한 집을 떠나 각자 다른 길로 각자의 삶을 찾아 갔습니다. 몇 년이 지난 알코올 중독이 가정에서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 이라는 주제로 연구 논문을 쓰던 한 심리학자가 그의 연구 조사를 위해 이 두 청년을 인터뷰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한 청년은 깨끗하고 빈틈없는 금주가로 행복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 청년은 그의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희망 없는 알코올중독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심리학자는 이들에게 물었습니다. ‘지금까지 인생을 어떻게 살아왔습니까?이 질문은 연구논문에 아주 중요한 질문이었거든요.

그러자 이 두 청년의 대답은 형제 아니랄까봐 똑같은 대답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대답은 이것이었습니다. “당신이 내 아버지와 같은 아버지를 가졌다면 어떻게 인생을 살겠습니까?” 라고 두 아들들은 같은 대답을 했다는 것입니다.  

삶에 차이를 가져다 주는 것은 인생에 있어서 어떠한 사건이 일어났는가 하는데 있지 않고 그 사건 속에서 각자의 환경에 어떻게 적응하며 살았는가 하는 데 있는 것입니다.  

똑같은 상황과 똑 같은 대답 속에서 어떻게 적응할 것이냐?, 이 환경을 이겨낼 것인가?, 아니면 그 환경을 탓하며 그냥 그 안에서 포기하고 살 것인가?  하는 결단의 문제는 우리 인생에서 너무나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복음서를 보시면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좌우에 두개의 십자가가 서 있었습니다. 그 양쪽 십자가 형틀에 두 강도가 달려 있었습니다. 성경은 그들을 행악자라고 표현했습니다. 본래의 뜻은 약탈자라는 뜻입니다. 이들이 십자가 형을 받은것을 보면 좀도둑은 아니었습니다. 그 당시 십자가 형은 최고의 극형으로서 국가반란죄나 사회 질서를 심각하게 파괴한 중범죄자들에게만 내리는 사형제도였습니다. 그들이 어떤 죄를 지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그들을 약탈자, 행악자들이라고 분명히 말합니다.

 

그런데 그 두 강도중에 한 강도는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자기와 똑같은 상황 가운데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어가고 계시는 예수님을 보고 그에게서 평화와 사랑을 소유하고 있음을 그는 보았습니다. 저분은 우리가 다른 분인데, 왜 십자가에 매다려 죽어야만 하는지 그는 의문을 품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저분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온 세상 죄를 지고 죽어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는 사실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이 강도는 어떠한 죄인이라도 용납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품에 안기고 싶은 욕구가 강하게 일어났습니다. 염치는 없었지만 주님의 은혜를 구했습니다.

그리고는 죽음과 동시에 그의 영혼은 주님과 함께 낙원에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 편의 강도는 그렇게도 가까운 거리에서 주님을 바라보았지만 주님을 조롱했습니다. 회개하는 자기 동료를 욕했습니다. 너무나도 분명한 사랑과 용서의 예수님을 보았지만 그 예수님을 저주했습니다. 육체의 고통은 물론 그의 마음까지 더욱 모질게 원망과 불평으로 가득 찼습니다. 결국 그는 불평의 나라 지옥으로 갔습니다. 은총의 기회를 영원히 놓쳐버렸습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지옥은 주님의 은혜를 거절한 자들이 가는 곳입니다. 그곳은 주님의 은혜가 단절된 곳입니다. 반면에 천국은 주님의 은혜를 간구한 자들이 가는 곳입니다. 그곳은 주님의 은혜로 충만한 나라입니다. 공짜로 주시는 주님의 은혜를 붙들고 산 사람들이 가는 곳이 저 천국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한 편 강도가 천국에 들어갔을 때 거기에 있는 다른 성도들이 강도를 향하여 여기에 어떻게 들어 오게 됬냐?고 만약에 묻는 다면, 이 십자가에 한편 강도는 무엇이라고 대답할 것 같습니까?

나는 정말 운이 좋았어, 그때 예수를 만났지 뭐야! 그래서 여기에 오게 됬지!’ 할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아니, 예수님의 십가가 양쪽에 나와 다른 강도가 있었는데, 다른 강도가 예수님을 그렇게 저주하며 욕하지 뭐야! 그래서 나는 저 예수라는 사람은 죄가 없는 사람이야, 우리가 죄인이지’,  하며 그분 편을 들어 주었어, 그랬더니 나를 이 천국으로 오게 해줬어 말 할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대답은 여러가지로 할 수 있지만, 그 대답의 할결 같은 주제는 주님의 놀라운 은혜였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놀라운 은혜의 특성 세 가지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1) 첫째로, 은혜란 자격없는 자를 용서하시는 주님의 사랑입니다.

 

자격없는 자란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는 죄인이라는 뜻입니다.

 

물고기가 물을 떠나서 살 수 없듯이 인생은 죄를 떠나서 살 수 없습니다. 우리의 모든 생각과 모든 말과 행위는 죄 짓는쪽으로 발달되어 있습니다. 우리 모든 인생이 죄 가운데서 태어났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죄인된 우리 인생은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감히 설 수 없는 존재들인 것입니다.

 

2:3을 보시면, 우리는 본질적으로 진노의 자녀 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마땅한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인생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앞에서 구원을 얻기에 합당한 선행과 공적을 쌓을 수 있는 자격자는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서 로마서에서 바울이 뭐라고 말합니까?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라고 한 것입니다.

 

지금의 세상을 보세요.  선해지기 보다는 죄악 쪽으로 더 빨리 발전합니다. 성경은 마지막 때가 되면 사람이 악해질 것이고, 사랑이 식어 질 것이고, 돈을 사랑하는 것이 자기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할 것이라고 말한 예언이 들어 맞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의 결론은 분명합니다. 어떠한 인생이라도 자기의 노력으로는 영생에 이를 수는 없습니다. 구원에 있어서는 우리는 철저히 무능한 존재들입니다. 오히려 우리의 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받기에 마땅한 죄인들입니다.

 

이렇게 절망적인 인생들에게 구원의 길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은혜 베푸시는 길 밖에 없습니다. 우리 인생들의 힘으로는 하나님께 이를 수 없으므로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에게로 내려오셔서 우리를 하나님께로 이끄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아래로 흐르는 사랑이 은혜입니다. 헬라어로 은혜의 뜻은 허리를 굽히다 라는 뜻입니다. 자격없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허리를 굽혀서 손을 내밀어 사랑과 호의를 베푸시는 것, 이것이 바로 은혜인 것입니다.

 

2) 두번째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시는 은혜는 조건없는 사랑입니다.

 

은혜라는 말은 공짜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떤 보답을 바라고 은혜를 베푸시는 것이 아닙니다. 거저 주시는 은혜입니다. 은혜를 받았으면 보답해야 한다는 것은 세상이 만들어낸 논리입니다. 세상의 논리는 그렇습니다. ‘얻어 먹었으면, 갚아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논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께 감사헌금을 하고, 십일조를 드리는 것은, 은혜를 보답하는 뜻에서 하는 것은 아닙니다. 감사헌금은 보답이 아니라, 그저 감사해서 드리는 것입니다. 십일조도 마찬가지입니다. 보답으로 드리는 것이 아니라, 의무이고 명령이기 때문에 드리는 것입니다. 여러분 은혜는 보답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조건 없이 받는 것이 은혜입니다.

 

만약에 오마바 대통령이 여러분을 만찬에 초대했다고 해보세요. 그리고 여러분이 식사를 마친 후 대통령께 나아가서 식비를 지불하겠노라고 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니면, 답례로 멋있게 식사대접을 하겠노라고 대통령께 초대장을 보낸다면 그게 격식에 맞는 것입니까? 이 모든 일은 부질없는 일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는 조건 없는 사랑 인 것입니다. 값을 필요가 없는 거예요. 받아 누리면 되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해 주시었다고, 우리에게서 뭘 바라지 않습니다. 행여나 우리가 우리가 하나님께 보답이라고 한다 치면, 얼마만큼 우리가 보답할 수 있습니까? 온 우주의 주인되신 하나님이신데 말이죠.

기껏해야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그분을 사랑을 기억하고, 그분께 예배하는 것 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서 많은 것 바라지 않습니다. 그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기억하기만을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자는 하나님이 누구시며 나에게 무엇을 하셨는가에 초점을 맞추는 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호감을 사기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그냥 조건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거저 받으면 되는 거예요.

은혜를 즐기면 됩니다. 감사하고 찬송하면 됩니다. 그것으로 족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보고 은혜를 갚으라고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 은혜를 갚을 길이 없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드린 들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갚을 수 있게습니까?  갚을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 은혜를 생각하면 그냥 눈물만 흘리는 것입니다.

여러분, 단 한가지 우리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그 은혜를 기억하고 사는 것 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3) 세번째로, 하나님의 은혜는 변함없이 계속되는 은혜입니다.

 

2:7을 보시면, 한나님의 은혜는 모든 세대에 걸쳐 계속 부어지는 지극히 풍성한 은혜입니다.

 

종교 개혁자 마틴 루터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먼저 사람을 선하게 만들지 않으면 아무도 선하거나 선행을 할 수 없다. 그리고 아무도 행위로 선하게 될 수 없고 선행은 선한 사람이 된 후에야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모든 행위는 겉으로 보기에 아무리 좋고 아름답게 보여도 은혜로 말미암지 않고는 헛것이다.”

그러므로 진정한 크리스챤들은 나 자신에게는 자랑거리가 하나도 없음을 압니다. 자신에게 자랑이 있다면 사도 바울처럼 자신의 연약함과 부족함이 자랑이어야 합니다.  우리의 연약과 부족에도 불구하고 주께서 우리를 도우시고 쓰셨다는 이 한 가지 간증이 있을 뿐입니다. 우리가 조금이라도 선한 일을 했다면 그것도 주님의 은혜로 했을 따름이예요.

 

미국의 한 신학교 설립자이며 교수인 루이스 체이퍼 박사가 은퇴하면서 휠체어에 앉아 마지막 강의를 했습니다. 그 강의의 주제는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그 강의에 감동을 받은 모든 학생들이 우뢰와 같은 박수로 그 노교수에게 찬사를 보내었습니다. 그 때 그는 손을 들어 박수를 중지시키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 나는 내 인생의 반을 이 은혜를 연구하는 데 바쳤습니다. 그러나 이제야 겨우 하나님의 은혜가 무엇인지 발견하기 시작했을 뿐이라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바다보다 깊고 넓습니다. 우리의 한정된 지식으로 그 은혜를 다 알 수 없습니다.

 

여러분, 제가 이 꿈의교회에 온지 3년이 지났습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제 설교를 듣고 좀 답답해 하실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설교의 내용이 대부분 바르게 사세요!’ 하는 쪽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바르게 사는 문제는 우리에게 한계가 있다는 점입니다. 바르게 살고는 싶은데 안되는 것이 우리의 고민입니다. 그러니 말씀 들을 때는 고개가 끄덕여지는데 그 말씀과 먼 거리에 있는 자신을 보고는 자신에 대해 실망이 생깁니다. 말씀이 내 속에서 힘이 되고 기쁨이 되어야 하는데 무거운 짐이 됩니다. 순종해야 하는데 순종하기에는 너무 힘이 듭니다. 그래서 말씀을 듣고는 오히려 답답해집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러한 마음 상태가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정상적인 과정입니다.

 

여러분, 복음의 말씀은 우리들에게 그저 위로나 주고 꿈만 부풀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저절로 모든 것이 잘 될 거라는 요행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복음의 말씀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관습과 상식을 파괴합니다. 그 말씀은 우리의 의식을 전환시킵니다. 그 말씀은 우리의 폐부를 찌르고 도려냅니다. 그래서 그 말씀을 듣고는 답답해지고 아프고 고통스럽습니다. 말씀을 듣고는 우리 자신이 정말 무능한 자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탄식하며 주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은혜를 구하게 됩니다.

 주님, 제 힘으로는 그 말씀대로 살 수 없습니다. 도와주세요! 이 답답한 마음에 새 힘 주세요! 기쁘게 순종할 마음 주세요!” 라고 주님의 은혜를 바라며 기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죠.

 

여러분 이 한 가지만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복음은 은혜입니다. 우리가 노력해서 깨달을 수 있는 지식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깨닫게 하셔야 합니다. 주님이 닫으시면 우리는 들어도 깨달을 수 없는 것이 복음입니다. 은혜로만 깨달을 수 있는 것이 복음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은혜받은 성령의 사람인 것을 확인하는 방법 중의 하나는 여러분이 복음의 말씀에 설득당하고, 그 말씀대로는 살지 못하지만 그래도 살려고 몸부림 치고 있는지를 점검해보면 됩니다.

몸부림치고 있다면, 은혜 받은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은혜로 그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자녀들을 향해 하나님께서는 은혜로 약속을 주시고 그 약속을 열심히 이루어 가십니다.

 내가 너희들을 기어코 축복하리라. 책임지리라는 약속입니다. 그 약속대로 주님은 우리를 영광스럽게 만드십니다. 성숙한 일군 되도록 모든 좋은 것으로 채우십니다. 이 열심을 막을 자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가 넘어져도 실패해도 우리를 외면하시지 않으시고 그 자리에 오셔서 우리를 일으켜 세우시고 다시 회복하십니다. 주님의 은혜와 열심은 참으로 놀랍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해야 할 것은 그 은혜를 신뢰하고 그 은혜 아래 무릎 꿇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 잠기는 자,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사는 자는 행복자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