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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의 창고/ 비전나리의 설교

2013년 7월 3일 수설교 : 마지막 때 요일 2:18-23

by Peartree 2013. 7. 21.

마지막 때

 

 요일 2:18-23

 

불교에서 말하는 시간은 돌고 도는 시간을 말합니다. 이것은 과거가 현재가 되고 현재는 미래로, 그리고 미래는 다시 과거로 돌아간다는 시간관입니다. 그래서 불교에는 윤회설이 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다시 사람이건 짐승이건 곤충이건 어떤 것으로든 다시 태어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기독교에서 말하는 시간관은 전혀 다릅니다.  우리 기독교는 종말론적 시간관입니다. 시간이 시작이 되었으면 끝을 향하여 달음박질 치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인생에 있어서 오늘이라는 시간은 결코 다시 오지 않습니다. 우리의 인생도 다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서 딱 한번 뿐인 인생인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 시간관입니다.

 

모래시계


오늘 본문에서 요한은 초대교회그리스도인들을 향하여 어떻게 신앙 생활을 해야하는지 마지막 때라는 말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이 마지막 때를 강조합니다.

디모데 후서 3:1에는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를 것 이라고 말씀합니다.

신약성경에 나오는 마지막 때 란 말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다가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후에 유월절에 성령 강림이 있었던 그 때로부터 다시 재림하실 때까지의 모든 기간을 마지막 때 라고 합니다.

그러니가, 주님께서 이땅에 오시면 그날이 세상의 끝날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 앞으로 가야하는 종말론적 시간 속에 살고 있습니다. 언제라도 끝날이 올 수 있는 그런 긴박한 상황 속에서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마지막 때의 중요한 특징은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 18절에 요한은 마지막 때에는 적 그리스도가 일어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적 그리스도란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자를 적그리스도라고 합니다. 사탄 마귀는 아닙니다. 사람입니다. 마치 자기가 구원자인 것처럼, 거짓 탈을 쓰고 사람들을 속이는 사람이 적그리스도입니다.

즉 요한이 마지막 때를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강조하고 싶은 것은, ‘마지막 때를 사는 그리스도인들은 적 그리스도 의 공격을 받으며 살텐데, 그때 치열한 영적 전쟁을 하며 승리하는 삶을 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마지막 때의 영적 공격을 이기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1. 첫째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떠나지 않고 힘써 지켜야 합니다.

 

 본문 19절에 보시면 적 그리스도의 특징을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그들이 우리에게서 나갔으나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하였나니………

그러니까, 적 그리스도들은 교회에서 속하지 아니한 사람입니다.

사도요한의 이 말씀은 마지막 때에 교회 현실의 중대한 문제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때에는 교회에서 떨어져 나가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는 것입니다. 70년대, 80년대 교회가 성장하던 때와 오늘의 교회의 현실을 비교해 보면 너무나 분명합니다. 이미 교회의 수직적 성장은 90년 초반으로 들어오면서 끝났습니다. 90년대 후반에 되면서 교회는 계속해서 감소하는 현상들이 생겨났습니다.

사도요한의 말처럼,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이 많아 졌습니다. 그래서 교회에 속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지금 유럽은 교회는 거의 자취를 감추다 시피 했습니다. 교회 건물은 이미 이슬람교회가 사들이기 시작했고, 교회가 카페나, 술집으로 변한지 오래되었습니다.

한 때 침례교의 최고의 설교자라고 하는 찰스 스펄전 목사님이 담임하시던 메트로 폴리탄 타버나클 교회는 한 때 몇 만명이 모여 예배를 드렸었는데, 지금은 몰락해다 시피 했습니다. 주일예배 나이드신 분들 몇십명만 예배 드리고, 나머지 시간은 관광객에게 오픈해주는 관광지로 변해버렸습니다.

 

사도요한이 얼마나 잘 표현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18절을 다시 보시면, “그들이 우리에게서 나갔으나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하였나니말씀합니다.  즉 그들은 기독교 교회 안에 있었던 자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처음에 출발할 때는 예수님으로 출발해서 잘 믿는 것 같은데 나중에 보면 끝이 다르게 나타납니다. 우리 안에도 이런 사람들이 생겨나지 않을까 염려가 됩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을 찾았던 한 엘리트 관원 젊은이가 있었습니다. 그는 주님 앞에 와서 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겠습니까?”라고 진지하게 물었습니다. 인생의 깊은 세계와 자신의 영원한 미래의 문제를 풀어보기를 원한 것입니다. 이 때 예수님은 네 소유를 다 팔아 가난한 자에게 주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자기 중심적 생활에서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는 생활로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철저하게 세상의 성공과 명예와 물질을 위하여 사는 인생에서 영생의 주인이신 주님을 따르는 생활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청년은 근심하며 돌아갔습니다. 처음에는 진지한 영생에 대한 질문을 가지고 주님 앞에 나왔습니다. 그러나 그의 고민과 질문은 참 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거짓이었고 일시적이고 피상적인 관심에 불과한 것입니다.

 

복음서에 보시면 적 그리스도의 대표적인 인물이 나옵니다. 누군지 아십니까? 예수님을 배반한 가룟유다입니다. 가룟유다 처럼 열심이 있었던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제자들 사이에서 얼마나 신뢰가 있었으면, 돈궤를 그에게 맡길 정도였습니까?

그런데, 이 가룟유다 끝내는 어떻게 됩니까? 열두제자의 무리에게 나가게 됩니다. 그들에게 속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꼭 마지막 나타날 적 그리스도는 한명입니다. 그러난 오늘 사도요한은 교회에서 떠난 사람들, 처음에는 믿음으로 출발 했지만, 그들에게 속하지 않는 사람들을 적 그리스도로 규정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마지막 때에, 영적 싸움에서 이기려면 끝까지 교회에 속해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교회 밖에 있으면, 나도 얼마든지 적 그리스도 짓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2. 두번째로,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성령의 충만함을 힘써 지키시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20절을 보시면 너희는 거룩하신 자에게서 기름 부음을 받도 모든 것을 아느니라말씀합니다. 여기서 기름부음이란 성령의 충만함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성령의 충만함은 언제 옵니까? 교회에 속해 있을 때 성령의 충만함이 임합니다.

최초의 오순절 성령의 강림 사건이 마가 다락방에서 있었습니다. 그때가 최초의 교회였습니다. 120명의 성도들이 모여서 힘써 기도할 때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오순절 마가 다락방에 성령의 충만을 받은 성도들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사람들의 마음을 뜨거워 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사방으로 다니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성령충만 받기 전에는 믿음이 없었는데, 없던 믿음이 생겨났습니다. 천국에 대한 확신이 섰습니다. 어떤 핍박도 두려워 하지 않았습니다.

바로 이렇게 될 때, 우리가 영적 전투에서 승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두려워하던 사람들에게 확신과 강한 힘을 주었습니다. 이 후에 사람들은 용감하게 마가의 다락방에서 거리로 나와 만나는 사람들에게 확신에 차서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어떤 분들은 성령의 이해를 무속적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무속 종교에서는 신 내림의 사건이 있습니다. 신이 내려 신접하면 정신이 몽롱해지고, 무아지경에 들어갑니다. 그러나 성령의 충만은 이런 것이 아닙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모든 것을 안다라고 하였습니다. 성령이 임하면 우리의 자아 의식이 뚜렷해지고 하나님의 뜻을 바로 깨닫고 그 뜻대로 살아가는 능력을 얻게 됩니다.

복음서에서 가장 성령이 충만한 분이 누구십니까?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 무아지경에 빠지고, 몽롱해지고, 무당처럼 점이나 치셨습니까? 그렇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살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왜 성령의 충만 받기를 원합니까? 성령이 충만하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갑니다. 하나님 기뻐하시는 사람을 살아갑니다. 성령이 충만하면 항상 깨어서 주님오실 날을 기다리고, 주님이 오시는 그 때를 놓치지 않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때를 사는 사람들은 항상 성령의 충만함으로 기다리고 있어야, 주님 오심을 놓치지 않습니다.

 

 

 

 

3. 세번째로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그리스도를 고백하는 신앙을 끝까지 지켜야 합니다.

 

  적 그리스도는 무엇보다도 예수님이 그리스도임을 부인합니다. 오늘날 이런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여호와의 증인들은 예수님이 힘이 강한 천사 중의 하나이지 하나님의 아들은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또 통일교의 교주는 예수는 사역에 실패했고 음부에서 구원을 요청하고 있다고 말하며 자신이 재림주라고 주장합니다. 그외에 많은 이단과 적 그리스도들이 난무하며 자신을 예수라고 내세우고 있습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하나같이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에게 사도 바울은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1:8)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과 십자가의 보혈이 우리 신앙의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이미 허락하신 이 귀한 신앙을 끝까지 지키시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또한 예수를 주로 고백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손님으로가 아니라 주인으로 받아들인 자들입니다.

여러분의 삶에서 예수님은 과연 주인이십니까? 예수님이 삶의 주인이시라는 것은 곧 모든 삶의 영역에서 예수님을 기다린다는 것입니다.

 

미국의 유명한 작가가 성경을 읽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 선생님도 성경을 읽으세요? 성경은 이해되시나요?” 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이런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모르는 것이 많지요. 그러나 지금 제가 고통스러운 것은 이해되지 않는 말씀 때문이 아니라 너무 잘 아는 말씀을 실천하지 않는 제 모습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여러분의 주인이 되시는 삶은 말씀을 실천하는 삶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모든 삶에서 예수님을 나의 주로 고백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요한을 통하여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 마지막 때를 산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인생을 단 한 번 밖에는 살 수 없습니다. 이제 짧은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사랑하며 아름답게 살아가야 합니다. 이를 위해 과거에 안주하거나 현재에 만족지 않고 미래를 준비하며 현실을 성실하게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때를 살라고 하십니다. 즉 자기에게 주어진 사명을 감당하고 하나님께 쓰임받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남을 생을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