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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가는 두날개/회개와믿음

*폴 워셔 목사님의 교회에 대한 열 가지 기소장 중에 여덟번째 고발*

by Peartree 2012. 12. 31.



여덟 번째 고발: 분리에 대한 침묵  

 거룩에 대한 진지한 가르침의 공백이 있습니다. 나의 친구 여러분, 거룩에 관한 일반적인 가르침에는 모두가 동의합니다. 거룩해집시다. 우리는 더 거룩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거룩함에 대한 집회를 합시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 특정해지면, 그때가 모든 것이 혼란에 빠지는 때입니다.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히브리서의 저자는 우리에게 말합니다,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히 12:14 – 역자 주)  
이것을 믿는 사람이 있습니까?  
여러분은 말합니다. “폴 형제, 나는 행위를 가르친다고 너무나 자주 비난받아왔습니다.”  
내 말을 들어보십시오. 들어보세요. 다시 말하지만, 이것은 중생과 하나님의 섭리로 돌아갑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들 정말로 개종시키시면, 가르침과 축복과 권고와 훈련을 통해 그분은 그 사람 안에서 계속해서 일하실 것입니다. 그분은 자신이 시작하신 일이 끝나는 것을 보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그 저자가 이렇게 말하는 이유입니다, “성화가 없이는, 거룩함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왜냐구요? 만약 거룩함 가운데 성장이 없다면, 하나님이 여러분의 삶 속에 일하시고 계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만약 여러분의 삶 속에 하나님이 일하시지 않고 있다면 그것은 여러분이 자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야곱과 에서의 차이를 보십시오. “내가 야곱은 사랑하였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롬 9:13 – 역자 주) 그러나 하나님은 두 사람 모두에게 그의 모든 약속들을 성취하셨습니다. 야곱은 축복받았습니다. 에서도 축복받았습니다. 어떻게 하나님께서 에서를 향한 자신의 심판과 진노와 야곱을 향한 자신의 사랑을 나타내셨습니까? 어떻게 하셨는지 말씀드리죠. 그는 에서는 자기 마음대로 살도록 내버려 두셨습니다. 훈련에 대한 일도 없고, 신령함에 대한 일도 없고,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야곱을 그의 삶 속에 거의 매일 죽을만큼 치셨습니다.  
우리를 거룩함으로 데려오시기 위한 사랑의 훈련, 하나님의 바로잡으심입니다.  
자 이것에 대해 아주 많은 가르침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만 말하겠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 로마서 12장 1절입니다, 그리고 나서 2절로 갑시다. 
“너희 몸”. 왜 그는 몸이라고 말합니까? 이 모든 초 영성을 피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합니다.  
“글쎄요, 나는 예수님께 내 마음을 드렸고, 당신은 표지를 보고 책을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글쎄요, 사실을 말하자면, 표지를 보고 책을 판단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표지를 보고 책을 판단할 수 없다고 말하신 적이 없습니다. 그분은 그럴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 열매로 나무를 아느니라.” (마 12:33 후반부 – 역자 주)  
그리고 만약 여러분이 그분께 여러분의 마음을 주었다고 생각한다면, 그분은 여러분의 몸도 가지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이유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마음은, 친구 여러분, 무슨 피를 퍼 올리는 근육이 아니고 어느 시인의 상상 속에 있는 환상도 아닙니다. 그것은 당신의 존재의 가장 본질이며 핵심을 뜻합니다. 예수님께서 여러분 존재의 본질과 핵심을 가졌는데 당신의 몸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그런 일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우리는 성경을 읽어나가야 합니다, 뭐, 율법적으로요? 아닙니다. 추론을 이끌어 내면서요? 아닙니다. 단지 성경의 계명들 위에 서 있는 것입니다.  
무엇에 관해서입니까?  
나는 청교도들이 말한 모든 것에 동의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나는 청교도들을 사랑합니다. 내가 그들을 사랑하는 이유 중 하나는, 나는 그들이 그들 삶의 모든 것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주되심 아래로 가져 오려는 정직한 시도를 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마음 때문에, 그들이 ‘성경에 따르면 내가 무엇에 대해 생각해야 할까’에 관해 800장짜리 책들을 썼기 때문에. 성경에 따르면 무엇을 내 마음 속에 들여오지 말아야 할 것인가? 내 눈은 어떻게 할 것인가? 이 귀로는 무엇이 들어가야 하며, 무엇이 들어가지 말아야 하는 것인가? 혀는 어떻게 다스려져야 하는가? 내 삶의 방향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그리고 예, 나는 여러분을 무서워 죽게 할 것입니다. 어떻게 옷을 입어야 할까요? 
이제 이 부분에서 나는 신중하려고 합니다. 나는 추론을 끌어내거나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나의 친구 여러분, 내 아내는 이것에 대해 이런 식으로 이야기 합니다. 만약 당신의 옷차림이 그리스도의 영광이 솟아나오는 당신의 얼굴을 위한 틀이라면, 그것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당신의 옷차림이 당신의 육신을 위한 틀이라면, 그것은 감각적이고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미워하십니다. 충분히 말했나요?  
지금 내가 거룩에 관해 모든 것을 다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거룩이 단지 외적인 표현만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령님의 내적인 역사를, 외적으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하기 위한 변명으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일부 젊은 여러분들, 여러분은 하나님의 성령이 여러분에게 충만하고 여러분 안에서 일하시기를 아마도 나보다 더 부르짖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을 너무나 근심하게 만들어서 그분이 당신으로부터 멀리 떠나시게 하는 데는 오직 30분의 텔레비전 밖에 필요하지 않습니다.  
99% 순수한 물에 1%의 하수도 물은 나는 마시지 않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