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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가는 두날개/회개와믿음

*폴 워셔 목사님의 교회에 대한 열 가지 기소장 중에 다섯번째 고발*

by Peartree 2012. 12. 31.



다섯번째 고발: 비성경적인 복음으로의 초대 

우리는 이것에 대해 이미 조금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더 깊숙이 들여다보기 원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어떻게 하는지 보십시오. 내 말은, 지금 내가 하는 말을 들어보십시오. 더더욱… 나는 이것을 어디서나 보아 왔습니다. 칼빈주의자들, 아르미니우스파들, 그들 중 많은 사람들에게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똑같은 표면적 초대입니다. 그들은 많은 것들에 대해 많은 얘기를 하고서 그 초대로 나아옵니다. 그리고 마치 모든 사람들이 정신이 나가는 듯합니다. 
누군가에게 다가가서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시며 당신의 삶에 대해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것을 미국인에게 말하는 것이 상상이 됩니까?  
“선생님,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시며 당신의 삶에 대해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뭐라고요?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구요? 와, 굉장한데요, 나도 나를 사랑하거든요! 와, 이거 놀랍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놀라운 계획을 갖고 계세요? 나도 내 삶에 대해 놀라운 계획이 있는데요. 그러므로 만약 내가 그를 내 삶에 받아들이면 내가 최선의 삶을 지금 갖게 될거네요. 이거 완전 놀라운데요.”  
그것은 성경적인 전도가 아닙니다.  
그것 대신에 다른 것을 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와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여호와, 여호와 하나님은, 자비하시며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자하심과 진리가 풍성하시도다. 그는 수천명에게 인자를 품으시며, 허물과 죄악을 용서하신다. 그러나 그는 죄인에게 결코 형벌을 면치 않으실 것이다.  
  
모세의 반응은 이렇습니다. “모세는 급히 땅에 엎드려 경배했습니다.”  
전도는 하나님의 성품으로부터 시작합니다. 하나님이 누구십니까? 사람이 자신과 비교할 기준이 없다면 자신의 죄에 대해 어떤 것이라도 깨달을 수 있을까요? 우리가 그에게 세속적인 마음을 속일 하나님에 대한 사소한 것들만 이야기한다면 그가 진짜 회개와 믿음으로 나아올 수 있을까요?  
우리는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시며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라고 시작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누구신가에 대한 완전한 조언의 설교로 시작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처음부터 그에게 이것이 그의 생명을 치르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을 말해야 합니다.  
그런 다음에 우리는 입문적인 질문을 합니다. “이봐요, 당신은 당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압니다. 안 그렇습니까?”  
그것은 몇 년 전에 나의 어머니가 암으로 돌아가셨을 때와 같습니다. 그것은 오늘날 의사가 들어와서 “이봐요, 바바라, 당신은 당신에게 암이 있다는 것을 압니다. 안 그렇습니까?” 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너무나 표면적으로 대합니다. 무게도 없고 엄숙함도 없습니다.  
“선생님, 당신에게 끔찍한 병폐가 있고 심판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어떤 사람에게 단지 “선생님, 당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아십니까?” 라고 한다면, 마귀에게 가서 자신이 죄인인지 아느냐고 물어보십시오. 그는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글쎄요, 예, 그렇죠. 죄에 대해서라면 나는 아주 잘 하고 있으며… 아니면 보기에 따라 못하고 있다고 할 수도 있겠죠. 그러나 예. 나는 내가 죄인이라는 건 압니다.” 
문제는 당신이 죄인임을 아는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성령이 복음의 설교를 통해서 여러분의 마음에 너무나 일하고 계셔서 변화가 일어나서, 여러분이 한때 사랑했던 죄가 지금은 미워지고, 한때는 품기를 원했던 죄로부터 지금은 마치 용을 피해 도망가는 것처럼 피해 도망가고 싶은가" 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야 오는 질문이 “천국에 가기 원하십니까?” 입니다.  
이것이 내가 내 아이들을 98%의 복음주의 교회의 주일학교와 여름성경학교에 보내지 않는 이유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에 관한 영화를 보여준 다음에, 좋은 의도를 가진 어떤 사람들이 서서 말하기를 “예수님이 너무 훌륭하지 않니?” 라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너희 어린이들 중 얼마나 많은 어린이들이 예수님을 사랑하니?” 라고 말합니다.  
“오, 저요.”  
“누가 예수님을 마음에 영접하기 원하니?”  
“오, 저요.”  
그리고 그들은 세례를 받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일종의 기독교 문화, 적어도 교회 문화 속에 자라고 있기 때문에 얼마 동안은 잘 따라갈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15, 16세, 의지력이 생기는 때가 되면 매였던 줄을 끊기 시작합니다. 그들은 죄악가운데 살기 시작하고, 우리는 그들을 쫓아다니며 “너는 크리스챤이야. 너는 단지 크리스챤이 아닌 것처럼 살고 있을 뿐이야. 타락하지 마라.” 라고 말합니다. 성경적으로 그들에게 접근해서 “너는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고백했었다. 너는 심지어 세례식에서도 그를 선언했었다. 그러나 지금 보니까 너는 그분에게서 떠나간 것 같구나. 자신을 살펴봐라. 자신을 시험해 보아라. 네가 정말로 개종했다는 증거가 거의 없구나.” 라고 말하는 대신 말입니다.  
그런 다음 대학 졸업 후 24, 25세, 또는 30세가 되었을 때, 그들은 교회로 돌아와서 그들의 삶을 재 헌신하고 미국에서 기독교를 둘러싸고 있는 바로 그 모조의 기독교적 윤리에 참여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그들은 이런 말을 듣습니다. “너희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나는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여러분은 말합니다. “폴 형제, 당신은 너무 화를 내는군요.”  
내게 그럴 권리가 없습니까? 누군가는 부흥을 위해서 외쳐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기초도 바로 세워놓지 못했습니다.   
아, 부흥이 와서 우리의 기초를 바로 세워주겠지요. 그러나 우리가 멀쩡한 눈과 귀를 가지고 있고 성경이 우리 앞에 있는데도 이런 문제들을 고치지 않아야 합니까?   
천국에 가고 싶으십니까?  
친구 여러분들, 누구나 천국에 가고 싶어 합니다. 다만 그들은 그들이 천국에 갔을 때 하나님이 거기 있기를 원하지 않을 뿐입니다. 문제는 천국에 가고 싶은가가 아니라, 이것입니다. 당신은 하나님을 원하십니까? 당신은 하나님을 증오하는 것을 멈추셨습니까? 그리스도가 당신에게 소중해졌습니까? 당신은 그분을 갈망하십니까?  
그것이 정치적 이론이 뜻하는 모든 것입니다, 친구 여러분. 누구나 천국에 가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하나님을 미워합니다. 그러므로 문제는 여러분이 더 이상 상처받지도 않고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을 수 있는 특별한 곳으로 가기 원하는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이것입니다. 당신은 그분을 원하십니까? 그리스도가 여러분에게 소중하게 되었습니까?  
어떤 사람이 기도할 때, 그 다음에 이런 질문을 받습니다. “천국에 가기 원하십니까?”  
“음, 네.”  
“음, 그렇다면, 당신은 예수님께서 당신의 마음으로 들어오시도록 기도하시겠습니까?”  
자, 친애하는 친구들이여, 이것을 말하겠습니다. 그 방법을 사용해서 구원받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 방법 때문이 아닙니다. 그 방법에도 불구하고 그런 것입니다.  
“선생님, 당신은 예수님을 갈망하십니까? 당신의 죄를 알겠습니까?”  
“오, 그럼요. 예, 그렇습니다.”  
“선생님, 회개가 어떤 것인지, 당신의 삶에 이것이 일어나고 있다는 성령의 증거가 어떤 것인지 우리에게 보여주는 여기 몇 구절의 성경을 봅시다. 상한 심령을 보십니까? 당신이 싸워왔던 모든 것들이 붕괴된 것과 지금 당신의 마음이 하나님에 대한 새로운 생각들과 새로운 열망들과 새로운 소망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을 보십니까?”  
“예, 그것이 보입니다.”  
“선생님, 그것이 회개의 첫 열매들일 수 있습니다. 자, 자신을 그리스도께 던지십시오. 그분을 신뢰하십시오. 그분을 신뢰하십시오.”  
그런 다음 제 말을 들으십시오. 당신은 복음을 말할 권세가 있습니다. 당신은 나에게 어떻게 구원받는지 말할 권세가 있고 당신은 사람들에게 구원의 확신에 대한 성경적인 원칙을 가르칠 권세가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사람들에게 그들이 구원받았다고 말할 권세는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성령이 하시는 일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그들을 그 하찮은 일로 데려올 때,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이 – 역자 주)  
“예수님을 당신의 마음에 초청하셨습니까?”  
“예.”  
“당신은 그때 진심이었습니까?”  
“예.”  
“당신은 구원받았다고 생각하십니까?”  
“잘 모르겠는데요.”  
“물론 당신은 구원받았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진심이었고, 그분은 당신이 그분을 초청하면 들어오시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당신은 구원받았습니다.”  
그러고는 그들은 5분 동안의 상담 후에 교회 밖으로 나갑니다. 그 전도자들은 ‘데니스’ (미국의 체인 레스토랑 이름 – 역자 주)로 먹으러 가고, 그 사람은 길을 잃습니다. 그 사람은 길을 잃습니다. 
비성경적인 초청. 만약 그들이 의심하게 된다면, 만약 그들이 그들의 구원에 대해 다시 의심하게 된다면. 다시 말합니다. 만약 그들이 그들의 구원에 대해 의심하게 된다면, “예전의 한 시점으로 돌아갑시다. 당신의 삶속에 당신이 기도했고 예수님이 들어오시도록 초청한 시점이 있었나요?”  
“예.”  
“진심이셨나요?”  
“그런 거 같은데요.”  
“마귀가 당신을 괴롭히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만약 그들이, 계속적인 세속성 속에 두려움이 없고 성장이 없는 교회의 견지에서조차 성장이 없이 살고 있다면, 우리는 그것을 개인적 제자도의 부족의 탓으로 돌리고 그것을 세속적 그리스도인의 교리로 치부해 버립니다. 세속적 그리스도인의 교리가 더 많은 생명을 파괴시켰고 더 많은 사람들을 지옥으로 보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죄와 씨름합니까? 예.   
그리스도인이 죄에 빠질 수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그리스도인이 평생을 열매 없이 계속적인 상태의 세속성 안에 살면서도 진짜 그리스도인일수 있습니까? 절대 그럴 수 없습니다. 아니면 신약의 언약에 대한 구약의 모든 약속들이 실패한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히브리서에서 훈련에 관해 말씀하신 모든 것들이 거짓말입니다. 나무는 열매로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개종을 위한 사람들과 일하고 있을 때… 나는 하나님의 것들에 대해 많이 이해하고 있는 설교자들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시범적인 복음의 제시를 접할 때 그들은 또 다시 이런 방법론에 빠집니다. 
제가 이야기 하나를 들려 드리고, 그 다음에 다음 고발 내용으로 넘어가겠습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내 일생에서 가장 소중했던 순간들 중 하나입니다. 내가 캐나다에서 설교하고 있었을 때인데… 사실상 그들이 내게 말하기를 거기는 알라스카에서 30 킬로미터 떨어져 있다고 했습니다. 그 동네에는 사람보다 북극곰이 더 많았습니다, 진짜로요. 거기는 사람이 15, 20명쯤 되는 작은 교회였고 나는 설교 중이었습니다. 내가 강대상에 서자마자 60대나 70대 초반쯤의 산같이 커다란 사람이 들어왔는데, 그저 산처럼 거대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이 건물 안에 있는 우리 모든 사람들을 두들겨 팰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내가 설교하면서 그의 얼굴을 보았을 때, 나는 다 때려치우고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내가 본 가장 슬픈 인간이었습니다. 그냥 복음, 복음, 그리고 단상에서 내려왔을 때 나는 곧장 그에게로 걸어갔습니다.  
나는 말했습니다. “선생님, 무엇이 문제입니까? 무엇이 당신의 영혼을 괴롭히고 있습니까? 나는 내 평생 그렇게 슬프고 낙심한 사람을 본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는 서류봉투 하나를 꺼냈는데 그 안에는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엑스레이 사진들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지금 의사를 만나고 오는 길입니다. 나는 3주 후에 죽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그가 나에게 한 말이었습니다. “나는 평생 소 목장에서 살았습니다. 거기는 산 같은 것들을 지나서 경비행기나 말을 타야지만 갈수 있는 곳입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나는 한 번도 교회에 간 적이 없습니다. 성경도 읽어본 적이 없습니다. 나는 하나님이 계시다고 믿고 있고, 누가 예수라는 이름의 사람에 대해서 얘기하는 것을 언젠가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나는 평생 어떤 것도 두려워한 적이 없었는데, 지금 나는 공포에 질려 있습니다.”  
내가 말했습니다. “선생님, 설교내용을 이해하셨나요, 복음을요?”  
그가 말했습니다. “예.”  
자, 그 순간 거의 대다수의 설교자들은 무엇을 했을까요?  
“그럼, 예수님을 당신의 마음속에 들어오시도록 초대하시겠습니까?” 
그게 그들이 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생님, 이해하셨군요.”  
그가 말했습니다. “이해했지요. 그런데 그게 전부입니까? 그냥 그게…” 그가 말했습니다. “애라도 그건 이해했을 겁니다. 누구라도 말입니다. 내가 이해하고 기도하는 게 전부입니까, 아니면…?”  
나는 말했습니다. “선생님, 당신은 3주 후에 죽을 겁니다. 나는 내일 떠나야 합니다. 내가 비행기 표를 취소하겠으니, 우리가 여기 머물면서 당신이 개종하거나 죽어서 지옥에 갈 때까지 성경과 씨름하면서 하나님께 부르짖읍시다."  
그래서 우리는 시작했습니다. 나는 구약과 신약의, 속량과 구원에 관한 하나님의 약속을 다루고 있는 모든 구절들을 여러 번 반복하기 시작했습니다. 요한복음 3:16을 읽으면서, 잠시 기도하면서, 하나님께 부르짖으면서, 그 사람에게 회개에 관해, 믿음에 관해, 확신에 관해 질문하면서, 그의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질 때까지 일했습니다.  
그리고는 마침내 그날 저녁 그저 지친채로 아무런 돌파구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말했습니다. “선생님, 기도합시다.” 그리고 우리는 기도했습니다.  
내가 말했습니다. “선생님, 요한복음 3:16을 다시 읽으십시오.”  
그가 말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백만 번은 읽었을 것입니다.”  
내가 말했습니다. “압니다. 그러나 그것은 가장 위대한 구원의 약속중의 하나입니다. 그 본문을 다시 읽으십시오.”  
그리고 나는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가 그의 산같이 커다란 손으로 그의 무릎 위에 나의 성경을 들고 말했습니다. “알겠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아, 아, … 나는 구원받았습니다! 나는 구원받았습니다! 폴 형제님, 내 모든 죄는 다 사라졌습니다. 나는 영원한… 나는 구원받았습니다! 내 말은…”  
내가 말했습니다. “그걸 어떻게 아시죠?”  
그가 말했습니다. “이 성경 구절을 한 번도 안 읽어 보셨습니까?”  
무슨 일이 생긴 겁니까? 하나님의 성령의 일하심입니다. 당신들이 시도하는 그런 작은 속임수 대신에 말입니다. 뭐, 식사하러 가신다구요? 뭐, 여러분 생각에 설교란 구경거리고 그 다음엔 호텔로 돌아가신다구요? 아닙니다. 설교 후는 일을 시작하는 때입니다. 영혼을 다루면서 말입니다. 집회 중에 사람들은 상담하지 말아야 할 사람에게 상담을 하려고 앞으로 나옵니다. 5분 동안, 그들은 상담을 받고, 빨리 카드를 목사에게 줍니다. 그러면 목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새로운 하나님의 자녀를 여러분들에게 소개합니다. 그를 하나님의 가족으로 환영해 주십시오.”  
감히 어떻게!  
만약 그를 소개하고 싶다면 이렇게 말하십시오. “오늘밤 이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을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경외심과 사람들의 영혼을 향한 우리의 사랑 때문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그의 안에서 진정으로 이루어지고 그가 정말로 회개와 믿음과 위대한 구원의 확신과 성령 안에서의 기쁨에 대한 성경적 이해를 가지는 것이 확실해 지도록 이제 우리는 그와 함께 일할 것입니다. 그게 우리가 할 일입니다.”  
우리가 한 짓을 보십시오. 여러분께 간청합니다. 우리가 하고 있는 짓을 좀 보십시오. 이것은 어떤 종교집단이 아닙니다. 이것은 우리의 모습입니다. 멈추십시오. 멈추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