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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가는 두날개/회개와믿음

*폴 워셔 목사님의 교회에 대한 열 가지 기소장 중에 여섯번째 고발*

by Peartree 2012. 12. 31.



여섯 번째 고발: 교회의 속성에 대한 무지 

하나님은 오직 하나의 종교 기관만 가지고 계십니다. 그것은 교회입니다. 그것은 교회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궁극적 목표와 부흥의 궁극적 산물은 성경적 교회들을 심는 일일 것입니다.  
나는 오늘날 지역 교회들이 경멸받고 있다는 것에 가장 큰 두려움이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당신이 순회 설교자라서 세계적인 사역을 하고 있다고 말해보십시오. 그러면 그들 모두가 절할 것입니다. 누군가에게 당신이 30명의 무리의 목사라고 말해보십시오. 그러면 그들은 집회 중에 당신을 뒷자리에 앉게 만듭니다.  
그분은 순회 설교자들의 왕자가 아니라, 그분은 목사들의 왕자이십니다.  
몇 년 전 빌 클린턴이 선거 기간에 이런 슬로건을 내 걸었습니다. “중요한건 경제다, 바보들아.” 나의 목사님, 제프 노블렛, 우리 교회 장로들 중 한분이시고, 주교육자이며 주설교 목사이신 그분이 어느 날 나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기요, 셔츠를 잔뜩 만들었으면 좋겠는데요.” 
“거기에 뭐라고 쓰시려구요, 제프 형제님?”  
“중요한건 교회다, 바보들아.”  
예수님은 교회, 아름답고 때 묻지 않은 순결한 교회를 위해 그의 생명을 주셨습니다. 여러분이 사역에서 무언가를 위해 생명을 드리고 싶다면, 교회에 드리십시오, 하나의 교회에, 한 몸의 신자들, 지역의 신도들 말입니다. 중요한 것은 교회입니다.  
이제 교회에 대해 이것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잘 들으시기 바랍니다. 교회에는 신도들 중 남은 자라는 게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남은 자’ 신학에 대해 잘 알고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이스라엘의 모든 여정 속에는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과 남은 자인 진짜 신도들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교회에 관해서는 사실이 아닙니다. 남은 자인 신도들, 또는 작은 무리의 신도들이 교회라 불리는 커다란 집단 안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가 바로 남은 자입니다.  
그리고 이 말을 하고 싶습니다. 만약 목사들이 신성모독에 가까운 일을 한 적이 있다면 그것은 이것에 관한 것입니다. 나는 신학자들이나, 순회 교육자들, 설교자들이나, 이런 저런 사람들이 이런 종류의 말을 하는 것을 듣습니다. “교회 안에는 교회 밖만큼이나 죄가 많다. 교회 안에는 교회 밖만큼이나 이혼율이 높고, 교회 안에는 교회 밖만큼이나 비윤리성이나 음란물이 많다.” 그런 다음 설교자들은 말합니다. “예, 교회가 창녀처럼 행동합니다.” 
이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를 창녀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 아주 조심해야 합니다.  
문제가 무엇인지 말씀드리겠습니다. 목사들과 설교자들이 교회가 뭔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미국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아름답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그녀는 때로는 부서질 듯 합니다. 때로는 연약합니다. 괴롭힘을 당합니다. 완벽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녀가 심령이 상해있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그녀는 자신의 하나님과 겸손하게 동행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문제는 여러분이 교회가 무엇인지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성경적인 설교의 부족함 때문에, 소위 말하는 교회라는 것은 기독교와 동일시하는 세속적이고 사악한 사람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리고 양들 가운데 있는 모든 염소들 때문에, 양들은 염소들이 하는 모든 일에 대한 비난을 받고, 우리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이 이방인들 가운데 모독되어집니다.  
이것을 읽어보셨는지… 그냥… 시간이 없다는 것을 압니다만, 빨리 한번 봅시다, 빨리요. 보여 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예레미야 31장을 봅시다. 감사합니다. 예레미야 31장 31절입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세우리라.”  
나는 이스라엘이라 불리는 사람들로부터 아무것도 뺏고 싶지 않지만, 이 본문은 교회에도 적용됩니다. 그것을 이해하십시오. 나는 종말론에 관해 논쟁에 빠지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신약의 히브리서에서는, 이것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적용되고 있습니다.  
“또 주께서 가라사대 내가 저희 열조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저희와 세운 언약과 같지 아니하도다.” (히 8:9 – 역자 주)  
나는 설교자들이 항상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듣습니다. “이스라엘을 돌아보면, 하나님을 믿지 않고 우상숭배 하는 한 무리의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 중에는 극소수의 진짜 신도들인 남은 자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신약의 교회에 적용시키지는 마십시오. 왜냐하면 그분이 “뭔가 새로운 일을 하겠다.” 라고 말하셨기 때문입니다.  
“또 주께서 가라사대 내가 저희 열조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저희와 세운 언약과 같지 아니하도다 저희는 내 언약 안에 머물러 있지 아니하므로 내가 저희를 돌아보지 아니하였노라 또 주께서 가라사대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으로 세울 언약이 이것이니 내 법을 저희 생각에 두고 저희 마음에 이것을 기록하리라” (히 8:9,10 – 역자 주)  
당신이 정말로 개종했다면, 그분이 당신에게 율법이 적힌 돌 판을 주기만 한 것이 아닙니다. 그분은 초자연적으로, 중생의 교리를 통해, 그 율법들을 당신의 마음에 써 놓으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이 그렇게 하셨기 때문에, “나는 저희에게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내게 백성이 되리라”. (히 8:10 후반부 – 역자 주)  
그리고 뭐라고 써 있는 지 보십시오. “또 각각 자기 나라 사람과 각각 자기 형제를 가르쳐 이르기를 주를 알라 하지 아니할 것은 저희가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니라 내가 저희 불의를 긍휼히 여기고 저희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히 8:11,12 – 역자 주) 
다시 말하지만, 중생의 교리입니다. 하나님은 지난 2000년 동안 이 새 일을 하고 계십니다. 미국에는 교회가 많지 않습니다. 잘 가꾸어진 잔디 위에 지어진 정말 멋진 벽돌 건물들이 많이 있을 뿐입니다. 누가 자신이 교회에 속해 있고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그런 것은 아닙니다. 그분이 뭐라고 하시는지 보십시오. 그들은 서로를 가르칠 필요조차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선생들과 설교자들이 없어질 것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들 모두들 가운데에는 하나님을 아는 뛰어난 지식, 특히 그들의 죄가 용서받은 사실에 대한 지식이 있을 것입니다.  
빨리 넘어갑시다. 32장을 보십시오, 32장 38절입니다. (렘 – 역자 주)  
“그들은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될 것이며”  
그분은 “나는 그렇게 되길 소망한다. 어쩌면, 운이 좋으면, 아, 만약 나와 같이 일할 전도자들을 충분히 구할 수 있다면, 어쩌면 이게 제대로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라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말씀하십니다. “나는 나를 위해 한 백성, 내가 내 아들에게 줄 한 백성을 이끌어 낼 것이다.” 그리고 또 그분은 말씀하십니다. “그들은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될 것이며”  
이것을 보십시오. “내가 그들에게 한 마음과 한 도를 주어”   
자, 나에게 화내지 마십시오, 적어도 지금 화내고 있는 것 보다는 더 화내지 마십시오. 그러지 말고 내 말을 들어 보십시오. 70년대와 80년대와 모든 예수 행진들과 모든 사람들이 울고불고 하면서 “교회는 너무 분열되었다. 교회는 하나가 아니다.” 하는데, 친애하는 친구 여러분들, 이것을 말해 드리죠. 만약 교회가 하나가 아니라면 어디엔가 아버지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위해 듣지 않으신 기도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 새 언약의 약속은 습격당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의 초점을 조금 다시 맞춰드리죠. 나는 여러분들에게 교회는 하나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녀는 항상 하나였습니다. 
당신은 비행기 안에 앉아 있을 때, 아니면 슈퍼마켓에서, 당신이 알지도 못하는 어떤 이를 만났을 때, 당신이 침례교도이거나 메노파 교도이거나 이것이든 저것이든 간에 진정한 복음주의자이자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서, 그 사람과 몇 분도 얘기하지 않았는데 “아, 그 사람 신자구나. 살아있는 신자다.” 라는 것을 발견했던 적이 있었습니까?  
그렇다면 그 순간 당신은 그를 위해 당신의 생명을 내어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를 위해 당신의 생명도 내어 줄 것입니다.   

내가 기억하기로 한번은 우리가 페루의 디파르맨또 아르조나스에 있었는데, 그때는 신데로 루미노소의 시대였고 그곳에 한창 내전이 있던 때였습니다. 우리는 검은 방수포를 덮은 곡물 트럭 뒤에 타고 22시간을 달리다가 자정쯤 되어서 그 방수포를 벗겼는데, 그 트럭은 멈추었고 우리는 정글 속으로 뛰어 내렸습니다. 우리는 그날 밤을 정글의 주변에서 보내고, 인해니오 탐블릭이라는 곳을 향해 걸어갔습니다. 다음날 반쯤 갔을 때 우리는 어둠속에서 길을 잃었고, 그래서 나와 나의 친한 친구 파코는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오, 하나님, 우리에게 어디로 가야할지 알려주십시오. 우리는 길을 잃었습니다. 만약 여기가 테러리스트들이 점령하고 있는 지역이라면, 군인들조차 거기로 들어가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부르짖었습니다. “오, 하나님, 우리에게 가야할 방향을 알려주시옵소서. 도와주시옵소서.” 

  
우리는 종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누군가 말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이상한 대화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당나귀를 데리고 밭에서 돌아오고 있는 한 소년이 당나귀에게 말하고 있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소년의 뒤로 가서 그를 따라갔습니다. 그러다가 우리는 한 마을, 오두막집과 어도비 진흙집들이 있는 조그마한 마을 주변에 다다랐습니다. “파코.” 내가 말했습니다. “알겠지만, 만약 테러리스트들이 이 마을을 점령하고 있다면 우리는 죽었네.” 
“맞아, 하지만 어디라도 가긴 가야지.”  
그래서 우리는 내려가서 어둠속에서 술에 취해 있는 한 남자에게로 다가가서 남미어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기 형제들이 있습니까?” 왜냐하면 산간지방에서는 그게 무슨 뜻인지 누구나 다 알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진실한 그리스도인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는 남미어로, “저기 사는 할머니.” 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래서 거기로 갔습니다. 거기에는 한 늙은 나사렛 여자가 있었고 나는 문을 두드렸습니다. 나는, “나는 기독교 목사입니다. 제발 도와주십시오.” 하고 말했습니다.  
그 할머니는 등불을 비추고, 나를 잡아채서는 안으로 끌어다 놓았습니다. 그녀는 파코도 잡아챘고, 우리를 아래층으로 데려갔습니다. 그 집은 일종의 진흙 벼랑을 파서 만든 것이었는데, 우리를 건초와 닭과 물건들이 있는 지하실로 데리고 갔습니다. 그녀가 우리를 거기 앉혔고 등불을 켰는데 그때 한 어린 소년이 들어왔고 그녀는 그 아이를 불러다가 “가서 다른 형제들을 데리고 오너라.” 하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닭고기와 유카와 다른 모든 것들을 가져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의 생명을 무릅쓰고 말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하는, 그리스도의 몸은 분열되었고 엉망이 되었으며 죄로 가득하다는 그 모든 바보 같은 소리를 그만 하십시오. 내가 여러분이라면 그리스도의 신부에 대해서 그런 식으로 말하지는 않을 겁니다. 
여러분들에게 있는 것은 양들 가운데 있는 한 무리의 염소들과 가라지들입니다. 그리고 극소량의 성경적, 긍휼적 교회 훈련만이 행해지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양들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그들은 양을 먹고 살고, 양을 파괴하고, 여러분 중 교회의 지도자들은 그들을 사랑하시는 그분 앞에 설 때에 비싼 죄 값을 치르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은 일어서서 악한 사람들을 대면할 충분한 용기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사실을 말하자면, 들어보십시오. 교회에 관한 미국에서의 평균적 시나리오는, 대체로 교회는 민주주의라는 것입니다. 그것에 대한 가정이라든지, 장단점에 대해서는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복음에 대한 설교가 아주 적기 때문에, 교회는 기본적으로 대다수가 세속적인 잃어버린 사람들이며, 교회가 민주주의이기 때문에 그들이 대체로 교회의 방향을 결정합니다. 그리고 목사가 많은 수의 사람들을 잃고 싶어 하지 않고 전도와 진정한 개종에 대해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는 교회의 악한 자들에게 영합하고 예수 그리스도에게 속한 적은 무리의 진짜 양들은 그 모든 극장의 가운데, 그 모든 세상적인 것 가운데, 그 모든 대충매체 가운데 앉아 “우리는 단지 예수님을 경배하고 싶고, 단지 누군가 우리에게 성경을 좀 가르쳐 주기를 원합니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목사들은 그것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입니다. 
나는… 이것은 사실입니다. 이것은 그냥 사실입니다.  
당신은 말합니다. “오, 당신은 그냥 화가 났네요.”  
친구 여러분들, 내가 이것을 말하는 데 어떤 희생이 필요한지 아십니까? 이것은 사실입니다. 많은 수의 악한 사람들을 모아 유지하는 반면에 그 가운데 있는 소수의 양떼는 굶어 죽고 세속적 다수와 함께 그들이 가고 싶어 하지 않는 방향으로 끌려가고 있습니다.  
내 말을 들어보십시오. 만약 내 아내가 어느 늦은 밤에 월마트에 있었는데 당신이 남자로서 지나가다가 두 남자가 그녀를 희롱하고 있는 것을, 셋, 넷, 다섯, 열 명의 남자들이 그녀를 희롱하며 상처 입히고 있는 것을 보고도 자기 보존의 이름으로 고개를 숙이고 그냥 지나갔다면, 내가 당신에게 할 말이 있습니다, 친구. 나는 그 열 명을 찾아다닐 뿐 아니라, 당신도 찾을 것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신부이며 그녀는 그분에게 소중합니다. 예수님을 섬기는 것에는 희생이 따릅니다. 당신의 교회, 당신의 명성, 당신의 교파, 절대적으로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를 위해서는 그럴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여기 뭐라고 하는지 보십시오. 나는 이 말을 사랑합니다. “내가 그들에게 한 마음과 한 도를 주어.” 그러면 그 도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그리스도이고 거룩함입니다.  
내가 만났던 모든 진짜 신도들은 그리스도에 대해 많이 말했고, 현재보다 더 거룩해지고 싶다는, 더 그리스도를 닮아가고 싶다는 갈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보십시오. “내가 그들에게 한 마음과 한 도를 주어 자기들과 자기 후손의 복을 위하여 항상 나를 경외하게 하고.” (렘 32:39 -역자 주) 
오, 얼마나 훌륭한 본문인지요. 그러나 아주 빨리 다음을 봅시다.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기 위하여 그들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는 영영한 언약을 그들에게 세우고.” (렘 32:40 전반부 – 역자 주)   
자, 우리는 이 부분만 읽습니다. 그리고 너무나 많은 악하고 잃어버려진 사람들이 일요일에 교회에 가서 이 구절을 듣습니다. “예, 하나님께서는 나와 영영한 언약을 세우셨습니다. 그분은 결코, 켤코 나를 떠나지 않으실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은혜 때문에 안전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다음 부분을 읽는 데는 실패합니다.  
그리고 뭐라고 써 있는가 보십시오.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기 위하여 그들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는 영영한 언약을 그들에게 세우고 나를 경외함을 그들의 마음에 두어 나를 떠나지 않게 하고.” (렘 32:40 전체구절 – 역자 주) 
하나님께서 당신과 영영한 언약을 세우신 증거는, 그분께서 당신의 마음에 하나님을 경외함을 두어서 당신이 그분을 떠나지 않는 것이고, 만약 당신이 그분을 떠나고 그분이 당신을 징계하지 않으셔서 당신이 계속해서 그분을 떠나 있다면, 그것은 그분이 당신의 마음에 경외함을 두지 않으신 것이고, 당신은 중생하지 않은 것이며, 하나님과 아무런 언약이 없다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오, 그것은 사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