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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의 창고/ 비전나리의 설교

어찌 이러한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 - 요한복음 3:1-15

by Peartree 2012. 12. 25.

어찌 이러한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

요한복음 3:1-15

 

오늘 본문은, 예수님과 니고데모의 대화인데, 이 대화의 주제는 '거듭남' 이라는 주제였습니다.

세상에서 이 주제만큼, 중요한 주제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이유도, 거듭나기 위해서 믿는 것이고, 교회를 나오는 이유도, 거듭남을 체험하기 위해서 나오시거나, 거듭난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 교회이기 때문에, 교회를 나오는 것입니다.

이 거듭남이 없으면, 신앙인으로서 출발을 할 수 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오늘 본문의 말씀처럼, 거듭난다는 것은, 구원 받은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그래요. 예를 들어, 아직 엄마 뱃속에 있으면, 생명체이기는 하나, 아직 사회인으로 미완성이지요. 그렇듯이, 미안한 얘기지만, 물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신앙인으로는 출발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거듭남이 이렇게 중요한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참으로 중요한 말씀입니다. 만약에 예수님께서, 오늘 이 '거듭남' 에 대한 말씀을 하지 않으셨으면, 신학적으로 상당히 혼란스러웠을 거에요. 어디까지가 구원인지, 무엇이 구원 받은 증거인지, 가이드라인이 없기 때문에, 구원에 대한 다양한 견해들이 나왔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예수님께서, '거듭나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선을 그어 주셔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은, 그냥, 교회에 나오면, 구원 받는지 알았을 거예요. 종교적인 의식을 행하면, 구원 받는지 알고, 당시에 바리새인들처럼, 금식하고, 십일조 하고, 하루에 두 차례 기도하는 식으로, 구원을 받으려고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이 '니고데모'는 아주 특별한 사람이었습니다. 1절에 보시면, 바리새인이며, 유대인의 관원이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종교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상시에 영향력이 있던 사람임에는 분명합니다. 당시에 이런 사람들은, 자기들을 일컬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선택받은 백성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당연히, 구원 받았다고 생각하고 있겠죠.

 

그런데, 이 '니고데모' 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자기는 구원받은 것 같지가 않은 거예요. 이 영혼의 문제에 대해서, 이 구원의 문제에 대해서, 너무나 궁금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찾아 왔습니다. 이런 사람이 구원을 받습니다.

 

교회 안에도요, 이렇게 두 종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기 영혼에 대해서, 아무런 관심이 없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목회를 하면서,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때로는 어떤 분과 영혼에 대한 문제를 얘기 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전혀 관심이 없는 거예요. 그렇다고, 전혀 관심이 없는 분에게, 영혼의 문제에 대해서, 얘기를 하고, 구원의 문제에 대해서 얘기를 하면,

십중팔구는, 시험들어 교회에 나오지 않습니다. 사실 이 문제부터 해결해야 하는데, 말이죠.

' "나는 구원 받았는데, 뭐 그런 얘기를 하냐" 고 할 것 같기도 하고, 내가 구원 받았는지, 받지 못했는지, 목사님이 어떻게 아냐고, 하나님이나 알지, 라고 하며, 시험들어, 교회에 나오지 않을 것 같아, 조심할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구원 문제에 관해서 관심을 가지고, 목사에게 물어 본다면, 서로에게 얼마나 좋겠습니까? 오늘 '니고데모' 처럼 말이죠. 그런데, 요즘은, 이 '니고데모' 같이, 구원문제에 대해서, 물어 보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교회안에 있는 모든 성도들이, 다 구원 받았습니까? 그렇지는 않습니다. 우리 교회 홈페이지 가 보시면, '명설교와 감동영상' 코너에, '교회안에 미혹된 크리스찬들' 이라는 제목의 영상이 올려져 있습니다. 거기 보시면, 어느 목사님께서 '아더 핑크' 목사님의 글을 읽었는데, 이 아더 핑크 목사님은1930년대 아주 유명한 목사님이셨습니다. 그 아더 핑크 목사님이 책에서 말하길, 그 당시에, 미국 개신교 신자중에 잘해야 2%만 거듭난 자들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옆에 앉아 있던, 폴 워셔 목사님이, 현재, 미국의 복음주의 교회 목사님들이 말하길, '교회안에 거듭난 사람들이, 5%만 되어도, 기쁘겠다' 고 말한다고 합니다.

 

제가 제 작년에, 교회성장 세미나에 참석했을 때도, 현재, 미국교회 안에, Born Again 한 사람을, 최대한 8%로 잡고 있습니다. 그럼, 나머지 92%는 무엇입니까? 교회는 나오지만, 구원 받지 않은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교회 성장도 좋고, 부흥도 좋고, 교육도 좋지만, 이 문제부터 해결해야 합니다.

이 문제를 목사에게 얘기 하자니, 챙피한 거 같기도 하고, 자존심이 상하는 것 같기도 하지만,

오늘 보세요. 이 '니고데모'는 지금으로 말하면, 종교지도자이고, 국회의원 정도 되는 신분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구원 문제에 관해서는, 자존심이 어디 있습니까? 주님 앞에 가서 물어보는 것입니다. 그래도 약간은 챙피했었는지, 사람들의 눈을 피해서, 밤중에 예수님께 와서 묻습니다.

 

이 니고데모가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하지 않습니까? 요한 복음 19:39절을 보시면,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아리마대 부자 요셉이, 예수님의 시체를 장사 지내려고 하는데, "일찍 예수께 밤에 나아왔던 니고데모도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근쯤 가지고 온지라"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구원 받기 전에는, 예수님께 나아오는 것이, 좀 창피하고, 꺼렸었는데, 예수님을 믿고, 거듭나더니, 사람들이 보던 말던, 예수님의 장사를 준비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거듭난 사람은, 그의 행동이 변하게 되어 있습니다. 거듭난 사람은, 주님을 끝까지 사랑합니다.

지금 이때는, 사람들이, 다 떠나고 없던 때였습니다. 예수님을 그렇게 따르던 수 많은 사람들도,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니까, 다 갈길로 가버렸던 때입니다. 그런데도, '니고데모' 는 변함이 없습니다. 한결 같습니다.

 

이런 모습이 구원 받은 자의 모습입니다.

 

그러면, 오늘, 예수님과 니고데모의 대화를 통하여, 거듭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살펴 보기를 원합니다.

 

오늘 본문, 5절을 보시면, 거듭남이란, 물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여기서 학자들은, 대체 그럼, 물이 뭐냐,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은 대충 알겠는데, 물은 무엇을 말하느냐? 많은 견해가 있습니다.

어떤 학자는, 물은, 아기로 태어날 때, 엄마의 양수를 말한다. 그래서 '육신으로 한번 태어나고, 성령으로 한번 더 태어나는 것이 거듭나는 것이다.' 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어떤 학자는, 물은 물세례를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물세례를 받고, 성령 세례를 받아야, 거듭나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어떤 학자는, 영적으로 해석해서, 물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으로 태어나야, 거듭나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밖에 여러가지 견해들이 있는데, 사실, 물이 무엇을 말하는지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 말씀에는, 다시 태어나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born again'

물로 태어났듯, 성령으로 거듭났든, 중요한 것은, 거듭난다는 것은, 우리의 인생에서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자주 말씀 드리잖아요. 구원받은 사람은, 구원 받기 전과, 받은 후의 생활이 다르다고요. 삶이 다릅니다. 생각도 다르고, 목적도 다릅니다. 세상을 보는 눈도 다릅니다. 거듭난 사람은, 반드시 이런 변화된 모습이 나타나야 합니다.

 

오늘 본문, 8절을 보시면, "바람이 임으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

 

무슨 말입니까? 바람 소리는 들리는데, 이 바람이 어디서 시작한 바람인지, 이 바람이 어느쪽으로 부는 바람인지 알지 못하듯이, 거듭난 사람도, 자기가 언제 거듭났는지, 잘 알지 못하지만, 바람소리를 듣고, 바람이 분다는 것을 알 수 있는지, 그들의 삶의 모습과, 생각과, 목적이 무엇인지를 듣고 나면, 거듭난 사람인지, 거듭나지 않은 사람인지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분은, 저에게, '목사님 ! 저는 몇월 며칠 구원 받았습니다.' 라고 하는 분도 있습니다. 그러면, 저는, 그 말 고지대로 다 믿지 않습니다. 어쩌면, 그것은 체험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성경은, 거듭남이란? 본인도 잘 모른다 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체험과 거듭남을 헷갈리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바람 소리를 듣고 바람의 존재를 알 수 있듯이, 성도의 모습을 보고, 그의 삶을 보고, 듣고, 그가 거듭난 사람인지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느 목사님은, 다른 간증은 시키는데, ' 거듭났다는 간증' 은 시키지 않는다고 합니다.

언제 거듭났다고 간증을 하는 것 까지는 좋은데, 그렇게 간증을 해놓고, 다시 거듭나기전 사람으로 돌아가는 간증자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라고 그래요. 어쩜 그들이 말하는, 거듭남은, 체험일 수 있습니다.

 

정말 거듭났으면, 사도바울 처럼, 끝까지 가는 것입니다. 바람이 부는데, 그 바람의 끝이 어디인지, 끝까지 그 바람을 따라가 봐야 알 듯이, 그 모습 그대로, 끝까지, 살아야 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가룟유다처럼, 주님을 만난 체험만 있고, 거듭난 사실이 없는 사람이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울처럼, 성령 체험은 했는데, 구원받지 않은 사람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들 뿐이겠습니까?

골로새서, 4:14절에는 '사랑받는 의원 누가와 데마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여기서 데마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이고 칭찬하죠. 그런데 디모데 후서 4:10절은 '이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다' 고 말합니다.

 

여러분, 주님을 만나고 거듭났으면, 그 모습 그대로, 끝까지 가야 합니다.

 

거듭난 목수이야기가 있습니다.

'에드워드 모트' 라는 37세 된, 목수였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목수라기보다는 캐비넷 제조공이였습니다. 이 사람은 젊은 시절. 공장에서 일하면서 열등의식과 반항심. 원망 등에 사로잡혀 살았습니다. "겨우 이런 공장에서 망치나 두들기며 일하다니.. 우리 부모는 왜 나에게 이런 삶밖에 주지 못하는 걸까." 이 열등의식. 반항. 원망의 삶은 그에게 아무런 소망도 주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추운 겨울 날. 그는 런던의 거리를 배회하다가 길가에 있던 자그마한 교회에 들르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그 교회에 들어갔습니다. 그날 존 하이야트 목사님이 요한복음 3장을 가지고 . 거듭난 도리에 관한 설교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 말씀을 들었을 때 에드워드에게는 "그렇다. 나는 거듭나야 한다"라는 강력한 소원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성령께서 그의 마음 문을 열어주셔서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거듭났습니다. 이렇게 거듭난 에드워드 모트는 그의 일기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내 망치는 이제 노래하기 시작했다. 내 망치는 이제 춤을 춘다. 그리고 내 눈동자는 생기가 돌고 내 마음 속에는 생수가 솟는다. 예수께서 내 마음에 오셨기 때문이다. 나는 거듭났다." 이제 그는 행복한 목공이 되었습니다. 그의 생은 점점 풍요로워졌습니다. 자기가 고용되어 일하던 목공소가 자기의 소유가 되었으며, 그 목공소는 점차 확장되었습니다. 곧. 그는 성공적인 사업가가 되고, 55세 되던 해 그는 자기의 전 재산을 드려서 교회를 짓고 목회공부를 하여 목사안수를 받고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복음을 증거하기 시작한 첫날. 그는 주님의 첫사랑을 기억하면서 주님을 향한 감사의 시를 지었습니다. 그 시는 찬송가 539장 '이 몸의 소망 무엔가' 로 지금도 널리 불리워지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내가 거듭났는지, 한번 생각하고,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위대한 신앙의 사람들은, 내가 구원 받았는지 무척 고민하며 살았습니다. 어거스틴, 바울, 루터, 칼빈, 존 웨슬레, 이런 분들이, 매일 매일, 이 바람이 어디로 부는지, 내가 지금, 거듭난 사람인지, 그렇다면, 거듭난 사람의 모습으로 살고 있는지, 고민하고, 고민하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분들에 비하면, 형편없는 신앙 생활하며, 거듭남에 대해서 한번도 고민하지 않고 살아간다면, 너무 담대한 것인지, 아니면, 무관심 한건지……

 

여러분, 이 거듭남에 대해서 만큼은 안심하면 절대로 안됩니다. 매일 점검 또 점검해야 합니다.

 

이렇게 해서, 오늘 본문, 3절의 말씀대로, 넉넉히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있는, 복 받는 사람들이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