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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의 창고/ 비전나리의 설교

억지로 지고간 십자가 - 마가복음 15:12-25

by Peartree 2012. 12. 25.

억지로 지고간 십자가

마가복음 15:12-25

 

지난달 22일부터, 다음달 7일까지 사순절 기간입니다. 사순절이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시기 전, 40일간을 말합니다. 그래서 이 사순절 기간에는, 오락을 금하고, 금주를 하면서, 십자가의 고난을 묵상하며 보내는 기간이기도 합니다.

 

십자가는 영어로는 Cross 라고 합니다. 라틴어는 Crux 라고 하는데, 이 Crux 라는 단어는 '고문대 또는 사형대' 라는 의미를 갖습니다. 당시의 십자가 형은, 사람이 만든 형벌 가운데, 가장 참혹했다고 해요. 십자가에 달리는 것도, 참혹하지만, 십자가에 달리기 전이 더 잔인하다고 하는데, 갈고리 모양의 납이나, 동물의 뼈 조각이 달린 채찍으로, 죽기 바로 직전까지 내리치는데, 그때, 피부의 살점이 뚝뚝 떨어져 나간다고 합니다. 그렇게 얻어 마진 다음에, 자기의 사형대인 십자가를 지고, 언덕을 올라가야 했습니다. 그리고는, 수치스럽게, 벌겨 벗긴 다음에, 서서히 고통 가운데, 십자가 형틀에 매달려 죽어가는 형이었습니다.

 

그래서 당시에, 이 십자가의 사형법은 너무나 참혹했기 때문에 로마 본국 내에서도 가급적 십자가 형을 실시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유대인들은 얼마나 잔인한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쳤습니다. 오늘 본문 13절에 보시면, 'Crucify Him ! 그를 십자가에 못박으라!

 

그런데 아이러니 하게, 예수님은, 그렇게 자기를 죽이라고 외치는, 그 사람들을 위해서, 십자가를 지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이고,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유대인들만 이렇게 잔인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한 죄인들이라면, 저와 여러분들은, 예수님의 죽음에 대해서 관심이 없었던 죄인들은 아니었습니까?

 

오늘 본문을 보시면, 두 가지 죄인들의 모습이 나옵니다.

하나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했던' 적극적이 죄인들이 나오고,

다른 하나는, '고통 당하고 있는, 예수님을 모른체 하고 지나가는' 죄인의 모습이 나옵니다.

오늘 본문을 21절을 보시면,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시는데, 하도 많이 맞아서 그런지, 십자가를 지고 갈 수 없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그래서 누군가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가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시몬이라는 사람이, 아무 관심도 없이, 지나가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영어성경은 'Passing by' 라고 번역했습니다.

아니, 지금 죄 없는 한 청년이, 군병들에게 얻어 맞고, 피 범벅이가 되서 쓰러져서 있는데, … 그리고 사람들은 그에게, 야유를 퍼부으며, 욕설을 하고, 손가락질을 하고 있는데, 이렇게도 관심이 없단 말입니까?

어쩌면, 나와는 아무 상관이 없기 때문에, 그냥 지나가면, 죄가 아닌 것 같지만, 이것을 성경은, '소극적인 죄' 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만약 길에서, 어떤 사람이 강도를 당해서, 길에 쓰러져 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성경은, 모른체 하고 지나가면, 죄라고 말합니다.

지금 얼마나 많이, 우리가 복음을 듣습니까? 라이오에서, TV 에서, 설교 강단에서, 친구로부터, 그런데, 2000년전 그 예수가 지금 나와 무슨 상관이 있냐고 하고, 듣지 않으면, 죄입니까? 죄가 아닙니까?

그래서, 제가 가끔 하는 말이 있지요, 지옥에 가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지옥에 갑니다' 라고 여러 번 말씀드렸습니다.

 

예수님에게 관심이 없으면, 지옥에 가는 것입니다. 관심이 없으면, 믿지 않으니까요.

 

한국의 EBS 라는 교육방송이 있습니다. 이 교육방송에서 '사람들의 두 얼굴' 이라는 제목으로 실험을 했습니다. 실험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한방에 5명을, 앉게 하고, 시험을 치루게 하고는, 시험감독관이, 15분 있다 시험지를 거두러 온다고 하고는, 문 밖에 나가자 마자, 쓰러지더니, 비명을 지르고, 아프다고 하며, 크게 소리를 지르는 실험이었습니다. 그런데, 5명 모두, 이 비명소리를 듣고, 옆 사람을 보는 거예요. 그런데, 옆사람이 그냥 앉아 있으니까, 다들 15분 동안, 한 명도 문을 열어, 괜찮냐고 물어본 사람이 없었다는 거예요.

그 이유는, 관심이 분산되서 그렇다고 합니다.

나 말고, 다른 사람이 가 보겠지, 나 말고, 다른 사람이, 도와 주겠지. 하는 마음이었다는 것입니다.

 

한 청년이, 지금 죽어가는데, 어떻게, 'Passing by' 할 수 있습니까? 이것은 범죄입니다.

오늘 구레네 사람, 시몬은, 나 말고, 다른 사람이, 이 죽어가는 청년에게 관심을 가지겠지 하며, 무관심으로 지나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 시몬을 오늘,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그에게 은혜를 주시고, 예수님에게 관심 갖는 사람으로 만드는지 살펴 보기를 원합니다.

 

21절을 보시면, 시몬은 구레네 사람이였습니다. 구레네는 지금의 리비아의 수도 트리폴리(Tripoli) 근처의 지방도시라고 합니다. 얼마전, 독재가 카다피가 죽었는데, 그 의 나라가 리비아였습니다.

이렇게 리비아에서, 예루살렘까지는 1000 Mile 넘는 먼 거리인데, 왜 왔는지는,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비즈니스 때문에 왔는지, 아니면, 유월절을 지키려고 왔는지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예수님의 죽음에는 관심이 없던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그날은 시몬에게 운이 없는 날이었습니다. 왜 많은 사람들 중에, 하필 나를 지목해서, 십자가를 지고 가게 만드냐는 거지요. 아마도, '재수가 없다' 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어떤 분들에게 복음을 전하면, '나 말고, 우리 애들이나 교회에 데리고 가십시요.' 하는 분들 계십니다. '교회에 나오세요' 라고 하면, '나 말고, 다른 분이나 데리고 가십시요' 라고 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에 저희 꿈의교회에서 주일이면, 오시는 모든 분들에게 $1000씩 나누어 준다는 소문이 났다고 해보세요. 그리고 '교회에 나오세요' 라고 하면, 그때에도, '다른 분이나 데리고 가십시요' 라는 말을 할 수 있냐는 거예요. 그때는 안 불러주면, 시험에 들겠죠.

 

오늘 시몬은 정말 십자가를 지고 가면서, 왜 하필이면 나냐, 다른 사람이냐 데리고 가지? '이거, 하나 돈도 안되고, 힘만 배고, 시간만 낭비하는 것이다' 분명히 그런 생각을 했을 거예요.

그런데 여러분, 그 억지로 졌던 십자가가 결국에는 복 덩어리였던 아십니까?

 

십자가를 지기 전에, 시몬은, 예수를 믿는 사람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 때에는 복음이, 갈릴리 지방을 중심으로, 다른 나라에 아직 전파 되지 않은 때였습니다. 그래서 리비아에 살던 시몬은, 예수라는 사람에 대해서 들어본 적도 없었을 거예요. 그리고 어떨결에 십자가를 대신 졌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예수님의 십자가였던 것이죠.

 

그리고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실 때, 예수님의 제자들도 다 도망갔는데, 이 시몬은 십자가 아래까지 가서,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을 목격합니다. 그 후에 예수님이 다시 사셨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그리스도인이 되었던 것입니다.

 

자기만 믿은 것이 아니고, 온 가족이 다 믿게 됩니다.

오늘 본문 21절을 보시면, 시몬을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 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16:13절을 보시면, 사도바울이 로마서를 쓰면서, 마지막 인사말에 이렇게 씁니다. "주안에서 택함을 입은 루포와 그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라" 그 위대한 사도바울이, 루포의 어머니, 그러니까, 시몬의 아내에게, '내 어머니' 라고 할 정도로, 바울에게 있어서, 시몬의 아내는, 믿음의 어머니였습니다. 아마도, 시몬도, '믿음의 어버지' 였을 것입니다.

엄청난 영적인 복을 온 가족이 다 받았습니다.

 

아니 억지로, 마지 못해, 지고간 십자가가, 이렇게 복이 될 수 있습니까?

 

오늘날 우리의 신앙생활도 보시면, 때로는 억지로 할 때가 있습니다.

때로는 억지로, 주일날 교회에 나와, 뒷자리에 앉아, 예배 한 시간 때우고 갈 때도 있습니다. 목사가 전화하고, 성도들이 전화하니까, 억지로, 올 때도 있습니다. 또 우리교회는 빈자리가 많으니까, '나라도 가서, 자리를 채워야지' 하면서, 억지로 교회에 나와 앉아 있기도 합니다.

새벽에 일어나는 것은, 얼마나 힘듭니까? 다 압니다. 하루 종일 일하고, 새벽에 일어나기 힘들죠. 그래도, 내가 안 가면, 목사하고, 사모 둘이서, 예배 드리니까, 억지로라도, 의무감을 가지고 나오시는 분도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때로는 우리에게 엄청난 축복을 가져다 준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억지로라도, 교회에 오라는 것입니다. 기쁜 마음으로, 예배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억지로라도 오는 단계가 지나야, 예배를 사모하는 단계로 갈 수 있습니다.

 

시몬이 처음에는 억지로 십자가를 졌지만, 나중에는요, '주님이 지신 십자가 내가 지고 가리이다' 라고 하며, 그 십자가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인도의 성자 썬다싱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잘 아실 겁니다.

눈이 잔뜩 덮힌 어느 날, 한 나그네가 히말라야산 건너편에 있는 사원에 가기 위하여 눈보라를 헤치고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가다보니까 어떤 사람이 눈 속에 파묻혀서 얼어 죽을 위기에 처했습니다. 그때 이 사람은 "이 사람을 돕다가는 나도 얼어 죽겠구나!" 생각하고 그냥 지나쳐 갔습니다.

 

얼마 후에 그 길을 어느 한 사람이 또 지나가게 되었는데 거의 얼어죽게 된 그 사람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 사람은 얼른 그를 업고서 땀을 뻘뻘 흘리며 갔는데.... 이 사람이 바

인도의 성자 썬다싱이었습니다.

사람을 짊어지고 가다 보니까.. 길가에 쓰러져 얼어 죽은 시체를 하나 발견하고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 사람은 썬다싱보다 앞서 갔던 사람이었습니다. 혼자서만 살겠다고 먼저 가버렸던 바로 그 여행자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다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기 위하여 그를 업고 갔던 썬다싱은... 그를 업었던 탓으로 몸의 체온은 올라가고, 그로 인해 등에 업힌 사람까지 결국 두 사람 다 살게 되었다는 일화입니다.

 

여러분 보통 교회에 처음 나오셨을 때, 어떻게 나오셨습니까? 대부분은 억지로 나오셨을 거예요. 친구의 권유에 의해서, 때로는 반 협박에 의해서 오셨을 거예요. '한번만 교회 나와 보라고, 그렇지 않으면 다시는 너랑 얘기 안한다' 뭐 이렇게 반 강제적으로, 마지 못해서, 교회생활을 시작하신 분도 있을 것입니다.

 

어떻게 오셨든, 억지로라도 오신 여러분의 인생은 복 받은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예수를 믿는 것 보다, 더한 축복은 없을 것입니다. 지금은 실감이 나지 않으시겠지만, 나중에 천국에 들어가 보면, 무슨 말인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억지로 십자가를 져서, 복 받은 사람이, 시몬 뿐이겠습니까?

감리교의 창시가, 존 웨슬레 목사님은, 1738년 5월 24일 수요일 저녁에 그날 따라 수요예배에 가기가 몹시 싫었던 것을 억지로, 발길을 옮겨 올더스 게이트에 있는 한 작은 모라비안 교회에 참석하게 되죠. 그리고 목사도 아닌 평신도가 마틴 루터가 쓴 로마서 강해 서문을 읽어 내려갈 때 가슴이 뜨거워지면서 회심하는 체험을 갖게 됩니다.

그 수요일 저녁에 억지로라도 교회에 나갔기 때문에 큰 은혜를 받고 감리교회의 창시자가 되었던 것 입니다.

 

여러분 ! 억지로 하는 기도도 있습니다.

하나님과 대면하여 기도하는 시간이 마냥 즐겁고 기쁜 시간만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기도하고 싶지 않다고 해서 기도하지 말아야 합니까?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억지로 라도 무릎을 꿇고 앉아서 기도 시간을 채워야 합니다.

 

억지로 하는 전도도 있습니다.

전도하다보면, 욕을 먹을 때도 있습니다. 싫은 소리 들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면, 그만 두어야 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억지로라도,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다 보면, 나중에는 기쁨으로 복음을 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

 

오늘 시몬이 지고간 십자가가 누구의 십자가 였는지 아십니까? 예수님의 십자가가 아니었습니다. 사실 그 십자가는 저와 여러분들의 십자가 였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고 죽어야 할, 그런 죄를 지은신 적이 없습니다. 우리 모두가 죄인이죠. 우리가 다 죽었어야 했고, 우리가 그 십자가에 달려야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대신 지고 죽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는, 사실은, 우리가 져야 하는 십자가였습니다.

 

여러분 지금 십자가를 지고 계십니까? 그 십자가가 얼마나 무겁습니까? 때로는 버리고 가고 싶을 때가 있을 거예요. 여러분들이, 버리면, 그 십자가는 예수님께서 대신 지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억지로라도, 내 십자가 내가 지고 가야 합니다.

 

'마가의 꿈' 이라는 글이있습니다.

 

하루는 마가가 , 꿈속에서 힘겹게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예수님을 보고, 예수님께 달려 가서는, '예수님의 그 십자가를 대신 져 드리겠다' 고 하며, 십자가를 달라고 합니다.

그런데, 주님은 아무 대답도 없이 십자가를 지고 가는 거예요.

그래서 마가는 다시 달려가 "주님, 제발 저에게 십자가를 넘기십시요" 라고 합니다. 그래도 주님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시고, 양 어깨에 십자가를 지고 묵묵히 갑니다.

그러자 마지막으로, 마가는 '주님 제발 그 십자가를 저에게 주십시요" 라고 하자,

주님께서 가시던 발걸음을 멈추시더니, '아들아, 이것은 내 십자가란다. 너의 십자가는 네가 저 뒤에 내려 놓지 않았느냐! , 너는 나의 십자가를 져 주려고 하기 전에, 너의 십자가부터 지려무나."

그 말을 듣고 마가는 자기가 버린 십자를 찾아, 왔던 길로 달려가 봅니다. 가보니까, 거기에는 그의 십자가가 모래 바닥에 내동댕이 쳐져 있었어요.

그래서, 얼른 그 십자가를 지고, 주님이 기다리시는 곳으로 가보니, 주님의 십자가는 어디론가 없어진 거예요. "주님! 주님의 십자가는 어디로 간 겁니까?"

그러나 주님께서, '아들아! 네가 너의 십자가를 질 때, 바로 나의 십자가를 지는 것이란다'

 

여러분, 십자가의 길은, 힘이 들고, 외롭고, 고단합니다. 어떻게 그것을 기쁨으로 질 수 있습니까? 그래서, 성도의 길은, 눈물로, 십자가를 지고 억지로라도 가는 길입니다.

그리고 그 십자가 지고, 끝까지 묵묵히 걸어간, 그길 끝에는,엄청난 축복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원하옵기는, 나의 십자가 , 무겁다고 버리지 마시고, 억지로라도, 지고 갈 때, 기쁨 주시고, 위로함 주시는 주님이 계시다는 것 믿으시고,

 

오늘도, 이 고난의 십자가의 길, 좁은 길, 끝까지 잘 걸어가 마침내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