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설교자의 창고/ 비전나리의 설교

뜻을 정하고 - 단1: 3-9

by Peartree 2012. 12. 25.

뜻을 정하고

단1: 3-9

 

예수님을 믿지 않다가, 임종을 눈앞에 둔 한 노인이 있었습니다. 가족들이 안타까워서, 마지막으로 기도를 해달라고 목사님께 부탁을 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이, 그 할아버지에게 찾아가, 복음을 제시하고, 결단을 촉구합니다.

"할아버지, 예수님을 구원자로 영접하시고, 마귀를 물리치세요. 그러면 천국에 갈 수 있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할아버지는 아무 말 하지 않고, 입을 꾹 다물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목사님이 재촉을 합니다. "할아버지, 마귀를 물리치시고, 예수님을 영접하세요." 그래도 할아버지는 묵묵부답 이예요.

그러니까, 목사님이, 할아버지가 왜 그러는지, 너무 궁금한 거예요. 그래서 물었습니다. "할아버지, 예수님을 영접하시고, 마귀를 물리치라니까, 왜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세요"

그러자 그 노인은 마지못해 이렇게 대답합니다.

"아니, 목사님! 내가 지금 어디로 가게 될지 알지 못하는 이 판국에, 괜히 말 한마디 잘 못했다가, 어느 한쪽 편을 화나게 만들면 어떻게 합니까?" 라고 했다고 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음 앞에서 어디로 갈 것인지 뜻을 정하지 못하고, 머뭇거리곤 합니다. 그리고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인생을 살면서 갈팡질팡 하며 살아갑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건 뜻을 정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왜 불안해 합니까? 목숨을 걸 만한 분명한 뜻이 없기 때문에 불안한 거예요. 정신 없이 인생을 살고, 쉴새 없이 돈을 벌어 보지만, 목적이 없고, 뜻이 없으면, 늘 불안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건 사람이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그래요.

얼마 전에 죽은 Steve Jobs 가 암 선고를 받고, 9달 동안 치료를 거부 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 이유를, 신문은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잡스는 식이요법으로 병을 치료하려 했고, 심령술사를 찾아가기도 했다…… 그리고 잡스는 결국 후회했다"

 

억척 같이 돈을 벌다가, 어느 날 갑자가, 사형 선고를 받으니까, 수술을 해야 하는지, 채소를 먹어야 하는지, 무당을 찾아가야 하는지, 정신이 없는 거예요. 평소에 뜻을 정하지 않고, 목적이 없는 사람의 갈팡질팡한 모습을 보여주는 단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최소한, 뜻을 정하고 살아가야 합니다. 오늘 본문 8절을, 영어 성경은 "Purpose" 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목적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목적이 없으면, 방황하게 됩니다. 그러나 목적이 분명하면, 한치의 흔들림이 없습니다.

 

여호수아 24:15절을 보시면,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 정복을 다 마친 후에, 이렇게 담대하게 외칩니다.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가나안 땅을 정복 할 때는, 전쟁하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때는,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모두다 한 마음으로, 오로지 땅 정복이라는 목적을 두고 목숨을 걸고 싸웠습니다. 그런데, 그 목적을 다 이루고 나니까, 다들 정신이 해이해 진 것입니다. 전쟁도 없고, 먹고 살 걱정도 없고, 땅도 충분히 분배해서 나누어 가졌으니, 재산도 넉넉하게 쌓아 놓은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렇게 땅을 정복하고, 넉넉하게 사는 것이 뜻인 줄 착각한 거예요.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려고, 가나안 땅까지 인도하신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에서 나올 때, 뭐라고 하며, 나왔습니다. '우리가 광야에서 하나님께 예배할 것이다' 라고 하며 나왔습니다. 그 말을 하나님께서는 순진하게 다 믿으시고, 이스라엘 백성을 도와주셨습니다. 이들이 예배를 드릴줄 알고요. 그런데 예배는 커녕, 가나안 땅에 왜 들어 왔는데도, 왜 들어 왔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목적을 잊어버린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호수아가, 죽음을 목전에 두고, 한 부탁이, 바로 이 말씀 이예요. "너희가 섬길자를 오늘날 택하라" 제발 뜻을 정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목적은, 이 땅의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여러분의 목적이 되야 합니다'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뜻을 정하지 않으면요. 우리는 항상 머뭇거리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결단하는 신앙을 가져야 한다는 자주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결단하지 않으면, 뿌리가 약하기 때문에, 마귀가 넘겨 뜨릴려고 자꾸 건드려 봅니다. 마귀가 예수님도 건드리는데, 우리는 가만두겠습니까? 하루에도 몇 번씩, 우리 마음에 간사한 마음이 들도록, 사특한 생각을 집어 넣습니다. 이렇게 우리의 생각을 두 갈래로 갈라지게 만들고, 흔들어, 결국, 목적도 없이 살게 만들어, 우리의 영혼을 멸망시키는 것이, 마귀의 전략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뜻을 정하고, 생명의 좁은 길을 가야 합니다. 그 길은 외롭습니다. 때로는 손해를 볼 때도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로부터, 미련하다는 소릴 들을 수도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시면, 세상으로부터, 이런 대접을 받으며 견디어 낸 젊은이가 있습니다. 그의 이름이 다니엘입니다.

오늘은 이 다니엘을 통해서, 뜻을 정하는 것이 무엇이며, 뜻을 정한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1. 첫째로, 뜻을 정한 사람은, 세상과 타협하지 않습니다.

 

다니엘은 이스라엘 젊은이로, 그의 세친구와 함께 BC 605년경에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포로였지만, 얼마나 총명했었는지, 그는 바벨론의 왕실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바벨론의 뛰어난 학문과 언어와 문화, 정치, 경제를 배우는 출세 길이 활짝 열리는 길로 접어 들게 됩니다. 그리고 3년의 과정을 마치면, 바빌론이란 대국의 왕실에서 근무하게 됩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5절을 보시면, '왕의 진미와 왕이 마시는 포도주'를 먹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뭐 그냥, 왕이 먹는 음식과 포도주 인데요. 어떻습니까?' 할지 모르지만, 그 내막을 알면, 먹지 말아야 하는 음식이었습니다. 당시에, 왕이 먹는 음식은, 매일 매일 우상에게 먼저 바친 다음에, 먹는, 사실상 제사음식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이런 음식을 먹으면, 우상의 제사에 참여하는 것과 마찬가지 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엄격하게 금하는 것이었어요.

 

출세의 길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눈 딱 감고, 왕의 진수성찬을 먹을 것인가?

여러분에게, 이런 일이 닥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어떤 길을 가시겠습니까? 한발은 세상에, 한발은 하나님의 전에 들여놓고, 타협하시겠습니까? 적당히 세상의 눈치도 보고, 하나님의 눈치도 보시겠습니까? 교회생활이 재미 없다고, 세상에서 재미를 찾아 보시겠습니까? 우리는 그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적어도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뜻을 정하고, 굽히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다니엘만 하라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믿는 모든 신자들은, 세상과 타협 할 수 없음을 천명하는 것입니다. 세상과 타협이냐, 아니냐는, 천국이냐, 지옥이냐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설마 하지 마십시요. 그때, 만약에 다니엘이, 왕의 진미를 먹고, 왕이 세운 금 신상에게 절하면,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하나님께 버림 받았을 것입니다. 초대 교회 때, 믿음 때문에 사자의 밥이 되며, 죽어갈 때, 살기 위해서 믿음을 저버리고, 타협했다면,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일제 시대 때, 살기 위해서, 천왕에게 절하면,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지금 이 시대에, 물질 때문에, 세상 재미 때문에, 믿음 생활 하는 건지, 마는 건지, 대충 타협하면,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하나님은 질투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우리를 꼭 이렇게 달아보신다는 거예요.그렇지 않으면, 이 사람이 믿음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진짜는, 세상과 타협할 일이 생길 때, 하나님을 택한 다는 것입니다.

 

1993년에, 충현교회 김영삼 장로님이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한국에 초대형 사건들이 터졌는데, 항공기가 추락하고, 성수대교가 내려 앉고, 삼풍 백화점이 무너지고, 난리가 아니었습니다. 그때 불거져 나온 괴담이 뭐였냐면, 대통령이 기독교 장로라, 청와대 뒷산에 있는 불상을 없애서 그렇다는 소문이 나 돌았습니다.

저 같으면, 이왕에 소문 난거, 아직 없애지 않았으면, 그 참에 없애 버리겠는데, 청와대에서 그 불상이 그대로 있다고 하며, 불교계 인사들을 불러 확인 시켜 주었습니다. 이방신의 눈치를 보는 짓이엇습니다.

그 후로, 불교에서는 무슨 일만 터지면, 그 불상이 그대로 있는지 확인을 합니다. 무슨 뜻입니까? 그 불상이 이 나라를 지켜준다고 믿는 것입니다. 이번에 이명박 장로님이 대통령이 되었을 때도, 불교계에서는 그 불상이 그대로 있는지, 확인 요청한 적이 있었습니다. 혹시, 기독교 장로라 없애지는 않았는지, 확인하는 차원에서 였다고 합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도, 그까짓 돌 부처 하나 가지고, 저토록, 고집을 피우는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고집을 피우고 있습니까? 아니면, 세상에 질질 끌려 다니지는 않습니까?

 

세상 유혹의 물결에 휩쓸리면요. 세상적으로는 성공할지 모르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실패하는 인생이 된다는 것을 명심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제발, 세상과 타협하지도 마십시요. 적어도 우리 꿈의 교회 성도라면, 타협 없이 진리를 붙드셔야 합니다. 그렇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1. 두번째로, 뜻을 정한 사람은, 유혹에 넘어가지 않습니다.

 

지금 다니엘은, 너무나 많은 유혹을 받고 있습니다. 출세를 보장 받는, 유혹을 받고 있습니다. 왕실 학교 3년 코스를 마치면, '왕실 직속 학문 연구소' 정도 되는 곳에서 일하게 됩니다. 미래가 보장된 직업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 뿐 아니예요. 최고의 음식과, 최고의 옷과, 최고의 집에서, 초 호화 생활을 제공받습니다.

 

이 정도면,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뿌리치지 못할 거예요. 하나님을 섬기기로, 뜻을 정했다 할지라도, 조건이 너무 좋아서, 이번 한번 만 하고, 넘어 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 이번만, 성공하면, 그 다음에, 잘 믿겠습니다. 이번 한번만,…… 하나님 이번 한번만 눈 감이 주십시요.' 라고 한다는 거예요.

 

그런데 다니엘을 보세요. 그런 생각은 꿈도 꾸지 않았습니다. '아예, 저건 내 떡이 아니다' 라고 뜻을 정해 버렸습니다. 저건 내 밥상이 아니다, 나는 절대 저걸 먹을 수 없다고 하며, 1%의 가능성도 생각지 않았습니다. 다니엘의 사전에 유혹이란 단어는 없었습니다.

 

저희들이 사는 이곳에는, 아리조나 방울뱀이 아주 치명적입니다. 이 방울뱀이 다람쥐를 잡는 방법이 매우 특이한데요. 먼저 꼬리를 흔들어서 소리를 냅니다. 방울뱀이라고 해서, 방울 소리가 나는 것이 아니라, 바람소리 같은 소리가 들립니다. 그러면 나무 위에 앉아 있던 다람쥐가 그 소리를 듣고 호기심이 발동하여 소리 나는 곳을 내려다본다고 해요.

그 순간 다람쥐의 눈과 독사의 눈이 마주칩니다. 그리고 다람쥐가 겁을 먹고 떨고 있을 때 독사는 입을 쫙 벌리고 밑에서 기다립니다. 두려움에 떨고 있던 다람쥐는 비실비실 중심을 잃는 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나무에서 떨어질 때, 방울뱀은 다람쥐를 한 입에 삼켜 버립니다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도 얼마나 많은 유혹들이 있습니까? 이 유혹을 넘어가는 방법은, 세상과 눈을 마주치지 않는 것입니다. 눈을 마주 치는 날에는, 다람쥐 신세 되는 거예요. 세상을 보십시요. 얼마나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워 보입니까? 그리고 사탄은 우리를 향하여, 그냥 손을 내밀어 먹기만 하면 된다고, 부추깁니다. 그러면서, '아무일 없을 것이란' 생각을 넣어 줍니다.

에덴 동산에서, 뱀이 하와에게 선악과를 먹으라고 하면서, 뭐라고 유혹합니까? 하나님께서는, 먹으면 정녕 죽을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마귀는 결코 죽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눈이 밝아 질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세상이 지금 그렇습니다. 분명한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데, 이 말씀을 자기들 편한 대로, 해석해 버립니다. '결코 죽을 것이다' 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아니야, 이건 그런 말이 아니야! 이건 다른 뜻이 있을 거야!' 하면서, 마음대로, 풀어버립니다. 왜 그렇습니까? 죄를 지으면, 그 하나님의 말씀에 걸리니까? 편안한 마음으로 죄 지으려고, 말씀을 느슨하게 만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마귀가 6000년동안 해온 짓 이예요. 그러므로, 어떠한 유혹에도 넘어가지 않으려면, 세상 바라보지 마시고, 하나님의 말씀에 기록된 대로,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뜻을 정했으면, 그 길로 끝까지 달려가시는 거예요. 그런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1. 세번째는, 뜻을 정한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얻는 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뜻을 정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그냥 방치해 두시지 않습니다. 그 뜻이 변치 않토록 도와 주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거예요.

 

9절에 보시면, 하나님께서 누구를 통해서, 도와 주시냐면, 환관장을 통해서 피할 길을 열어주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죽으면, 죽으리라' 뜻을 정하니까, 하나님께서 환관장을 다니엘의 편으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도울자를 붙여 주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뜻을 정한 사람과 정하지 않은 사람은, 차이가 엄청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느냐, 하시지 않느냐의 차이예요. 하나님께서 도와 주시느냐, 도와 주시지 않느냐의 차입니다.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도움으로 살아야 합니다. 물질도 하나님의 도움으로 물질을 쌓아야 하는 것입니다. 건강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건강으로 살아야 합니다. 나의 열심과 나의 힘으로 열심히 노력해서, 돈도 벌고, 건강할 수도 있지만, '내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뜻을 정하였더니, 하나님께서 내게 은혜와 긍휼을 베풀어서, 물질과 건강을 허락하셨다' 고 한다면, 이것은 차원이 틀린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사람들과, 겉 모습도 비슷하고, 사는 모양도 비슷하지만, 출처가 다른 사람들입니다. 목적이 다른 사람들입니다.

 

다니엘은, 세상의 부귀 영화도 전혀 부러워 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목적이 다르고, 가는 길이 다르기 때문이었습니다. 다 빼앗아 간다 할 지라도, 다니엘의 목적은, 하나님계신 천국에 있었기 때문에, 그 좋은 조건을 한 낮, 티끌같이 여긴 것입니다. 고향으로 돌아가는 나그네 같은 사람이, 여행 기간 동안, 뭐 그렇게, 세상에 집착하겠습니까? 고향에 돌아가는 날 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거죠?

 

물고기 중에, 연어가 있습니다. 이 연어는 알을 낳을 때에는 반드시 자기가 때어난 고향으로 돌아와 알을 낳는다고 합니다. 세차게 흐르는 물결을 거슬러 올라오며, 상처투성이가 되면서도, 본향을 향하여 끝없는 사투를 하고는, 3분의 2는 죽고 1만 고향으로 돌아온다고 합니다.

 

이렇게 하찮은 물고기도, 돌아갈 본향을 향하여 사투를 벌이는데, 우리는 얼마나 내가 가야 할 본향을 생각하며, 준비하고 있습니까?

 

그 본향을 꿈꾸며, 뜻을 정하면요, 하나님께서 나그네 같은 인생 가운데, 저와 여러분들을 은혜와 긍휼로 지켜 주신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기철 목사님의 <일사각오> 라는 설교가 있습니다. 거기에 이런 설교 내용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살아도 그리스도인답게 살고 죽어도 그리스도인답게 죽어야 합니다. 죽음이 두려워 예수를 버리지 맙시다. 풀의 꽃같이 시들어버릴 목숨 때문에 예수를 버리지 맙시다. 풀의 꽃같이 시들어버릴 목숨을 아끼다가 지옥에 떨어지면 두렵습니다.

더럽게 무릎 꿇고 사는 것보다 차라리 죽고 또 죽어 주님 향한 정절을 지켜야 합니다.

다만 나에게 일사각오의 결의가 있을 뿐입니다."

 

오늘 다니엘은 심정은, 이런 일사각오의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바빌론의 왕권 앞에, 그들이 제공하는, 최고의 조건 앞에, 한치의 흔들림 없이, 담대하게, '나는 타협하지 않겠다.' 고 하며, 그 뿌리칠 수 없을 것 같은 유혹 앞에도, 돌아갈 본향이 있기에, 과감하게 세상을 거절한 것 처럼, 저와 여러분들이 이런 다니엘의 심정으로, 뜻을 정하고, 정한 그 길로, 끝까지 달려가, 승리하시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