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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의 창고/ 비전나리의 설교

성막의 출입문 - 출 27: 9-19

by Peartree 2012. 12. 25.

용서 받지 못하는 죄

히 6:4-12

 

지난주에는 '성숙한 신앙인이 됩시다' 란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를 믿는 순간부터, 믿음이 자라나야 한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아기가 태어나면은, 자라야 하고, 어른으로 성장해서, 정상적인 사람이 되듯이,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믿음이 자라,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성숙한 신앙인이 되라고 하십니까? 그 이유는, 우리의 신앙이 흔들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미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은, 사탄의 유혹과 미혹에 흔들리고, 쉽게 넘어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은, 믿음에 굳게 서 있습니다. 어떠한 시련이 오면, 더 견고하게 서 있습니다. 고난이 오면, 더욱 주님을 의지합니다. 시험이 오면, 더욱 무릎을 꿇어 기도합니다. 이것이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특징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시면, 성숙한 그리스도인들도, 타락할 수 있다고, 성경은 우리에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본문 4-6절을 보시면, "한 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예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

성경에서, 이 구절 만큼이나, 교리적으로 논란이 되는 구절은 없습니다. 장로교는 이 구절을 이렇게 해석합니다. 무슨 소리냐, 한번 구원 받았으면, 구원은 영원한 것이다. 구원은 절대 잃어 버리지 않는다. 진짜 그리스도인은 타락 할 수 없다.' 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오늘 본문 6절에서 말하는, 타락한 자들은, '진짜 그리스도인들이 아니고, 그리스도인 흉내를 내고 있던, 가라지와 같은 신자다.' 라고 말합니다.

그런데요. 가라지 같은 신자가,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을 받고, 내세의 능력을 맛 볼 수 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타락한 자들은, 기록된 말씀 그대로,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입니다.

그런데도, 장로교 목사님 아무나 붙들고 물어봐도, 똑 같은 대답을 합니다. '이 타락한 사람들은, 진짜 그리스도인들이 아니었다' 라고 말합니다.

왜 이런 주장을 하냐면, 장로교의 창시자인 존 칼빈이란 사람이, 한번 구원 받으면, 영원한 구원이라고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분명이,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예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본, 그리스도인들이 타락 할 수 있다고 말하는데, 진짜 신자는 절대로 타락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성경보다, 칼빈의 말에 더 권위를 두고 있는 것이죠.

 

여러분 ! 천사도 타락하는데, 사람이 타락하지 않습니까? 얼마든지 타락 할 수 있습니다. 천사도, 타락하면, 지옥에 보내는 판국에, 그리스도인이라고, 지옥에 보내지 않겠습니까? 얼마든지 가능하다니까요.

 

또 복음주의 신학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타락할 것 같으면, 하나님께서, 타락하기 직전에, 그 영혼을 불러, 천국으로 옮기신다고 말합니다. 그것도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주의 백성이 타락하면, 주님은, 돌아오라고 하시며, 채찍질도 하시고, 환경을 통하여, 역사는 하십니다. 그러나 천국과 지옥의 커트라인에서, 지옥의 커트라인 쪽으로 들어 갈 것 같으면, 바로 직전에 죽게 만들어, 구원하시지는 않는다는 거예요. 만약, 그렇다면, 가룟유다 같은 제자는, 예수님을 팔기 전에, 죽게 만들어 천국으로 데리고 갔어야 맞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이 있는데, 여기서 말하는 타락은, 교회 나오지 않고, 살인하고, 간음하고 하는 그런 죄가 아니라는 거예요. 여기서 말하는 타락은, 6절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것' 을 말합니다. 흔히 쓰는 말로, '배교' 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잘 믿다가,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나는 더 이상 예수님을 믿지 않겠습니다. 예수님! 내게서 떠나세요. 예수님은 이제부터, 저의 주인이 아닙니다. 앞으로 나의 삶의 주인은 내가 주인입니다. 내 하고 싶은 대로, 맘대로 살겠습니다. 나는 더 이상 주님이 필요 없습니다.' 이렇게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 타락이며, 배교입니다. 이것이 타락인 것을 염두에 두시고,……

 

그러면 오늘은, 이렇게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이 타락하면, 어떻게 되는지, 그렇다면, 우리가 구원의 확신 가운데 살아야 하는데, 구원의 확신 속에 사는 것은 어떤 것인지 살펴 보기를 원합니다.

 

  1. 첫째로,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타락하면, 두 번 다시 회개할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5-6절의 말씀을 현대어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좋은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본 사람이 타락하게 되면 두 번 다시 회개할 길이 없습니다."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주 무서운 말씀입니다. 4복음서 중에, 무서운 말씀이 또 하나 있죠? "성령을 훼방하는 자는 영원히 사하심은 받지 못하고, 영원한 죄에 처하느니라" 성령을 훼방하면, 용서 받을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서신서 중에는, 지금 이 말씀, "내세의 능력을 맛 본 사람이 타락하게 되면, 두 번 다시 회개할 길이 없다'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성경에, 하나님의 좋은 말씀을 듣고, 내세의 능력을 맛 보았다가, 타락한 경우의 대표적인 사람이 두 명 있습니다. 가룟 유다와 사울입니다.

가룟유다는 예수님과 함께 3년 6개월을 사역하며, 하나님의 좋은 말씀을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들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은 30에 팔고, 타락하니까, 결국에는 돌아오지 못하고, 자살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울은, 왕이며, 예언하는 능력을 받은, 내세의 능력을 맛본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전쟁에서 패하고, 자살하기 직전에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무당을 불러 점을 쳤습니다. 그리고는 결국, 회개할 기회도 없이,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을 잘 믿다가, 주님을 부인하고 돌아선 사람이, 다시 주님께 돌아오지 않는 다는 거예요. 돌아온다 할지라도, 회개할 기회가 없다는 것입니다.

 

요즘 제가 이단 이야기를 자주 합니다. 시대가 시대이니 만큼, 지금 얼마나 많은 사이비 이단들이 세력을 확장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이런 사이비 이단들의 교주가, 교주가 되기 전에는 장로나 목사 였다는 거예요. 그리고, 오늘 말씀처럼, 한 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예한 바 되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전도관의 박태선 장로는 집회를 하면, 몇만명씩 모였습니다.

그리고 무슨 이유에선지, 이 사람들이 타락해서, 자기들이 예수라고 합니다. 그런데요. 이 많은 사이비 교주 중에, 자기 죄를 회개하고, 다시 돌아온 사람이 없다는 거예요. 가룟유다 처럼, 사울처럼, 끝까지 돌이키지 않다가 죽는다는 거예요. 오늘 본문 말씀처럼요. "회개케 할 수 없나니"

 

그래서 저와 여러분들은, 돌아 갈 수 없는 강을 건넌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않다"고, 주님이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 중에는, 이 정도로, 타락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과거에 주님을 잘 믿었다가, 주님을 떠난 사람들이 어떻게 되었나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이 다시 돌아와 예수님을 믿으면, 좋겠지만, 우리의 바램과는 반대로, 다시 돌아와 회개 한 사람이 없습니다.

 

그럼 이런 사람들, 회개할 기회를 잃어버린 사람들을 우리가 어떻게 알아 볼 수 있습니까? 8절에 보시면, 이런 사람은 삶 속에서 가시와 엉겅퀴를 낸다고 말씀합니다. 결국 이런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당하고, 마지막은 불사름을 당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가시와 엉겅퀴를 내는 땅은, 메마른 땅입니다. 척박한 땅이 가시를 냅니다. 투산의 식물들을 보세요. 가시가 없는 식물이 없습니다. 왠만한 것은 다 가시가 돋았습니다. 메말라서 그렇습니다. 우리의 심령도 마찬가지 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들이지 않고, 계속해서 거부하면, 심령이 메말라지고, 결국에는 심령에 가시와 엉겅퀴들이 자라게 되고,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당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다가, 잠시 쉰다고 하지만, 그 심령에 가시와 엉겅퀴가, 자리 잡도록 오래 쉬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그만 쉬고, 교회에 나오세요' 라고 말씀 드리는 것이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인 것입니다.

 

  1. 그럼 두번째로, 구원의 확신속에 살아가려면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야 합니까?

 

오늘 본문 9절을 보시면,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이같이 말하나 너희에게는 이보다 나은 것과 구원에 가까운 것을 확신하노라" 라고 말씀하시면서, 구원에 가까운 확신하는 삶에 대해서 10절에 말씀합니다. " 그의 이름을 위하여 나타낸 사랑으로 이미 성도를 섬긴 것과 이제도 섬기는 것을 잊어 버리지 아니 하시느니라"

 

예수 이름 때문에, 성도를 사랑하고, 섬기는 삶을 사는 것이, 구원의 확신 속에 사는 삶이라고 말씀합니다.

 

눅 19장에 보시면, 세리장 삭개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삭개오가 예수님을 보려고, 뽕나무로 올라갔습니다. 그때 까지도 삭개오는 구원을 받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삭개오를 찾아가, 내려오라고 하시며, "오늘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삭개오는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초대를 합니다. 그 때 까지도요, 삭개오는 구원을 받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을 초대했는데도요.

그런데 8절에 드디어, 삭개오가 이렇게 말합니다.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남의 것을 속여 빼앗은 것이 있으면, 네 배로 갚겠습니다"

이 말을 하자마자, 예수님께서 "이 집에 구원이 이르렀다" 말씀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삭개오가 거액의 헌금을 해서 구원받았다는 말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영접하고, 이웃을 섬기기로 결심하는 순간, 구원의 백성이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 이라고 하시며, 주의 백성임을 확인 시켜 주었습니다.

 

그래서 구원의 확신 속에 산다는 것은, 공동체에 속해 있어서, 그 공동체 안에서, 서로 섬기며, 사랑하는 법을 배우며 사는 삶이, 확신 있는 구원의 삶이라는 것입니다.

 

예전에 '무교회 주의 자' 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교회 건물에서 모이지 않고, 가정에서 모여서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교회가 너무 외형적으로 건물만 짖고, 외적인 것에 치중하다보니까, 생겨난 모임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도, 잘 못된 교회관을 가지고 있었던 거예요. 교회가 건물인지 알고, 예배당에서 만 모이지 않으면, '무교회주의' 라고 했던 거예요. 사실 2명 이상 모이면, 어디에서 모이든, 상관없이 교회인데 말이죠.

 

그러면서, 발전한, 가정교회, 모임이었습니다. '무교회주의' 보다는 훨씬 건전하고, 좋은 선례를 지금까지 남기고 있습니다. 어짿든, 그리스도인들은, 2명 이상 모여서, 공통체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 이 반석위에 교회를 세우리라"

 

그런데, 정말 위험한 것은요. '나 홀로 신자' 가 있습니다. 이것은 정말 위험한 신앙 생활입니다. 이웃을 섬기지 않고, 봉사도 하지 않고, 예수 믿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교회에 나오지 않으면서, '하나님은 내 마음 알아요. 교회에 나가지는 않지만, 예수님을 믿어요'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분들은, 오늘 말씀처럼, 자신이 구원의 확신 속에 거하는 삶을 살고 있는지, 신앙을 첵업 해 보아야 합니다.

 

어느날 영국의 대 설교가인 스펄전 목사님께에게 어떤 교인이 찾아와서 이렇게 말합니다. "목사님, 저는 예수를 믿습니다. 그런데 교회가 마음에 들지 않아 교회에 나오지 않고 혼자서 믿으려 합니다. 그래도 구원을 받겠지요? " 라고 물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스펄전 목사님은 "혼자 믿어도 구원은 받을 수 있겠죠. 그러나 숯불이 모여서 타야 더 잘 타지, 잘 타는 숯불도 떼어 놓으면 꺼지고 맙니다. 그래서 구원 받은 성도도 혼자 있다가, 그 불이 꺼지지 쉽습니다." 라고 했다고 합니다.

 

올바른 신앙 생활을 위해서, 구원의 확신 있는 삶을 위해서, 우리는 공동체 안에서, 섬기며, 친교도 있어야 하고, 충성해야 합니다. 불이 꺼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요.

 

마지막 때는요. 히브리서 10:25절에,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다" 라고 말씀합니다. 모이기를 싫어 한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뭐라고 합니까?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주님 오시는 날이 가까울수록, 더욱 모이기에 힘써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오늘은 용서 받지 못하는 죄에 대해서 살펴 보았습니다. 용서 받지 못하는 죄는, 성숙한 신앙인이, 주님을 배반할 때, '나는 더 이상 주님이 필요 없습니다.' 라고 의지적으로, 거부할 때, 용서 받지 못하는 죄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이런 죄는 또 한번의 기회가 없습니다. 그걸로 영혼은 끝이 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구원의 확신 속에 거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데, 그것은, 교회 안에서 서로 사랑하고, 섬기는 모습으로 사는 것이라, 말씀 드렸습니다.

 

오늘도, 이렇게 서로 서로 돌아보아,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1. 마지막 때 믿음을 찾아 보겠느냐? 하시는 주님의 말씀이 현실 화 되어 가는 세상에, 저는 절대로 주님을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혹시, 입술로, 주님을 부인 한 적은 없었는지, 고백하시고, 주님 없이 나 혼자 살 수 있어요, 한적은 없는지, ….. 어떠한 일이 있어도, 주님을 부인하고, 타락하는 일은 하지 않겠습니다.

 

  1. 예수를 믿는다 하면서, 교회를 섬긴다 하면서, 같은 성도를 섬겼는지, 돌아보시겠습니다.

공동체 안에서, 주의 사랑으로 성도들을 대했는지, 아니면, 만나면, 늘 불편한 마음으로, 흘기는 눈으로 성도를 대했는지, 돌이켜 보시며, 지금 까지 내게, 이 섬김의 본이 부족했다면, 앞으로, 주님께서 발까지 닦아 주신 것처럼, 섬기겠습니다.

다짐하며, 기도하는 시간 갖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