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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의 창고/ 비전나리의 설교

성숙한 신앙인이 됩시다 - 히 6:1-2

by Peartree 2012. 12. 25.

성숙한 신앙인이 됩시다

히 6:1-2

 

지난 시간에는 믿음이 장성한 사람은 어떤 사람이며, 믿음이 자라지 못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살펴 보았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입맛에 맞으면 삼키고, 맞지 않으면 뱉어 버리는, 어린 아기 처럼, 편식하는 사람, 이런 사람은 믿음이 자라지 않는 사람이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예수님을 꾀 오래 믿었는데도 불구하고, 교회를 십년을 넘게 다녀도, 여전히 먹기 좋은, 우유 같은 말씀만 고집하는 성도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신앙이 자라지 않습니다. 골고루 영양분을 섭취해야, 장성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때로는, 단단한 음식도 먹고, 때로는 쓴 음식도 먹고, 그래야, 어른인 것입니다.

그래서 어린 아이와 같은 신앙은요. 좋은 말만 해달라고 합니다. 듣기 좋은 소리만 하라고 해요. 그렇지 않으면, 듣기 싫다고 어린 아기처럼 울어버립니다.

 

요한 복음 6:5절을 보시면, '큰 무리들이' 예수님을 따라 다니는데, 먹을 것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허기져 보이는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물고기 두마리, 보리떡 다섯개로, 장정만 오천명, 그러니까, 아마도, 3만에서, 5만명 정도를 배불리 먹여 주셨습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들이 그 후로 예수님만 찾아 다닙니다. 눈에 보이는 떡을 얻어 먹으려고요. 그리고 다시 6: 48절에 보시면, 그 후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다" ' 눈에 보이는 떡을 먹으면, 육신이 살지만, 나를 믿으면, 영혼이 산다' 는 말씀을 하고 계시는 거예요. '너희들이 영원히 살려면,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셔야 한다' 라는, 어려운 말씀을 하시니까, 60절 보시면,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느냐" 하면서 3만에서 5만명 되는 사람들이, 12제자만 남겨 놓고 다 떠나가 버렸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 우리가 우리의 신앙을 끝까지 놓치지 않고 붙잡으려면, 주일 예배 드리는 것으로는 되지가 않습니다. 말씀을 읽어야 하고, 들어야 하고, 배워야 합니다. 말씀을 듣지 않고, 읽지 않고, 신앙 생활하면요. 삶 속에서 조금만 시험이 닥쳐도, 뿌리가 없으니까, 흔들리고, 떠난 다는 거예요. 그래서, 신앙 생활이란, 교회에 나오는 것이 전부가 아니고, 항상 기도하고, 말씀은 보며, 그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이 신앙 생활인 것입니다. 주일에 한번 교회에 나와 예배 드리는 것 가지고 부족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1절을 보시면,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 도의 초보를 버리고"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좀 초신자 상태를 벗어 나십시요.' 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2절 하반절에 보시면, "완전한 데 나아갈 찌어다" 라는 말은, 현대어 성경으로 "성숙한 데로 나아갑시다" 라고 번역해 놓았습니다.

 

그러므로 성숙한 신앙인의 모습으로, 성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또 정상입니다. 성경은 마냥 초신자 상태로 머물러 있지 말고, 제발, 어른 처럼 성장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경남 울산시에 아주 희귀한 병을 앓고 있는 김모군이 있습니다. 생후 6개월만에, 성장이 멈춰 버린 희귀한 병인데, 성장이 멈춰진 채 20년을 살아오고 있어요. 부모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20년간 목숨을 이어가고 있지만, 체중이 겨우 14 파운드 밖에 안되며 피부는 너무 약해서 바셀린 같은 약을 바른 뒤 항상 붕대를 감고 있어야 한다고 해요. 또 몸은 제대로 움직이지 못해 방 안에 눕거나 겨우 앉아서 지낼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또 말을 할 수가 없어 오로지 어머니와 어눌한 말로 겨우 의사소통이 가능한 상태이며, 그는 하루 종일 tv를 보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해요. 그의 부모들도 이 애가, 언제 죽을지 모르기 때문에, 아들의 출생신고를 5년이나 늦게 해 호적상에는 현재 15살로 되어 있다고 합니다. 이 청년은 지금도 하루하루 어렵게 생명의 끈을 이어가고 있다고 합니다.

 

사람은 누구든지, 태어난 후에, 시간이 지나면서 아기에서 어른으로 성장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창조 섭리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하나님의 창조 섭리에 어긋나서, 우리의 몸이 성장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죽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혹 살아 있다고 하여도, 정상적인, 사람은 아닐 거예요.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초보적인 신앙에서, 성숙한 신앙으로, 성장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을 처음으로 만난 그 순간부터 쉴새 없이 성숙되어야 합니다. 성장하지 않는 신앙, 그것은 죽은 신앙이요, 죽을 수 밖에 없는 신앙 입니다. 살아 있어도,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역할을 감당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본문은, 어떤 것이 초보적인 신앙인지, 몇 가지를 말씀하고 있는데, 어떤 것들이 있는지 살펴 보기를 원합니다.

 

  1. 첫번째로, 초보적인 신앙은, 1절에 보시면, 죽은 행실을 회개 하는 것이 초보적인 신앙인이라는 거예요.

 

아니, 목사님 ! 죽은 행실을 회개 하는 것이, 초보적인 신앙이라니요? 그럼 회개 하지 말아야 합니까? 이 말씀은 그런 말씀이 아닙니다. 우리는 늘 끊임없이, 회개를 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제가 말씀 드렸죠. 예수 믿어 천국 가는 것이고, 회개해야 지옥에 가지 않는 것이라고요.

여기서 히브리 기자가 말씀하고자 하는 의도는, '같은 죄를 반복해서 짓지 말라' 는 것입니다. 죄 짓고, 회개하고, 죄 짓고, 또 눈물로 회개 하고, 또 죄 짓고, 또 울고 불고 회개하고, 이렇게 같은 죄를 가지고, 회개를 반복하는 것은, 초보적인 신앙인들이나 하는 거라는 거예요. 성숙한 신앙인의 특징은, 같은 죄를 반복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우리 아이들 보세요. 부모님들이 얼마나 많이 잔소리를 하는지, 이 잔소리 종합해보면, 10가지도 안되요. 그런데 매일 이 열 가지도 안되는 것 가지고, 반복하는 거예요. 어떤 때는, 아예 이 것을, 녹음을 해서 틀어 줄까, 하는 생각도 해봤어요. 그런데도, 고쳐 지지가 않는 다는 거예요. 초보적인 신앙, 어린아이와 같은 신앙이 이와 비슷합니다.

예를 들면요. 교회 안에서 목사가, 성도들에게, 주일은 하나님께 반드시 예배 드리는 날입니다. 참 많이도 이야기 합니다. 그리고, 기도해야 합니다. 말씀을 읽어야 합니다. 형제자매를 사랑하고, 용서해야 합니다. 제가 늘 말씀드리는 것이 이런 것들입니다. 열 가지도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열 개도 안 되는 것이, 우리 성도님들이, 기본적으로 해야 하는 것들입니다. 초보적인 신앙의 단계에서 이미 다 해야 하는 것들입니다.

 

혹시, 우리 중에, 이 열 가지도 되지 않는 신앙의 기본을 가지고, 잘 지키지 못하고 있는 분 계세요. 그러면, '내가 더 성장해야 겠구나' 라고 생각하셔야 합니다.

혹시, 내가 반복되는 죽은 행실을 가지고, 지금까지, 회개하고 계시다면, 그 행실을 끊어야 합니다. 그리고 좀더 차원 높은, 것을 가지고, 몸부림 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회개 하지 말라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는, 반드시 회개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지만, 회개의 차원을 높이자는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주일날 하나님께 예배 드리지 않았습니다. 용서해 주세요. 기도하지 않고, 말씀 보지 않았습니다. 형제를 자매를 용서하지 않았습니다. 용서해 주세요. 회개 합니다.' 이런 기본 적인 것 가지고, 더 이상, 회개 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초보적인 것은, 어린 아이 신앙일 때, 이미 졸업했어야 한다는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1. 두번째는, 1절을 다시 보시면, "하나님께 대한 기초 믿음" 에 머물러 있는 사람이 초보적인 신앙이라는 것입니다.

 

한글 성경에는 '기초' 라는 단어가 빠졌는데, 영어 성경은 보시면, 'Foundation of repentance 그리고 of Faith in God' 이라고 기록했습니다. 그러니까, 먼저 말씀 드린, '반복적인 회개'가 기초적인 회개이고, 지금, 하나님에 대한 믿음도 기초적인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기초적인 회개와 기초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신앙의 초보라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기초적인 믿음은 어떤 것입니까? 하나님을 믿기는 믿기만, 지식으로만 알고 있는 것을 말합니다. 성숙한 믿음은, 그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려고 하는데 까지, 생각합니다.

초보적인 신앙은, 그 하나님에게서, 어린아이 처럼, 무엇인가 달라고만 합니다. 그러나 성숙한 신앙은, 그 하나님께, 무엇을 드릴까를 생각합니다.

이것이 차이입니다.

 

초보적인 신앙은, 하나님은 영이시며,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며, 그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 인간을 구원하시고, 또 거룩한 하나님이시라, 죄를 보시면, 그냥 넘어가지 않으시고, ..등등등. 아는 것에 그칩니다. 그러면, 많이 아는 것 같아, 성숙한 신앙 같이 보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성숙한 신앙은, 그 하나님을 위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생각 한다는 것입니다.

 

에스겔서 47:3절에 보시면, 하나님의 성전에 물이 차오르기 시작하는데, 처음에는 발목에서 시작해서, 무릎까지 차고, 허리까지 차더니, 나중에는 강처럼 되처럼 되어서 헤엄질 물이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성도는 이렇게 네 단계로 성장함을 볼 수 있습니다.

첫번째 단계는, 발목성도라고 합니다. 왔다 갔다 성전 뜰만 밟고 다니는 성도를 말합니다. 두번째 단계는, 무릎 성도입니다. 기도하는 성도를 말합니다. 세번째 단계는, 허리 성도라고 합니다. 기도만 하는 것이 아니라, 허리로, 충성스럽게 봉사하는 성도를 말합니다. 마지막 단계는요. 이렇게 충성하다 보면, 하나님의 은혜가, 그 사람에게 충만하여, 은혜의 단비를 맞으며 사는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늘 기쁨이 넘침니다. 늘 감사가 넘쳐요. 기도하는 것도, 봉사하는 것도 하나도, 힘들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속에 하나님의 은혜가 늘 충만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되기까지, 신앙이 성장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1. 세번째는, 형식과 의식에 의존하는 성도가, 초보적인 성도라고 말씀합니다.

 

초기 기독교 신앙에서는, 교회의 교리들이 아직 정립이 되지 않은 상태 였습니다. 이런 교리들이, AD 300년이 넘어서야, 수 많은 실수와 회의를 통해서, 기독교가 틀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초기 기독교 때에는, 믿는 신앙에 있어서, 많은 혼돈을 가져 왔습니다. 어떤 식으로 신앙 생활해야 하는지, 진정으로 믿는 다는 것을 무엇인지, 잘 몰랐습니다. 그래서 겉으로 보이는 형식과 의식에만 치중했습니다.

 

제가 호주에 살 때, 영국 Anglican Church 에 가서, 예배를 드린적이 있었습니다. 거기서도 주보를 나누어 주는데, 그날 예배가 주보에 다 들어 있습니다. 주보를 보고, 처음부터 끝까지 따라 읽으면, 예배가 끝나는 것입니다. 주보에 설교도 있어요, 그래서 설교자는 그 주보를 보고, 읽고 내려오면 됩니다. 이처럼 초대 교회 때에도, 형식과 의식을 중요시 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초보적인 신앙인들이라고 오늘 본문은 말합니다.

 

3절을 보시면, 침례가 나오는데, 이 침례를 받으면, 구원 받는지 알았습니다. 그래서 세례를 중요시 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또 다시 고 3절을 보시면, 안수가 있습니다. 베드로가 안수하고, 바울이 안수 해서, 병을 고치고 기적이 일어나니까, 안수만 받으려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런 것들이 다 초보적인 신앙인들나 하는 것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믿음이 성장하면, 신앙이 성숙하면, 의식과 형식에 치우치지 않습니다. 오로지 주님만 바라보게 되어 있습니다.

 

유명한 복음주의자 목사님이시신, 에이든 토져 목사님이, '오늘날 교회는 세가지의 문제를 가지고 있다' 라고 말합니다.

첫째는, 믿는 자가 성장하지 않고 항상 어린아이로 머물러 있으며 다만 살만 찐다고 합니다. 둘째는, 믿는 자가 교회 안에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알지 못하고 오직 참관만 하는 것입니다. 셋째는, 믿는 자가 서로 일치되지 않고 분열과 다툼만 일삼는 것입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이것을 해결할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 '하나님을 알 때'만이 가능하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나이가 들수록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영적 성숙입니다. 이것은 우리 중의 어느 특별한 사람에게만 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주를 알기 원하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주시는 은혜인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 꿈의 성도님들은 신앙의 초보에 머물러 있지 마시고, 끊임없이 성장하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