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생활이란? 출 2: 16-22
지난주에 우리는 모세가 구사일생을 살아남게 된 이야기와 청년기에 어머니로부터 어떠한 교육을 받고 자랐는지, 살펴보았습니다. 모세가 석달이 되니까, 더 이상 숨길 수 없어 갈대 상자를 만들어, 거기 눕히고, 하숫가로 떠내려 보내, 이집트의 왕자로 자라게 됩니다. 그러다가, 애굽사람이 히브리사람을 치는 것을 보고, 간섭을 하다가 사람을 죽이죠. 그리고 또 히브사람끼리 싸우는 것을 보고 간섭을 하다가, 그만 사람죽인일이 탄로 나게 되니까, 광야로 도망쳐 나왔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은, 모세가 광야로 도망쳐 나오자 마자, 간섭할 일이 또 생겼습니다. 그 지방의 미디안 제사장에게 딸 일곱이 있었는데, 이들이 아버지의 양을 치면서, 양무리에게 물을 먹이려고 하는 순간이었어요. 그런데 다른 목자들이 와서 그 일곱여자들을 쫒아 내려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성격인, 모세가 나서서 일을 해결해 줍니다. 왕궁에서 자라서, 어느정도, 칼솜씨도 있었을 것이고, 싸움의 기술도 터득했을 거예요. 그래서 그런지, 이번엔 일이 쉽게 해결되었습니다.
그리고는 그 제사장의 집으로 초대를 받았고, 일곱명의 딸 중에, 십보라와 결혼을 하게되고, 아들을 낳으매, 이름을 '게르솜' 이라고 짖습니다. 이것이 모세의 40년 광야 생활의 시작부분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은, 하나님께서 쓰시고자 하는 사람을 광야생활을 체험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광야입니까? 아니면, 애굽의 왕궁입니까? 왕궁 같은 생활이면, 하나님께서 광야로 내 모실 수 있습니다. 광야 같은 생활입니다, 라고 하신다면, 다음 단계는 하나님께서 귀하게 들어 쓰시는 단계입니다.
성경의 대표적인 광야 체험의 사람은, 세례요한 이었습니다. 세례요한도 모세처럼 좋은 조건을 갖춘 사람이었습니다. 아버지가 대 제사장이었습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기독교 총 연합회 회장정도 되는 분의 자제분이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요한을 광야로 몰아 , 가진거라곤 하나 없이 천국복음만 외치게 만드셨습니다.
사도 바울도 마찬가지 입니다.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난 후에, 곧바로 복음을 전하지 않았습니다. 아라비아 광야로 보내서, 3년을 광야생활을 하게 하시고, 그 후에 복음사역을 하게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외롭고, 메마른 광야생활을 허락하십니까? 오늘 그 의미를 본문에서 찾아보기를 원합니다.
- 첫째로, 우리에게 광야생활을 허락하시는 이유는, 광야에는 버리는 축복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광야 생활을 하게 되면, 많은 것을 가지고 다닐 수가 없습니다. 꼭 필요한 것 만, 가지고 다녀야 합니다. 광야에서 많이 가지고 다니는 것은, 거추장 스럽기만 합니다.
우리는 무엇이든 많이 가져야 축복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가지지 않는 축복도 있습니다. 광야에 나가면, 삶이 단순해집니다. Simple life 입니다. 욕심도 필요 없습니다. 교만할 이유가 없습니다. 누굴 미워할래도, 미워할 대상이 없습니다. (찬양에도, 미움, 다툼, 시기, 질투 버리고 우리 서로 사랑해) 라는 찬양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불 필요한 것들을 버릴 수 있는 가장 좋은 장소가 광야인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광야로 몰으시는 것입니다.
복음을 가장 쉽고, 빨리 받아들이는 곳이 교도소라고 합니다. 그 중에서도 사형수들이 예수를 가장 잘 믿는 다고 해요. 왜냐하면, 그곳은 광야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아무것도 없어요. 언제 죽을지 모르기 때문에, 미워할 필요도 없고, 욕심 부릴 필요도 없습니다. 반대로 복음을 잘 받아 들이지 않는 곳이, 엘리트 계층이라고 합니다. 배웠다고 하는 사람들, 가졌다고 하는 사람들. 이런 분들은 자기들이 가지고 있는 것이 너무 귀해서, 버리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것 버리면, 죽는 줄 알아요.
여러분! 움켜 쥐는 것 많이 축복이 아니란 걸 아셔야 합니다. 버리는 축복도 있어요. (이런 찬양이 있습니다. 사랑은 참으로 버리는 것 버리는 것, 더 가지지 않는 것)
- 둘째로, 우리에게 광야의 삶을 허락하시는 이유는, 하나님만 바라보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광야에 나가면, 뭐가 보입니까? 끝없이 펼쳐진 사막, 가끔씩 보이는 선인장, 그리고 하늘이 보일겁니다. 간단합니다. 너무 볼게 없으니까, 우리는 하나님을 바라보게 되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하나님을 바라보면, 너무 좋은데, 그렇지 않으니까, 하나님께서 광야로 내 몰으시구서라도, 하나님을 바라보게 만드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의 인생이 광야 같은 인생이다' 라고 생각 드시면,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는 절호의 챈스입니다. 우리는요. 광야가 아니면,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오늘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하나님만 바라보게 만들기 위해서, 모세를 광야로 집도 없이 유리 방황하게 만들었습니다. 22절 보시면, 모세가 아들을 낳아 이름을 '게르솜' 이라 하였는데, 그 뜻은 '내가 타국에서 객이 되었음이라' 이것이 오늘 모세의 고백입니다. 나는 나라도 없고, 이방인의 신세로 타국에 와, 빈털터리로 객처럼 살고 있다' 이 고백을 하는 거예요. 우리의 입술에서 이런 고백이 나올 때, 하나님을 찾게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을 잘 찾지 않아요.
어느 목사님이 의사분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그 의사분이 이렇게 말하며, 복음을 정중히 거절합니다. 나는 부족한 것이 없이 잘 살고 있으니까,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을 전해 희망을 주라고…..그리고 몇 년이, 지난 후에 그 의사분이 목사님을 다시 찾아 왔습니다. 그리고는 암이 걸렸으니, 하나님께 부탁해서, 고쳐달라고 하더라는 거예요. 여러분 하나님께서 '나를 존 바라봐라' 라고 하실 때 바라보시는 그런 축복의 사람들 되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는 삶속에서, 나는 광야의 삶을 살고 있다고, 늘 고백하시고, 내가 의지할 분은 하나님 한분 밖에 없음을 늘 고백하시고, 혹시라도, 내 안내 버려야 할 것들이 있다면, 하나, 하나, 광야의 사막에 묻으시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설교자의 창고 > 비전나리의 설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모세의 사명 받는 날 - 출 3:1-12 (0) | 2012.12.25 |
---|---|
고난을 극복하는 길 - 행 16:16-34 (0) | 2012.12.25 |
행복한 가정이란? - 전도서 7:11-14 (0) | 2012.12.25 |
선교의 원리 : 순종 - 행 16:6-15 (0) | 2012.12.25 |
인생의 겨울이 오기 전에 - 디모데후서 4:9-21 (0) | 2012.12.25 |
하나님의 존재 - 출 3:13-22 (0) | 2012.12.25 |
부활신앙의 현장 - 눅 24: 13-35 (0) | 2012.12.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