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의 원리 : 순종
행 16:6-15
지금 바울이 몇 차 선교여행 중인지 아십니까? 예, 2차 선교여행 중입니다. 1차 선교여행은 바울과 바나바, 그리고 마가 이 세 사람이 출발했지만, 도중에 마가는 떠나고 바울과 바나바, 이 두사람만이 끝까지 완주했습니다. 지금 바울의 2차 선교여행은 마가의 문제로, 바나바와 심히 다투고 갈라선 다음에, 바울은 실라와를 데리고 2차 선교여행을 하는 중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은, 바울이 아시아 지방으로 가서 복음을 전하려고 출발한 상태입니다. 그런데 성령님께서 그곳으로 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아시아는, 한국 일본, 중국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터키 지방을 말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터기 지방으로 선교여행을 하려고 하는데, 성령님이 막으신 것예요. 그래서 바울이 부르기아와 갈라디아 땅을 돌아서 '무시아'라는 지방에 도착해서는, 다시 '비두니아' 라는 곳으로 가고자 하되 "예수의 영이 허락지 아니하는지라" 비두니아 지방의 선교여행도, 성령님이 막으신 거예요.
그래서 8절을 보시면, '무시아' 에서 비두니아로 가지 못하고, '드로아' 지방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밤에 환상중에 '마게도냐' 사람이 나타나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는 말을 듣고는 일어나 '마게도냐'로 가서 복음을 전하는 이야기 입니다.
그러면 왜 성령님께서, 바울의 선교여행의 첫 목적지를 막으시며, 다른 곳으로 틀으셨는지 궁금하지 않습니까? 그 당시에는 온 천지가 다 복음의 대상이었어요. 아무 곳에나 가도 다 불신자들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선교 계획을 짜는데,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그냥 발길 닫는 곳에 가서 전하면 되는 거였어요. 그런데도 굳이 왜 성령님께서 바울의 계획을 바꾸셨을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다 복음을 들어야 할 대상이고, 그곳이 그곳 같지만, 성령님께서 의도하시는 선교방법은 따로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바울이 계획한 선교 방법을 성령님은 허락하지 않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의 일을 한다고 하면서도, 성령님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우리의 생각과, 우리의 방법으로 일할 때 많이 있습니다. 성령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방향으로 가면, 참 쉬울텐데 말입니다.
저도 그런 생각을 많이 합니다. 열심히 주의 일 한다고 하지만, 주의 뜻과 상관없이 내 열심은 아닌가, 열심히 교회 건물 지었는데, 내가 언제 건물지으라고 했냐, 영혼 살리라고 했지, 교회 안에 이 프로그램, 저 프로그램 도입해서 바쁘게 움직였는데, 나를 예배하라고 했지, 언제 내가 프로그램 하라고 했냐? 라고 하실지도 모르겠다,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면, 오늘 바울이 계획했던, 제 2차 선교여행의 목적지들이 왜 그렇게 성령께서 생각하시는 목적지와 달랐는지, 몇 가지 이유를 살펴보기 원합니다.
- 첫째로, 바울의 계획이 성령님과 달랐던 이유는, 바울이, 심히 다툰 다음에 선교여행 계획을 세웠기 때문입니다.
바울의 영성이 동역자와의 다툼으로 인해 잠시 흐려졌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은 민감하신 분입니다. 우리가, 서로 미워하거나, 거짓말 하거나, 돈을 너무 사랑하거나, 하면 성령님은 인격적인 분이시라, 역사하시지 않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 안에 나쁜 습성들에 의해 영향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의 분별력이 흐려진 것입니다.
바울이 다른 것 때문에 싸운 것도 아니고, 선교여행 때문에 싸운거예요. 아무리 그래도 잘했다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주의일 하면서 의견이 맞지 않아, 싸우고 다투면, 차라리 하지 않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바울은 주의 일 한다고 하면서, 마음속에, 마가에 대한 분한 마음, 바나바에 대한 서운한 마음, 이런 것들이 속에 가득찬 상태에서 선교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러면, 올바른 성령님의 인도를 받을 수 없습니다. 성령의 음성을 들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가정이나, 교회나, 사업을 하는데, 있어서, 마음이 편치 않고, 불안하고, 그럴때는 결정하는 일을 미루어야 합니다. 그때는 악한 영이 틈탈 수 있습니다. 기쁘고, 감사할 때, 성령이 충만할 때, 그때 일들을 결정하고 계획하는 거예요. 예수님께서도 십자가의 달리시기전에 밤이 맞도록 기도했습니다. 바른 결정을 할 수 있도록이요. 이것이 삶의 지혜입니다. 불신자를 만나거나, 비즈니스를 할 때에, '성령님 바른 결정을 하도록 지혜를 주십시요' 기도하셔야 합니다.
바울은요. 홧김에, 마음을 추스리지 않은 상태에서, 에이, 아시아로 선교 여행이나 가야 되겠다. 한 것입니다. 잘못된 결정이었던 것입니다.
제가 20대 후반, 저희 동네에서, 같은 교회를 섬기며, 함께 믿음 생활을 한 친구가 있었습니다. 이 친구가 얼마나, 열심이었는지, 은혜를 너무 너무 사모 한거예요. 그래서 신학교에 갈까, 말까 고민도 많이 하고 그랬는데, 한번은 응답을 받겠다고, 한 4일정도 기도원에 갔다 왔습니다. 그런데, 귀신이 들려 왔는데, 정말 심각한 귀신이 들어간 거예요. 한 겨울에 온 동네를 벌거벗고, 뛰어다녔습니다. 그런데, 이 친구가 왜 귀신이 들어갔는가, 성도들이 분석에 들어갔습니다. 분석한 결과, 기도원에 가지 전에 와이프와 심하게 다투고, 기도원에 간 거예요. 와이프는 가지 말라고 하고, 이 친구는 가겠다고 하고, 다투고는 집을 나와 기도원에 간 거예요. 오늘 사도바울 처럼요.
우리의 마음이 불안하고, 미워하는 감정이 있으면, 그곳에 성령님은 계시지 않습니다. 악한 영만이 있어서 우리는 실수하게 만듭니다. 심지어는 어둠의 영이 들어와 사람을 지배합니다. 그러면 귀신들린 거예요. 오늘 바울의 선교여행은 이런 상태에서 계획 되어졌기에, 그렇게 진행되었다간, 실 수 할 것 같아, 성령님께서 막으시고, 고치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든 계획 가운데,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성공할 수 있습니다.
- 두번째로, 바울의 계획이 성령님과 달랐던 이유는, 성령님은 복음 듣기를 사모하는 자를 찾았고, 바울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본문 9절을 보시면, 바울이 밤에 환상을 보았습니다.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바울에게 나타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라고 말합니다. '마게도냐에 오셔서 저희들에게 복음을 전해 주십시요' 라고 부탁을 한 거에요. 그 환상을 본 후에 바울이 성령님의 계획을 인정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마냐도냐 사람에게 복음 전하라고, 나를 아시아로 가지 못하게 막으시고, 이곳으로 인도 하셨구나' 드디어 깨닫게 된 거예요.
이것이 선교의 원리 중의 하나라고 합니다. 선교사를 필요로 하는 곳에 먼저 가는 것. 물론 복음을 거부하는 곳에도 우린 가야 합니다. 핍박이 심한 곳에도 가야합니다. 그러나, 제발 와서 복음을 전해달라고 하는곳에 우선 먼저 가야 한다는 거예요. 이 방법이 우리 주님의 방법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도움을 청하는 곳에 달려가셨습니다. 손 내미는 자를 잡아 주셨습니다. 다른 곳으로 가다가도, 죽은 나사로의 누이, 마리아와 마르다가 그토록 주님을 기다렸기에, 그곳으로 발걸음을 돌리신 거예요.
요즘도 초대교회 시대처럼, '건너와 우리를 도우라' 라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지금도 북한에서는, '건너와 우리를 도우라' , '우리에게 복음을 전해달라' 고 하며, 복음을 사모하는 사람들이 수십만, 많게는수백만 까지 있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한 권만 주십시요', 이소원을 가지고10년을 눈물로 기도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평생을 이불속에서, 남이 알아채지 못하게, 소곤소곤 기도했다는 할머니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찾는 것이, 성령님의 마음이었습니다.
아프리카 선교의 아버지, 리빙스턴은 원래 중국으로 가려고 했으나, 하나님께서 아프리카로 보내셨습니다. 당시에 중국은 복음을 받아 들일 준비가 전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아프리카는 리빙스턴이 오기만을 간절히 사모하고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성령님은 사모하는 영혼을 찾아 가십니다. 그래서 은혜도 사모하는 사람이 받는 것입니다. 사모하지 않으면, 성령님은 그곳에서도 역사하지 않습니다.
- 세번째로, 바울의 계획이 성령님과 달랐던 이유는, 성령님은 헌신하는 사람을 찾으셨습니다.
바울은 열심히 멀리 다니며 선교는 하는 사람이었는데, 가까운데 사람은 품지 못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마가를 버렸고, 바나바와는 심하게 다투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참 미련한 방법이었습니다. 가까운 사람부터, 하나님의 사람으로 든든히 세우며, 그리고 그들과 함께 동역하며, 그런 다음에 그들과 함께, 협력해서, 먼 곳에 눈을 떠 전도해야 효과적인데, 바울은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교회나 선교는 혼자 할 수 없습니다. 목사 혼자서 안됩니다. 동역자가 필요합니다. 성령님께서 이런 바울의, 좀 무식한 선교 방식을, 바꾸시기 위해서 마게도냐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14절에 보시면, '두아디라 성의 자주 장사로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루디아' 를 만납니다. '자주 장사' 는 명주에 자주빛 염색을 하는, 지금의 염색가공기술자입니다. 루디아가 복음을 듣고, 그의 온 가족은 세례를 받고, 바울은 그 집에 거하며, 선교의 거점을 마련합니다.
남자들만 복음 사역하고, 그러다가 서로 싸우고 헤어지니까, 성령님께서, 드디어 선교의 동역자로 여성지도자를 세우시는 장면입니다.
역사적으로 보시면, 기독교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한 분들이 여성들입니다. 이 여자분들의 헌신으로, 교회가 유지되고 발전했습니다. 지금 저희 교회도, 여성분들이 헌신하지 않으면, 거의 Stop 이 되지 않을까, 예수님 당시에도, 여자분들이 당연 많았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아래까지 따라간 사람중에, 남자는 요한 한명이고, 여자분이 네명이었습니다. 처음으로 무덤에 찾아가 사람도 여자분입니다. 바울의 동역자들 중에 여자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남자들이 할 수 없는, 일을, 섬세한 여성 동역자들이 한거예요. 분명 사역하다 보면, 남자들이 할 수 없는 일들이 많이 있거든요. 여자 성도님들이 이해력도 더 많고, 입도 더 무겁고, 기도도 많이 하고, ….등등…
이렇게 성령님은 우리의 형편과 사정, 아주 세미한 부분까지고, 미리 아시고, 계획하시는 분입니다.
이제 우리 꿈의 교회도 새로운 목회 전환점을 맞이했습니다. 오늘이 여기서 드리는 수요찬양예배 마지막입니다. 다음주부터는 22nd 와 Columbus 로 오셔야 합니다. 우리 교회는 루디아 같은 여자성도님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충분히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제 앞으로 우리가 사역할 때, 명심해야 할 것은,
은혜를 사모하는 여러분들 되시길 바랍니다.
헌신하는 성도를 찾으시는 주님, 그 주님을 위해서 충성하시며, 여러분들을 통하여 교회 성장의 거점, 선교의 거점을 이루어, 이 투산에 큰 일을 이루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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