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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의 창고/ 비전나리의 설교

부활신앙의 현장 - 눅 24: 13-35

by Peartree 2012. 12. 25.

부활신앙의 현장

눅 24: 13-35

 

여러분 '수사반장'을 아십니까? 최불암씨가 수사반장 역을 맡았던, 한국에서 아주 오랫동안 방영한 수사 드라마입니다. 저도 어렸을 때 재밌게 본 기억이 있는데, 그 드라마에 형사들이 범인을 잡는 과정에서 자주 쓰는 용어가 있는데, '알리바이' 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소매치기 당한 사람이 경찰에 신고를 하면, 형사들은 과거에 소매치기 경력이 있는 전과자들을 모조리 잡아들입니다. 그리고는 몇날, 몇시에, 어디에 있어냐고, 다그칩니다. 그러면 그 전과자는, 그 시간에 나는 범행 현장에 없었고, 다른 곳에 있었습니다. 라고 하면서, 있었던 장소를 대야 합니다. 이것을 '알리바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알리바이' 를 대지 못하면, 용의자 선상에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진짜 범인이, 알리바이를 성립시키기 위해서, 거짓말로 어느 장소에 있었다고 거짓말을 한 것입니다. 그러면, 형사님들은 누구와 같이 있었냐고 또 묻습니다. 그때 거기서 뭐했으며, 어디에 전화했으며, 어느 옷을 입었느니, 계속 묻다가 결국에 꼬리를 잡히게 되는 것입니다.

구약 성경에는 메시야에 대한 예언이 300회 이상 기록되어 있습니다. 메시아가 되려면, 이 300번이나 되는 모든 조건들의, 알리바이를 정확하게 입증시켜야 합니다. 내가, 베들레헴에서 태어났고, 내가 다윗의 혈통에서 태어났고,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했고, 제자에 의해 배신당했고, 은 30에 팔렸고, 십자가에 못박히고, 죽었다가 , 3일만에 다시 살아났다, 이 모든 것을 여러 사람이 한 것이 아니라, 나 혼자서 다 이루었다. 이렇게 이 모든 것에 대한 알리바이를 입증시켜야 진짜 메시야 인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모든 성취가 우연의 일치라고 우기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미국 파사데나(Pasadena)대학 학장으로 있었던 피터 스토너 박사는 여러 해 동안, 600명이 넘는 학생들의 도움을 받아서 '메시아의 대한 예언이 정확하게 이루어질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한 수학적 확률'이라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300여 개의 예언 중에서 단지8개만 고른 다음, 그 예언들이 한 사람의 생애 동안에 정확하게 성취될 수 있는 수학적 확률을 계산했습니다. 계산 결과는 10의 22승 분의 1이었습니다('과학은 말한다', 1963년 무디 출판사 발행). 결론적으로, 이 방면의 전문가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런 일들이 한 사람에게 우연히 일어날 수 확률은 'Zero' 라는 것입니다. 절대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에 자기가 구원자 예수라고, 주장하는 이단 교주들이 수도 없이 많이 있습니다. 이들은 이중에서 단 한가지도 알리바이를 성립시키지 못했습니다. 베들레헴에 태어난 사실도 없고, 서울에서 태어났으며, 예수라고 합니다. 다윗의 족보에서 태어나야 하는데, 문씨 가문도 있고, 박씨 가문도 있고, 이씨가문도 있어요. 그리고 죽었다가 3일만에 살아난 사실도 없으면서, 자기가 예수라고 합니다.

세상이 창조된 이래로, 기절했다가 깨어나는 것 말고요, 모진 고통 다 겪으시고, 양손과 양발에 대못을 받으시고, 옆구리에 창이 찔려 물과 피를 다 쏟으시고, 장사지냈다가, 무덤을 막고 있는 돌을 활짝 여시고, 다시 사신분은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사람으로서는 감히 할 수도 없고, 전능하신 예수님만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은 부활주일 입니다.

지구상에는 수없이 많은 종교가 있지만, 부활절을 지키는 종교는 없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종교를 만든 교주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사실이 없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일단 죽으면, 다시 살아나지 않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세메터리를 가게 되면, 묘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그 묘비에 묘비명을 남기는데, 이런 묘비명이 있다고 합니다. * "여기 한 무신론자가 잠들다. 옷은 잘 차려 입었는데, 정작 갈 곳은 없다. (Here lies an Atheist. All dressed up and no place to go)" 또 이런 묘비명도 있습니다. * "유효기간 끝났음 (Expired)" 이런 묘비명도 있습니다. * "내 이 일이 언젠가는 올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이렇게 빨리 올 줄이야. (I Expected this, But not so soon)"

이 문구들을 종합해 보면, 한 마디로, 다 죽었다는 소리입니다. 그러면, 우리 예수님의 묘비명은 어떤지 아십니까?

주님이 부활하신 그 새벽 미명에, 예수님의 묘비명을 천사가 외쳤습니다. 눅 24:6절… "그는 여기에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이것이 우리 주님의 묘비명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다시 살아 나셨습니다. 역사적으로, 과학적으로, 통계학적으로 아무리 어떠한 학문을 갖다가 이 부활의 사실을 뒤집어 엎어 보려고 해도, 뒤집어 엎지를 못했습니다.

그런데도, 그 사실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는 사람은 어떠한 사람이며, 믿는 사람은 어떠한 사람인지 본문에서 찾아보고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1. 첫째로, 부활을 믿지 않는 사람은, 믿음의 현장을 떠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3절을 보시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사흘째 되는 날에, 예루살렘을 황급히 빠져 나와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가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글로바' 란 제자이고, 다른 한 제자의 이름은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지금 예루살렘에서, 다른 제자들은, 예수님이 살아나셨다는 소문을 듣고, 긴장하고, 모여서, 주님 만나기를 기대하고 있는데, 이 두사람 만큼은 그 대열에서 이탈하여 고향으로 떠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예루살렘은 예수님과 함께 했던 믿음의 현장이었고, 다른 제자들과 함께 사역했던, 사역의 현장이는데, 말이죠.

본문의13절을 보시면, "그날에" 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여기서 그날은 어떤 날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그날을 말하는 것입니다. 아마 이 두사람은 성격이 굉장히 조급한 사람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딱 3일되는 날, 믿음의 현장을 떠나버렸습니다. 최소한 한주간은 기다려야, 되는 것 아닙니까?

저도 어떤 때는 다음 주일이 정말 기다려지는 때가 있습니다. 그 주일은 월급날이 아닙니다. 새신자가 오기로 약속한 날도 아닙니다. 이번주에 설교를 죽썼을 때, 그때는 정말 다음주일이 빨리 돌아왔으면 좋겠어요. 하루라도 빨리 만회하고 싶어서요. 이번주에는 1루타 밖에 치지 못했는데, 다음번에는 최소한 3루타래도 쳐야지 하며, 다음게임을 기다리는 선수들처럼요.

주님께서 다시 살아날 것을 약속하셨는데, 제자라면, 최소한 일주일은 기다려야죠. 예수님의 부활을 믿었으면, 1주일이 아니라, 백발이 성성할 때 까지 기다리는 것입니다. 부활을 믿지 않았기에, 3일도 못되 고향앞으로 돌아간 것입니다. 그래서 부활을 믿지 않으면, 믿음의 현장을 떠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1. 둘째로, 부활을 믿지 않는 사람은, 예수님을 지식으로만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본문 15절을 보시면, 이 두제자들이 고향 앞으로 가고 있는데, "예수님께서 가까이 이르러 저희와 동행하시나, 눈이 가리워져서 예수님인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17절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물으십니다. '지금 너희들이 하는 이야기가 무슨 이야기냐?' 그러니까, 18절에 글로바란 제자가, '당신이 예루살렘에 살면서 요즘에 일어난 사건을 알지 못하느냐? 19절에 예수님께서 "무슨 일이뇨?" 묻으십니다.

그러니까, 그때부터, 글로바가 , 일어난 일을 자세히 말해줍니다. , '나사렛 예수에 관한 일이라, 그는 선지자여늘,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다, 어떤 여자들이 새벽에 무덤에 갔다가, 시체는 보지 못하고, 천사를 만났는데, 그천사가 살아났다고 하더라' 이렇게 말하니까, 25절에 예수님께서 난데없이,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것은 마음에 더디믿는 자들이여" 라고 하시면서, 26, 27절에 '고난을 받고 다시 살아날 것을 구약성경이 말하고 있지 않느냐, 왜 그토록 믿지 않느냐' 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이 두 제자가 예수가 살아났다 하더라, 라고 말하였는데, 여기서 이 두제자는 예수님의 다시 살아나신 것을 믿지 않고,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더라, 그런 소문이 있더라, 그말을 하는 것입니다.

영어성경은 분명하게 번역해놓았습니다. 'Alive' 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죽지 않고 살아있더라, 이말입니다. 죽으심을 믿지 않고, 죽지 않고 살아있다. 기절해서 깨어났을 꺼다, 이말을 하고 있는 거예요. 그러나 예수님은 반드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Alive' 가 아니라, 'Rose Again' 이렇게 말했어야 주님께서 책망하시지 않으시죠.

19절부터 읽어보시면, 이 글로바가 예수님에 대해서 말하는데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는 능하신 선지자다, 구속할자다, 들어보면, 청산유수입니다. 예수님에 대해서 이렇게 잘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데 부활하신 사건은 믿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있지만, 하나님의 하시는 일은 믿지는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이라는 것은, 믿음을 동반하지 않으면, 종교생활이 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과 종교생활은 다릅니다. 믿음이 없으면, 종교생활이예요.

그래서 우리꿈의 성도님들은 성경이 한번 그렇다고 하면, 의심하지 않고 믿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부활하셨다고 하면, 부활하신거예요. 내노라 하는 석,박사들이 이 부활의 사건을, 실제의 사건이 아니라고 증명하려고 아무리 연구해도 증명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믿어버리는 것입니다.

어제 신문을 보니까, 한국의 대통령을 지낸, 김영삼 장로님이, 민자당 대표 시절에, 드레스코드에 관한 일화가 소개되었습니다. 높은신 분들의 모임에는 드레스코드가 있다고 합니다. 그날도 그 모임의 성격상, 넥타이도 메지 않는 세미정장을 입는 모임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비서진들이, 그만 착각을 해서, 배에 붉은 띠를 두른 연회복을 입고 나가도록 했다고 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간편한 복장으로 왔는데, 혼자서 화려한 연회복을 입은 것입니다. 무척 창피했겠죠. 그리고 모임이 끝나고, 상도동 자택으로 가면서, 한강대교를 지날 때, 앞자리에 앉은 비서에게, 차를 멈추게 하더니, 얼마나 화났던지 '다리에서 뛰어내려라' 라고 했다는 일화를 소개했습니다. 비서의 말을 철뚝같이 믿는 사람. 여러분 부활의 주님을 철둑같이 믿어야 합니다.

또 한번은 김영삼 대통령이, 클린턴 대통령을 만나게 되었는데, 영어를 잘 못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통역관이 시키는대로, 했는데, 처음 만나면, How are you? 라고 해야합니다. 그리고 상대방이 무어라고 하면, Me too 라고 하면 됩니다. 간단한 인사이기에 통역없이 할 수 있도록, 통역관이 알려주었습니다. 그래서 김영삼대통령이 클린턴을 보자마자, 긴장이 되서, Who are you? 라고 했습니다. 클린턴이 얼마나 유머가 있는 사람입니까? 그래서 이 대통령이 유머를 하는지 알고, I am Hillary's Husband. 하면서 조크를 날렸습니다. 그러니까, 김영삼 대통령이, Me too 했다고 하는 일화가 있습니다. 영어가 잘 안돼니까, 통역관 말을 하나님 말처럼 믿어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이이야기를 들으면서, 역시 장로님이구나, 성경에 쓰여진 말씀을 잘 믿으니까, 누구말도 잘 믿는구나,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는 잘 모릅니다. 우리의 이성으로, 무한하신 하나님을 알 턱이 없습니다. 성경이 그렇게 말하니, 성경을 신뢰하고 믿으면, 그 다음은 주님께서 엠마오로 가는 제자처럼, 따라다니면서, 우리의 길을 인도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1. 세번째로, 그러면, 부활을 믿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믿음의 현장으로 다시 돌아가야 합니다.

32절 보시면, 예수님께서 이 두제자를 찾아가서, '성경을 풀어' 깨닫게 해주십니다. 그리고서는 마음속에 뜨꺼운 마음이 일어났습니다. 성령을 받게 되었는지, 불을 받게 되었는지는 자세히 기록하고 있지 않지만, 3일전에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신 것이 확실하게 믿어진 것입니다. 이렇게 부활의 주님을 믿은 제자들은 어떻게 하였습니까?

33절 보시면, "곧 그 시로 일어나 예루살렘에 돌아가 보니" ……그들은 그들이 있었던 믿음의 현장으로 다시 돌아갔습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그 자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눈이 오나 비가 오나 그 자리를 지키는 사람입니다.

투산에 오기전, 버지나아에서 제가 섬겼던 교회에 이울자 권사님이란 분이 계십니다. 한번은 목사님이 저에게 새벽기도회를 부탁을 해서, 새벽기도회를 인도하고, 기도를 한다음, 음악을 끄고 집에 오려고 하는데, 그 권사님이 가시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8시가 되도,9시가 되도, 갈 생각을 하지 않고, 기도하는 거예요. 그래서 10정도에 집으로 왔습니다. 많이 기다린 것이죠. 그래서 주일날 여쭤 봤습니다. 몇시에 가셨나고요. 그랬더니, 12시까지 교회에서 기도하다 간다는 거예요. 그렇게 20년을 한거예요. 나이가 60이 훨씬 넘으셨는데, 성가대를 20년 넘게 하고 계세요. 한번은 저에게 그러는거예요. '목사님, 저는 성가대에서도 자리를 바꾸면, 안됩니다. 항상 오른쪽 가장자리는 제 자리예요. 한번은 다른 자리에 앉았는데, 성도님들이 다른 자리에 있으면, 어색하다고 해서, 저는 20년동안 이 자리가 제가 지켜야 할 제 자리고, 생각하고 지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자리가 제게 가장 잘 어울립니다."

이것이 믿음이 현장입니다. 있어야 할 그 자리를 항상 지키는 것…..

우리 꿈의 교회성도님들, 주님이 부활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고향으로 가는 두 제자에게 나타나셔서, 예루살렘으로 돌아 가도록 재촉하셨습니다. 그 주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있어야 할 그 자리를 지키라고 말씀하십니다. 십자가에 죽으신 주님은, 믿기지 않게 다시 사셨습니다. 다시 사신 주님은 또 믿기지 않게 공중에서 다시 오실것입니다. 그때까지 우리 각자에게 주어진 자리를 지키며,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