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 마음에 두 마음이 일어날 때
롬 7:17-25
한 체로키 인디언 노인이 손자에게 '두마음'에 대해서 이렇게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마음속에서는 늘 싸움이 일어난단다."
"너무 끔찍한 싸움이어서 마치 두 마리 늑대가 싸우는 것과 같단다. 하나는 악마 같은 놈인데, 분노, 질투, 욕심, 거짓말이란다. 다른 놈은 선한 놈이지. 이놈은 기쁨, 용서, 사랑, 겸손을 나타낸단다. 이같은 싸움이 네 안에서도 일어나고 모든 사람의 마음에서도 일어난단다."
손자는 잠시 동안 그 말을 생각하다가 할아버지에게 물었습니다. "그럼, 할아버지 어떤 늑대가 이기나요?" 체로키 노인은 간단하게 대답했습니다. "네가 먹이를 주는 놈이 이긴단다."
여러분 ! 우리가 정말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면, 우리가 천국 백성이라고 하면, 우리 마음속에 전쟁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 마음속에서는 갈등이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전에 내가 주인이었을 때는 우리 마음속에 갈등이 하나도 없습니다. 전쟁이 일어날 이가 없습니다. 그냥 내 속에서 시키는 대로 하면 되고, 시키는 대로 말하면 되고, 먹고 싶으면 먹고, 죄를 짖고 싶으면 죄를 지으면 되었습니다. 그러고도 조금도 양심의 거리낌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죄를 끊어 버리고 십자가 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우리의 죄들이 씻겨지고, 그 다음에 구원의 좁은문을 열고, 그리고는 좁은 길을 향하여 걸어가는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하면, 우리 마음 속에는 싸움이 일어날 수 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안에 있는 성령의 법과 죄의 법이 부딪치게 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갈등을 느끼며, 고통스러워 하며 이 길을 걸어가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이러한 싸움이 일어나지 않으면, 아직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거나, 죄의 법이 그 사람을 완전히 지배하고 있거나, 둘 중의 하나입니다. 우리는 보통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 믿으면, 기쁨이 가득하다구요. 늘 평안하고, 행복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정말 예수를 바르게 믿는 다면, 우리는 천국의 기쁨을 누리지만, 그 안에서는 수도 없는 많은 갈등과 싸움들이 있어야 합니다. 그게 정상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27절에, 바울 사도는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사도바울이 누구입니까? 하늘나라의 비밀을 이 분보다 많이 받은 사람 있습니까? 없습니다. 구원받은 체험이라면, 이 분보다 확실하게 체험한 분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런 사람이 '지금 나는 지옥으로 떨어지게 생겼으니, 누가 나 좀 건져 내 달라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뭐 때문입니까?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섬기고 있지만, 여전히 육신은 죄에 매여 살고 있기 때문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 죄를 다스리지 못하면, 우리의 영혼은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 때문에 천국에 가지만, 반대로 죄 때문에 영원한 멸망에 처할 수 있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정말 승리하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려면, 내 마음 속에서 나를 무너뜨리려고 하는 죄와 싸워 이겨야 하는데, 어떻게 하면 죄를 다스릴 수 있는지, 본문에서 두가지만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 첫째로, 죄와 싸워 이기기 위해서는, 죄로 인한 고통을 깨달아야 합니다.
24절 보시면, 사도바울의 죄 가운데서의고백입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내가 지금 죄 때문에 죽게 생겼다는 말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죄로 인한 고통이 얼마나 영혼을 아프게 하고 병들게 하는지 느끼고 있었습니다.
죄 가운데 있으면서,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죽은 사람입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 의 저자 찰스 프라이스는, '가장 위험한 신자는 죄의 심각성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다' 라고 했습니다.
영국에서 청교도 운동이 한참 일어날 때, 오늘처럼 죄에 대해서 어떤 설교자가 설교하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죄악의 짐을 벗어 버릴 때 참 행복을 찾을 수 있습니다.' 라고 설교하자, 그 설교를 듣던 한 청년이 일어나 말하기를 '자신이 전혀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산다면 고통도 없고, 그 사람이야 말로 행복한 사람 아닙니까' 라고 하자 설교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청년이여 만일 시체 위에 400 파운드 되는 무거운 돌을 올려 놓았다고 합시다. 그 시체가 그 돌의 무게를 느낄 수 있습니까?"라고 했다고 합니다. 영적으로 죽은 사람은 죄의 무게를 느끼지 못하고, 그래서 죄책감도 느끼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보통 죄를 가볍게 여기는 경우는, 하나님을 두려워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합니다.하나님을 두려워 하지 않으면, 방종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죄의 문제에 대해서 가볍게 여기지 마십시요.
여러분 ! 하나님은요. 항상 사랑의 하나님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사랑 많은 하나님, 인애하신 하나님, 자비로우신 하나님으로만 아는지. 모르겠어요. 두려우신 하나님, 거룩하신 하나님, 죄를 미워하시는 하나님..등등 많이 있습니다.
미국 중서부의 어느 주에 기독교를 반대하던 한 농부가 있었습니다. 그는 주일 아침에 밭을 갈 때, 그리스도인들이 교회로 가는 것을 보고 공개적으로 비판했습니다. 그리고 그해 10월에 그 농부는 그 지역에서 가장 많은 농작물을 수확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신문에 광고를 내면서 "나 같은 사람이 성공한 것을 보면 하나님은 없는 것이 분명해" 라고 신문 광고를 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발행된 신문에서 그리스도인들은 다음과 같이 답을 했습니다. "하나님은 항상 10월에 만 결산 하시지는 않습니다. " 지금 당장 괜찮다고 해서, 하나님은 그냥 넘어가신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언제가 하나님과 내가 마주 앉아 결산하는 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 하나님은 놀랄 만큼 오랫동안 인내하시는 하나님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어떤 죄라도 그냥 넘어가시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 농부는 언제가는 심판대 앞에서 반드시 그가 한 말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시대야 말로, 정신 바짝 차려야 하는 시대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그리스도의 신부로 서기 위해서 순결한 삶을 사는 시대입니다. 마지막 시대는 염소와 양을 가르는 시대입니다. 알곡과 쭉정이를 가르는 시대입니다. 경건한 사람은 더 경건하여지고, 죄를 짖는 자는 더 죄를 짖게 된다고, 디모데후서 3장 13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에 우리의 신랑 되신 주님이 오실 때, 죄의 사슬에 매여 살던 사람은, 영광의 천국 잔치에서 참여 할 수 없습니다. 바깥 어두운 곳에 처하게 될 수 있습니다. 그러한 모습이 죄로 인해 받는 최고의 고통일 것입니다.
- 두번째로, 죄와 싸워 이기기 위해서는, 주님께 도움을 요청해야 합니다.
본문 2절 보시면,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누가 나를 이 죄악 가운데서 나올 수 있도록 도와 주시지 않겠습니까? 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 이어지는 말씀이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나를 도와주실 주님이 계시니 감사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내 마음에 두 마음이 싸울 때, 나를 측은히 보시며, 눈물 흘리시는 주님을 생각해 보십시요. 그런 나를 위해 십자가에 못박혀, 매 달려 계신 주님을 바라 보세요. 그리고 다시 일어나는 것입니다. 주님은 여러분이 일어나 걸어가기를, 10개월짜리 아이가 걸음마를 배울 때, 뒤에서 보고 계시는 아버지처럼 보고 계십니다. 우리 주님께서 넘어지면 일으켜 주실 준비를 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4복음서를 보시면, 예수님께서 죄인들 사랑하시는 모습이 많이 나옵니다. 예수님은 죄 자체는 미워하셨지만, 죄인은 사랑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꾸짖으신 죄인들의 그룹이 있었는데,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지 않는 그룹이었습니다. 죄가운데 있더라도, 주님께 손을 내밀면 잡아주십니다. 그러나 주님께 도움도 요청하지 않고, 죄도 인정하지 않고, 빠져나오려고 애도 쓰지 않으면, 주님과 점점 멀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요한복음 9:41절에, "너희가 소경 되었으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저 있느니라" 너희가 나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고, 너희 스스로 할 수 있다고 하니, 너희는 그 죄에서 나오지 못할 것이다. 이말입니다.
여러분 ! 이 땅에서 삶을 살면서, 나 자신을 바라보면, 너무 추악한 모습을 발견할 때 마다, 주님께 도움을 요청하십시요. 그것 만이 살길입니다. 주님께서 다시 일어날 힘주시고, 지혜주시고, 죄와 싸워 이길 능력 주실 것입니다.
히브리서 12:3절에는 "너희는 죄와 싸우되 피 흘리기까지는 대항치 아니" 하였다고 말씀합니다. 이 죄와의 싸움은 아주 처절하게 싸워 이겨야 합니다. 반드시 이겨야 해요. 우리는 질 수 없습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이 죄와의 처절한 싸움이 없고, 갈등이 없다면, 그 사람은 죄의법 아래 있는 사람입니다. 정말 진실한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면, 우리는 이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 싸우다가 넘어질 때도 있습니다. 그러면 죄의 법 아래로 잡혀 간다해도 또 일어나 다시 십자가를 붙들고 한발 한발 걸어가는 사람들이 되야 합니다.
나를 부인하고, 나를 십자가에 못박고 걸어가는 것이 좁은길인 거예요. 근데 많은 사람들은 이 싸움을 안 하는 거예요. 육신이 시키는 대로 해버립니다.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아닙니다.
우리 내면 속에는 더러움들이 있어요. 음란과 시기 질투 욕심 탐욕들…이런 본성들이 숨겨져 있습니다. 아무리 우리가 거룩한 척을 해도 우리는 더러운 자들입니다. 그래서 조심을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싸우지 않으면 우리는 영락없이 넘어가 버리고 말아요. 그것이 우리들의 모습이니까요. 다행히 성령님이 우리 안에 내주 해 주시는 거예요. 그분은 우리들의 죄를 깨닫게 해주세요. 내가 얼마나 죽일 녀석인가를 알게 해주세요. 그러니 엎드리면, 울 수 밖에 없어요. 해도 해도 안되고, 몸부림쳐도 안될 때가 있습니다. 그래도 싸워야 합니다.
어제 우리 홍집사님이 이사하셨는데, 다 버리셨는지 짐이 별로 없더라구요. 이사할 때 보면, 왠 짐들이 많이 쏟아져 나오는지, 필요없는 것들을 끌고 다니다가 한번도 쓰지 않고 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번은 버지니아에서 살 때, 뒷집 미국 할아버지가 대 백과 사전을 야드세일에서 팔다가 안 팔린걸 우리를 주었습니다. 오래된 책인데, 얼마나 무거운지, 버리고 싶은데, 혹시나 해서, 몇 박스를 이사할 때마다 끌고 다니다, 책 한번 펼쳐보지 않고 버린적이 있습니다. 얼마나 버리기 싫어하는지. 이것이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얼마나 죄를 끌어 안고 살아가고 싶은지, 버리질 못하는 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여러분 버리십시다. 하나님께서 원하지 않는 것, 내 마음속에 성령의 법이 편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들 다 버려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꿈의 교회 성도님들은 이 죄의 문제에서 자유하게 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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