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의 생명책
말라기 3:13-18
'신천지예수교증거장막성전' 들어보신적 있으십니까? 요즘 한국에서 독버섯처럼 번지고 있는 일명 '신천지'라는 이단종교단체의 이름입니다. 이 단체의 교주인 82세인 이만희씨는 자신의 단체에 있는 교적부를 성경이 말하는 생명책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신천지측에 의하면 그들의 교적부가 생명책이고, 그 밖에 '중간록', '사망록' 까지 있다고 합니다. 신천지측이 제공하는 소정의 성경공부 과정을 마치고, 교회에 등록하면 생명책에 이름이 올라가고, 교회 생활을 미지근하게 하고 어정쩡하게 하면 생명록에 올라간 사람도 중간록으로 옮겨지고, 신천지를 떠나게 되면 사망록으로 옮겨진다고 합니다. 그래서 신도들이 겁을 먹고 그 단체를 떠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천국의 하나님 보좌 앞에 펼쳐져 있는 기념책이라고도 하는 생명책은 교회의 교적부가 아닙니다. 교회의 등록부가 아니라는 거예요. 이 생명책에 관하여는, 성경 여러 곳에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출애굽기 32:32을 보시면, 이 책은 "주의 기록하신 책" 이라고 합니다. 주님께서 직접기록하신 책이예요. 다니엘서 7:10을 보시면, "심판을 베푸는 책들이 펴 놓였더라"고 기록합니다. 심판하는데, 척도가 되는 책입니다.
누가복음 10:20절을 보시면, 예수님께서 70인의 제자들을 파송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리고 이 70인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시 돌아와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주여 주의 이름으로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라고 흥분된 목소리로 보고를 합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말씀하시죠. 그러므로 이 책은 우리의 이름이 반드시 기록 되어져 있어야 하는 책입니다. 만약에 그 책속에 우리의 이름이 없다면, 아주 큰 불행입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이름이 올라가 있어야 합니다. 또 계시록을 보시면, 이 생명책에 대해서 자주 언급하시는데, 20:15절에,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리라"고 했습니다. 그런가하면 계시록 20:12을 보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이 모든 말씀들을 종합해보면, 분명한 사실은 하나님은 책을 가지고 계시는데, 그 책속에 구원받은 사람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고, 또한 이 땅에 우리의 모든 행위가 기록되어져 있기 때문에, 책에 기록된 대로 정확하게 심판을 받기도 하고, 상급을 받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한가지 더 우리를 두렵게 하는 말씀은 시편 69:28절의 말씀에 "저희를 생명책에서 도말하사" 라는 말씀처럼, 그 생명책에 기록된 이름은 지워질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32:33절에도 보시면, "누구든지 내게 범죄하면 그는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리라"
찰스 알렌이란 박사가 최근 미국교인들의 신앙 상태를 면밀히 조사했는데, 그 결과에 의하면 20%의 교인이 예배에 불참하고 있고 25%의 교인이 기도를 안 하고 있고 30%의 교인이 기도를 할 줄 모르고 35%의 교인이 성경을 읽지 않고 있으며 40%의 교인이 헌금을 안 하고 있으며 60%의 교인이 신앙 서적을 읽지 않고 있으며 70%의 교인이 교회 활동을 외면하고 있으며 85%의 교인이 한 사람의 불신자도 인도해 본 사실이 없고 ...... 100%의 교인이 하나같이 천국에 들어가고 싶다는 반응을 보였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하나님 보좌 앞에 펼쳐있는 생명책에 자신이 이름이 기록되어져 있기를 믿고, 그렇게 소망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불행한 것은 우리는 그 이름이 분명히 적혀 있는지, 아니면 적혔다가, 흐려지고 있는 중인지, 아니면 지워져 버렸는지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평생을 정신없이 바쁘게 살았던 어떤 사람이 이었다고 합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무엇이 이로운지 해로운지, 하나님이 계신지 안 계신지 생각할 겨를도없이 무작정 바쁘게 일에 쫓겨서 살다가 그도 별수없이 죽었다고 합니다 . 그래서 그가 천국 문 앞에 이르렀는데, 베드로가 오른손에 생명책을 들고 떡하니 버티고 서 있었습니다. 그가 막 천국에 들어가려고 하니까, 베드로가 가로막으면서 "당신 이름은 이 생명책에 없습니다"라고 하는 거예요. 그러자 이 사람이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세상에 살면서 얼마나 바쁘게 살았는지 압니까? 당신이 나에 대해서 잘 모르는 것 같으니 다시 한번 잘 찾아보시오. 분명히 생명책에 내 이름이 있을 것입니다." 그때 베드로는 대답했다고 합니다 . "나도 워낙 바빠서 당신의 이름을 생명책에 기록하지 못했소." 라고 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참으로 바쁘고 분주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요즘 시대는 괜히 바쁜 것 같습니다. 뭐라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오히려 이상한 것 처럼, 느껴집니다. 그래서 편안히 쉼을 얻지못하는 시대인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바쁜 생활 가운데, 우리가 반드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과연 나의이름이 생명책에 선명하게 기록되어 있는가?'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면 구원의 보장을 확인하면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비행기 타고 여행하실 때, 아무리 비싼 비즈니스석을 샀을 지라도, 승객명단에 내 이름이 있어야 비행기를 탈 수 있는 것처럼 우리의 이름이 하나님의 생명책에 있어야 천국에 들어 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럼 오늘 본문 16절에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책" 에 기록된 사람들. 과연 이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며, 생명책에 기록된 후에 우리에게 어떠한 축복이 따라오는지 본문에서 몇가지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 첫째로, 생명책에 기록되는 사람들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사람들입니다.
본문16절을 보시면,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 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사람은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입니까? 16절을 다시보시면, "그 이름을 존중히 생각하는 자"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이름을 존중히 생각하는 사람들, 바로 이런 사람들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10:3절의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라는 말씀대로, 주의 이름을 부르고 높히고 찬송하는 사람들, 바로 이런 사람들이죠.
우리가 한가지 분명히 알아야 하는 것은 예수의 이름을 부르지 않고는 생명책에 이름이 절대로 올라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시대에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 예수의 이름을 부를 수 있다는 것은 진정한 축복입니다.
구약시대만 하더라도 하나님의 이름이 '야훼 (여호와)' 인데, 이 이름을 함부로 부르질 못했습니다. 그래서 겨우 부를 있는 것이 '주님'이라는 뜻을 가진 '아노나이'라고 불렀습니다. 백성중에 단 한사람 대 제사장만이 1년에 딱 한차례 지성소에 들어가서 한번 '야훼여' 라고 부를 수 있었습니다. 그것도 어떤 죄가 있는 상태로 불렀다간 그 자리에서 즉사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보세요. 하나님께서는 반대로, 예수의 이름을 부르지 않고는, 하나도 않되게 해 놓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불러야지만 구원 받을 수 있게 해 놓으셨습니다. 그런데도 그 이름을 부르지 않으면 축복을 발로 걷어 차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부르고 싶어도 함부로 부르지 못했었는데, 지금은 제발 부르라고 해도 부르지 않으니 말입니다.
그러므로,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는 자들은 예수의 이름을 부르자들이라는 것입니다.
- 두번째는, 피차에 아름다운 말로 고백하는 사람들이 생명책에 기록됩니다.
16절 첫머리를 보면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피차에 말하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피차에 말한다는 것은 사람들이 서로 주고 받는 말을 말하는 것입니다.
본문의 13-15절을 보시면, 피차간에 말하는 다른 한 그룹의 이야기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완악한 말로 하나님은 대적했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헛된 일이며 그 명령을 지키는 것은 아무 유익도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입니다. 15절 보시면, " 교만해야 잘 살고 악을 행해야 창성하며 하나님을 시험해야 화를 면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전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이죠.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에 관한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서로 주고 받고 있습니다. 본문은 그렇게 아름다운 입술을 가진 사람들의 이름이 기념책에 기록되어 있다고 말씀합니다.
그 사람의 언어표현은 그 사람의 인격과 신앙의 정도를 드러내 줍니다.
신앙이 훌륭하면 말과 행실도 훌륭해집니다. 여기서 말과 행실이란, 겉으로 교양있는 것 같은 말이나, 고상한 행실을 말하는 것입니다. 때로는 말을 꾸미지 않아서 언어가 투박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안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말이 담겨져 있으면 최고의 언어입니다. 행실도 그렇습니다. 겉으로 볼때는 볼 품 없어 보이는 사람인 것 같이만, 속으론 거룩한 인격과 진실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야말로 훌륭한 신앙의 인격자들입니다.
가능하면, 아름다운 말을 해야합니다. 부정적인 말이나,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는 말은, 신앙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나들이를
가게
되었습니다. 한참
걷다가
피곤함을
느낀
할머니가 "영감,나
좀
업어주세요?"라고
했습니다. 할아버지는
업어주기
싫었지만
나중에
들을
잔소리가
겁이
났던지
할머니를
업어주었습니다. 업혀
가던
할머니는
조금
미안했던지 "나, 무겁지?"라고
묻습니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그럼, 무겁지!"하고
퉁명스럽게
쏘아붙였습니다. 할머니가 "왜?"하고
되묻자
할아버지는 "머리는
돌덩이지, 얼굴은
철판이지, 간은
부었으니까
그렇지" 라고
대답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는
할아버지가
다리를
다쳤습니다. "할멈,다리가
아파. 나
좀
업어
주시요." 부탁을
합니다. 할머니가
갈
때의
일도
있고
해서
할아버지를
업어주었습니다. 이에
미안한
할아버지가 "나, 무겁지?"하면
자기를
따라할
것
같아서 "나,가볍지?"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할머니는 "그럼
가볍지!"라며 "머리는
비었지, 입은
싸지, 허파엔
바람만
잔뜩
들었으니까"라고
대답했습니다. 아무리
친한
사이라
해도
듣기
싫은
말은
농담이라도
삼가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하는 실수중에 말 때문에 하는 실수가 가장 많다고 합니다. 그러니 오죽하면 야고보서에 "실수가 없는 사람은 온전한 사람"라고 했겠습니까? 성경은 입안에 혀를 '배의 키와 같다' 라고 말합니다. 작지만 세치혀로 말미암아 온몸을 컨트롤 할 수 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이 혀로 사람을 실족 시킬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이 혀로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그분을 높이며 찬양'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는 그사람의 이름은 생명책에 받드시 이름이 기록된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피차 서로 말하는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말을 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 세번째로, 그러면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사람들이 받는 대우는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17절을 보시면, 생명책에 기록된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특별한 소유를 삼으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43:1-2을 보면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것이라"고 했고 "네가 물가운데 지날때 내가 함께할 것이라 강을 건널때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것이며 네가 불가운데로 행할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우리를 이렇게 지키시고 보호하시고 인도하시는 이유가 뭡니까? 생명책에 기록된 사람은 하나님의 소유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도 하나님의 소유는 귀하게 여기신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 생명책에 기록된 사람들이 받는 대우는, 17절 하반절을 보시면 "사람이 자기를 섬기는 아들을 아낌같이 내가 그들을 아끼리니"라고 했습니다. 부모는 자식을 낳고 키우고 가르치고 출가시키고 그러고도 모자라 일평생 뒷바라지를 해줍니다.
마치 가지도 줄기도 몸통도 다 주는 나무처럼 다 줍니다. 하나님은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 주시기 까지 저와 여러분들을 아끼셨습니다. 이보다 더 큰 사랑은 세상 어디에도 없을 것입니다.
누구에게로부터 사랑은 받는 다는 것은 이렇게 굉장한 힘이 됩니다. 더군다나 전능하신 하나님이 눈동자 처럼 저와 여러분을 아끼신다니, 이보다 더 힘이 되는 것을 없을 것입니다.
샌프란시스코 종합병원의 버드박사는 입원환자 393명을 두 그룹으로 나누고 그중 한 그룹을 위해 전국의 기독교인들이 기도를 하게 했습니다. 환자들은 자기가 어느 그룹에 속했으며 누가 자기를 위해 기도하고 있는가를 몰랐습니다. 놀라운 것은 중보기도를 받지 못한 사람들에 비해 중보기도를 받은 사람들은 합병증, 폐렴, 심장마비, 심부전증등 각종 질병 발생률이 아주 낮았고 항생제 사용량도 적었습니다. 래리도시 박사는 "기도는 명약"이라고 했습니다. 1996년 미국 가정의학회 회의에 참석한 의사 269명에게 물었습니다. "신앙이 질병치료에 도움이 되느냐" 99프로
가 "도움이 된다"고 대답했습니다. 사람들의 중보기도도 이렇게 힘이 되는데, 하나님이 직접 아끼신다니, 이보다 더한 감사가 없습니다.
그러니 생명책에 기록된다는 것은 이렇게 귀하고 값진것입니다.
본문의 마지막18절을 보시면, 하나님께서는 생명책에 기록될 사람과 기록되지 않을 사람을 어떻게 구분하고 계십니까? "의인과 악인, 하나님을 섬기는 자와 섬기지 아니하는자" 로 갈라놓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25:32이하를 보면 최후심판때 하나님은 이 세상 사람들은 두 그룹으로 나누신다고 했습니다.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처럼 예수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 바르게 산 사람과 죄짓고 산사람, 구원 받은 사람과 구원받지 못한 사람, 천당갈 사람과 지옥갈 사람을 구분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때 나는 어느쪽에 서야 합니까? 내 이름은 기념책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까? 혹시 누락되지는 않았습니까?
한번 진지한 고민을 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을
아주
잘믿는
가정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남다른
신앙의
열정을
보이며
자라난 "에디"라는
소년이
있었습니다. 어느날
한꿈을
꾸게
되었는데
그
꿈속에서
에디는
천국문앞에
서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됐습니다. 그
천국문
앞에는 '에디"뿐만
아니라
여러사람들이
줄을
서서
무엇인가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때
베드로
사도가
천국문
밖으로
걸어나오더니
천국에
들어갈
사람들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
했습니다. 에디의
아버지
이름이
불려집니다 "윌리엄
웹스터
네더 !" 그러자
예 ! 여기
있습니다. 대답을
하며
아버지가
걸어
나갔습니다. 에디가
얼른
뛰어가서
아버지
손을
잡으며 "아빠
저도
같이
들어가요" 부탁
했더니, 이곳에는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사람들만
들어갈수
있는
거란다,조금만
기다려
보렴" 그러면서
들어
갔습니다. 베드로
사도가
또
이름을
부릅니다. "줄리아
마리아
네더!"
어머니의
이름이
불려
졌습니다. 이번에도
에디는
어머니에게로
뛰어가서
어머니의
손을
꼭
쥐며"엄마
저좀
데리고
가주세요"라고
말을
햇습니다. 그러자
어머니
역시
이곳엔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사람들만
들어갈수
있는거란다" 라는
말씀을
남기고
천국문
안으로
사라졌습니다.
곧이어
큰
누나,작은누나의
이름이
불러집니다. 천국문을
환하게
웃으며
들어가는
가족들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에디'는
혼자
천국문
밖에 ,,,,남겨
졌습니다. 아무리
기다려도
자기의
이름을
부르지
않기에
점점
절망감이
들었습니다. 이젠
몇명
남지
않앗습니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베드로
사도의
입만
쳐다보는
어린"에디'의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이젠
모든것이
끝났다고
생각하고
절망과
낙심을
하고
고개를
떨구는
순간
"로버트
에드워즈
네더!!!"하고
자기의
이름을
부르는것이였습니다. 얼마나
기뻤던지 '예" 여기
있습니다" 하고
큰소리로
대답을
했습니다. 그
바람에
에디는
꿈에서
깨어
났습니다. 그
대답
소리가
얼마나
컷던지
옆방에서
주무시던
부모님과
누나들이
달려
왔습니다. 에디는
어른이
된후에도
어릴적
꾸었던
이꿈을
잊지
못하고
철저한
믿음생활을
했다고
합니다,"나는
하늘나라에
이름이
기록된
사람이다" 얼마나
감사
했던지,그의
일생을
감격과
철저한
섬김으로
살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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