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충만의 증거
사도행전 6:8-15, 7:54-60
미국에는 불면증 환자가 셀 수 없이 많이 있다고 합니다. '잠 못드는 미국' 이라는 동아일보의 기사를 보았는데, 한해에 수면제를 복용하는 사람이 4,200만명입니다. 국민 7명중에 한명 꼴입니다. 수면제 선전하는 광고비용만 해도 한해에 3억달러에 달한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잠이 오지 않으면 어떻게 하십니까? 수면제 드시지 마시고 성경읽으시면, 5분안에 잠이 올것입니다. 그래도 잠이 안오시면 눈감도 묵상기도 해 보세요. 잠이 안 올수가 없습니다. 한번은 미국의 의사들이 환자들이 걸핏하면 수면제를 너무 찾으니까, 환자에게 수면제라고 속이고 소화제를 주는 실험을 했습니다. 이것을 가지고 심리학 용어로 '플라시보 효과' 라고 하는데, 환자들이 이 가짜 수면제인 소화제를 먹고는 잠을 잘 자더라는 겁니다.
이처럼 사람이 무엇을 어떻게 믿느냐에 따라 그들의 몸도 그들이 생각하는대로, 반응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프랑스의 한 여인이 모기약 살충제를 먹고 죽었습니다. 이 여인이 어떻게 죽었는지를 알아내기 위해 해부를 해보니 몸속에 살충제 성분은 하나도 나타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결국 이 여인이 죽은 이유는 쇼크사 였습니다. 즉, 살충제를 먹었다는 그 충격 때문에 죽은 것이죠.
플라시보 효과 때문에 죽은 것입니다. 이와는 반대로 '노시보 효과' 라는 것이 있습니다. 본인이 믿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약을 먹는다 해도 낫지 않는 현상입니다. 삼삼 12뿌리를 먹으면서, 이것은 오래된 도라지에 불과하지 뭐, 이게 뭐 큰 힘이 되겠어 하고 생각하고 먹으면, 산삼이 도라지 되는것입니다.
제가 왜 이말씀을 드리냐면, 전도하다 보면, 불신자로부터 가장 많이 듣는 말이 있습니다. "어떤 종교든지 마음만 편하면 되지요." 라는 말일 것입니다. 또 예수님을 믿다가 돌아서서 믿지 않는 사람들은요. "오히려 지금이 편하고 좋습니다." 라고 말하시는 분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이런 분들이 모두 가짜약을 먹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내가 믿고 싶은 것을 믿는 사람들이죠. 실제로는 속고있는 것입니다. 그냥, 예수님 안믿으니까, 편하다고 믿고 싶은 것입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그렇게 하면 영혼은 죽어가고 결국에는 지옥에 가는데 말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믿음은 내가 믿고 싶은 것을 믿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성경에서 가장 타락했던 시대,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없었던 시대, 이 시대가 사사시대입니다. 이 시대를 한마디로 사사기 제일 마지막장, 마지막절은 결론적으로 이렇게 글을 끝맺고 있습니다. "각자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이 말은 즉, '자기 믿고 싶은 대로 믿고 행동했다' 그 소리입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믿음이라고 인정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플라시보 효과' 입니다. 내가 믿고 싶은 것을 믿는 거지요.
그래서 믿음의 기초를 세울때, 어떻게 기초를 다지느냐 하는 문제는 정말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바른 길로 인도해 주시기 위해서 성령님께서 이땅에 오신 것입니다. 사람은 종교적인 동물이라고 합니다. 영물입니다. 그래서 종교를 만들고 신을 만들기도 하고, 철학을 하기도 하죠. 동물들은 이런일 하지 않습니다. 만약, 성령님께서 이땅에 오시지 않으셨다면, 2000년 동안 기독교는 수도 없이 변화를 거듭해서, 2000년전 처음 시작할 때의 진리가 아닌,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희귀 망측한 종교가 되었을 지도 모릅니다. 종교성이 너무 많은 우리 인간들이 자기들의 소견에 옳은대로 행동해서, 자기들 마음대로 기독교를 변형시켰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성령님이 이땅에 오신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충만 하지 않으면, 주의 복음이 아닌, 내가 복음으로 믿음생활 할 수 있습니다. 성령충만 하지 않으면, 내 생각대로, 내 멋대로, 예수믿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정말 하나님을 잘 섬기고, 예수님을 잘 믿으려면, 성령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오늘 본문은, 순교자 스데반 집사의 이야기 입니다.
스데반 집사가 성령이 충만하여, 복음을 전하는데, 9절에 보시면, 구레네인, 알렉산드리아 인, 길리가아와 아시아에서 온 사람들이 스데반과 변론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11절에 보시면, 그들이 '스데반이 모세와 하나님을 모독하고 있다' 고 헛 소문을 내서 사람들을 선동하고 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 보시면, 스데반이나, 이 사람들이나 모두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면 둘중의 하나는 옳고, 하나는 잘못된 것이죠. 누가 잘못 믿는 것입니까? 하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성령님이 가르치는 대로 하였고, 하나는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하나님을 믿었던 것입니다.
그럼 오늘 스데반 집사는 어떤한 사람이었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 첫번째, 스데반은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받는 사람이었습니다.
6:3에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듣는 사람.."스데반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들 주변에 보면 참 칭찬할 만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칭찬을 듣는 사람이라고 해서 모든 사람들에게 칭찬 받는 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어떻게 보면 전혀 불가능하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사실 우리 예수님조차도 미워하고 욕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모든 사람에게 칭찬 받는 다는 것은 불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보십시요. 스데반도 칭찬받는 사람이었다고 성경은 말하지만, 결국 미워하는 사람들의 손에 의해, 다음장에서 돌에 맞아 바로 죽게되죠.
그러므로, 스데반 집사는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반대로 세상은 그를 무척 미워했습니다. 너무나 정상적인 일입니다. 하나님께 칭찬 받으면, 세상은 미워하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도 세상이 그를 얼마나 미워했습니까?
마태복음 5장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니까, 세상이 너희를 핍박하면, 이상하게 여기지 말라, 너희가 진짜 크리스찬이면, 핍박 당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입니다.
루마니아의 가장 큰 침례교회에서 시무했던 조셉 톤 목사님이 계셨다고 합니다. 당시에 루마니아는 공산정권이었는데, 정부가 톤 목사님을 잡아다 처형하고 싶었지만, 세계의 여론이 무서워 어쩌지 못하고 국외로 추방해 버렸습니다. 그래서 톤 목사님은 미국에 오셔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사람들이 물었습니다. "목사님의 신학은 무엇입니까?" 그때 마다 목사님은 항상 똑 같은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내게는 단 하나의 신학밖에 없습니다. '순교신학'입니다. 내게는 단 하나의 신앙밖에 없습니다. '순교신앙' 입니다."
구소련이 무너지고 동구권이 개방의 조짐을 보일 때, 미국의 한 기자가 찾아와 "동구권이 개방되는 소감이 어떻습니까?" 라고 묻자. 톤 목사님은 "참, 두렵습니다" 하고 대답을 했습니다. "뭐가 두렵습니까? 동구권이 개방되면 조국으로 돌아갈 수 있을 텐데요" 그러자 "나의 조국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받는 것을 기쁨으로 여기는 성도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은 복음을 위해 핍박을 받지만 그럴수록 예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믿음의 길을 아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공산 정권이 해체되면 핍박이 은혜였다는 것을 모르는 그리스도인들로 교회는 가득차게 될 것이니 그것이 두렵습니다."
핍박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핍박을 받지 않는 것이 두려웠던 것입니다. 지금 세계적으로 크리스천들이 많은 핍박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핍박중에 하나님의 은혜는 더욱 강하게 나타납니다. 세상은 핍박하지만 하나님은 칭찬하신다는 것입니다. 스데반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 두번째, 스데반은 천사와 같은 얼굴의 사람이었습니다.
사람에게 얼굴은 매우 중요합니다. 세상에는 분명히 잘생기고 못생긴 사람이 있습니다. 특별히 요즘 한국 같은 경우는 외모가 좋아야지 취직도 잘되고 출세도 잘 된다고 하는데, 교회에서는 어떻습니까? 하나님은 외모를 보지 않고 마음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이기에 우리 크리스천들은 그런면에서 참 자유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15절
보시면, 스데반의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더라"고
말합니다. 아마도
이말은
겉으로
보이는
외모를
말하는
것은
아닐겁니다. 은혜가
충만한
상태의
모습을
말할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으로
충만한
상태가
겉으로
드러난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저는
가끔씩
예수님의
사진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사진
한장
남겨놓으시고
가셨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다가도, 정말
예수님의
진짜
얼굴을
그린
그림이
있다면, 문제가
커지겠구나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얼굴 그림이 있다고 한다면, 사람들은 예수님을 갈망하지 않고, 그림만 숭배 할 것이 불보듯 뻔합니다. 그런 이유에선지 예수님은 이땅에 숫가락 하나 얼굴사진 하나 남겨놓지 않으시고, 누우셨던 무덤이라도 발견되면, 관광지로 개발되어 신성시 할 것이 뻔하니까, 하나도 남겨 놓지 않으신 것 같습니다.
제가 고등학교 때 였을 겁니다. 러시아의 사진작가가 찍어다고 하는 예수님 얼굴 그림. 여러분들 다 몇번씩은 보셨을 겁니다. 흑 백으로 된 사진인데, 유심히 잘 봐야지만 보이는 사진. 그런데 고등학교 때 이 사진에서 예수님의 얼굴이 안 보이면 구원받지 못한 거라고 저희 누님들이 그러는거예요. 그런데, 문제는 아트에 소질이 없는 저희 아버지의 눈에도 보이고, 가족 모두의 눈에 보이는데, 제 눈에만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얼마나 고민에 빠졌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어느날, 그 사진을 우연히 보았는데, 예수님의 얼굴이 보이는 거예요. 그래서 기분은 좋았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얼마나 미신적인 신앙이었는지. 몰라요
출애굽기 34장을
보시면,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십계명을
받으려고
시내산에
올라갑니다. 거기서
하나님의
영광중에 40일을
거하게
되죠. 그런다음
산에서
내려올때에는
얼굴에
광채가
나니까, 수건으로
얼굴을
가리웠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천사의
얼굴과
같았던
것입니다. 오늘
스데반의
얼굴도
그런것입니다. 하나님과
늘
동행하니까, 하나님의
은혜로
충만하게
되니까, 얼굴이
천사같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저도
바램이
있다면, 우리
꿈의교회
성도님들
모두가
천사의
얼굴과
같이
은혜
충만한
상태가
되어, 말로
전도하지
않아도
여러분의
얼굴만
보아도
예수
믿어야
겠구나, 하는
사람이
저절로
생겨나길
소망하고
있습니다.
3) 세째로, 스데반은
예수님처럼
죽을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7장은 스데반 집사님의 장편 설교입니다. 그리고 이 설교를 마치고는 돌에 맞아 죽게 됩니다. 집사직분을 받고 제대로 사역한번 해보지 못하고 허무하게 죽고 맙니다. 어떻게 보면 헛된 죽음처럼 보이지만, 이후로 기독교는 날로 힘을 얻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힘없이 십자가에 죽으신 것 같아 보이지만, 십자가 사건 그 이후로 복음은 세계를 향하여 눈을 돌리게 되죠.
한번
상상해
봅시다. 내
앞에
나를
죽이려는
무리들이
삥둘러
서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들이
나를
향하여
돌을
던집니다. 갖은
욕을
해대면서
돌을
던집니다. 돌
하나
하나에
맞을
때마다
아프기는
얼마나
아팠을
것이며
두렵기는
얼마나
두렸웠을까....
이제
고통
중에
서서히
눈
앞이
흐려져갑니다. 흘러
들어온
피
때문에
눈을
제대로
뜰
수도
없고
이제
붉은
핏빛으로
보여지는
그
사람들의
얼굴을
봅니다. 피투성이된
얼굴로
죽어가면서
그들을
바라봅니다. 그때
과연
나는
어떤
표정을
지을
수
있을
것인가...생각해
보신적
있으십니까?
스데반의
모습을
보십시오. 마치
예수님의
죽음을
보는듯하지
않습니까? 예수님처럼
자기를
죽이는
사람들을
용서합니다. 끝까지
예수님을
닮은
모습으로
죽어가는
겁니다. 이
얼마나
감동스러운
모습입니까?
이 얼마나 영광스런 죽음입니까? 주님 가신 그 길을 나도 똑같이 간다는 것. 스데반은 늘 이런 죽음을 염두에 두고 살았을 것입니다. 행여나 나도 죽은 날이 온다면 주님처럼 죽겠노라.
59절 보시면, 주님께서 하신 말을 그대로 인용 하면서 죽습니다.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60절에도 예수님께서 하신 마지막을 말을 그대로 사용합니다.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스데반처럼
예수님
닮은
삶을
살
수
있을까요?
우리의
힘으로는
안됩니다. 스데반도
자기
힘만으로
할려고
했다면
못했을
겁니다. 스데반은
어디서
힘을
얻었습니까?
우리는
그
이유
를
이
한구절의
말씀을
통해서
찾을
수
있습니다. 행7:55-56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
대"
성령이 충만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예수님께서 스데반의 순교하는 모습을 보시기 우해서 서 계신 모습을 스데반은 영의 눈으로 본것입니다. 이렇게 할 때 담대히 복음전하다가 순교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저희
꿈의
교회성도님들, 스데반의
이야기는
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신앙의
선배들이
다
그렇게
했습니다. 혹시라도
우리가
이생을
사는
동안에
순교하는
기회가
온다면, 오늘
이
말씀을
기억하시며, 예수님의
길을
따라
가기로
작정한
스데반
처럼, 우리도
그
길을
따라
살기를
다짐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의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설교자의 창고 > 비전나리의 설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 2011년 2월12일 새벽예배설교: 네 믿음을 보이라 - 행 2:14-26 (0) | 2012.12.25 |
|---|---|
| 2011년 2월5일 새벽예배설교: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지 말자 - 약 2:1-9 (0) | 2012.12.25 |
| 2011년 2월 23일 수요찬양설교: 핍박가운데 발견되는 영적 비밀 - 행 8:1-8 (0) | 2012.12.25 |
| 2011년 2월 9일 수요찬양설교: 증거하는 사람들 - 행 4:13-21 (0) | 2012.12.25 |
| 2011년 2월 6일 주일예배설교: 거짓의 문제 - 행 5:1-11 (0) | 2012.12.25 |
| 2011년 2월 2일 수요찬양설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 행 3:1-10 (0) | 2012.12.25 |
| 2011년 1월30일 주일예배설교: 환경보다는 넘어서는 믿음 - 창13:5- 12 (0) | 2012.12.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