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보다는 넘어서는 믿음
창13:5- 12
저는 미국의 TV 에서 광고하는 것을 보고 '역시 미국이다' 라는 생각을 해본적이 있습니다. 한번은 펩시콜라 선전이었던 같았는데, 자기네 상품 광고를 다 한다음에 마지막으로 몇초 앞두고 상대방 콜라회사를 이름까지 거론하면서 코카콜라는 안 좋다라는 식으로 광고하는 것을 보고 '역시 미국이니까, 가능하다' 라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한국 같으면, 법적으로 크게 걸리는 광고입니다. 자기 회사 제품만 좋다라고 말할 수 있는 한국에 비하면 어쩌면 이러한 경쟁을 통하여 사회가 발달한 다고 세상의 사회 학자들은 말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사회학자들은 이러한 현상을 두고, 아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를 발전시키는 한 요인인 것으로 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러한 싸움을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렇게 되니까, 사람들간의 인간성은 상실되고, 관계는 깨어지고, 사랑은 메말라지고 마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를 '무한경쟁의시대"라고 합니다. 싸워 이겨야 사는 시대이며, 지면 죽는다는 의식이 팽배해 있는 시대죠. 그래서 사람들은 가깝든 멀든 친구이거나 형제이거나 상관없이 이겨야 산다는 생각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이것이 이 시대의 윤리이고 도덕이고 양심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사회학자들의 말대로 경쟁은 정말 사회를 발달시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경쟁은 결국 망하게 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기독교 사회학자들이 말하길, 세계가 무한 경쟁 시대에 들어가게 되면 인구의 20%는 경쟁에서 혜택을 보지만 나머지 80%는 고통 속에 살아야 한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이겨야 산다는 것을 말하고 있지 않고,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꼭 싸워 이겨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세상 정욕과 이 어두움의 악의 영들 곧, 사단마귀와는 싸우라고 말하고 있죠.
마태복은 24장은 복음서의 계시록이라 할 만큼 마지막 때에 대해서 예수님께서 자세하게 설명해 놓으신 부분입니다. 여기 24장 12절 보시면, 마지막 때에는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그러므로 마지막을 사는 이 시대에는 말씀에서처럼, 사랑이 식어 지고, 마귀는 계속해서 우리들에게 경쟁해서 이겨야 한다고 귓속말로 속삭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들이 읽은 본문은 아브라함과 조카 롯이 애굽에서 많은 재물을 모아서 남방으로 내려와 기거할 때 생긴 문제의 이야기입니다. 아브라함과 롯. 저들의 재산이 늘어나면서 많은 가축들을 거느리게 되었는데, 그들의 거할 땅이 좁아 물과 풀이 부족하게 되었습니다. 본문 6절에 "그 땅이 그들의 동거함을 용납지 못하였으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물과 풀이 부족하게 되니 아브람의 종들과 롯의 종들이 서로 다툼이 일어났고 다투다 보니 다치고 상하고 서로 손해를 보게되며 서로 고통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될 때 하나님의 법은 무엇이겠습니까? 경쟁이겠습니까? 아니면 협력이나, 양보 또는 사랑이겠습니까?
아브람과 롯 사이에서 이러한 일이 일어나자 아브람은 이것이 좋지 아니함을 알게되고, 깊은 고민 속에서 결심을 하게되죠. "나와 롯이 다른 방향으로 가는 것이 좋겠구나!" 생각하게 됩니다.
8-9 "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골육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말자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여기서 우리는 아브람이 하나님의 무한한 복을 받을 자격을 보게 되며 양보 속에서 하나님의 지혜와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브라한은 어떠한 사람이었길래, 하나님께서 전무 후무한 복을 쏟아 부어 주셨으며, 그러한 복을 어떻게 해서 받게 되었는지 본문에서 몇가지 원리를 찾아 보기를 원합니다.
- 첫째로, 아브라함은 양보의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4장을 보시면, 가인과 아벨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가인은 동생 아벨과 하나님의 사랑을 누가 더 받을 것인가의 경쟁에서 동생을 돌로 쳐죽였습니다.
야곱은 형 에서와의 축복의 경쟁에서 형과 아버지를 속여 장자권을 빼앗았습니다.
압살롬은 아버지와의 권력의 경쟁에서 반기를 들어 아버지 다윗을 죽이려 했고 유다는 재물의 경쟁에서 돈 때문에 은30에 예수님을 팔아 버려 십자가에 못 박아 죽게 만들었습니다.
왜 이러한 일이 일어 났습니까? 이겨야 산다라는 생각 때문에 그런것입니다. 이겨야 사는 것이 아니라, 져도 살 수 있다라는 생각을 안해봐서 그런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이러한 무한 경쟁을 택하지 않았습니다. 양보하는 쪽을 택하였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는 것이 이기는 것입니다. 이 원리를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 두번째로, 아브라함은 겸손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8절에"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골육이라--"
골육이란 말은 '형제' 를 말하는 것입니다.
아브람은 롯의 삼촌이며 손위의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자기를 낮추어 롯을 형제처럼 대우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말자"라고 했습니다. 여기 다투게 말자는 표현은 아브람이 권위나 기득권을 포기하고 롯에게 간절히 사정하며 간청하는 말하는 것입니다. 아버지 없는 고아인 조카를 데리고 나왔고 갈대아 우리에서부터 여기까지 키워주고, 도와주었으면 얼마든지 '이제 너 살길을 스스로 개척해야 한다' 라고 하면서 '내 곁을 떠나라' 라고 명령 할 수도 있는데 감정을 앞세우지 아니하고 인격을 존중해 주면서 간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제발 더 이상 다투지 말자" 라고 하면서 조가 롯에게 먼저 선택권을 주었습니다. "네가 좌하면 내가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내가 좌하리라" 얼마나 멋진 인물입니까?
그의 온유함과 겸손함은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세상을 살다가 경쟁해야 하는 문제에 봉착하게 되면, 겸손한 마음으로 선택권을 다른사람에게 넘겨 보십시요. 이런 겸손함을 통하여 하나님은 선한 길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꼭 내가 결정해야 완벽한 것은 아닙니다. 다른 사람의 결정도 소중한 것입니다.
제가 다니던 신학교의 교수님이 미국교회를 시무하고 있을 때, 이 미국교회에 한국 목사님이 사역을 하니까, 너무 복음적이 열심이고 하니까, 너무 좋아하는거예요. 그런데 이 목사님은 처음 임시로 1년만 있겠다고 하고 갔는데, 이제 떠날려고 하니까, 미국교회에서 떠나지 말라고 잡는거예요.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한 후에, 하나님이 응답하셨습니다. 떠나야 합니다. 그러셨다는 겁니다. 그랬더니, 다음주에, 몇 십명의 교회 리더들이, 목사님 우리도 하나님께 기도했더니, 목사님이 여기 남으라는 응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목사님에게 하신 응답만 중요하고, 저희 응답은 중요하지 않습니까? 하더랍니다. 그래서 몇 년을 더 사역했다고 하는데,
맞습니다. 이 선택권의 문제, 겸손히 내려 놓으면, 하나님께서 일하신다는 것입니다.
- 세번째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영광을 언제나 우선으로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7절을 보시면,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도 그 땅에 거하였더라"
지금 그 땅에 아브라함과 조카 롯만 거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나안 사람도 거하고, 브리스 사람도 거하였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왜 이 지방 사람들을 언급하고 있습니까? 굳이, 성경은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을 기록할 필요가 없었는데 말이죠?
성경은 형제간에 이러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세상 사람들은 저들이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하는지 지켜 보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예수믿는 가정에 문제가 생기면, 교회에 문제가 생기면, 예수 믿는 사업장에 문제가 생기면, 세상 사람들은 우리를 주목하고 있습니다. 저들이 저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지 봐야지? 하는 마음으로요.
이 때 아브라함의 결정은 나의 유익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 받으시는 쪽을 택한 것입니다. 조카 롯과 재산 소유권을 가지고 피터지게 싸우면, 세상은 '거봐라 너희들이 크리스찬이냐? 너희들도 어쩔수 없는 세상의 무한 경쟁속에서 싸워야 하는 사람들이다' 라는 말이 나오지 못하도록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이렇때 누가 영광을 받으십니까?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십니다. '아! 저사람 예수 믿으니까, 선택도 정말 지혜로운 선택을 하는구나!" 하는 말을 들음으로 해서 하나님이 높임을 받으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언제나 이것을 의식하십시요.
"내가 하는 일이 하나님께 영광이 돌아가는가?"
"내가 하는 일로 하나님의 이름이 높아지며 자랑이 되는가?"
이것을 먼저 생각하면 문제는 쉽게 풀려 집니다.
- 네번째로, 아브라함은 환경을 보기보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은 사람이었습니다.
12절 보시면, 롯이 떠난 후에 아브라함은 어디에 거하는지를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에 거하였고" 롯은 에덴 동산 같은 소돔성을 택하여 도시로 들어가고 아브라함은 더 나은 환경을 보기보다 하나님의 약속을 미리 비전으로 보고 가나안 땅에 머물렀다는 것입니다.
롯과 같이 현실적인 환경만 바라보는 자, 그 환경 속에서 젖어 살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롯이 소돔 성에서 얼마나 경쟁속에서 살아야 했는지, 가나안에서 소돔으로 이민 가서, 소돔 사람들과 같이 돈만 보고 살았습니다. 롯의 아내는 얼마나 돈버는 경쟁속에서 살았는지, 나중에는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할 때도 그 돈이 아쉬워 뒤를 바라보다가 소금 기둥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믿음을 선택했던 아브람은 거부가되는 축복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앞에 닥친 문제를 어떻게 보고 있습니까?
눈에 보이는 환경을 선택하면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무한 경쟁으로 보고, 무조건 싸워서 이기려고 하면, 그 순간 패하고 마는 것입니다. 양보를 택하십시요. 겸손한 마음으로 결정하십시요.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지 심사숙고 하십시요. 하나님의 약속을 믿으시기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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