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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의 창고/ 비전나리의 설교

2011년 1월26일 수요찬양 -제직회 헌신예배설교 : 그리스도인의 교회봉사 - 엡 4:7-12

by Peartree 2012. 12. 25.

그리스도인의 교회봉사

엡 4:7-12

어느 목사님이 자기 교회에 출석하다가 출석을 중단하고 있는 성도로부터 편지를 받았습니다. 편지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목사님, 진정한 신앙생활을 위해 꼭 예배에 출석 해야 하고 교회 봉사를 해야 합니까? 저는 요즈음 혼자서도 하나님과의 관계 유지를 하며 믿음의 삶을 사는 것이 가능한가를 실험하고 있는 중입니다. 정말 교회 없는 신앙생활이 불가능할까요?" 라는 질문의 편지였습니다. 그래서 그 목사님이 다시 답신을 썼습니다. 이렇게 쓰셨다고 합니다.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런 경우를 상상해 보십시오. 1) 군대에서 훈련이나 소집에 불응하는 군인이 정상일까요? 2) 베이스캠프 없이 등정하는 등산가가 정상일까요? 3) 병원이 없이 치료를 구하는 환자가 정상일까요? 4) 학교나 스승이 없는 학생이 정상일까요? 5) 벌집이 없이 날아다니는 벌이 정상일까요? 6) 팀을 생각하지 않는 축구선수가 정상일까요?" 어떻습니까? 오늘 우리의 교회 생활은 정상이신강요?

성경은 우리가 예수를 믿고 영접하는 순간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고 가르칩니다. 그 순간부터 우리는 하나님의 가족이라는 공동체의 일원이 되는 것입니다. 정상적인 자녀는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부모를 섬기고 형제자매와 교제하고 가정에서의 봉사의 경험을 통해 정상적인 인간으로 자라가는 것입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영적인 집인 교회 안에서 하나님을 섬기며 형제자매와 교제하고 교회 봉사의 경험을 통해서 정상적인 신앙인으로 자라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봉사 중에 상처의 경험이 있었던 분들은 교회 자체를 거부하지는 않더라도 봉사를 기피하는 영적 알레르기성 질환의 증세를 보이는 분도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가 이러한 상처를 넘어서서 교회 안에서 유쾌하게 봉사하고 신나게 신앙생활 할 수 있을까요?

성경은 몇 가지 팁을 우리에게 말해 주고 있는데, 오늘 본문에서 찾아보기를 원합니다.

1. 첫째로는, 각자의 영적 은사를 따라 섬겨야 합니다.

7절을 보시면,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분량대로, 영적은사를, 다른말로 하면 달란트, 영어로 하면, 탈랜트를 주셨다는 것 입니다.

그러면서11절은, 교회내에서 다양한 리더쉽의 은사적 직분들을 열거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들이 사도, 선지자, 복음 전도자 그리고 목사와 교사가 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네가지 직분에 대해서 스테드만 목사는 그의 저서인 (Body Life) 라는 책에서 이 네 가지 은사적 직분들을 우리 몸의 네 가지 계통에 비유하였습니다.

1) 사도가 우리 몸의 골격 계통일라고 말합니다. 뼈는 몸을 만드는 세우는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사도들이 처음으로 교회를 세웠고, 그 교회에 근거해서 지금까지 든든하게 세워져 오는 것입니다.

2) 선지자는 몸의 신경 계통이라고 합니다. (머리에서 명을 받아 온 몸에 전달하는 역할 이죠. 선지자는 하나님으로부터 명을 받아 백성에게 전달하는 역할 이라고 두 차례정도 말씀 드린적이 있습니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백성에게, 그리고 제사장은 백성의 말을 하나님께 전달하는 역할 이라고 말씀 드렸었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곳입니다.

3) 그리고 전도자는 소화 계통(밖에서 음식을 취하여 몸의 한 부분이 되게 함, 그래서 전도자는 끌어오는 역할을 합니다. 불신자를 구원하여 교회의 지체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교회는 양적으로 자라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4) 그리고 목사와 교사는 순환 계통(피가 온몸으로 영양을 전달하는 것 같은 역할 입니다. 목사와 교사는 성도에게 영양 있는 말씀을 가르쳐 양육하는 역할 입니다. )

그리고 이 대표적인 네가지 은사 외에, 교회 안에서 봉사하는데, 필요한 은사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은사에 맞게 교회 안에서 섬기며 봉사를 합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서 우리가 봉사를 하는데,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먼저는 다른 사람의 은사를 존중해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를들어, 고린도전서 12장 28절 찾아 보시겠습니다. 여기에 보시면, 여러가지 은사를 나열하고 있는데, 앞에 설명한 네가지 은사 외에 병고치는 은사, 서도돕는 은사, 다스리는 은사, 그리고 각종 방언을 하는 은사가 있습니다.

이 네 가지 각기 다른 은사가 한 고린도교회 안에 존재할 수 있었던 이유는 사랑이라는 은사 때문에 가능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31절에 더큰 은사를 사모하라 '사랑의 은사' 입니다.

내 은사만 고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내가 받은 은사가 있지만, 사랑으로 양보하고, 사랑으로 서로 도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건 내 은사가 아니야, 나와 상관 없어 이런 것은, 가장 큰 은사 사랑의 은사에 반대되는 것입니다.

 

 

2. 서로를 온전케 해야 합니다.
좀전에 은사발견 방법을 통하여 자신의 은사를 발견하셨으면 이제 사역을 시작해야 합니다. 그런데 사역을 함에 있어서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역을 결코 일 중심으로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영적 사역은 철저하게 관계 중심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영적 사역은 결국 이웃을 섬기는 것이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교회안에서 일 중심 사역은 사람들이 다치게 되어 있습니다. 군대처럼 말이죠. 군대는 철저하게 일중심적입니다. 그런데 요즘 군대도 바뀐다고 합니다. 자주 탈영을 하고, Shooting 사고가 일어나니까, 관계중심적 리더쉽으로 바뀐다고 합니다.

또 하나, 교회 안에서의 사역에서 우리가 자칫 잘못을 범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자기 만족이라는 함정입니다. 물론 자기 은사에 맞는 일을 하면 거기에 만족이 있고 기쁨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봉사는 자기만족에 목표가 있어서는 안 됩니다. 나의 섬김의 결과로서 우리의 이웃이 만족을 얻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 12절에 보시면, "성도를 온전케 하며" 이것이 목적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온전케하다' 라는 한국말이 좀 와 닿지가 않습니다. 영어버전을 이해가 되실겁니다. "Prepare God's people" 하나님의 사람들을 준비시키는 일입니다. 아직 은사를 발견하지 못한 사람들을 발견하도록 도와서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 일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분이 자기 은사를 드디어 발견한 것입니다. 예전에 몰랐었는데, 본인에게 찬양의 은사가 있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예요. 그래서 이제 찬양에 관련된 사역을 하려고 하는데, 은사가 없는 사람이 찬양을 하는 것을 보고, 무시하고, 핀잔도 주고, 그리고 다른 사역은 하찮은 것 처럼 여기고, 하면 하나 도움이 안되는 것입니다. 성도를 준비시키는커녕 시험에 들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사역의 목적은 성도를 온전케 세우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3) 세번째, 봉사의 정신으로 사역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12절에 보시면,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교회 내에는 언제나 두 가지 바람직하지 봉사자들의 모습이 보입니다. 한 종류는 기본적인 영적 성숙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봉사하여 본인도 힘들어 하고 다른 교인들에게 상처 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어떤 성도는 봉사 할 만한 사람인데, 봉사의 기회는 접어두고 호시탐탐 도망갈 틈만 엿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역시 이런 분들로 인하여 다른 교인들은 상처를 받습니다. 이 두 부류의 성도중 어느쪽이 더 본인에게 안좋은 결과를 가져오겠습니까? 영적 성숙이 안된 상태에서 봉사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자신도 상처를 받을 지는 몰라도 결국에는 그러한 과정을 통하여 성장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호시탐탐 도망갈 기회를 엿보는 성도는 영적으로 성장하지 못합니다. 성장할 기회를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생활에서 겉으로 겉도는 분은 잘 성장하지 못하는 것을 봅니다. 그래서 주의 일이란 죽으나 사나 충성하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감당할 능력을 주신 것 같습니다.

'봉사의 일'은 철저하게 '섬김의 일'입니다. 여기 '봉사' 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diakonias)입니다. Diakonias 이 단어에서 Deacon이란 단어가 유래되었습니다. 디아(dia)와 코니아(konia)두 단어의 결합인데 '코니아'의 뜻은 '먼지'란 말로 합하여 '먼지를 턴다'는 뜻입니다. 집사는 먼지를 터는 사람, 청소하는 종입니다. 계급이 아닙니다.

그렇습니다. 교회의 모든 직분은 철저하게 계급이 아닌 봉사의 직분일 따름입니다. 사회의 계급은 올라갈 수록 목에 힘이 들어가는데, 교회에서 직분을 받은 분들은 허리를 굽히고 손에 수건을 들고 이웃들 앞에 서야 합니다.

교회가 질적으로 성숙하려면 이 봉사의 영성이 성경적으로 회복되어야 합니다. 한국 교회의 최고의 과오가 있었다면 직분을 계급화한 것입니다. '종'이라는 단어까지도 계급화하여 우리는 종을 '종님'이라고 부르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종놈이 맞는 말입니다. 주인님이 맞는 말이듯이 말입니다. 그런데 주의 종님은 어디에서 나온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목사든 장로든 집사든 모든 직분은 계급이 아니고, 봉사의 일을 하라는 직분이라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4. 네번째는, 궁극적으로 몸 된 교회를 세워야 합니다.

12절 보시면,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본문 12절 마지막에 사도 바울은 모든 교회내 직분과 봉사의 궁극적인 초점이 어디에 있어야 하는 가를 말했습니다. 한마디로 그것은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입니다. 여기서 세운다는 말은 '빌딩'(building)한다는 말입니다. 세우는 것(빌딩)의 반대는 무엇입니까? 허무는 것 곧 파괴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 봉사를 하면서 우리가 앞으로 날마다 물어야 할 질문은 이것입니다. 나의 섬김으로 우리 교회가 좀 더 든든하게 좀 더 아름답게 잘 세워져 가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아니면 나는 허물고 있는 사람은 아닌지 질문해 보아야 하는 것이죠.

어떤 경우에는 섬기는 분들의 태도나 방식이 그릇되었을 때 교회가 한 사람의 부덕한 일꾼 때문에 온 교회가 흔들리고 몸살을 앓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제발 흔드는 자나 허는 자가 되지 마십시오. 본래 흔드는 일은 사단이 하는 일입니다. 눅22:31에 보면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단이 밀 까부르듯 하려고 너희를 요구하였으나" 세우는 자가 되셔야 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세움'은 단순한 조직의 세움만을 뜻하는 말이 아닙니다. 궁극적으로 교회 회원 하나 하나를 성숙하게 세워야 한다는 뜻입니다.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그리스도를 닮은 장성한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세워질 때 그것이 바로 교회가 세워지는 것이고 그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이 그들이 살고 있는 모든 삶의 장에서 펼쳐지는 것입니다.

미 상원 원목이었던 리챠드 하버슨 목사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분은 한때 매릴랜드의 제4 장로교회의 목사로 목회하셨던 분이었습니다. 그가 한번은 워싱톤 밖으로 여행을 갔다가 비행기로 돌아오는 길에 비행기가 착륙준비를 하면서 워싱톤 상공을 비행할 무렵 마침 비행기 창가에 앉아 있었기에 창 밖으로 자기가 목회하는 교회당 건물이 보고 싶어졌다고 합니다. 그런데 비행기가 원을 그리며 방향을 틀면서 자기 교회가 보일 듯 보일 듯 하다가 시야에서 사라지면서 백악관이 보이고, 국방성이 보이고, 조지타운 대학이 보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순간 느닷없이 이런 건물들에서 일하는 자기 교회 형제 자매 집사님들의 얼굴이 떠올랐다고 합니다. 그는 갑자기 무릎을 치면서 "그래 맞아 나의 교회는 저 리버 로드 선상에 있는 교회당만이 아니야. 이 모든 곳 나의 백성들이 흩어져 일하는 모든 곳에 나의 교회가 있는거야"라고 마음속으로 소리쳤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교회에 속한 한분 한분 성도들이 우리 교회에서 예배하고 말씀으로 훈련받고, 은혜 받고 새 힘 얻어 그리고 다시 흩어져 우리의 우리의 가정, 우리의 직장, 우리의 사업장으로 가서 거기서 복음의 빛을 발하며 사는 것 이것이 바로 교회가 존재하는 목적인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 꿈의교회의 존재의 이유요, 제직을 세우는 이유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