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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의 창고/ 비전나리의 설교

2011년 2월 2일 수요찬양설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 행 3:1-10

by Peartree 2012. 12. 25.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행 3:1-10

 

어떤 목사님이 교회에서 설교를 하실 때면 "여러분의 그런 미지근한

믿음으로는 지옥에 갈 수밖에 없습니다" 고 자주 책망을 하셨다고 합니다.

얼마 후 이 목사님은 그 교회를 떠나게 되었고 새로운 목사님이 오셨는데 이분 역시 항상 되풀이하며 강조하시는 말씀이 "여러분과 같이 미지근한 믿음은 지옥에 갈 수밖에 없다" 고 설교하였습니다.

어느 날 그 목사를 파견한 노회 회장이 그 교회를 방문하여 새로 오신 목사님과 교인들이 함께 신앙 생활을 잘 하고 있는지, 대화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교인들이 이전 목사는 싫어했는데 새로 부임하신 목사님은 좋아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왜 그런지 그 이유를 물었더니 교회 대표되시는 분이 이렇게 대답하였다고 합니다. "두 목사님 다 우리의 신앙이 미지근하여 지옥에 갈 수밖에 없다고 하셨는데, 이전 목사님은 그것을 아주 당연한 듯이 말씀하셨지만 지금 목사님은 몹시 괴로워하시면서 우리들의 고민과 고통을 함께 나누는 것 같이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같은 이야기라 할지라도 고통을 함께 나누려고 하는 사람은 남에게 신뢰를 얻습니다 하지만 남을 아끼는 마음도 없이 책망이나 비난은 아무런 효과를 거둘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대인 관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삶을 함께 나누려고 하는 자세

입니다. 다른 사람의 어려운 처지를 해결해 줄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함께 애통하며 위로하게 될 때 당사자는 큰 용기와 힘을

얻고 새로운 출발을 시작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에는 큰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사랑은 기적을 낳기도 하고, 사람들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시면, 베드로와 요한이 예루살렘 성전에 기도하러 들어가다가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된 사람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는 날마다 성전 미문이라는 곳에 나 와서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동냥을 하며 살아가는 비참한 인생이었습니다. 그러는 그가 하루는 베드로와 요한이 가까이 오자 그는 무엇을 얻을까 기대하면서 손을 내밀었습니다.

이 모습을 보면서 두 사도는 그 사람의 고통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그의 손을 따뜻한 사랑을 가지고 붙잡아 주었습니다. 그리고는 그 유명한 말씀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고 말씀하며 일으켜 세우는 장면이 나옵니다.

 

예수님의 사역의 최초의 기적 사건이 가나 혼인 잔치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든 사건이라면, 사도들의 최초의 기적 사건은 앉은뱅이를 일으키는 사건이었습니다. 이 두 기적 사건의 공통점은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에 의해서 기적이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사도 베드로와 요한이 일으킨 사도행전 최초의 기적 사건은 우리에게 무엇을 교훈하고 있는지, 어떻게 해서 기적이 일어날 수 있었는지 본문에서 본문에서 몇 가지 원리를 찾아보기를 원합니다.

 

  1. 첫째로, 두 사도는 정해진 시간에 기도했기에 기적을 일으킬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앉은뱅이가 일어나는 이 기적의 사건은 베드로와 요한이

제 구시 기도시간에 성전에 기도하러 올라갈 때 일어난 것이라고 설명하

고 있습니다.

유대인의 시간으로 구시면 지금에는, 거기에 플러스 6시간을 더하면 됩니다. 그러니까, 구시면, 지금 베드로와 요한이 오후 3시 기도를 하러 성전으로 올라가는 중이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어디에 있든지 하루에 세 번씩 의무적으로 정

한 시간에 기도를 드렸습니다. 지금의 무슬림들이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해마다 미국의 이슬람 신도들이 자신들의 직장에서 기도시간을 보장해 달라고 소송을 제기하는 건수가 수백건에 이른다고 합니다. 이들이 요구하는 것은 하루에 다섯번을 기도하게 해달라는 겁니다. 그리고 해마다 '라마단' 이라는 이슬람 축제기간에 휴가를 달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니까, 이슬람이 머지 않아 세계 제1의 종교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기도 합니다.

 

당시의 초대 기독교에도 이렇게 시간을 정해 놓고 기도하므로 놀라운 부흥이 일어났었습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기도하는 교회가 부흥합니다. 기도하는 가정이 부흥합니다. 기도하는 사업장이 부흥합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기도하러 간 제 3시 기도는 '다니엘이 습관을 좇아 하루에 세 번씩 하나님께 기도' 드렸는데, 그 전통을 이어받아 모든 유대인들은 어디에 있든지, 그 시간이 되면 기도해야 했습니다. 다른 여러가지 기도의 종류들이 많이 있지만, 시간을 정해놓고 기도한다는 것은 많은 의미가 있습니다. 아무때가 수시로 기도해야 하지만, 하나님과 약속한 시간에 기도한다는 것은 헌신하는 것입니다. 때로는 희생하는 것입니다. 변치 않음을 증명해 보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는 것을 좋아하십니다. 주일성수도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는 것입니다. 수요예배도, 새벽예배도 마찬가지 입니다. 사단은 이런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도록 어떻게 해서는 방해하죠. 때로는 합리화시키는 작전을 폅니다. 꼭 주일날만 날이냐, 꼭 수요일을 가야되냐,

그러나 약속을 지킬 때 기적이 일어납니다.

 

다니엘이 총리로 있었는데 왕은 다니엘에게 전국을 다스리게 했습니다. 그러자

모든 방백들이 다니엘을 시기하여 그를 고소할 틈을 얻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다니엘에게서 고소할 꺼리를 찾으려고 아무리 두져도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단 하루에 세번씩 기도하는 것 외에는요. 그렇게 되자, 그들은 누구든지 30일 동안 왕 이외에 다른 신이나 사람에게 기도하면 사자 굴에 던져 넣도록 모략을 꾸며 왕의 허락을 얻어내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단 6장 10절 보시면, "하루에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지키던 약속을 지킨 것입니다. 그것도 숨어서 몰래 기도한 것이 아니고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담대하게 창문을 열어놓고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리고는 사자굴에 들어가도 사자가 살아남은 기적이 일어나게 되죠.

 

그래서 기도하는 사람은 기적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1. 두번째는, 두 사도는 불쌍한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졌기에 기적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2절은 보시면,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는 자라" 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누군가가 구걸을 하라고 '날마다 성전의 미문이라는 문 앞에 데려다 놓" 은 것입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앵벌이를 시키는 것입니다. 돈을 버는 사람이 따로 있고, 돈을 챙기는 사람이 따로 있는 것이죠. 이 앉은 뱅이가 매일 매일 구걸해서 어디에다 쓰겠습니까? 좋은 입겠습니까? 어디 놀러를 가겠습니까? 그래서 정황으로 보아 이 사람은 돈은 벌지만, 돈이 필요 없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희망도 없고, 낙도 없고, 어떤 소망도 없이 그곳에서 항상 구걸을 하며 살던 사람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그런 그를 불쌍히 여기며 "우리를 보라"고 합니다. 사도들이 "우리를 보라"고 한 것은 자신들의 품위 있는 모습을 보라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사도들과 늘 함께 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라는 말입니다.

 

불쌍한 사람을 도와주는 것, 불행한 영혼을 도와 주는 것의, 최고의 도움은 주님을 바라보게 만드는 것입니다. 빵을 주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10년을 북한을 도와줘도 한계가 있잖습니까? 복음이 들어가야 희망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북한 정권의 최대의 적은 배고픔이 아닙니다. 예수입니다. 그래서 예수믿는 성도들을 모두 요덕 수용소로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최고의 사랑은요. 빵보다는 예수님을 바라보게 만드는 것입니다.

 

사람이 무엇을 바로보고 산다는 것을 참으로 중요합니다.

남편은 선장으로 둔 여인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녀에게는 세 아들이 있었습니다. 남편이 바다에서 풍랑을 만나 죽은 다음에, 큰 아들도 선장이 되어 그만 바다에서 죽었습니다. 이제 아들 둘이 남았습니다. 둘째 아들이 선장이 되는 것을 그렇게 말렸는데, 그만 둘째 아들도 선장이 되어 죽게되죠. 어느날 교회 목사님이 그녀의 집을 심방하는 중에, 아들들의 방을 들어가 보았습니다. 그런데 하나같이 아들들의 방에 멋있는 바다 풍경에, 멋지 배와 함께, 폼을 잡고 서 있는 선장의 그림이 걸려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목사님께서 권유를 했습니다. 이 그림들을 다 같다 버리십시요. 그 후 셋째 아들은 선장이 된다는 말은 하지 않고, 다른 직업을 찾아 갔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무엇을 보고 사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것 같습니다.

 

불쌍한 사람들을 진정으로 도와주고, 사랑하는 것은 그들이 예수님을 바라보고 살게 도와 주는 것입니다.

오늘 베드로와 요한은 "우리를 보라"고 하면서 그 앉은뱅이 거지에게 사랑의 관심을 나타내므로 그에게 희망을 안겨주었습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그 예수님을 바라보라는 것이죠. 이 세상이 아무리 악하고 혼탁하여도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사람들의 영혼을 불쌍히 여길 줄 아는 사랑의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사랑만이 세상을 구원할 수 있는 희망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가 부르심을 받은 것입니다.

 

  1. 세번째는, 기적을 만들기 위해 두 사도는 나사렛 예수의 이름을 사용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보라"는 사도들의 말에 그 앉은뱅이는 귀가 솔깃하여 무엇을

얻을까 기대에 찬 눈초리로 사도들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때 사도들은 "은과 금

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

로 일어나 걸으라" 고 하면서 오른손을 잡아 일으켜 세웠습니다.

여기서 은과 금이 없다는 말은 아주 의미심장한 말입니다. 베드로는 본래 가난한 어부 출신이었지만 그가 거지에게 동냥 몇 푼 하지 못할 정도로 주머니에 아무것도 없지는 않았을 겁니다. 적어도 잔돈 몇 개는 가지고 있었을 거예요. 성전에 들어가면서 헌금으로 사용할 돈 정도는 가지고 있었을 겁니다. 베드로에 비해 사도 요한은 어떻습니까? 그는 상대적으로 훨씬 부유한 사람이었을 것이라고 학자들은 추측합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 먹고 사는데 문제가 없기 때문에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를 모시도록 부탁했을 것이다. 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아무것도 없으면 어머니를 맞길 수가 없기 때문이죠. 그런데 지금 그들은 거지에게 동냥할 돈조차 가지고 있지 않다고 말하죠.

 

여기서 사도들이 금과 은이 없다 라고 한 이유는 주머니의 몇푼은 우리가 바라볼 대상이 아니고, 우리가 의지할 대상도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입니다.

우리가 바라보고, 의지해야할 대상은 예수그리스도인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 인 것입니다. 만약 사도들이 주머니의 몇 푼을 사용했다면, 그 앉은뱅이 절대 일어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걸로 끝인거예요. 돈을 사용하지 않을 때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리고 돈 대신에 예수님의 이름을 사용한 것입니다.

 

돈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아주 지극히 제한적입니다. 돈으로 건강을 살 수 있습니까? 돈이 많다고 해서 생명이 연장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들에게 물질이 없고 시간이 없어서 주의 일을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머니 안의 단 몇 푼을 의지하기 때문에 더 주의 일을 못하는 수가 많이 있습니다. 돈 때문에, 돈 때문에, 그래서 주의 일이란 돈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 이름으로 되어 진다는 것을 사도들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앞으로 사도행전의 말씀을 나누면서, 계속해서 접하게 되는 사건이 기적의 사건입니다. 이러한 기적의 사건의 배후에는 항상 오늘 말씀과 같은 패턴으로 이어집니다. 약속을 지키며 기도하고,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을 때, 그리고 예수의 이름을 사용할 때.

이러한 패턴의 삶을 살아, 우리의 삶속에 기적 같은 일들이 많이 일어나시길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