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거하는 사람들
행 4:13-21
미국의 42대 대통령이었던 조지 W부시 아버지 (George H. Bush)가 어느날 워싱턴 교외에 있는 국민 학교를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앤소니 핸더슨이라는 여덟살난 어린이가 부시에게 물었습니다. "할아버지 진짜 대통령 맞아요?" 하고 물었습니다. 그말에 "넌 나를 가짜라고 생각하니?" 하고 되물었습니다. 이 아이가 또 이렇게 말합니다. "진짜 대통령이라는 증거가 없잖아요." 그러자 부시는 텍사스주가 발행한 운전면허증을 보여주며 "자, 보아라 여기 내이 름이 있지않니?" "이 면허증에는 직업이 써 있지 않은데요." 그래서 이번에 부시는 자기 신 용카드를 꺼내 보여주고 손자와 함께 야구하며 찍은 사진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리고 대통 령 친필 싸인이 들어 있는 명함을 보여 주고야 겨우 곤경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이 기 사는 1991년 3월 27일 동아일보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어느날 어느 모임에서 곁에 있던 사람이 여러분 에게 "당신은 진짜 기독교인 맞습니까?" 라고 묻는 다면 여러분은 무엇으로 어떻게 내가 기독교인이라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겠습니까?
"나는 교회 출석을 잘하고 있다. 나는 헌금을 잘하고 있다. 나는 직분을 맡았다. 나는 목사다. 나는 장로다. 나는 권사다. 나는 집사다. 나는 성가대를 하고 있다. 나는 교사를 하고 있 다. 그래서 나는 기독교인이고 이것이 증거다"라고 말하시겠습니까?
아닙니다. 그런것들은 내가 '교회를 다니는 사람' 이라는 증거는 될 수 있어도, 그리스도인이 라는 증거는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증거가 무었입니까?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것입니다. "내가 누구다"라는 것을 증거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가 누구신가를 증거하는 것이 그리스도인 것입니다.
존 크리소스톰(John Chrysostom)은 주후 347년경 콘스탄틴노플의 주교였습니다. 그가 로마시대 박해자들에게 붓잡혀 심문을 받고 있었습니다. 황제가 그를 심문했습니다. "네가 만일 예수를 배반하지 않으면 멀리 귀향을 보내겠다." "이 세상은 어디나 어버지의 집이니 어디간들 상관이 있겠습니까?" "그러면 너를 죽여 버리겠다." "나의 생명은 예수안에 있으니 폐하가 능히 죽이지 못할 것이요." "그러면 네 재산을 다 빼앗아 버리겠다." "내 재산은 하 늘에 있으니 빼앗아가기 힘들것이요." "너의 친구들로부터 너를 떼어 놓겠다." "내 친구는 폐하가 떼어 놓을 수 없는 한분뿐이요. 그분에게서 나를 떼어 놓을 수는 없을 것이요." 하는 수 없이 황제는 그를 내 보냈다고 합니다.
바로 이것이 그리스도인이라는 증거입니다. 교회를 얼마동안 다녔고 교회에서 어떤 직분을 맡았고 봉사를 얼마나 했고 라는 것들이 기독교인이 내세울 자랑거리는 아닙니다. "예수는 나의 구주시다. 나는 그분을 믿는 사람이다. 나는 그분을 믿음으로 구원받았다. 너도 예수를 믿어야 산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인 것입니다.
사도행전 3장은 성전에 기도하러 올라가던 베드로와 요한이 날때부터 앉은뱅이 된사람을 고쳐준 기사입니다. 그리고 그 사건을 의아해하며 궁금해 하며 모여든 군중들에게 앉은뱅이를 고친 사람은 베드로가 아니라, 앉은뱅이를 고치신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며, 그분이 누구인가를 설명하는 설교로 구성된 것이 3장의 이야기 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의 4장은 유대 관리들과 대 제사장, 서기관등 당시 지도층 사람들이 두 사도를 불러다가 사건의 진상을 조사하는 이야기로 되어 있습니다.
그럼 오늘 본문에서 유대의 지도층들이 베드로와 요한을 심문하는데, 베드로와 요한이 그들에게 어떻게 대답하고 있으며, 베드로와 요한의 대답하는 모습을 통하여 진정한 크리스천의 모습은 어떤 모습인지 본문에 찾아보고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 첫째로, 진정한 그리스도들이 복음을 전하는 일은 학식과 무관하다는 것입니다.
13절을 보면 "저희가 베드로와 요한이 기탄없 이 말함을 보고 그 본래 학문 없는 범인으로 말았다가 이상히 여기며"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본래 베드로나 요한은 무식한 어부들이었습니다. 기초 교육도 받을 기회가 없었습니다. 날 이 새면 곧장 바다로 나갔고 밤이면 피곤에 지쳐 쓰러져 잠드는 서민들이었습니다. 논리학 이나 웅변학을 공부한 일도 없고 당시에 유명한 학문이었던 변증학이나 수사학을 공부한 일도 없었습니다. 그런 그들의 예수님을 증거하는데에는 힘이 있었고 논리가 정연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놀랐던 것입니다.
우린 여기서 복음을 전하는 것은 지식이나 학벌이나 생활 수준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초등학교 졸업한 사람보다 대학원을 나온 사람이 전도를 더 잘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잘 전하려면 성령 충만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성령 충만은 속에 예수 그리스도로 가득차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독교를 아는 지식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속에 예수님을 사모하는 마음만 가득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 기탄 없이 입을 열어 예수를 증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요한 복음 7:15을 보면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말씀을 가르치고 계셨습니다. 그때 유창하고 능력있는 가 르침을 지켜 보던 유대인들이 "이사람은 배우지 아니하였거늘 어떻게 글을 아느냐" 라며 기 이히 여겼다고 했습니다.
성경공부하고 전도훈련을 받았으면서도 단 한명도 전도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그렇지 않아도 아주 쉽게 예수를 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그리스도인입니다.
- 두번째는,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은 보고 들은 것을 전하는 사람들이었다는 것입니다.
20절을 보면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로마서10:14을 보면 "듣지 못한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보고 듣고도 깨닫지 못하는 사람, 그런 사람은 참으로 불행한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보고 들은 것을 믿고, 또 그것을 전파하는 사람은 참 그리스도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보고 들은 것을 전했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보았고 들었습니까? 수를 셀 수 없이 예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눈으로 성경을 읽었고 설교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우리는 입을 열지 못하고 있을 때가 있습니다. 한마디로 부끄러운 크리스천의 모습을 할 때가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어느날 무디 선생이 버스를 기다리고 서있던 한 사람에게 전도를 했습니다. 무디는 하루종일 전도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버스를 기다리던 사람에게도 "예수 믿으시오."했습니다. "내가 예수를 믿건 안 믿건 당신이 무슨 상관이오."하고 서 있던 사람이 말했습니다. 그래도 퉁명스럽게 무디는 "당신이 나에게 화내는 것은 좋지만 예수는 믿어야 합니다."하고 자꾸 강조했습니다. "당신. 왜 자꾸 나를 괴롭히는 거요."하고 그가 묻자. 무디는 "그것이 내 직업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때에 서 있던 그 사람이 "아! 당신이 바로 무디 선생이시군요."하더랍니다. 이렇게 전도하는 사람이면 무디밖에 없다고 정평이 날 정도로 그는 어디에서나 전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전정한 그리스도인은 보고들은 것을 전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 세번째로,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은 오직 예수만 전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10절을 보심면, "하나님이 죽은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 건강하게 되어 너의 앞에 섰느니라"고 했습니다. 지금 베드로가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입니다. 나면서 앉은뱅이 된 사람을 고친 사람은 내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고쳐주어 건강하게 되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12절을 보면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은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고 했습니다. 한마디로 "오직 예수" 뿐이라는 것입니다.
싫어도 해야할 말, 예수 그리스도. 죽어도 해야할 말,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구약의 요나서를 보시면, 요나는 하나님이 가라고 하신 니느웨로 가는 것이 죽는일 만큼이나 싫었습니다. 얼마나 싫 었으면 하나님의 선지자라는 사람이 다시스가는 배를 타고 도망쳤겠습니까? 니느웨는 당시 이스라엘 민족을 괴롭히고 침략을 일삼던 원수의 나라인 앗수르의 서울이었습니다.
거기가서 복음을 전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이 그토록 싫었던 것입니다. 보내시려는 하나님과 거절하려는 요나의 실랑이가 벌어졌습니다. 그러나 요나는 가야했습니다. 싫어도 가지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를 나한테 맞추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내 구미, 내 취미, 내 입맛, 내 취향을 따라 적 당히 믿으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교양이지 신앙이 아닙니다. 나를 예수에게 맞추는 것이 신앙입니다. 내 삶을, 내 취미를, 내 인생관을 내 가치관을 예수라는 틀에다 맡 춰나가는 것이 신앙 생활인 것입니다.
그것이 싫고 귀찮고 내 구미에 맞지 않더라도 순종하고 따라야 신앙이 자라고 발전하게 되 는 것입니다.
스데반이나 바울이나 베드로의 경우를 보면 그들은 죽으면서도 예수를 증거했습니다. 죽더 라도 해야할 말, 죽으면서도 해야할 말, 그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래야 주님이 예비하신 천국에 들어 갈 수 있죠.
진정한 크리스찬은 예수를 불러야 합니다. 예수를 전해야 합니다.
본문 16절을 보면 베드로와 요한이 예수 증거하는 것을 시비하고 방해하려던 사람들이 "우 리도 부인할 수 없다" 라고 합니다. 누가 예수를 막을 수 있습니까? 복음은 결코 막을 수 없을 것입니다
소련은 70년 동안 총칼로 예수를 막았습니다. 그러나 총과 칼은 무너졌고 예수는 증거 되 고 있습니다. 세계가 2000년 동안 예수 이름이 불려지지 않게 얼마나 가진 노력을 했습니까? 그래도 진정한 크리스천들에 의해 예수 이름은 땅끝까지 전파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지금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사람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아버지 앞에 서 너희를 부인할 것이요, 너희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너희를 시인하리라"고.
이 말씀은 감격스럽기도 하고 두렵고 떨리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내가 날마다 하루하루 삶 속에서 예수를 부인한다면 주님도 나를 부인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시인하면 주님도 시인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시인이 무엇입니까? 인정하는 것입니다. 입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10:10에서 바울은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고 했습니다.
미국에 이민 가서 낮에는 일하고, 쉬는 날이면 전도에 열심을 내던 한 집사님이 있었습니다. 이 집사님이 한번은 주택가를 헤매다가 한 웅장한 저택 앞에 섰습니다. 그런데 그 집 벨을 갑자기 누르고 싶은 견디지 못할 충동을 받았습니다. 물론 외국 사람의 명패가 붙어 있었습니다. 인종 차별이 심한 미국에서 황인종이 벨을 눌렀다가 '까뗌'한다면 얼마나 자존심 상할 것입니까? 그런데도 누르고 싶은 것입니다. 벨을 세번째 누를 때까지 아무 소리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뒤돌아가다가 왠지 견딜 수 없는 마음이 또 들어서, 다시 네 번째로 벨을 눌렀습니다.
그랬더니 안에서 늙은 영감님이 고개를 내밉니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예수 믿으십시오." 집사님은 단지 그 말만하고 전도지를 주고 돌아섰습니다. 그 전도지 속에는 집사님의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습니다. 이튿날 전화가 왔습니다. 바로 그 영감님이 만나자는 전화였습니다. 집사님이 그 집을 방문했을 때, 성령님의 뜻이 얼마나 크고 위대한가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집사님이 벨을 누르는 그 순간, 그 노인은 자살을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대들보에 끈을 매 고목을 걸려는데 벨이 울렸고 또 울렸습니다. 세 번까지 울렸습니다. 소리가 그쳐서 다시 목을 걸려 하는데 네 번째 벨이 울리더랍니다. 그리고 받은 전도지가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전도는 이처럼 위대합니다. 죽을 생명도 살리는 것입니다.
예수를 이야기 합시다. 예수를 말합시다. 예수를 증거 합시다. 오늘 당 장 예수를 전합시다.
'설교자의 창고 > 비전나리의 설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 2011년 2월5일 새벽예배설교: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지 말자 - 약 2:1-9 (0) | 2012.12.25 |
|---|---|
| 2011년 2월 23일 수요찬양설교: 핍박가운데 발견되는 영적 비밀 - 행 8:1-8 (0) | 2012.12.25 |
| 2011년 2월 16일 수요찬양설교: 성령충만의 증거 - 행 6:8-15, 7:54-60 (0) | 2012.12.25 |
| 2011년 2월 6일 주일예배설교: 거짓의 문제 - 행 5:1-11 (0) | 2012.12.25 |
| 2011년 2월 2일 수요찬양설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 행 3:1-10 (0) | 2012.12.25 |
| 2011년 1월30일 주일예배설교: 환경보다는 넘어서는 믿음 - 창13:5- 12 (0) | 2012.12.25 |
| 2011년 1월29일 새벽예배설교: 진짜 크리스천 - 약 1:19-27 (0) | 2012.12.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