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위력
야고보서 3장 1-12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 하실 때 말씀으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담이 하나님께서 만드신 동물들의 이름을 그의 말로 지어주었습니다. 그리고 동물들은 말을 하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 중에 오로지 사람만 언어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두 사람만 이상 모이면 반드시 필요한 것이 있는데 말입니다. 우리 사람의 행동에서 말 만큼 많이 사용하는 것은 없을 것입니다. 일어나면서 말하고 하루종일 지치지도 않고 말하고, 잠들기 전까지 말합니다. 예전에 이런 재미난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오래된 이야긴데, 말 많은 사람에게 "너는 물에 빠지면, 입만 뜨겠다" 그런데 그 다음버전은 "너는 물에 빠지면 입부터 가라 앉겠다" 로 바뀌었습니다. 물속에 물고기와 얘기하느라 그렇다고 합니다.
야고보 사도는 크리스찬의 행위에 대해서 강조하는 사도입니다. 그런 야고보 사도가 꼭 빠뜨리지 않고 집고 넘어가는 부분이 이 말에 대한 부분입니다.
그럼 이 말에 대해서 야고보 사도는 우리에 어떤 진리를 가르쳐 주고 있는지 몇 가지만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 첫째로, 말은 누구나 실수를 한다는 것입니다.
본문 2절을 보시면,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라고 말합니다. 온전하다는 표현은 흠잡을데가 없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반대로 생각하면, 우리 모두는 말에 실수가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다른사람이 자기에게 실수를 하면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 며 흥분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실수를 하면 "사람이 그럴 수도 있지 뭐?" 하며 넘어가려고 합니다. 말에 실수가 있는 사람으로 태어나 말을 실수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지체들이 혹시 실수하는 말에 너무 과민 반응을 보이지 않기를 바랍니다. 뿐만 아니라, 혹시 말 실수를 한다면, 실수하는 말을 고쳐서 더 이상 말에 실수가 없도록 노력도 해야 되는 것입니다.
- 두번째는, 말에는 힘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가공할 만한 말의 힘에 대해서 야고보 기자는 두가지 비유를 들어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먼저는, 혀는 배를 움직이는 키와 같다는 것입니다. 요즘은 배의 운전석이 앞에 있지만, 야고보가 살았던 당시의 배의 키는 배의 뒤쪽에 붙어 있어 방향을 전환할 수 있었습니다. 이 배의 키에 의해서 배가 안전하게 목적지에 도착하게 되죠. 파도가 아무리 거세게 쳐도, 키만 잘 붙잡고 있으면, 안전하듯이, 우리 신앙생활에 우리가 하는 말을 조심스럽게 붙잡고 있는다면, 안전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다음 비유는, 혀는 큰 산을 태우는 작은 불씨와 같다고 말합니다. 제 작년인가요. 캘리포니아에 크게 산불이 났는데, 사망이 12명 부상 100명 주택이 2300채가 소실되었습니다. 원인은 한 소년의 불장난때문인 것이로 알려졌습니다. 성냥개비 하나의 위력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하는 말이 엄청난 위력이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힘이 있는 우리의 말 한마디 어떻게 다루시겠습니까?
이스라엘은 5살부터 시작하는 유치원 토라교육 중 말에 대해서 이렇게 가르친다고 합니다. 7가지인데,
- 항상 연장자에게 발언권을 준다. 2. 다른 사람의 이야기 도중에 끼어들지 않는다. 3. 말하기 전에 먼저 생각한다. 4. 당황하면서 서둘러 대답하지 않는다. 5. 질문과 대답을 간결하게 한다. 6. 처음 할 이야기와 나중에 할 이야기를 구별하여 한다. 7. 잘 알지 못하고 말했거나 잘 못 말한 것은 솔직하게 인정한다.
- 세번째는, 일구이언 하지 말하야 한다는것입니다.
10절을 보시면, "한 입으로 찬송과 저주가 나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11절에도 "샘이 한 구멍으로 어찌 단물과 쓴물을 내겠느뇨" "무화가 나무가 감람열매를 포도나무가 무화과를 맺겠느뇨" "이와 같이 단물이 짠물을 내지 못하느니라" 여기서 야고보기자는 불변의진리를 열거하면서, 단물이 짠물을 내서는 안됩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못한다" 고 딱 잘라 말합니다. 우리 크리스찬들이 한입으로 찬송과 저주의 말을 해서는 안됩니다. 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한입으로 찬송만 할 수 있습니다. 저주의 말을 못합니다. 이렇게 단호하게 말하는 것입니다.
신학교때 히브리어를 배울 때, 히브리어 교수님이, 히브리말은 부정명령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사람을 죽이지 마라" 이말이 없다는 거예요. 그대신 "사람을 죽일 수 없다" 라는 말이 있다는 거예요. 이 히브리 말에 하나님의 속성이 발견되는 것 같습니다.
이처럼 오늘 야고보 기자도 '일구이언 하지 마십시요" 라고 말하지 않고, 그리스도인들을 '일구 이언을 할 수 없습니다' 라고 단호한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생활에서 언어생활만큼 중요한 것은 없는 것 같습니다. 말이란 그사람의 인격이라고 하죠. 성경은 인격뿐 아니라, 말에는 힘이 있고 권세가 있어, 6절에 '혀는 불 같은 것인데, 불 같은 혀를 잘 사용해야지 잘 못 사용하면, 자신의 인생을 불살라 버릴 수 있으며, 그 불살라진 불은 지옥불과 같은 것' 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꿈의 교회 성도님들은, 언어생활에서 좋은말, 신앙에 도움이 되는말, 다른 사람을 세워주는 말, 격려가 되는 말을 많이 하시길 바랍니다. 또 말을 할 때 한입가지고 두말하는 하는 것이 아니라, 일관성 있게 같은말을 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요. 한번 내 뱉은 말은 주어 담을 수 없어요. 그러니 말 을 할 때 신중하게 결정하고 은혜가 되는 말을 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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