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 없는 자가 돌로 치라
요 8장 1-11
오늘 본문은 여러분들이 너무나 잘 아는 '간음하다 잡힌 여인' 의 이야기 입니다. 저는 이 본문을 읽을 때 늘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땅에 무엇이라 쓰셨길래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다 뒷걸음쳐 도망갔냐는 것입니다. 천국에가면 예수님께 여쭤 봐야겠습니다. 또 하나 궁금한 것은, 간음죄는 혼자서는 질 수 없는 죄의 특성상, 남자는 어디 갔냐는 거예요. (편의상 앞으로 이 남자를 '간음자' 의 첫자를 따서 K모씨라고 부르겠습니다.) 레위기 20장 10절보시면, 간음하는 자는 남녀 함께 죽이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K 모씨는 어디 가고 여자만 끌려와서 이렇게 험한 꼴을 보고 있냐는 거예요. 그 K 모씨는, 혹시 발이 빨라 도망 쳤거나, 아니면, 사회적으로 이름이 있는 분이라서, 언론에서 숨기고 있거나, 성경은 말하고 있지 않으니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6절 보시면,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이 달아난 K 모씨와 한 통속이었는지, 그 달아난 K 모씨를 찾아 고소하려고 하지 않고, 오히려 예수님을 고소하려고 예수님에게서 빈틈을 찾으려고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당시에 제일 큰 죄의 첫째가 우상숭배요, 둘째는 살인이요, 셋째는 성범죄였습니다. 이런 세 가지 죄를 범한 것이 분명하게 드러나기만 하면 무조건 사형이었습니다. 그러니 오늘 이 여인은 현장에서 잡혔으니 전혀 변명의 여지가 없고 돌에 맞아 죽어야 하는 처지에 놓인 것입니다.
그리고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여자를 데리고 와서는 예수님을 시험하기 시작했습니다. "율법에 의하면, 이런 여자는 돌로 쳐죽이라고 했는데 예수여 당신은 어떻게 하면 좋겠소" 하고 묻는 것입니다. 이때 예수님은 "법대로 하시오" 하면 끝날 문제였습니다. 아니면, "하나님이 쳐죽이라고 했으면 쳐죽이시오" 하면 끝나는데, 만약 이렇게 대답을 할 때는 예수님이 매우 정치적으로 난처한 입장에 놓여 버립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에 유대나라가 로마나라에 식민지였습니다.
그러므로 식민지 나라에는 생사를 결정할 수 있는 사형권,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권한은 절대 부여받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나라도 과거에 그랬던 적이 있죠. 죽이고 살리는 것은 일본 정부의 명령대로, 일본 법대로 해야지 한국
사람이 함부로 죽이고 살리는 재판을 하지 못합니다. 재판권을 완전히 빼앗긴 것입니다. 유대나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설령 잘못해서 타인을 죽여도 꼭 로마의 허락을 받고 죽여야 합니다. 그런데 만약에 예수님이 "율법대로 이런 사람은 죽여야 합니다" 말하면 로마의 법을 깨는 모순에 빠지고
정치적으로 말려들게 됩니다. 이것을 노리고 지금 질문을 던지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예수님께서 죽이면 안됩니다. 라고 하면, 이런 간음자를 죽여야 한다는 율법을 어기는 것이라, 종교법에도 어긋나게 되는 것입니다.
종교법이냐? 아니며, 국가법이냐? 를 묻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두 개는 답이 없는 것입니다. 두 대답 모두 예수님을 올무에 걸리게 만들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음흉한 마음을 꿰뚫어 보시고는 어떻게 하셨나요? 아무
말씀 안 하시고 가만히 땅에 앉아서 글을 쓰셨습니다. 그리고는 이 두 대답을 충족 시킬 수 있는 대답을 하셨습니다. 죄 없는 자가 돌로 치라. 지혜의 신에 감동된 예수님만이 하실 수 있는 답변입니다.
신학자들은 이 때 예수님의 행동은 참으로 지혜로운 행동이었다고 말합니다.
지금 사람들은 오른손에 돌 하나씩을 들고 있습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집단
행동을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에서는 자칫 저들의 성질을 건드리면, 폭발하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땅에 글을 쓰신 것입니다. 무엇이라 썼는지 알지 못하지만 예수님의 글을 읽고, 한 사람씩 한 사람씩 돌아가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7절에 "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말씀 하셨습니다. 당시 글을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서도 말씀으로 하신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아무리 더럽고 부패해도 100% 악한 사람은 없죠. 1-2%의 양심은 남아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죄 없는 사람이 돌로 쳐야 하니까, 양심의 가책을 받아 어른들로부터 시작해서 아이들까지 뒤로 빼서 전부 도망갔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과 여자가 남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이 사건 속에서 발견 되어지는 진리들이 무엇이 있는지 살펴 보도
록 하겠습니다.
- 첫째로, 모든 사람은 다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이 현장에서 잡힌 이 여인은 오늘 이 시대를 살고 있는 모든 사람이요, 저와 여러분의 모습입니다.
우리를 꿰뚫어 보시는 주님의 눈에는 현장에서 실제로 나쁜 짓을 하다가 잡힌 사람이나 날마다 나쁜 생각을 하는 사람이나 마음이 더러워진 것은 똑같고, 추악한 것은 똑같고, 어떤 면으로는 행동으로 범죄하지 않고 마음으로 범죄 하는 사람이 더 악취가 날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누가 돌을 들고 던질 수 있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 이렇게 고백해야 합니다.
"우리가 다 똑같은 죄인입니다." 우리 모두가 다 하나님 앞에 돌멩이가 날아올까봐 오들오들 떨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제가 자주 말씀드리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고 무시하는 것 자체가 죄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내가 하나님이 되어서 나를 위하여 짧은 70,80년을 멋대로 살아버리는 이것만큼 무서운 죄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성경을 통해서, 교회를 통해서 너는 그렇게 살다 가면 망한다 가르쳐 주는데도 픽하고 웃어버리고는 무시했던 이 뻔뻔스러운 태도가 하나님 앞에 가면 무서운 죄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암을 안고 살 때 암이 완전히 퍼지기 전까지는 건강한 것처럼 착각하고 삽니다. 어떤 암은 그 사람 몸에서 5년을 자라야 밖으로 표가 난다고 합니다. 그러면 밖으로 표가 나기까지 3-4년은 끄떡 안하고 건강한 것처럼 허허하고 웃고 자신만만하게 산다는 것이죠.
우리가 하나님 앞에 죄인이라는 것을 알지 못할 때에는 허풍도 떨 수 있고, 자기보다 못한 사람을 멸시하며 살 수도 있었지만 그러나 내가 죄인이라는 말을 들은 후부터 평안한 생활은 못합니다. 이 죄의 문제가 해결되기 전에는 하루로 편할 날이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사는 사람들이 세상에서 제일 강심장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속에서 암이 자라는 것을 안 다음에도 치료받지 않고 사는 사람과도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사건 속에서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죄인인 것을 주님을 "죄없는 자가 돌로 치라"라는 말로 대신하고 있는 것입니다.
- 두번째는, 죄에 대해서 오해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현대인은 굉장히 약은 사람들입니다. 머리가 대단히 좋습니다. 그래서 죄의
문제를 가급적이면 최소화시켜 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죄의 문제를 표현부터 바꿔 볼려고 노력들을 많이 합니다.
예를 들어서 약점이라는 말로 바꾼다든지 아니면 정신적인 불안증세 등으로
바꾼다든지. 그 표현을 바꾸어 가급적이면 죄라는 말을 듣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죄가 겉으로 드러날 때, 내가 쉽게 그 책임을 지지 않으
려고, 제 3자에게다 떠 맡기려 한다는 것입니다.
6절 보십시요. 자신들이 더한 죄임임에도 불구하고, 죄 없으신 예수님을 고소하고 있는 바리새인들을 보십시요. 사람이 이렇게 악할 수도 있습니다.
현대에 와서는 이 죄에 대하여 자신의 탓으로 돌리지 않고 어떻게든지 남의 탓으로, 아니면 다른 것에 의한 원인으로 돌리려고 하는 노력이 활발하게 일어납니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남을 미워하고 그야말로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다면, 뇌에 종양이 있어서 그러는지도 모르니까 병원에 가서 세밀하게 뇌파 검사를 받아보라고 한다든지 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정말 병원에 가서 뇌파 검사를 받았더니 미국에서 말입니다. 사랑 해야하고 남을 관용해야 하는 뇌세포를 종양이 꽉 누르고 있어서 사랑하고 싶어도 사랑할 수 없었다는 어떤 의학적인 발표가 난 예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종양을 떼어 냈더니 그 다음부터 너그러워지고 좋아지더라 그러니까 성경에서 말하는 죄! 죄! 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 나빠서가 아니라 신체 안에 어떤 결함이 있어서 그러니까 그 결함을 찾아내면 된다 하는 식으로 죄로부터
빠져나갑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이 사람이 자란 배경을 조사해보자.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느냐, 아니면 유복자냐, 아니면 형제들이 하나도 없었느냐, 아니면 고아원에서 자랐느냐, 아니면 아주 어렸을 때에 어떤 성적인 타격을 받았느냐 한번 조사를 해보자. 거기에서 피해가 있었기 때문에 여기에서 이와 같은 나쁜 사람이 되었을지도 모른다해서 과거를 추적을 합니다.
그래서 무엇 하나를 발견하면 "당신이 이와 같이 나쁜 짓을 한 것은 당신이 악해서가 아니고 당신이 자란 과거가 이래서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당신 너무 과히 염려하지 말고 모든 책임은 과거에 있으니까 거기에다 책임을 떠맡기고 마음의 평안을 얻으십시오." 이렇게 말합니다. 이게 오늘 현대인들이 죄를 처리하는 방법입니다.
미국에서 어떤 한국인 박사님은. 상담 클리닉을 만들어 놓고는 부부가 너무 싸우니까 "언제 당신이 오시고, 언제 남편은 오시오." 스케쥴을 짭니다. 그래서 스케쥴이 짜인 대로 남편이 오기도 하고 부인이 오기도 합니다.
"당신들이 이렇게 싸우는 이유는 마음 속에 스트레스가 쌓여 가지고 그것을 풀 길이 없기 때문에 지금까지 싸우는 것이요. 그러니까 내가 풀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줄 테니까 그대로 하시요."
그래 가지고 옆의 빈방으로 데리고 가서는 의자에 마네킹 하나 앉혀 놓습니다. "자, 지금 이것이 당신 남편이오. 지금부터 내가 야구 방망이 하나 줄 테니 실컷 두들겨 패시오."
자, 이런 식으로 해서 그 박사님은 굉장히 효력을 많이 보았다고 합니다.
실컷 두들깁니다. 그리고 나와서는 "아휴 - 정말 이제 후련합니다." "그러면 다음 시간에 또 오십시오." 이렇게 해서 모든 죄의 원인이 제 3의 어떤 책임져야할 대상으로 미뤄 버리고 자신은 거기서부터 벗어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현대인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분명히 아십시오.. 하나님은 절대로 그런 방법으로 우리의 죄를
다루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모든 죄의 원인
이 우리의 부패하고 썩은 마음에 있다고 말씀합니다.
세상에서는 심리학으로, 정신분석학으로 죄를 다루지만, 우리 하나님은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하시고, 삼일 만에 살아나신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그 사람의 죄를 묻지 않고 무조건 용서하는 방법." 으로 해결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죄를 다루시는 방법입니다.
오늘 예수님도 하나님과 같은 방법으로 간음한 여인을 용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 세번째는, 11절에 정죄하지 않는 예수님을 발견합니다.
구약시대 때에는 죄를 지으면, 율법이 정죄를 하였습니다. 지금은 우리 안에 양심의 법이 정죄를 합니다. 죄를 짓는 사람은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자신이 지금 죄를 짓고 있다는 것을 양심을 통해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는 얼굴로 나타나고, 어떤 때는 심장이 떨리기도 하고, 어떤 때는 죄를 지으면, 식을 땀이 나기도 하죠.
4복음서 보시면, 예수님께서는 죄를 미워하시지만 죄 지은 사람에 대하여 정죄하는 모습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죄 짓고 마음 아파하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용서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정죄하는 분이 아닙니다. 그러니 우리도 남을 정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용서와 이해만이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간음한 여자를 앞에 두고 "너 어디서 그랬냐? 상대가 도대체 누구야?" 예수님께서 그런 질문하시지 않았어요. 그런 질문하지 않아도 주님은 다 알고 계셔요. 내 생각의 토막 토막까지도 다 알고 계시는 주님이시죠.
그러기에 우리는 무조건 예수님 붙드는 것입니다. "예수님 나를 좀 살려 주세요." 나 같은 죄인이 용서받는 길은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하고 주님만 붙들면 하나님께서는 과거를 묻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여자보고 뭐라 하셨습니까? "나도 너를 죄인 취급하지 않겠다."
마찬가지로 지금도 예수님은 우리를 향하여 "나도 너를 죄인 취급하지 않는다." 하시는 것입니다.
과거에 어떤 죄를 지은 것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회개하기만 하면 끝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가서 용서받지 못할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지금은 세상을 떠나셨습니다마는 가나안 농군학교 김용기 장로님은 새벽마다 산에 올라가 기도하기를 "김일성이 회개하고 장로 되게 하시고, 김정일이 목사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이런 못된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우리 예수님이 우리를 위하여 지신 십자가는 김일성이 아니라 김정일이라도 예수님만 믿으면 모든 문제가 다 해결 받고 구원받게 하십니다.
11절 보시면, 이렇게 죄의 문제를 해결 받은 다음에,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예수님께서 한마디로 격려하십니다.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이런 거룩한 삶이 성도가 걸어가야 길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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