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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의 창고/ 비전나리의 설교

2010년 9월 26일 주일예배 : 협력하여 - 빌 2장 25-30

by Peartree 2012. 12. 24.

협력하여

빌립보서 2:25-30

 

한 소년이 하늘 높이 연을 날리고 있었습니다. 꼬리를 길게 늘인 연이 바람을 타고 이리저리 춤을 추며 하늘을 날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그것을 보면서 환호를 하자 그 연이 뽐내면서 자랑을 합니다. 이게 다 내 재주지! 그러자 그 연을 붙잡은 연 끈이 말을 합니다. 야! 내가 너를 붙잡고 있으니까 그렇지 내가 너를 놔봐라 네가 날수 있냐. 그 말을 들은 연 꼬리가 말을 합니다. 내가 균형을 잡아 주니까 네가 날 수 있지? 내가 없어 봐라 네가 날수있나. 지나가던 바람이 듣고 한 마디를 합니다. 야! 내가 적당히 바람을 불어주니까 네가 날지, 바람 안 불어봐라 연이 나나. 그 말을 듣고 있던 소년이 자기 손에 잡고 있던 연 끈을 조용히 손에서 놔 버렸습니다. 춤을 추면서 하늘을 힘차게 하늘을 날던 연은 흐느적 거리면서 힘없이 땅에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세상일을 살펴보면, 어느 것 하나 한 사람의 손으로 되어지는 일을

없습니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고 또 우리가 느낄 수 없어 그렇지, 세상의 모든 일들은 여러 손들의 협력으로 이루어 집니다.

 

오늘 여러분들이 자동차를 타고 예배에 오셨는데, 자동차를 만드신 분들이

있고, 또 자동차만 있으면 움직이지 않죠, 개스를 만든 손길 들이 있고, 이 건물을 지은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여러분들이 입고 있는 옷이든지, 먹는 음식이든지 어느 것 하나 나 혼자 힘으로 된 것이 없습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가 알지 못하지만 협력한 손들에 의해서 우리가 지금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마찬 가지로 우리 하나님은 어느 한 사람을 통해서 일 하시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지만 많은 손들을 모으셔서 하나님의 위대한 일들을 이루어 가십니다. 성경은 이런 사람들은 '동역자' 들 이라고 말합니다. 사도 바울은 서신서를 쓸 때 이 동역자들을 꼭 언급했습니다. 빌립보서에서는 사도 바울의 동역자 두 명이 나옵니다. 디모데와 에바브로디도 입니다. 오늘 이 두명중에 에바브로디도라는 사람에 대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에바브로디도라는 사람은 빌립보서에만 나오는 인물입니다. 성경다른 곳에는 이분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곳이 없습니다. 이 분에 출신, 배경 전혀 모릅니다. 심지어 집사였는지, 감독이었는지, 직책도 알지 못합니다. 빌립보서 4장 18절 보시면,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의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렇게 표현한 것으로 봐서 아마 빌립보 교회가 에바브로디도 편에 감옥에 있는 바울에게 심부름을 보낸 것 같습니다. 심부름에 헌금이나 선물 같은 것을 보낸 것 같고, 이것 밖에는 이 사람을 알 길이 없습니다.

 

한가지 추정 할 수 있는 것은, 그의 이름은 알고 있으니까, 이름을 통해 추측할

수 있는 것은, 썩 좋은 이름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에바브로디도란 이름

은 희랍 신화에 나오는 아프로디테라는 여신의 이름입니다. 이름의 뜻

은 '아프로디테의 사랑을 받은자' 란 뜻입니다.

 

제가 한국에는 어떤 신들이 있는지 찾아보니까, 신들이 100개가 넘습니다.

별의 별 신이 다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삼신 (삼신할미, 출산에 관한 신), 지신

(지신 밟기, 집터 귀신), 칠성신 (칠성당) 등등,

 

이 에바브로디도의 이름의 뜻을 우리 식으로 바꾸면,삼신할미의 사랑을 받은자

이정도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기독교적으로 볼때 썩 좋은 이름이 아니었습

니다. 당시에 많은 사람들이 예수 믿고 안좋은 이름들을 바꾸었습니다.

바울도사울에서 바울로 바꾸고, 베드로도 바꾸었습니다. 하지만 이 사람은

충분히 이름이 좋지 않기 때문에 바꿀만 한데도 바꾸지 않았습니다. 왜 바꾸지

않았을까요? 잘은 모르지만 아마도 이름보다는 삶에 더 무게를 둔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이 사람은 이름은 좋지 않고, 잘 알려지지 않은 무명이었지만, 이름보

다 훨씬 나은 삶을 산 사람이었습니다.

29절 보시면, 바울은 이렇게 말하죠 "이와 같은 자들을 존귀히 여기라" 빌립보

교인들로부터 존경을 받기에 충분했던 사람 에바브로디도. 자신의 이름보다 더

훌륭한 삶을 산 사람.

 

여기에 앉아 있는 사람은 최소한 에바브로디도라는 이름보다 훨씬 좋은 이름들

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여러분들은 에바브로디도 보다 훨씬 훌륭한 크리

천들이 되셔야 합니다. 그렇게 되시기를 주의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이름

값을 하고 삽시다)

 

그러면 어떤 면에서 에바브로디도가 훌륭한 사람이었습니까?

25절 보시면, 에바브로디도의 프로필을 바울은 한절에 다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는 나의 형제요, 함께 군사 된 자요, 돕는자"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바울의 영적 아들이 디모데 였다면, 영적인 형제는 이 에바브

라디도였다는 것입니다.

또 함께 군사된자라는 표현은 복음을 전파할 때 함께 위험에 처하기도 하며,

함께 싸우기도 했던 영적 전쟁에서 전우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의 쓸 것을 돕는자. 필요한 것들을 공급해주는 조력자였다는

것입니다.

이 모든 말을 한 단어로 요약한다면 '동역자' 라는 것입니다. 이 둘의 관계는

수직 관계도 아니고, 주종관계도 아니었습니다. 이들은 동역자 관계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면에서 그들은 훌륭한 동역자 관계였는지 본문에서 찾아서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1. 첫째로, 에바브로디도 그는 남들을 깊이 배려하는 사람이었습니다

 

26절 보시면, 에바브로디도가 빌립보 교인들을 간절히 사모하고 있습니다. 어느정도로 에바브로디도가 빌립보 교인들은 사랑하냐면, 에바브로디도가 죽을병이 들었다는 소식을 빌립보 교인들이 듣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소식 때문에 걱정하고 있을 성도들 때문에 걱정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에바브로디도는 자신의 죽을병보다도 자기 때문에 염려하는 빌립보 교인들이 더 걱정되었던 것입니다.

요즘 미국의 미네소타 주에 물난리가 나서 집을 잃은 사람들이 많은데, 예를 들면, 집 전체를 잃어버린 사람이 조금 피해본 사람을 오히려 걱정해 주고

있는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당장 내일 죽을지 모래 죽을지 모르는 위급한 중병에 걸린 사람이 남 걱정하고 있었던 것이죠.

이런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시는데, 27절 보시면, "저가 병들어 죽게 되었으나 하나님이 저를 긍휼히 여기셨고 저뿐 아니라 또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내 근심 위에 근심을 면하게 하셨느니라."저가 병에 결려 죽을 지경이었는데,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풀어 그를 살려주셨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사랑한 다는 것은 곧 나를 사랑하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하나님은 그냥 넘어가지 않습니다. 아름다운 마음은 분명히 하나님께서 기억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선한 것으로 갚아 주신다는 것이죠.

  1. 두번째로, 바울은 동역자를 아끼는 사람이었습니다.


28절 보시면, 사도 바울은 에바브로디도가 죽을 병에 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걱정하고 있는 빌립보 교인들을 안심시키려고, 그에게 빌립보서를 가지고 급히 빌립보 교회에 가게 했습니다.

지금 같이 통신이 발달했으면, 전화 한통화만 하면 끝날일인데, 당시는 전화가 없는 시대니까, 누군가 편지를 들고 가야만 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에바브라디도를 보낸 것입니다.

또 사도바울이 에바브라디도를 직접 보낸 이유는 또 있습니다. 그에게 건강을 회복할 시간을 주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바울의 입장에서는 병 고침을 받은

에바브로디도가 자기 곁에 계속 머물러 있어서 자기를 돕는 것이 좋았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사도바울은 자신의 이익보다는 동역자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보내준 것입니다.

왜냐하면, 신학자들이 말하길 에바브라디도가 죽을 병에 걸린 이유는, 30절의 말씀대로 '죽기에 이르러도 자기 목숨을 돌아 보지 아니하고 바울을 섬기다가 얻은 병' 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제는 에바브라디도를 보내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바울이 지금 로마의 감옥에서 사형수로 있습니다. 누군가 바울 곁에서 마지막 죽음을 지켜줄 사람도 필요했고, 돌보아 줄 사람이 간절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바울은 에바브라디도를 다시 돌려 보냅니다. 그러면서 28절에 저를 보내는 것이 '너희에게 기쁨이 되기' 때문에 그리고 나 역시 저를 보내는 것이 안심이다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자기에게 손해가 있더라도 손을 놓을 수 있다는 것 얼마나 귀한 마음인지 모릅니다.

 

  1. 세번째는, 이들은 서로를 존귀하게 여겼다는 것입니다.

에바브라디도가 바울을 존귀하게 여긴 것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자기 목숨을 돌아보지 아니 하면서까지 희생한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바울도 에바브라디도를 존귀하게 여기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29절에 보시면, "이러므로 너희가 주 안에서 모든 기쁨으로 저를 영접하고

또 이와 같은 자들을 존귀히 여기라"라고 당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존귀히 여기라"의 헬라어는 '명예롭게 여기다', '훌륭하게 여기다', '고귀하게 여기다', '높이 존중하다'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지금 동역자인 에바브로디도가 빌립보 교인들에게 영접을 받고, 훌륭한 인물로 높이 존경받아야 할 이유가 뭡니까? 30절에 바울 사도는 "저가 그리스도의 일을 위하여 죽기에 이르러도 자기 목숨을 돌아보지 아니한 것은 나를 섬기는 너희의 일에 부족함을 채우려 함이니라"라고 설명합니다.

이게 무슨 소리냐면, 사도바울이 로마 감옥에 있을 때, 빌립보 교회 성도들이 바울의 필요한 것을 많이 도와 주었습니다. 그래서 헌금을 거두어 에바브라디도 편으로 보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에게 정작 필요한 것은 감옥에서

시중을 들어줄 사람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이 일을 에바드라디도가 죽을 병에 걸리면서 까지 섬겼다는 것입니다. "나를 섬기는 너희의 일이 부족함을" 이 에바브라디도 채웠다는 것입니다. 너희가 하지 못한 일을 이가 죽음 직전까지 했으므로 에바브라디도가 너희에게 갈 때 그를 '존귀하게 여겨라' 라는 것입니다.

오늘은 바울의 동역자 에바브라디도를 살펴 보았습니다. 미국 필하모니 오케스트라 지휘자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고 합니다. 오케스트라의 각자 맡은 파트 중에 어느 파트가 최고로 힘듭니까? 그때 그는 서슴없이 제2 바이얼린이 최고 힘들다고 했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제1바이얼린 연주자가 되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제2바이얼린 연주자 같은 사람도 꼭 필요한데, 제 2 바이얼린 하기를 꺼려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름다운 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누군가는 이 파트를 해야하는 것이지요

우리 꿈의교회도 목사 혼자서 할 수 없습니다. 능력 많았던 바울도 동역자가 필요했습니다. 저에게 여러분이 동역자고, 여러분에겐 제가 동역자가 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함께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서로를 배려하며, 서로를 아끼며, 서로를 존경하는 풍토가 이 꿈의 교회에 충만하게 넘쳐나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