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설교자의 창고/ 비전나리의 설교

주일예배 설교 : 복음에 합당한 삶 - 빌 1장 27-30

by Peartree 2012. 12. 24.

복음에 합당한 삶

빌 1:27-30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아닌, 경쟁심입니다. 스포츠 같은 것을 말하는 것이죠.

2002년 한일 월드컵 예선전에서 우리나라 팀이 일본팀과 싸워서 역전승을 거둔 적이 있었습니다. 아마 그때 우리 나라 사람 어느 누구를 붙들고 물어도 대답은 하나였을 것입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일본만큼은 이겨야 한다는 것이죠. 그만큼 우리 나라 사람의 정서에는 일본에 대한 좋지 않은 감정, 미워하는 감정이 있어서 경쟁에서 반드시 이겨야 했습니다. 그래서 그 때에는 붉은색 티셔스만 입고 있으면, 모든 상황을 초월해서 한국 사람은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교회도 칼라 하나를 정해서, 주일날 교회에 오실 때 그 칼라의 옷만 입고 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들이 읽은 본문 말씀은 사도 바울이 빌립보 교회에게 보내는 사랑의 편지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목자와 성도 사이였기는 하지만, 같은 민족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유대인이라면 빌립보 교인들은 지금의 그리스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하나로 강하게 연합되어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서로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었기 때문입니다.

복음 안에서 있으면 유대인과 헬라인의 구분이 없어집니다. 복음 안에서 빈부의 격차도 없어지고, 학력도 없어지고, 출신도 없어집니다. 오직 그리스도인들만 있을 뿐이죠. 즉, 하나님의 백성들만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백성답게, 천국의 시민답게 살 수 있는지, 오늘 말씀에서 몇가지 찾아 보도록 하겠습니다.

  1. 첫째는, 복음을 위하여 흔들리지 않고 굳게 서있는 삶을 말합니다.

본문 27절 보시면, "오직 너희는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이는 내가 너희를 가보나 떠나 있으나 너희가 일심으로 서서" 여기 서 있는 이란 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선 바울은, 복음에 합당한 삶으로 복음을 위하여 흔들리지 않고 굳게 서서 사는 삶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지금 감옥에 갇혀 있는 상태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가거나, 떠나 있으나, 내가 여기서 나가든지 아니면 감옥에서 죽거나 하더라도 너희는 일심으로, 한마음으로 굳게 서 있으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NIV 성경이 더 잘 번역 되있습니다. 한국어는 그냥 '서서'라고 번역되었지만, 영어 성경은 Stand firm in one spirit. 한 마음으로 흔들리지 않고 굳굳하게 서 있는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 단어는 전쟁용어 입니다. 치열한 전쟁의 현장에서 맡은 위치를 떠나지 않고 맡은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초소를 굳게 지키는 확고 부동한 그런 자세를 말하는 것입니다.

바울 뿐만 아니라, 초대 교회 때 사도들도 서신을 보낼 때 이 말을 자주 사용했습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에 편지하면서, 살후 2:15절에 "이러므로 형제들아 굳게 서서 말로나 우리 편지로 가르침을 받은 유전을 지키라" 골로새 교회에도 골1:23 "만일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 터위에 굳게 서서 너희 들은바 복음에 소망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면" 고린도교회에도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고 더욱 주의 일에 힘쓰는 자들이 되라" 복음을 위해서 흔들리지 않고 굳게 서서 사는 그런 삶을 말씀했던 것입니다.

지금 이 시대를 사는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를 흔드는 많은 세상적인 일들, 어려운 일들이 있습니다. 특히 복음을 위해서 살려고 할 때, 수 많은 도전들이 우리를 흔들어 놓습니다. 건강이나, 직장의 어려운 도전이나, 죄의 유혹이나, 사회적 시험이나, 영적인 도전들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합당한 삶을 산다는 것은 이런 다양한 종류의 수 많은 도전 앞에서 굳게 서는 것입니다.

보통 사람들이 굳게 서지 못하고 넘어지는 경우는, 상처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교인들이 이 것을 못 견뎌 하는것 같습니다. 그런데 상처는 누구나 받는 것입니다. 나만 받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받아요. 다만 그 상처를 받으면서 무너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여전히 굳굳하게, 든든하게 서서 사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어떤분은 10년전 20년전 받았던 상처를 지금까지 아프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20년전 시어머니 한테 받았던 상처, 어렸을 적 부모님에게 받았던 상처, 물론 아픈 상처였습니다. 그러나 그 분들 다 돌아가셨습니다. 이제 지나간 추억으로 기억하고 있는 것이지, 마음에 상처로 남아 있으면 안됩니다. 이제 우리가 복음에 합당한 생활을 하려면, 그런 상처는 다 앨범속에 넣어 두시고, 믿음에 굳게 서 있어야 합니다.

  1. 두번째로, 서로 한 마음 한뜻으로 협력하도록 격려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27절에 보시면, "내가 너희를 가보나 떠나 있으나 일심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 하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 한마음, 한뜻, 협력 이 말들은 다 같은 말을 세번 반복한 것입니다. 연합하라는 것이죠.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사는 것은 연합해서 사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혼자서는 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인 것입니다.

 

그러면 왜 우리가 연합해야 합니까?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는, 사단과 싸워야 하기 때문에 연합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사탄은 복음을 방해하는 강한 놈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사단이 얼마나 강합니까? 그는 전능자는 아니지만, 욥기서를 읽어 보시면, 천재 지변을 일으킬 수도 있고, 사람을 죽일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못하도록 막고 있을 뿐이죠.

그리고 이 사탄은 하나입니다. 언제 단수로 쓰입니다. 그러나 그 밑에 사탄의 졸개들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성경에 보시면, 악한 영들, (Evil spirits) 항상 복수로 쓰입니다. 마가복음 5장 보시면, 군대 귀신 들렸던 사람의 이야기 나옵니다. 거기에 보면, 한 사람에게 귀신이 2000 마리나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이렇게 군대 단위로, 몇 천명씩 연합해서 움직이는 악한 영들이 온 세상을 덮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복음을 방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혼자서는 힘들죠. 그러므로 우리가 이 영적 전투의 현장에서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연합해야 되는 것입니다.

 

또 우리가 연합해야 되는 두번째 이유는, 우리가 연합할 때 힘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전도서 4장 12절에 그 지혜로운 솔로몬이 이 성도의 연합에 대해 정확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하나니, 삼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두세사람이 힘을 합할 때, 능히 이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실험한 데이터인데, 말 하나가 2톤 무게를 끌 수 있는데, 말 두 마리를 묶어 놓게 끌게 하면, 4톤을 끄는 것이 아니라 23톤을 끌 수 있다고 합니다. 이것을 가지고 씨너지 라고 합니다. 1+1=2라 아니고 4도 될 수 있고, 8도 될 수 있는 연합에서 나오는 힘입니다.

 

동물의 왕국 보시면, 얼룩말이 사자에게 잡혀먹는데, 새끼 얼룩말 이 있거나 위험할 때에는 머리는 안쪽으로 하고, 다리는 바깥쪽으로 하고 동그랗게 원을 만듭니다. 그리고 사자가 오면 발로 차냅니다. 혼자 있을 때는 잡아 먹히지만 빙 둘러서 있으면 오히려 사자가 얻어 맞습니다. 이것이 연합의 힘입니다. 이것이 바로 초대 교회의 능력이었습니다. 초대교회는 사랑으로 하나가 되었습니다. 복음으로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로마 제국의 그 무서운 군사력이 그들을 짓밟지 못했습니다.

 

1세기 역사학자였던, 수에토니우스 라고 하는 사람, 크리스찬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인들을 보면서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저들은 반드시 세상을 변화 시킬 것이다. 왜냐하면, 세상에 없는 사랑으로 하나가 되었기 때문이다"

세상이 할 수 없는 사랑. 세상에서는 돈으로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이권으로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볼 수 없는 사랑으로 하나됨의 능력 앞에는 그 어떤 세력도 우리를 감당치 못하게 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사랑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아주 재미있게 풀이했습니다.

*제품명 - 사랑

*용법 및 용량 - 상처받지 않을 만큼 사랑하고, 부담주지 않을 만큼 사랑하며, 헤어져도 미워지지 않을 만큼 사랑해야 한다.

*효능 - 세상이 무조건 아름다워 보이고 사람들이 행복해 보인다. 입에서 콧노래가 떠나지 않고 끊임없이 기대감이 생긴다. 열등감이 사라지고 마음이 자유롭다. 자신이 살아있음에 대하여 주님께 감사하게 된다.

*보관방법 - 마음속 깊은 곳에 간직해야 한다. 변질되지 않도록 상호간에 늘 끊임없는 노력과 관심이 필요하다.

*유효기간 -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사용 시 주의사항 - 〈상대를 먼저 늘 배려할 것, 끝까지 믿을 것, 우선 참을 것, 슬픔도 기쁨도 함께 나눌 것, 화내지 말 것, 성급해 하지 말 것,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이고, 있는 그대로 상대를 받아들여야 한다.〉

*부작용 -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절망에 빠질 위험이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경고 - 집착과 사랑, 이 둘은 서로 비슷하니, 반드시 꼼꼼하게 살펴봐야 한다.

*권장소비자 가격 - 돈으로 헤아릴 수 없다. 오직 희생으로만 구입이 가능하다.

*제조원 - 하늘나라 주식회사

*제조 및 공급자 - 하나님

 

이 글의 반대는 무엇이겠습니까? 제품명 '미움' 이렇게 시작해서 쭉 서내려 갈 것이고, 마지막으로 제조 및 공급자. 누구입니까? 사탄, 악한영들.

그래서 우리가 사랑으로 하나가 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인 증거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일마다 교회에 모여서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입니다. 집에서 편하게 앉아서 예배하는 것보다, 힘들어도, 함께 모이는 이유가 이것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가 되어서 서로 기도해주고, 격려해 주고, 하나로 연합되어 복음에 합당한 생활을 하기 위해서 그런 것입니다.

 

  1. 세번째는, 복음에 합당한 생활은 28절에 "대적하는 자를 두려워 하지 않는 것입니다.

 

바울은 지금 대적하는 자들로 인하여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전혀 두려워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빌립보 교회를 향하여도 두려워 하지 말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정황으로 봐서, 빌립보 교회는 열심으로 복음을 전하는 교회란 걸 알 수 있습니다. 사단은요, 복음을 전하는 교회를 그냥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교회가 살아 있으면, 마귀는 끊임 없이 공격해 들어옵니다. 그러나 복음을 전하지 않는 교회는 공격하지 않고 그냥 내버려 두죠. 그러므로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핍박을 받으면, 약한 교회가 아니라, 살아 있는 교회의 증거 입니다. 이 교회를 가만히 두면, 큰일을 낼 것 같으니까, 자꾸 교회를 공격하는 것입니다.

 

28절을 다시보십시요. 대적하는 자들을 두려워 하지 말라고 말하면서, "이것이 저희에게는 멸망의 증거요, 너희에게는 구원의 증거니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라" 할렐루야 ! 빌립보 교회가 고난을 받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너희들이 하나님께로 난 사람들이고, 구원 받은 사람들이기에 고난을 받는 것이라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너희를 대적하는 자들은 멸망의 자식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고난이 오면 '나는 하나님의 구원받은 백성이다' 라는 증표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고난이 오면 기쁜마음으로 넉넉히 이겨 나가는 것입니다.

 

많은 선교사님들이 한국교회의 부흥을 이야기 하면서 이 고난이라는 것을 이야기 합니다. 부흥의 비결이 고난 받은 민족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고난 속에 심겨진 복음이었기 때문에 복음이 복음답게 자리를 잡았다는 것입니다.

 

언어를 조사해 보면, 언어가 형성되기 까지 오랜세월 동안 그 민족의 정서가 담겨져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고통을 표현하는데, 있어서 우리나라 말을 참 다양합니다. 어렷을 때는 왜 그렇게 배가 자주 아팠는지 모릅니다. 회충이 있어서 그랬는지, 어머니가 배가 어떻게 아프냐고 물으면, 참 다양하게 대답하게 되죠. 배가쌀쌀 아프다, 쓰리게 아프다, 속이 두틀린다. 느글거린다. 이런 표현을 씁니다. 몸이 좀 피곤하면, 몸이 뻐근하다. 나른하다. 노곤하다. 삭씬이 쑤씨고, 육신이 욱신거리고, … 밤새 공부한 아들은 머리가 멍하게 아픔니다. 일을 많이 하면 머리가 띵하게 아프다고 하고, 엄마들은 골치가 아프다고, 술먹는 남자들은 뒷골이 아프다고 하고, 영어로는 I have a headache 이면 끝인데 말입니다.

 

우리 민족의 역사가 고난의 역사 였습니다. 그 고난의 역사 속에 복음이 심겨지니까, 하나님께서 놀라운 부흥의 맞보게 하는 축복도 주셨다는 것입니다.

오늘은 복음의 합당한 삶이 어떤 삶인지 살펴보았습니다.

복음에 합당한 삶은 믿음에 굳게 서는 것입니다. 사랑으로 연합하는 것입니다. 고난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빌립보 교회 뿐만 아니라, 바울을 비롯하여, 우리의 믿음의 선진들이 이런 삶을 살다 갔습니다.

초대 교부중에 크리소스톰이라는 교부가 있었습니다. 이분은 로마의 시이저를 향하여 시이저가 주가 아니고 우리 예수님이 주라고 주장하다가 체포되었습니다. 로마의 시이저는 크리소스톰에게 협박을 하며 로마에서 추방형을 내립니다. "저를 추방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전 세계가 아버지의 집이기 때문입니다. " 그러자 이제는 그를 감옥의 독방에 넣었습니다. "저는 외롭지 않습니다. 그곳에서도 나를 버리지 않는 친구가 계십니다." 결국 그는 죽음을 당하게 되는데, 죽음 직전에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저는 조금도 두렵지 않습니다. 저의 생명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감추어져 있으니까요"

 

이것이 복음에 합당한 자의 삶입니다. 우리 꿈의 성도 여러분, 믿음에 굳게 서십시요. 서로 연합하십시요. 그리고 고난도 두려워하지 마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