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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의 창고/ 비전나리의 설교

새벽예배설교 : 회심 - 로마서 7:15-25

by Peartree 2012. 12. 24.

우리가 크리스챤이 되기 위해서는 소위 '회심' 이라는 사건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 회심의 사건은 사람마다 각각 다양하게 경험을 합니다. 어떤 사람은 설교를 듣다가, 어떤 사람은 기도를 하다가, 어떤 사람은 찬양을 드리다가, 바울 같은 사람은 크리스찬을 핍박하다가 회심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읽다가 회심을 하는 사람들은 정말 많이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오늘 저와 여러분들이 읽은 로마서 7장을 읽다가 회심한 사람들이 아마도 통계적으로 조사하면 가장 많을 거라 추측합니다. 그 이유는 진리를 찾는 사람들의 기본은 '나' 라는 존재 의식에서부터 출발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과연 누구인가? 어떤 존재인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라는 질문에서부터 시작합니다. 그 다음에는 내가 알지 못하는 또 다른 존재가 있다는 것에 눈을 뜨게 되며, 그 존재가 어떤 것인지 알고 싶어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읽은 본문에는 진리를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을만한 구절들이 많이 있는데, 각 절 마나 나라는 존재에 대해서 계속 언급하고 있습니다. 15절 보시면, 철학을 하는 사람들이 자주 쓰는 말 같지 않습니까? "나의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라" 즉, 나 자신을 나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회심을 하기 위해서는, 나로부터 시작하여, 그 안에서 무능한 자신을 자신을 발견하게 되고, 결국에는 25절 보시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라는 바울의 고백을 자신의 고백으로 받아 들이면서 회심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들이 읽은 본문은 바울이 크리스천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내면의 갈등을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죄에 대하여 이토록 처절한 싸움을 하고 있는 분이 '사도바울' 이라는 점에서 우리는 더욱 안심이 되기도 합니다. 크리스천으로서 거의 완벽한 삶을 살았을 것 같은 바울도 자신의 속에 거하는 죄성 때문에 힘들어 한 것을 보면, 우리도 어쩔 수 없이 죄에서 완전히 벗어 날 수 없으며, 사도 바울처럼 끊임없는 싸움을 싸워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죠.

 

그러면 오늘 사도바울의 고민이 우리의 고민인데, 내면에 어떤 갈등을 겪으며, 어떤 싸움을 싸우고 있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첫째로, 17-18절 보시면, 내 속에 죄가 여전히 거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갈등이었습니다.

 

그리고 내 속에 있는 그 죄가 선을 행하고 싶어하는 내 마음을 꺽어 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을 행하고 싶으나 행할 수 없는 자신의 상태에 대해서 안타까워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공부를 더 가르치고 싶은데, 돈이 없어서 가르치지 못하는 부모의 심정처럼, 아픈 부모님을 어떻게든 치료받게 하고 싶은데, 돈이 없어 하지 못하는 그런 안타까운 마음처럼. 바울의 지금 마음이 이와 같은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났고, 죄로 인해 죽을 수 밖에 없는 나를 구원해 준 감격이 넘쳐서, 예수님을 닮고 싶고, 예수님께 자신의 삶을 더 드리고 싶은데 그럴 수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전히 내 안에 육신의 생각이, 죄된 생각이 나를 사로 잡아서 예수님께 나아가려고 하는 선한 마음을 꺽어 버리기 때문이입니다.

이 고민은 바울의 고민이기도 하며 지금 이 시대에 우리가 겪는 고민이기도 합니다. 그리스도인이 되면 완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항상 이런 내면의 갈등과 안타까움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이런 내면의 아픔과 괴로움은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이런 일들을 통하여 우리는 진정한 크리스천으로 점점 변화되어 가는 것입니다.

 

  1. 두번째로 바울의 갈등은, 내 안에 있는 죄성이 아주 무서운 강한 적이었기 때문에 갈등이 있었습니다.

 

22, 23절 보시면, 세가지 법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법, 내 마음의 법, 그리고 죄의 법. 속사람은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는데, 내 지체 속에는 마음의 법과 죄의 법이 이 두 법이 공존하면서, 싸우고 있으며, 안타깝게도, 이 죄의 법이 더 강해서 바울을 사로잡아 간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쉽게 말해서, 자주 죄로 인해서 넘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사로잡다' 라는 표현은 헬라어로 '아이크 말로티' 라는 단어로, 전쟁에서 승리하여 포로를 끌로 갈 때 이 단어를 씁니다. 그러니까, 이 죄가 우리 안에 들어와 전쟁을 통해 우리를 자신의 소유로 만들고, 전쟁포로 끌고 가듯이 우리를 끌고 간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바울은 죄를 강력한 군대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죄와의 싸움이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님을 바울을 말하고 있는 것이죠.

 

이렇게 강력한 죄로 인해서 넘어지게 되면 우리의 심령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죄책감 때문에 무척 괴롭게 되죠. 24절 보시면, 죄책감 때문에 괴로워 하는 바울의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영어버전으로는 "Wretched man I am" 나는 죄로 인하여 비참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진리를 찾는 사람들은 처음에는 '나' 자신 그리고 '죽을 수 밖에 없는 나' 발견하고는 나를 구원할 '전능자'를 찾게 되죠.

오늘 바울도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주십시요" 외치고 있습니다.

그리고는 자신을 구원할 전능자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더욱더 희망이 있는 구절은 제일 마지막 절에 있습니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여전히 육신은 죄로 인하여 넘어지게 된다고 고백하며, 죄와 싸우지만 넘어지는 연약한 자신을 향하여, 비참하게 되었다 하지 않고,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구원하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오늘 바울의 모습은 우리의 모습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성도로서 죄와 싸우며, 성화되어 가지만, 죄로 인하여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 또 싸우며 나아가는 바울의 모습이 지금 우리의 모습입니다. 죄로 인하여 넘어져도 결국에는 나를 이기도록 만들어 주실 예수님으로 인하여 감사하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