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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의 창고/ 비전나리의 설교

정직한 제자 나다나엘 (요한복음 1장 43-51절)

by Peartree 2019. 1. 7.

정직한 제자 나다나엘  (요한복음 1 43-51)

 

세 친구가 비행기를 타고 여행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늘을 날던 비행기가 엔진 고장으로 무인도에 추락하고 말았습니다. 가까스로 살아남은 이 세 친구는 그 날부터 집으로 돌아가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기도의 응답은 그리 쉽게 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고대하던 응답이 왔습니다.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너희들의 소원이 뭐냐 딱 한가지씩 말하라고 했습니다. 그때 한 사람  1. 제가 없어지고 저희 집은 아마 매일 슬픔에 잠겼을 겁니다. 저를 집에 보내 주세요. 뽕하고 사라졌습니다. 2. 저도 저의 가족들이 많이 걱정하고 있을 겁니다. 저도 집에 보내 주세요 뽕하고 사라졌습니다. 3. 저는 집이 없습니다. 저를 반겨줄 가정도 아내도 없습니다. 여기 혼자 사는 것이 너무 심심할 것 같습니다. 아까 그 친구들 다시 오게 해주세요.

이 이야기가 주는 교훈은 어떤 친구가 진실한 친구인지를 생각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 살면서 어떠한 친구를 사귀느냐가 참으로 중요합니다.

오늘 본문에 보시면 예수님께서 빌립을 만나 이르시되 나를 좇으라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바로 빌립은 가슴이 뜨거워 이 복음을 전하려고 누구를 찾습니까?  나다나엘을 찾았고, “우리가 그토록 기다리던 선지자 요셉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다고 하면서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런 친구가 있으신 분들은 참으로 인생의 반은 성공한 사람들입니다. 너무나 귀한 것을 찾았을 때 혼자 누리기에 너무 귀해서 사랑하는 친구와 나누기 원했던 사람입니다. .

 

사복음서 보시면 열두 제자의 명단을 각 복음서 마다 기록하고 있는데, 특이한 것은 이 두사람의 이름이 항상 같이 붙어 나온다는 것입니다. 빌립과 바돌로매, 빌립과 바돌로매………바돌로매는 나다나엘의 다른 이름입니다. 얼마나 보기좋은 친구의 모습입니까? 성경에는 이러한 친구들이 또 있습니다. 다윗과 요나단..또 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바울과 바나바……….베드로와 요한……..이러한 사람들은 신앙의 좋은 친구들이었습니다. 우리교회 안에서도 이러한 믿음의 동역자들이 많아 지시길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옆사람 보시면서 동균이와 000

 

오늘은 이렇게 좋은 친구 덕분에 예수님을 알게 되어 12제자의 반열에 들게된 나다나엘 다른 이름으로는 바돌로매라는 한 제자의 삶을 통해 저와 여러분들이 은혜를 나누고져 합니다.

 

1.  그는 편견과 선입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빌립과 나다나엘의 대화는 어느정도 성경지식을 가지고 하는 대화였습니다. 빌립이 나다나엘에게 이렇게 전도합니다. “율법과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다라고 합니다. 나다나엘 대답은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이 사람은 성경을 암기하고 있을 정도로 성경에 해박한 사람이었습니다. 성경에는 메시야가 유대의 베들레헴에서 태어난다고 기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당시의 베들레헴은 유대에서 큰 도시였습니다. 그러나 당시에 나사렛에는 가구가 140 여채 되지 않는 아주 작은 마을 이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작은 마을 에서 어떻게 메시야가 나올 수 있느냐라는 것입니다. 때로는 우리가 조금 안다고 하는 성경지식이 우리의 믿음을 가로 막을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나다나엘이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무화가 나무 아래서 성경을 날마다 상고하며, 오실 메시야를 기다리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메시야가 지금 눈 앞에 있는데도 편견에 사로잡혀 메시야가 어떻게 이런 촌 구석에서 나올 수 있냐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시는 방법을 자기의 방식으로 맞추어 놓고 이런 방식으로 오시지 않으면 메시야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편견이 이렇게 무섭습니다.

 

이야기 가운데 우리는 간혹가다 상대방의 혈액형을 물어 봅니다. A형이라 하면, 내성적이라 하고, O형이면, 스포츠 잘해, AB형이라하면 천재 아니면 바보,………때로은 자기중심적이고, 잘난체 하고, 하고 그러면 슬쩍 혈액형을 묻습니다. B형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속으로 그러면 그렇지 합니다.

몇 년전에 한국에서 B타입의 남자라는 영화가 나왔습니다. 그 영화의 주인공은 철저히 자기밖에 모르는 자기 중심적인 캐릭터였습니다. 그러나 장점도 있습니다. 때로는 로맨틱한 면도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혈액형으로 편견을 가지고 사람을 미리 판단하는 죄를 범하게 될 때도 있습니다.

특히 우리 민족은, 사람의 외모로 판단을 합니다. 머리가 꼽슬이면 성깔이 어쩌구….최씨 성을 가진 사람은 고집이 어떻구 …..우리는 좀 편협한 성경에서 넓은 마음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도 주님은 변화시키시고 위대하게 사용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나다나엘을 만나서 무어라 말씀하십니까? “이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2.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약점을 감추시고 강점을 드러내시는 분입니다.

 

이 편협한 나다나엘에게 찾아오신 예수님은 그의 약점을 드러내시기 보다는 그의 칭찬받을 만한 것을 드러내셔서 그것을 개발하도록 사용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한국의 국가대표팀이 4강에 올라가는 신화를 본적이 있을 것입니다. 그당시 선수들보다 더 유명세를 탄 사람이 있었는데, 히딩크라는 감독이었습니다. 그는 예리한 분석으로 선수들의 강점을 드러내주었다는 것입니다. 그 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한국 축구는 체력은 강한데 기술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히딩크는 정 반대의 말을 했습니다. 기술은 수준급인데 체력이 오히려 약하다는 것입니다. 한국의 선수들은 감독이 시키는대로 해서 왼쪽공격 하라면, 왼발쓰고, 오른쪽공경시키면, 오른발 쓰고, 나이가 어리면, 풀백을 보다가, 실력이 늘면 공격을 맡깁니다. 그래서 한국 선수는 멀티 포지션입니다. 그러나 유럽의 선수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공격이면 처음부터 공격만 합니다. 수비수면 처음부터 수비만 시킵니다. 그래서 히딩크는 이점을 발견했습니다.

 

교회안에서도 상대방의 약점이 보이면 드러내기 보다는 대신 그의 강점을 찾아서 일하도록 해주어야 합니다. 그러면 그의 약점은 강점의 그늘에 가리워 보이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낯선 사람과 쉽게 친해지는 사람은 새신자부 담당해야 합니다. 친교시간에 음식맛이 어쩌니 저쩌니 하는 사람은 친교담당 해야 합니다. 음식맛을 탓하는 그 분야에 강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오시면 지저분한 것이 다른사람의 눈에 띄지 않지만 유독 잘 지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분은 관리 담당해야 합니다. 예배가 순서가 왜이래 하며 불평하면, 이사람은 예배를 보는 눈이 다른사람보다 뛰어난 강점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예배담당 해야 합니다.

 

가정에서도 그렇습니다. 아이들의 약점을 자꾸 들춰 내봤자 고쳐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잘하는 것을 잘한다하여 격려하며 그것을 개발하도록 해야 합니다.

 

여러분들 제가 이제 이교회에 온지 한달이 조금 넘었습니다. 이제부터는 서서히 약점이 보이실 것입니다. 감사한것은 아직까지 저의 약점을 저에게 이야기 하는 성도가 없었습니다. 물론 제가 없는 자리에서 할 수 도 있지만, 가급적이면 우리교회는 모두는 서로간에 약점을 가리워주는 성도를 되시기를 부탁을 드립니다.

 

우리 이시간에 옆에분 보시고 한가지만 칭찬해 주세요. 부부면 더욱 좋습니다. 당신에 무엇 무엇 강점이며 참 감사합니다 (먼저 사역하던 교회에서 한가씩 칭찬하라는데, 제 옆에 앉은 여자 집사님이 잘 생겨서 감사합니다.)

 

3.  나다나엘은 주님 만나는 소원을 이루었다는 것입니다.

 

나다나엘의 직업은 어부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틈만 나면 무화가 나무 아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도 읽으면서 주님 오심을 기다렸던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빌립과 나다나엘의 대화를 보시면 둘의 대화의 초점은 메시야 어디서 어떻게 오시는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나다나엘에게 네가 무화과 나무 아래 있을 때에 너를 보았노라하실 때 그즉시 나다나엘은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고백합니다. 그는 무화과 나무 아래서 오실 주님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주님을 왜 아직도 오시지 않는 것일까? 광야에서 세례요한은 메시야가 왔다고 외쳐 대는데, 정말 주님은 오신것인가? 그런 고민에 빠져 있던 것 같습니다. 주님은 그때 그를 찾아가서 무화과 나무아래서 네가 그토록 기다리던 그 메시야가 나다 네가 나를 그토록 생각하는 것을 내가 보았다. 이렇게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그리고는 그가 메시야를 만나면 그토록 하고 싶었던 고백, 몇번이고 마음속으로 되새기던 그 고백, 주님 만나면 이 고백을 드려야지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요. 임금입니다

 

여러분 이 어지러운 시대가운데 주님을 기다리고 계십니까? 아니면 기다리지 않습니까?

히브리서 9 28절에 예수님은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번째 나타나신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초림의 예수님도 나다나엘처럼 기다리는 자에게 나타나셨듯이, 재림으로 오실 예수님도 간절히 기다리는 자에게 나타나실 것입니다. 또한 주님은 도적같이 오신다고 하셨습니다. 깊은 잠에 들어있는 성도는 주님이 오심을 알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언제든지 깨어 있으면 주님 다시 오심을 볼 수 가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은 어둠속에 있습니다. 깊이 잠들었습니다. 우리는 깨어 있어야 합니다.

미국 어느 대학에서 개구리 실험을 했습니다. 찬물의 비이커 안에 개구리 한마리 넣고 비이커 밑에 알코올램프의 불을 붙여 서서히 가열하여 개구리의 반응을 살핍니다. 처음에서 헤엄을 치며 놀기 시작합니다. 점점 따뜻해지는데 오히려 그 따뜻한 온도의 물을 좋아하는 것 같다고 합니다. 그러나 어느순간 이상하다 하여 몸을 비틀어 빠져나오려고 하지만 이미 때는 늦은 것입니다. (Boiled Frog Syndrome)  지금 이순간이 좋아 잠들어 있다가, 어느날 갑자기 보라 신랑이로다 하며 천사들이 나팔을 불고 구름을 타고 오시면 이미 때는 늦은 것입니다.

 

결론

 

나다나엘은 브리기아, 헤라홀리스, 알메니아와 인도 등지에서 복음을 전파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한 전설에 의하면 그는 우상숭배가 심한 아르메니아 지방에서 16년간 전도하다가 곤봉으로 맞고 세자루의 칼로 살갗을 벗기우고 십자가에서 머리를 떨구고 죽은 후시체는 자루에 넣고 묶이어서 바다에 던져졌다고 한다. 그는 시신조차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주를 위해 충성하다 결국은 그토록 사모하던 주님을 다시 천국에서 만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의 마음속에서도 나다나엘 처럼 주님을 사모하는 마음이 충만하셔서 주님 다시 오실 때 주를 뵙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