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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의 창고/ 비전나리의 설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감사 (눅 17:11-19)

by Peartree 2019. 1. 7.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감사 ( 17:11-19)  

 

오늘 설교 제목의 반대는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것은 감사하지 못하는 것 이라는 말

입니다. 불평과 원망 이런 것은 마귀를 기쁘게 하는 것 입니다.

하나의 이야기지만 교훈이 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늘의 천사가 바구니 두 개를 들고

서 하늘에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데 한 손에는 간구의 기도를 가지고 가고 또 한 손에

는 감사의 기도를 가지고 간답니다. 그런데 땅에서부터 두 바구니를 하나님 앞에 가져갈

때 ‘간구의 기도’는 그 바구니가 가득 차서 철철 넘치는데 ‘감사의 기도’가 들어있

는 바구니에는 거의 비어서 올라간다고 합니다.

 

그런 증거는 많이 있습니다. 크리스마스 때만 되면 우체국에 수많은 편지가 옵니다. 산더미같이 온답니다. 모두가 달라는 편지입니다. 그런데 연말이 지나고 나서 어느 우체국에는 “Thank you!""의 편지가 단 한 통 왔답니다.

 

어느 날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기 위해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를 지나가시게 되었습니다. 어느 한 촌락에 들어서니까 문둥병자 10명이 멀리서 소리를 질러 말하길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궁휼히 여기소서""하며 애원하는 모습을 보시고 사랑의 예수님은 그들의 처절한 모습을 안타깝게 여겨 명하시기를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

""고 했습니다. 이 문둥 병자들은 예수님의 이 말씀 속에는 분명코 고쳐 주시겠다는 약속이 있는 것을 믿고 주님의 명령대로 제사장에게 보이려고 뛰어 갔습니다. 그런데 아닌게 아니라 가다 보니 예수님의 말씀대로 자기들의 몸이 깨끗하게 낫는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 후 이 사람들은 제각기 뿔뿔이 헤어져서 가버렸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사마리아 사람 한 명만은 이 사실을 알고 감사 감격한 마음이 넘쳐나 제

사장에게 보이기도 전에, 또 다른 사람처럼 보고 싶은 처자식을 만나기 이전에 예수님께

되돌아 와 주님의 발 아래 엎드려 감사를 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그 사람의 정신,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을 기뻐해 하시면서 한편으로는 섭

섭한 마음으로 ""열명이 다 고침 받지 않았느냐? 그 아홉은 어디 가고 이방인만이 와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느냐""고 하셨습니다. 그러신 후에 그 한 문둥 병자에게 이르시기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고 말씀 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깨닫게 되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감사하는데 그다지 익 숙하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에 반하여 해서는 안 되는 원망불평들은 아주 쉽게 말하고 있습니다.

구약성경을 읽다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 에서 종살이하다가 출애굽하여 광야에서

머문 40년 동안 하나님께서 얼마나 많은 축복을 베풀어주셨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 을 돌리기보다는 늘 원망불평의 세월을 보냈습니

.

29:5 주께서 사십 년 동안 너희를 인도하여 광야를 통행케 하셨거니와 너희 몸의 옷

이 낡지 아니하였고 너희 발의 신이 해어지지 아니하였으며

참으로 신기한 일입니다. 이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만나와 메추라기로 배불리 먹이시고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인도해주셨습니다.

반석에서 생수가 나게 하셨고, 날마다 하나님이 함께 하여 주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사랑해주시고 축복해 주셨으면, 날마다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뻐하고 찬양하며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려야 마땅하나 도리어 이스라엘 백성들은 원망과 불평만 했습니다. 도무지 감사를 모르는 목이 곧은 백성이 된 것입니다.

 

일본의 [우찌모라 간죠]는 “감사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는 메마른 마음을 가지게 되는 것은 저주다.”라고 말했습니다.

감사하지 않는다고 벌하는 형법은 이 세상 어디도 없습니다. 그러나 탈무드에 아주 명언

이 있습니다. '감사를 모르는 자를 벌하는 법을 하나님께서 만들지 아니한 것은 감사할

줄 모르는 자를 이미 불행으로 벌하셨기 때문이다.' 감사할 줄 모를 때 벌써 그는 불행이

라는 벌을 받고 있는 거예요. 다시 벌할 것도 없어요.

 

그런데 열명이 다같이 고침 받았지만 유독이 한 사람만이 감사를 표했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무엇보다도 당신께 감사할 줄 아는 자를 제일로 기뻐하시고 축복

해 주신다는 사실을 먼저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인생의 제일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이요, 따라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실제적이고도 구체적인 길은 감사하는 것임을 아시기 바랍니다.

자식을 키워 본 부모님들은 쉽게 이해가 될 줄 압니다. 우리의 자식들이 장성 했을 때에

그 자식들이 부모님에게 와서 감사해 하며 효도를 다한다면 그 이상의 기쁨이 어디 있겠

습니까? 우리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곰곰히 생각해 보십시요. 모두 이 문둥병자와 같이 영적인 문둥병에 걸려 버림받고 지옥의 형벌을 면치 못할 우리들, 주님이 아니고서는 고침 받을 수 없는 죄의 문둥병에 걸렸던 우리들이 아닙니까? 그러한 우리들이 주님의 보혈의 공로로 구원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 속에 살게 되었으니 생각하면 할수록 감사하고, 만입이 있어도 다 감사를 표현할 길이 없는 우리들이 되었음을 다시 한번 깨닫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이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살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시편 50 23절에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이렇게 감사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환난이나 재난 가운데서도 구원해 주시겠다고 했습니다.

골로새서 2 7절에도 보면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 18절에도 범사에 감사하라고 했습니다. 이 범사에 감사하는 생활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중요한 비결중의 하나인 것입니다.

 

이 시간 우리는 주님 앞에서 솔직하게 얼마나 감사해 했는지 반성해 보시기 바랍니다. 감사에도 형식적인 감사가 있고, 진정 주님이 기뻐하시는 감사가 있습니다. 그러면 어떤 감사가 주님이 기뻐하시는 감사이겠습니까?

 

1. 감사 우선순위의 삶을 기뻐하십니다.

우리 한국 사람들의 특징이 빨빨리(빨리 빨리를 찍었는데…)라고 하는데 무엇보다 감사

를 빨리 할 줄 알아야 합니다. 빨빨리가 다 나쁜 것은 아닙니다.

우리 하나님은 무엇보다 신속히 감사하는 것을 원하십니다. 세상적인 표현으로 말한다면 김빠진 다음에 감사하는 것보다는 마치 시원한 사이다가 처음에 뚜껑을 열면 끓어 오르듯이, 우리의 마음 속에서도 먼저 감사함이 끓어 오를 때 감사하는 것이 효과가 있고, 주님이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이 한 문둥병자는 병이 나았음을 직감하자마자 즉시 가던 발걸음을 되돌려

예수님 앞에 와서 감사했던 것입니다. 아마 나머지 아홉 명도 감사한 마음을 품긴 했겠지만, 훗날 찾아가서 인사를 하겠다는 마음은 가졌겠지만, 주님은 그것을 섭섭해 하셨고 먼저 찾아온 이 한 사람을 보고 매우 기뻐하셨습니다.

 

그 아홉에 대한 이야기가 늘 궁금해요. ""그 아홉의 변명""이라고 하는 작자 미상의 글이

있습니다. 한번 생각해 볼만합니다.

 

1)한 사람은 '의사와 제사장에게 가서 정밀검사를 해야겠다' 해서 갔다는 겁니다. '이게

나은 것 같은데 정말 나았는지.' 아주 의심이 많은 사람이에요. '가서 정밀검사를 해야

' 그래서 가버렸어요.

2)'재발 가능성이 있는지도 몰라. 그런고로 며칠 두고 봐야겠다.' 신중론입니다. 이거 나

았다고 하는데 꿈같은 얘기라서 정말 나았는지 좀 기다려 봐야겠다는 거예요.

3)'내 병은 본래 문둥병이 아닌 좀 특이한 피부병 정도였던가보다.' 이건 회의론자 입니

.

4)그 다음 사람은 '내 병은 나을 때가 돼서 나았을 거야.' 이건 자연현상으로 보려고 합

니다. 어떤 병 걸렸다가 나았을 때, ""어떻게 나았어?"" ""그저 뭐, 약도 좀 쓰고 병원에도 가긴 했지만 나을 때가 되어서 나았나봐.""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5) 또 하나는 병 걸리기 전에 가졌던 밭과 재산이 지금 어떻게 되었는지 이게 궁금해요,

가게는 어떻게 되었는지? 세탁소는? 주유소는? 이제 먹고 살아야겠으니까. 그래서 그걸

빨리 알아보기 위해서 가버렸어요.

6) 또 한사람은 병 걸리기 전에 같이 있었던 가정과 식구들, 특별히 아내가 수절하고 있

는지 그게 궁금해요. 도망가지는 않았는지? 그래서 가버렸습니다.

7) 또 한사람은 '그리스도께서 특별히 해준 것이 없잖아.' 안수를 해준 것도 아니고,

을 준 것도 아니고 말이에요. ', 그저 ""가서 보여라"" 한 말씀 밖에 안했는데 아, 뭐 예

수님이 별로 해준 것도 없는데'… 그런 어리석은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었을 거란 말이

.

8)또 다른 사람은 '다른 유명한 랍비들도 이런 것은 아마 가능할는지 몰라.' 예수님의 능

력을 상대화 해버렸단 말이죠.

9)또 한 사람은 '이 모습대로 갈 수는 없잖아. 가서 목욕을 하고 새 옷을 입고 예물을 가

지고 그리고 예수님께 가야지.' 그래서 가버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이 사마리아 사람은 어떻습니까? 이 한 사람은 이 모습 이대로. 이게 중요한 거예요. 문둥병자의 옷을 그대로 입고 있어요. 그 더러워진 붕대감고 있는 모습 이대로, 그거라면 어떠냐? '예수님이 벌써 우리를 환영해주시고 사랑해 주셨는데 이 모습 이 추한 모습이면 어떠냐?' 그래서 이 모습 이대로 예수님 앞에 나왔어요. 그래서 예수님께 사례하게 되었다 이 말입니다.

 

여러분 그 점이 아주 중요합니다. 그 한 사람은 우선 감사했어요. 최우선적으로 감사했어요. 예수님이 감사를 조건으로 말하고 있지는 않아요. 의무적인 것은 감사가 아닙니다. 자발적으로 자원적으로 이렇게 참 그 추한 모습을 그대로 가지고 나와서 감사의 사례를 해서 주님을 기쁘시게 했습니다.

 

R. A. Toray 라고 하는 목사님께서 쓰신 책에 이런 기록이 있습니다. 미시간 주에 풍랑

이 일어나서 배 한 척이 파손이 되었어요. 그때 한 수영선수가 목숨을 걸고 뛰어들어가

서 무려 스물 세명이나 구조를 했어요. 그것이 신문에 나고 그런 일이 있었어요. 몇 년

후에, 아주 오랜 후에 토레이 목사님이 설교하시면서 '미시간호에 오래 전에 있었던 이야기, 청년 하나가 23명의 목숨을 건진 일이 있었습니다' 하는 그런 설교를 했더니 설교가 끝났을 때쯤 해서 한 노인이 하는 말이 ""제가 바로 그 청년입니다"" 그랬어요.

 

예배 후에 내 사무실에 들어오라고, 그래서 들어와서 차를 나누면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는 중에 ""당신이 그때 겪었던 일 중에 가장 깊은 인상을 받은 것은 무엇입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했더니 이 노인이 하는 말이 ""한사람도 고맙다는 말을 한 일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크리스마스 카드 한 장도 온 일이 없습니다."" 그것이 인상받았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 시간 감사하지 않으면 감사 못하게 됩니다. 하루만 지나도 몇 시간만 지나도 생각이 바뀝니다. 오늘 이 아홉 사람의 변명처럼 말이에요. 감사 못할 이야기들이 자꾸만 생각이나요. 못하게 되어버리고 말아요. 바로 이 시간 감사하지 않으면 영영 못합니다.

 

시편 119 60절에 ""내가 주의 계명을 지키기에 신속히 하고 지체치 아니하였나이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날마다 주님 앞에서 감사할 조건이 생기면 즉시 감사의 기도감사찬송 혹 물질로라도 감사를 신속히 표현 하셔서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아무리 신속히 한다고 해도 감사하는 것보다 먼저 다른 것을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먼저 내 할 일을 다 하고서 하나님 앞에 감사하는 것은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우리가 주일에 감사헌금을 드릴 때도, 내 할 일 다하고 형편대로 살면서 쓰다 남은 돈을 갖고 감사하는 것은 돈의 액수가 아무리 많아도 우리 주님은 절대로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내 할 일을 다 못하더라도 주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기 위해 먼저 바치는 그 정성 위에 주

님은 같이 하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감사주일을 맞이하여 하나님의 은혜

를 믿음으로 생각하면 감사의 제물을 드려야 하겠는데, 인간적인 생각을 앞세워 월동 준

, 김장준비, 자녀 등록금, 기타 생활비, 모든 것을 생각하다 보면 인색한 마음이 들기

쉽습니다.

 

감사는 찾지 않으면 소멸되고 찾아서 감사하면 증폭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감사의 이유

는 기를 쓰고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2.겸손한 자의 감사를 기뻐하십니다.

교수와 농부 이야기…교만하고 감사 할 줄 모르는 교수와 경건하고 겸손한 신앙의 사람

이었던 농부의 대화…어느 날 식사 기도하는 농부를 늘 조롱하던 교수가 어느 날 농부 집에 놀러 왔습니다…기도 하는 농부.. 기도 안하는 교수… 우리 집에도 당신과 같은 분들이 계십니다. ""아 그것 듣던 중 반가운 소식입니다. 아마 대학에 다니는 아들인가보지요? 아닙니다. 우리 집 뒷간의 돼지 놈들 입니다"" 무신론자들과 공산당은 감사가 없습니다. 감사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만 주신 특별한 은혜이고 특권입니다.

인간 이외의 동물들에게는 감사가 없습니다. 오직 인간만이 기쁨과 즐거움을 감사로 승화시킬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은 짐승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성품이 야비하고 천박할수록 감사할 줄을 모릅니다. 교만한 사람도 감사 할 줄 모릅니다. 그러나 인격이 갖추어진 사람은 감사가 풍성합니다.

하나님 없는 사람들의 특징 …감사치 아니하며..영화롭게도 아니하며….

 

진정으로 감사하는 자는 겸손한 자입니다. 교만한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중심에 감사가

있을 수 없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지금까지 살아 온 것이 제가 잘나서 산 것 같이 생각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 이 문둥병자는 예수님 앞에 찾아와 발 아래 엎드렸다고 했습니다. ""발 아래 엎드렸다""는 말은 겸손한 모습을 강조하는 것 입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통해 깨달아야 할 것은 하나님 앞에 감사를 하고 봉사를 하고 혹은 헌금을 한다 할지라도, 결코 교만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혹 다른 사람보다 헌금을 많이 하고, 또는 십일조도 많이 한다고 해서 조금도 교만해 할 것은 없습니다.

 

우리는 영적으로나 육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받았다고 하면 그 은혜와 축복을 지속되게 하기 위해서도 겸손해져야겠습니다. 겸손은 축복을 지속 시키는 비결입니다. 겸손은 은혜를 지속 시키는 비결입니다.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높이시고 교만한 자를 버리십니다. 축복도 거두어 가십니다.

신명기 8 12절에 이스라엘 백성에게 경고하시기를 ""네가 먹어서 배불리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하게 되며 또 네 우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두렵건대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하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겸손한 마음으로 날마다 자기의 죄와 부족을 깨달으며 구원의 주님을 향해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시기를 축원합니다.

 

어떤 곳에 무엇이든지 희귀한 것만을 갖고 싶어하는 임금님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임금

님은 맛이 기막히게 좋은 요리를 잡수신 후 감탄했습니다.

"" 이제껏 먹어 본 요리 중에서 이것이 제일이었다. 이렇게 훌륭한 요리를 만든 요리사는 세계 제일의 요리사임에 틀림없다. 많은 상을 주어야겠다."" 그러면서 요리사를 불러들였습니다. 요리사는 임금님의 이야기를 듣고는 겸손해 했습니다. ""임금님, 칭찬해 주시니 대단히 기쁩니다만 이 요리는 제 기술이 좋아서만이 아닙니다. 만약 좋은 야채를 파는 사람이 없었다면 제가 어떻게 맛있는 요리를 만들 수 있었겠습니까. 칭찬해 주시려거든 좋은 야채를 많이 파는 채소 장수를 칭찬해 주십시오.""

임금은 그럴듯하다고 생각되어 채소 장수를 불렀습니다. 성으로 불려 간 채소 장수는 칭

찬의 말을 듣고 깜짝 놀라며 말하였습니다. ""임금님, 그건 천만의 말씀입니다. 저는 그

저 야채를 팔았을 뿐이며 칭찬 받을 사람은 제가 아니라 그 야채를 재배한 농사꾼이겠지

.""

이번에는 농사꾼이 불려 갔습니다. 농사꾼은 무엇인가 잘못한 것이 있을까 두려워하며 임금님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농사한 야채가 세상에서 가장 맛있다는 얘기를 듣자 깜짝 놀랐습니다. ""임금님, 그것은 틀립니다. 저는 그저 손질만 했을 뿐입지요. 제가 땅을 갈아 씨를 심어도 때에 따라 비를 주시고 햇볕을 주시는 분이 없으면 저는 잎사귀 하나, 열매 하나 만들지 못하지요. 단지 저는 대대로 농사꾼이었기에 봄에 씨뿌리면 가을에 수확할 수 있다는 것을 알지요. 그래서 열심히 일하는 것뿐입지요. 감사의 인사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요.""

 

가끔 파업도 하고 대모도 하면서 빨간 띠를 두르고 '결사반대! 쟁취!' 이런다는 말입니

. 공산주의가 망한 이유가 어디있습니까? 자본이 없는 것도 아니고 기술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감사가 없습니다. 감사가 없다는 말은 인격이 없다는 말 입니다. 여러분, 빼앗

은 것에 대해서 어떻게 감사가 있겠습니까?

 

자기 의를 내세울 때에도 감사가 없습니다. 자신이 잘났다고 하는 사람에게는 감사가 없

습니다. 율법적 관계로 사는 사람에게도 감사가 없습니다. 소유란 소유하는 순간 약간의

기쁨이 있는 것 같아도 소유하자마자 또 다른 욕심에 사로잡힙니다. 걱정이 많습니다. 성취감이라는 기쁨이 있습니다만은 성취되는 순간 불안합니다. 지속할 자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오로지 감사만이 그 사람의 마음을 자유하게 합니다. 참 행복을 누리게 하는 것입니다. 또 한가지는 운명으로 생각하는 자에게도 감사가 없습니다. 팔자요 운명인데 누구에게 감사를 하겠습니까? 이래서 감사가 없는 생활이 그 민족이든 그 문화든 그 나라든 다 망가지고 마는 것입니다. 겸손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3. 말과 행동으로 표현하는 감사를 기뻐하십니다.

감사는 명사가 아니라 동사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웃과의 대화 중에서 감사보다 불평을 말하도록 심리적으로 타락해 있습니다.

람을 만나면 벌써 남의 흉을 보거나 원망하거나 불평하도록 심리적으로 타락해 있습니

. 시편 34 13절로 14절에 “네 혀를 악에서 금하며 네 입술을 궤사한 말에서 금할지어다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며 화평을 찾아 따를지어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불평의 말을 하지 말라는 것 입니다.

 

성경은 비판과 정죄의 말, 원망하는 말을 금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5 4절에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돌이켜 감사하는 말을 하라” 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시편 141 3절에도 “여호와여 내 입 앞에 파숫군을 세우시고 내 입술의 문을 지키소서”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입술로 먼저 감사를 해야 합니다. 빌립보서 4 6절에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감사는 하나님의 능력을 풀어놓는 길이 됩니다. 히브리서 13 15절에 “이러므로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우리 구원받은 성도의 입술의 열매입니다. 감사와 찬송은 하나님께 드리는 향기로운 제사가 되는 것입니다.

 

나머지 아홉 명의 문둥병자가 마음 속으로는 감사한 마음을 가졌는지는 몰라도 말과 행동으로 표현한 것은 이 이방인 한 사람뿐 이었습니다.

가정에서의 효자는 부모님의 은혜에 무조건 감사할 줄 아는 자녀입니다.

학교에서의 모범 학생은 자기를 가르쳐 주시는 선생님께 대하여 감사한 마음을 갖는 학생입니다. 어떤 교인이 좋은 교인인가 하면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감사해 하고 주의 종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갖는 자인 것입니다.

감사할 줄 모르고 불평 불만하고 부정적인 사람은 하나님의 축복이 내리지 않습니다.

마서 10 10절에 사도 바울은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고 했습니다. 마음으로 믿는 것도 중요하지만 입으로 시인하는 것과 입으로 표현하고 행동화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말씀입니다.

 

4.최선의 감사를 기뻐하십니다.

시편 96 8절로 9절에 “여호와 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그에게 돌릴지어다

예물을 가지고 그 궁정에 들어갈지어다 아름답고 거룩한 것으로 여호와께 경배할지어다

온 땅이여 그 앞에서 떨찌어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 마태복음 6 20절에 “오

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고 기록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빌립보서 4

18절로 19절에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의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갈 때 입술로 감사의 제사를 드릴뿐 아니라 실제로 예물을 가지고 물질을 가지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면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시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6 38절에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물질로 감사하면 하나님께서 물질로 우리에게 보답해 주신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성경에서 예수님께서 가장 크게 감격하신 것이 마리아가 옥합을 깨뜨린 것입니다. 이스라엘에서는 처녀가 시집을 갈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옥합에 향기로운 기름을 조금씩 모읍니다. 그리고 그것을 팔아 시집을 가게 됩니다. 마리아도 자신의 결혼을 위해 오랫동안 기름을 모았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마리아가 그 기름이 든 옥합을 깨뜨리고 향유를 예수님의 머리와 발에 부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을 닦아 주었습니다. 이 광경을 본 제자들은 마리아의 행동을 꾸짖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 여인이 나에게 참으로 좋은 일을 했다. 그리고 복음이 전파되

는 곳에는 이 여인의 선행도 함께 전파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죽음

을 앞둔 그 자리에서 마리아는 그리스도의 은혜와 구원에 너무 감사해서 그가 가지고 있

는 가장 귀한 옥합을 깨뜨려 감사의 뜻을 전했습니다. 그러자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것

이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겠다’고 하

신 그 말씀대로 이루어 주신 것입니다. 감사를 할 때 하나님의 손길이 나타납니다. 감사

는 하나님의 손길을 초청해 오는 길이 됩니다.

 

우리의 삶에 있어서 영혼이 잘되고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으며

모든 일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결과를 얻고 싶으면 감사를 하십시오. 그러나 도적질 당하고 죽임을 당하고 멸망을 당하며 고통과 슬픔을 당하기를 원하면 원망과 불평을 하십시오. 선택은 우리에게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서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이 일을 힘껏 행하면 하나님이 우리와 같이 하셔서 큰 은총과 축복과 영광을 허락해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루는 성전에서 가난한 과부가 엽전 두푼을 헌금궤에 넣는 것을 보시고 저

여인이야말로 최선을 다했다고 칭찬하신 적이 있습니다.

여러분! 제가 한 번 묻겠습니다. ""마음이 있는 곳에 물질이 간다""하는 말과 ""물질이 있는 곳에 마음이 간다.""하는 말 중에 어떤 말이 맞겠습니까? 물론, 세상적인 생각으로는 마음이 가야 물질이 따라간다고 하겠지만 성서는 우리에게 말씀하시기를 ""물질(보물)이 있는 곳에 네 마음도 있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의 마음 속에 믿음이 없어도 주님 앞에 바치면 그 사람의 마음은 주님과 가까워집

니다.

 

하늘나라에 보화를 쌓아 두는 자가 하늘나라에 관심을 갖게 되고, 제단에 물질을 바칠

줄 아는 자가 그 제단을 사랑하게 되고 관심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물질을 많이 투

자한 것에 가장 마음이 있는 것 입니다.

 

스탁, 본드,주식에 많이 투자한 사람은 언제나 그런 신문과 뉴스에 관심이 있고 마음이

있습니다. 아파트 투기에 재산을 붓는 사람은 아파트에 관심이..

 

자기 외모에 엄청난 투자를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외모를 가꾸기 위해서라면 1시간도 아깝지 않습니다. 자기의 영혼을 위해서는 단 10분을 투자하는 것에도 인색하면서도…

성형 수술을 받는데는 많은 돈이 들어도 하나도 아깝지 않습니다. 외모를 위해 좋은 옷

을 사는데는 돈을 아낌없이 투자합니다.

 

일주일에 두 세번 씩 쇼핑하면서 돈 쓰지 않으면 삶의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

에는 언제나 화려한 장신구들이 가득하고, 유행 한다는 것은 다 가져보고, 그러면서 복음을 위해서는 단돈 100불을 내놓는 것도 아까워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들의 가치관 입니다.

하나님 사랑, 하나님의 이름과 명예,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뜻, 이것을 위해 고민해

보셨습니까?

감사 정신으로 예배 드리는 믿음의 성숙을 위해 울며 기도해 보셨습니까?

여러분! 지금까지 지나온 일년을 돌이켜 봅시다. 나 개인으로나 가정적으로 또는 교회적

으로 민족적으로 여러 가지 예기치 않던 일들이 우리들 주위에서 일어났지만 지금까지 생명을 연장해 주시고 어려운 가운데서도 먹여 주시고 입혀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그 축복을 감사치 않을 수 있겠습니까? 감사한 마음 대신에 원망 불평 짜증이 일어납니까? 이러한 부정적인 생각은 마귀가 갖다 주는 생각입니다. 감사한 마음이 무딘 사람은 믿음도 식어진 증거요, 그 영혼이 병들었다는 증거입니다.

아무쪼록 감사의 달을 맞이하여 하나님께 대하여 감사한 마음을 더욱 많이 가지시고 표현하여 주님의 마음을 기쁘시게 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