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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의 창고/ 비전나리의 설교

2013년 8월 4일 주일설교 : 나를 낮추고 남을 높이십시요 - 다니엘4:29-37

by Peartree 2013. 12. 11.

나를 낮추고 남을 높이십시요

다니엘4:29-37

 

수년 전 미국 TV 프로그램 중에 밴드오브 브라더스라는 드라마가 있었습니다. 2차 세계 대전 중에, 미국 연합군의 ‘Easy Company :이지 중대 의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입니다. 이 드라마의 주인공인 Major, Winters 소령은, 처음에는lieutenant:소위로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합니다. 그리고 전쟁에서 혁혁한 공을 세우면서 전쟁의 영웅이 됩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major:소령으로 진급하고, 히틀러가 자살하면서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제대를 합니다. 이 드라마의 실제 인물들이 지금도 여러 명 살아있습니다. 그리고 드라마의 제일 끝에, Major, Winters 소령을 비롯해서 여러 참전인물들을 인터뷰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중에 백발의 80은 훨씬 넘어 보이는 Winters 소령이 이런 말을 하면서 드라마는 끝이 납니다. 어느 날 손자가 자기에게 묻더랍니다..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전쟁의 영웅이었죠?’ 그러니까, 손자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아니, 나는 전쟁의 영웅이 아니야, 다만 영웅들과 함께 싸웠을 뿐이야!’

분명히 이분은 전쟁영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전우들이 진정한 영웅이었다고 말합니다.

축구 스타 메시

브라질에 축구 영웅 메시라는 선수가 있습니다. 얼마나 믿음이 좋은 사람인지 모릅니다. 이 선수는 바르셀로나 리그에서 만 71경기에서 74골을 넣을 정도로 세계적인 축구 천재입니다. 최고의 스트라이커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몰랐던 사실은 이 선수가 넣은 골 숫자보다, 다른 사람에게 골을 넣을 수 있도록 어시스트 해준 숫자가 더 많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면서 이 선수가 말하기를 나는 축구에서 어시스트가 매력적이라고 생각한다. 동료 선수가 골을 넣는 다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아마도 이러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어쩌면 동료들로부터 더 많은 어시스트를 받아서 골을 넣었는지도 모릅니다.

오늘은 겸손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기 원합니다.  구약 성경에는 이스라엘 초대왕 사울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당시 그가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선택 받게 된 이유는 한마디로 겸손했기 때문입니다. 그가 왕으로 택함을 받았을 때 한 말을 기억하십니까?
사울이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이스라엘 지파의 가장 작은 지파 베냐민 사람이오며, 나의 가족은 베냐민 지파 모든 가족 중에 가장 미약하지 아니하나이까. 당신이 어찌하여 내게 이같이 말씀하시나이까?”
여러분 사울이 얼마나 겸손하였습니까?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왕이 된 후 어느 날 부터인가 그는 교만해짐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버림을 받게 됩니다. 지금도 마찬가지 입니다. 사람이 아무리 능력이 있고, 재물이 많고, 지식이 있다고 해도, 교만 하면 버리십니다. 사울 왕의 결정적 잘못은 제사장만이 할 수 있는 제사를 왕의 권한을 가지고 행한 일이었습니다. 이것이 교만 이었고그것이 바로 하나님 눈 밖에 난 이유였습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우리의 신앙이 성숙해 가는 과정에 있어서 가장 빠지기 쉬운 것이 이 교만이라는 함정입니다. 교만은 죽음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우리가 교만 이라는 함정에 빠져들지 않게 하기 위해서 때로 고통이라는 예방주사를 주시기도 하십니다. 사도바울은 학식도 많고 수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얼마든지 교만할 수 있었지만 마지막까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겸손하였습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이 이처럼 교만하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육체의 가시 때문이었다고 그는 고백합니다. 그는 불치병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불치병이라는 육체의 가시를 통해 교만의 병에 걸리지 않도록 예방주사를 놔 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만 하지 않았다는 것이 사도바울의 고백입니다. (고후 12:7)

그래서 사람들은 이런 경우를 고난의 신비 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주님은 때로 우리들의 자녀의 문제 때문에, 남편과 아내의 문제 때문에, 물질의 어려움으로 인해, 학벌로 인해, 외모로 인해, 교만 이라는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예방하고 계십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왜 우리가 교만에 빠지지 않도록 염려하십니까? 그 이유는 교만하면 하나님께서 버리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어떻게라도 버리지 않으시려고, 고난이라는 예방주사라도 주어서, 겸손케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우리가 교만에 빠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살펴 보기를 원합니다.

 

1.  첫째로, 우리가 교만에 빠지지 않으려면, 언제나 나를 높이지 말고 하나님을 높여야 합니다.

 

이런 말을 하면 나는 나를 높이지 않는다 고 하는 분들이 많겠지만 사실 우리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교만이라는 것이 우리 내면에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모릅니다.  

 

오늘 본문에 느브갓네살 왕 이 나옵니다. 이 느브갓네살 왕은 교만 때문에, 엄청난 댓가를 치러야 했습니다. 그는 7년 동안 짐승처럼 살아야 하는 큰 댓가를 치릅니다. 그가 누리던 영화는 한 순간 사라지고 그는 사람에게서 쫓겨나 들짐승과 함께 살며, 소처럼 풀을 뜯고, 이슬에 젖어 7년간 비참하게 지냅니다.

30절을 보시면 느브갓네살 왕이 이렇게 말합니다. 나 왕이 말하여 이르되 이 큰 바벨론은 내가 능력과 권세로 건설하여 나의 도성으로 삼고 이것으로 내 위엄의 영광을 나타낸 것이 아니냐 하였더니여기 보시면 라는 말이 여러 번 나옵니다. ‘나 왕이 말이여 이르되’, ‘내 능력과 권세’, ‘나의 도성’, ‘내 위엄의 영광

교만한 사람의 특징은 나 중심적이라는 것입니다. 항상 나 밖에 모릅니다. 다른 사람을 잘 배려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의 사정도, 다른 사람의 고통도, 다른 사람의 마음도 헤아리지 않습니다.

 

느브갓네살왕의 이 말이 그 입에서 채 떨어지기도 전에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바로 31절에 이 말이 아직도 나 왕의 입에 있을 때에 하늘에서 소리가 내려 이르되 느부갓네살 왕아 네게 말하노니 나라의 왕위가 네게서 떠났느니라교만이 하늘을 찌르자, 하나님은 왕의 자리를 빼앗아 버립니다. 완전히 낮추십니다. 짐승처럼 살도록 낮추십니다.

그런데 깨닫는데도 사람마다 유형이 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말씀을 듣는 즉시, 믿어지고 깨달아지는 백부장과 같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매를 맞아야만 비로소 깨닫는 느브갓네살 왕 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이렇게 매 맞고 늦게라도 깨달으니 다행이죠.

죽고 난 후에야 깨달은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중에 부자 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유형의 사람이 되길 원하십니까?

지혜로운 사람은 오랜 시간 연단 받기 전에 빨리 깨닫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여러분, 자기를 높이지 마시기 바랍니다. 자기를 높이면 하나님도 떠나시지만, 사람들도 나를 떠나갑니다. 사람들은 겸손한 사람들 곁에 있기를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나의 사정을 알아주고, 나의 심정을 이해하고, 대화가 되는 사람 옆에 있기를 좋아합니다. 그러므로 만약 내 주변에 사람이 없다면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교만하지는 않았는지점검해 봐야 합니다.

교만이 하늘을 찌르던 느부갓네살 왕이 언제 정신을 차렸습니까? 34절에, 하늘을 우러러 보았더니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느브갓네살왕이 하늘을 보고서야정신을 되찾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교만했던 왕이었지만, 그가 다시 하늘을 우러러 보았을 때, 제 정신을 주시고,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고, 회복시켜주셨습니다.

36
절이 느부갓네살왕의 고백입니다. “그 때에 내 총명이 내게로 돌아왔고 또 내 나라의 영광에 대하여도 내 위엄과 광명이 내게로 돌아왔고 또 나의 모사들과 관원들이 내게 찾아오니 내가 내 나라에서 다시 세움을 받고 또 지극한 위세가 내게 더하였느니라

 

느브갓네살왕이, 예전에는 만 알았습니다. 내 처지만 생각했습니다. 내 생각만 했었습니다. 그러다가, 하늘을 우러러 본 다음에, 제정신을 차리고 겸손해 지니까, ‘모사들과 관원들이 내게 찾아 왔다 고 말합니다.

교만할 때는, 다 떠나갔던 주변의 사람들이, 겸손하게 되니까, 하나 둘 다시 돌아오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이 말씀하는 분명한 사실은, 하나님은 겸손한 사람을 기뻐하시고 사용하신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교만한 사람을 쓰신 적이 단 한번도 없습니다. 겸손해야 성공합니다. 겸손해야 하나님에게 사랑받고, 사람에게도 사랑받습니다.

 

원하옵기는, 우리 성도님만큼은 교만의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항상 자기를 낮추고, 남을 돌아보고, 하늘을 우러러 보며 사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2.
두번째로, 교만의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면, 나보다 상대방을 높여주십시오.


여러분, 겸손해지는 단계에서 나를 낮추는 것이 소극적인 자세라면, 상대방을 높이는 것은 적극적인 자세입니다. 성경은 형제를 나보다 낫게 여기라 말씀합니다. 2:3절을 보시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형제에게 먼저 문안하고, 그를 먼저 존중하라말씀합니다.

내 아내가 나보다 낫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높여 주십시오. 내 친구가 나보다 낫다고 생각하고 그를 높여 주십시오. 교회안에서도 옆에 있는 성도가 나보다 낫다고 생각하고 그를 귀히 여겨 주시기 바랍니다.

한번 따라해보겠습니다.

당신이 나보다 잘 생겼습니다. 당신이 나보다 유능하십니다. 당신의 생각이 더 지혜롭습니다. 당신이 나보다 생각이 더 깊으십니다. 당신이 나보다 더 착한 사람입니다.

유명한 철학자 니체라는 사람이 있죠. 이 사람은 자기가 가진 지식과 학문에 너무 교만한 나머지 기독교 사상은 노예 사상 이라고 비웃었었습니다. 그렇게 잘난 그가 죽을때는 미쳐서 죽었습니다.

20세기에 들어와서 독일의 히틀러가 이 니체의 사상을 정치에 이용해서 독일 민족은 아주 우월한 민족이고, 유태인들은 야만인들이라고해서 유태인 600만명을 학살했습니다. 그리고 그도 끝내는 자기 사무실 지하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여러분, 교만한 자는 반드시 망합니다. 교만하지 말아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5: 5절을 보시면, 교회 안에서는 서로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고 말씀합니다.
야고보서 4: 10절에 보시면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말씀합니다.

누가복음 14: 11절에는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 지고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으시기 전날까지 겸손하셨어요.

잡히시기 전날 밤 수건으로 허리를 동이시고 친히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시면서 겸손의 도를 보여 주신 것입니다.
그런 주님께서 살아계실 때, 겸손한 세리의 기도를 들어 주셨다고 성경은 말 합니다.


어느날 하고이 싸웠답니다. 코가 말하길.. 너는 쑥 들어가고 볼품이 없어 자랑할 것이 하나도 없어, 얼굴이 예쁜것은 내가 오뚝하게 나와서야.’ 듣고 있던 눈이 열을 받았습니다.
뭐야? 그래? 그렇다면 너 한번 당해 볼래? 눈은 코의 말에 눈을 감아 버렸습니다. 그러자 넘어져 코가 깨지고 말았어요. 솜으로 코구멍을 틀어막은 코는 생각할수록 억울해서 그냥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니, 지금까지 내가 냄새를 맡아 주어서 잘못된 것을 먹지 않아 건강하게 산 것도 모르고...’

코가 솜으로 코를 틀어 막고 있으니까, 냄새를 맡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눈이 오줌을 보리차인줄 알고 마시고, 대변으로 상추쌈을 싸 먹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런데요. 눈과 코가 싸움을 하면, 다치는 것은 누구입니까? 몸이 다칩니다.

 

교회안에서, 서로 교만해서 싸우면 누가 다칩니까?  교회가 다칩니다. 교회가 아파합니다.

 

그래서 여러분, 교만하지 않기 위해서 늘 두 가지를 마음속에 새기고 살기 원합니다.
첫째는,나를 높이지 말고 하나님을 높이시기 바랍니다.
두번째는, 남을 나보다 높이시기 바랍니다.

원하옵기는 우리 교회 안에, 겸손하게 말하는 사람, 겸손한 태도가 몸에 벤 사람, 머리 숙여 허리 굽혀 인사하고 섬기는 모습, 우는 자와 함께 울어주고 웃는 자와 함께 웃어주는 인간미 넘치는 겸손한 사람들, 그런 공동체가 되면 좋겠습니다.
겸손한 장로님, 겸손한 권사님, 겸손한 집사님, 겸손한 성도님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모일 때마다 사랑과 선행을 격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겸손이 가득한 공동체가 되어 하나님께 영광 돌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