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과 탄식과 영광
로마서 8:18-30
지난 시간에는 ‘영의 생각과 육신의 생각’ 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그래서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며,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오늘의 말씀은 이렇게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영의 생각을 하며 성령의 법에 따라 살아야 하는데, 이 죄악 세상에서 어떻게 승리하며 살아야 하는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미국 오페라계에 할버튼 이라고 하는 유명한 가수가 있었다고 합니다. 어느 날 이 사람이 자기 아들과 이웃집 아이가 놀면서 주고받는 대화를 집안에서 살짝 엿듣게 되었습니다. 이웃 아이가 자기 아들을 보고 “우리 아버지는 시장님과 (Mayor) 잘 아는 사이야.” 라고 하면서 자랑하니까 그 말을 들은 자기 아들이 “우리 아버지는 하나님을 잘 아셔”하고 대꾸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들의 대답을 듣는 순간 그만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해서 서재로 달려 들어가 실컷 울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너무나도 황홀하고 자랑스런 일입니다. 그렇지만 악한 세상에서는 잘 통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의 눈에는 시장님을 잘 안다는 것이 훨씬 매력있게 들릴지 모릅니다. 왜 그렇습니까? 세상 사람들은 이 땅의 것이 전부인 것으로 생각하며 살기 때문인 것입니다.
오늘 말씀이 그런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가 세상 살아가면서 싸워 이겨야 하는 영적 전쟁이 있는데, 이것을 가지고 오늘 본문은 ‘고난과 탄식’ 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세상을 이기며 살아가기 위해서는 이 ‘고난과 탄식’ 이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고난 후에 영광이 있는 것입니다.
18절을 보시면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 할 수 없다” 고 말씀합니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신분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이 고난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고난을 잘 통과하면, 앞으로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는 비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영광을 바라보고 사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22절에도 ‘우리가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다’ 고 말씀합니다.
여러분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서 살 때, 세상이 전혀 나에게 bother 가 되지 않는 다면 이건 생각해 봐야 할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도 분명히 ‘세상이 너희를 미워 할 것이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으로부터 미움을 당해야 정상입니다. 그래서 진짜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서 사는 것이 어쩌면 고통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의 입에서는 탄식의 소리가 나와야 합니다.
세상을 바라보고 “주여, 어찌 하오리까!” 하는 안타까움의 탄식이 나와야 합니다.
신세 한탄하는 탄식 말고요. 죄악 세상을 바라보고 안타까워하는 탄식을 말하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8:12절에 예수님께서도 이 세대를 보면서 ‘탄식’ 하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럼 이렇게 우리가 세상에서 고난을 당하며, 우리의 입에서는 세상을 향한 탄식의 소리가 나올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이 고난과 탄식을 잘 통과 할 수 있습니까?
오늘 이 고난을 잘 통과하는 방법을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두 가지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1) 첫째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잊지 말고 구원의 날을 기다리며 살라고 말씀합니다.
23절을 보시면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리라” 말씀합니다.
이런 말입니다. 너희 들은 누가 뭐래도, 하나님의 자녀의 신분을 가지고 있으니까, 고난스럽더라도 자녀들을 모두 구원하시는 은혜의 그날을 기다리며 견디라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기다리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기다리며, 예수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기독교 역사 가운데 수많은 핍박의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 초대 교회시대가 가장 핍박이 심했는데, 그 때 그리스도인들이 그 무서운 핍박을 견딜 수 있었던 이유는 다른 것이 없었습니다. 오로지 구원의 날을 기다리며, 죽어도 하나님 앞에 선다는 그 날을 바라보고 견디며 살았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힘과 용기가 어디서 나옵니까? 구원을 기다리는 소망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이 소망 가지고 고난을 잘 통과하면, 18절에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다” 고 격려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시편기자는 ‘고난 당하는 것이 내게 유익이라’ 고 고백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만약 고난을 벗어나기 위해서 어떻게 하든지 이 세상에서 낙을 누려 보려고 세상과 짝하여 산다면, 야고보서 4:4 절에 말씀에 “세상과 벗 됨이 하나님과 원수 되는 줄 을 알지 못하느뇨?” 말씀합니다.
지난 시간에도 육신의 생각은 ‘사망’ 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시죠.
그러므로 우리는 영광의 그날을 소망하며 고난 가운데 끝까지 인내하여야 하는 사명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래서 고난을 잘 통과하는 첫 번째 방법은, 구원이 완성되는 그날을 기다리며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2) 두 번째로, 고난을 잘 통과하는 방법은 보이지 않는 소망을 생각하며 통과하라고 말씀합니다.
24절을 보시면 “보이는 소망은 소망이 아니라” 고 말씀합니다. 그러면서 25절에 “우리가 보지 못할 것을 바라면서 참음으로 기다리라” 고 말씀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소망은 보이지 않는 소망이어야 합니다.
이 보이지 않는 소망은 누가 빼앗아 갈 수가 없는 소망입니다. 보이지 않기 때문에 감히 누가 손댈 수가 없습니다.
이 소망은 어떤 소망입니까?
18절에 말씀대로 “장차 나타날 영광의 소망” 입니다. 이것은 현재의 고난과 비교가 되지 않는 다고 말씀합니다.
18절을 보시면 “생각하건데” 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쉬운 한글 성경은 ‘생각해봐라’ 라고 번역해 놓았습니다. 영어 성경은 ‘consider’ 로 번역했습니다. 한번 심사숙고 해 보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심사숙고 하냐면, 다시 18절을 보시면 ‘현재와 장차’ 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현재의 고난을 깊이 생각해 보고, 장차 받을 영광이 어떤지 깊이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현재의 고난과 장차 받을 영광을 ‘한번 비교해 보라’ 는 것입니다.
장차 받을 영광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소망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학생은 졸업식의 영광을 생각하며 공부를 합니다.
운동선수는 금메달을 목에 거는 영광을 생각하며 열심히 훈련합니다.
이 받을 영광을 생각하지 않고 사는 사람들은 미래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영국의 어느 의학잡지에 실렸던 이야기입니다. 5살 난 아들을 데리고 어머니가 점쟁이를 찾아갔습니다. 점쟁이가 아들을 보더니 “얘는 43살 밖에 살지 못하겠구만.”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이 어린 아이의 마음 속에 깊이 새겨졌습니다. 그런 채로 한 평생을 살아가는데, 초조한 마음이 날로 증폭되는 것입니다. 43살이 가까울수록 마음이 점점 더 괴로워서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43살이 되는 생일을 당하고 1주일만에 죽었습니다. 병명은 마약 중독이었습니다.
이 사람이 누군가하면 엘비스 프레슬리라는 미국의 유명한 가수입니다. 이 사람은 세계적인 인물이라 많은 영광을 누렸지만, 어릴 때 점쟁이가 했던 그 소리로 말미암아 평행토록 어두운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괴로워서 마약에 빠졌고, 필경은 중독되어 죽게 된 것입니다. 아무리 화려한 인생을 살아 많은 사람에게 추앙 받았어도 밝은 미래가 없으면 오늘을 살 길이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현재와 미래를 한번 비교해 보시길 바랍니다. 사람과 사람을 비교하는 것을 옳지 않지만, 오늘 성경은 ‘너의 현재와 미래를 비교해 보라’ 고 말씀합니다.
로마를 방문하는 사람들은 여러 가지를 구경합니다. 바티칸 궁전의 유물, 박물관, 영화 벤 허를 찍었다는 경기장이며, 수천 년 된 유물, 유적이 즐비하게 있습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사람들에게 가장 감동을 주는 곳은 “카타콤”이라는 곳입니다. 이곳은 깊게 사방으로 뻗어있는 인공 동굴입니다. 수만 명의 그리스도인들이 박해를 피해 그 속에 들어가서 신앙 생활을 하다가 주님 앞으로 갔습니다.
왜 그렇게 살았습니까?
현재의 고난과 장차 받을 영광을 비교해 보니까, 견딜 만 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죽음을 넘어서 장차올 세계를 바라본 것입니다.
원하옵기는 우리 귀한 성도님들도, 장차 올 미래를 바라보고 승리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부탁을 드립니다.
현재의 삶이 고난스럽더라도, 입에서 탄식의 소리가 나온다 할 지라도, 우리를 자녀 삼으시고, 마지막에 구원하시고, 영광의 나라로 인도하실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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