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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도/WCC/세계정부

송명희 시인의 책 - 표 간결 요약

by Peartree 2012. 12. 30.





두가지 표

 

 편리하다고 넓은 길로 가지 말며

 안전하다고 세상에 속하지 말라

 편리하다고 안전하다 유혹해도 속지 말라

 

 어린양의 인을 받으면

 세상의 미움을 당하나

 천국에서는 환영 받겠고

 

 짐승의 표를 받으면

 세상에서는 대접 받아도

 천국은 포기 함이라

 

 모든 슬픔과 고난을 다 당하나

 예수의 보혈로 내 마음의 문설주에 바르고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바라 보리라

 

 짐승의 표를 한 번 받고 나면

 영생을 잃음이니

 그 모든 소유가 다 헛 것이라

 

 세상에서 잠시 누리는 행복은 안개처럼 사라지며

 세상에서 잠깐 고통당함은 없어지지 않는 영광이니

 만유의 주 하나님을 볼 뿐이라

 

 

송명희 시인의 소설 표를 잡고 찍은 차인표 신애라 부부

 

 

송명희 시인의 소설 표를 잡고 찍은 차인표 신애라 부부

 

 

한 블러거의  책 서평

 

“ 세상에는 두가지 표가 있다.

당신과 나에게도 두가지 표가 있다. “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인체 칩이라기 보다 그 시스템을 조정하게 될 정권을 알리고 싶다.

전쟁을 부르고 지나친 기독교적 마인드로 예루살렘을 회복하며 평화와 협상을 가장하는 절대 권력의 그가 적그리스도인 사실을 알리고 싶다.

“ 송명희 작가의 소설을 집필한 동기

 

짐승의 표와 인체에 이식하는 칩과 관련된 이야기는 사실 너무나도 유명한 이야기고, 또 찬반 양론이 기독교 내부에서도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는 주제이기도 하다. 


 

요한계시록 13

내가 보니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오는데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이라

그 뿔에는 열 왕관이 있고 그 머리들에는 신성 모독 하는 이름들이 있더라

 

내가 본 짐승은 표범과 비슷하고 그 발은 곰의 발 같고 그 입은 사자의 입 같은데

용이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그에게 주었더라

 

그의 머리 하나가 상하여 죽게 된 것 같더니 그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으매

온 땅이 놀랍게 여겨 짐승을 따르고

용이 짐승에게 권세를 주므로 용에게 경배하며 짐승에게 경배하여 이르되

누가 이 짐승과 같으냐 누가 능히 이와 더불어 싸우리요 하더라

 

또 짐승이 과장되고 신성 모독을 말하는 입을 받고 또 마흔두 달 동안 일할 권세를 받으니라

 

짐승이 입을 벌려 하나님을 향하여 비방하되 그의 이름과 그의 장막 곧 하늘에 사는 자들을 비방하더라

또 권세를 받아 성도들과 싸워 이기게 되고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를 받으니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이름이 기록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그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누구든지 귀가 있거든 들을지어다

 

사로잡힐 자는 사로잡혀 갈 것이요 칼에 죽을 자는 마땅히 칼에 죽을 것이니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여기 있느니라

 

내가 보매 또 다른 짐승이 땅에서 올라오니 어린 양 같이 두 뿔이 있고 용처럼 말을 하더라

그가 먼저 나온 짐승의 모든 권세를 그 앞에서 행하고 땅과 땅에 사는 자들을 처음 짐승에게 경배하게 하니

곧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은 자니라

 

큰 이적을 행하되 심지어 사람들 앞에서 불이 하늘로부터 땅에 내려오게 하고

짐승 앞에서 받은 바 이적을 행함으로 땅에 거하는 자들을 미혹하며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칼에 상하였다가 살아난 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라 하더라

 

그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

 

그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가난한 자나 자유인이나 종들에게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

 

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한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보라

그것은 사람의 수니 그의 수는 육백육십육이니라

 

 

 

요약하자면,

말세에는 신용카드, 은행통장, 신분증 등을 통합한 정보를 담고 있는 칩이 개발이 될 것이고, 그것을 사람의 오른 손등이나 이마에 이식하게 될 테인데, 그것이 짐승의 표(666)이고 그것을 받는 순간 사람의 신경계를 조작할 수 있게 되어 인성을 상실하고 사탄의 정부에 노예가 된다는 이야기이다.

 

일단, 이것은 끝없는 논란을 낳고 있는 주제이기도 한데, 이것에 대한 나의 생각은 이전 글에 올린 바가 있다.

 

하지만, 서두에서도 밝혔듯이 나 역시 우리가 주의해야 할 부분은 칩이 아닌 그 배후의 세력이라는 송명희 작가의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책 이야기.

 

사실 시인된 입장에서 소설을 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문장력과 상황전재는 사실 A급 소설이라고 보기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읽는 이의 영혼을 떨리게 하는 이유는 그 속에 담긴 메세지의 진실성 때문이 아닐런지.

 

또한 책의 메세지는 "그 일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일어날 것인가?" 라기보다 "그 일이 일어났을 때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라는 점이다.

 

끝없는 회유와 압박, 조롱과 멸시, 고독과 궁핍함 가운데에서 과연 나는, 우리는 끝까지 신앙을 지킬 수 있는가?

  

우리의 일상속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토록 많은 시험과 연단을 허락하시는 이유는 아마도 이 마지막 때의 불같은 고난 속에서도 믿음을 저버리지 않을 만큼 굳건한 믿음을 훈련시키시기 위함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믿음의 문제

 

만약 나에게 그런 상황이 닥쳐온다면 나는 과연 믿음을 지킬 수 있을 것인가?

 

이것은 참으로 어려운 질문이다.

 

그런데 만약, 문제가 바뀐다면 어떨까?

 

누군가가 나에게 남자이길 포기하고 여자로 살아가라는 것을 강요하고, 고문한다면?

 

아마 끝까지 나는 "내가 남자라는 사실"을 굽히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길 빈다..)

 

결국, "온전한 믿음"이라는 것은 "온전한 앎"과 동의어이다.

 

다만 믿는다는 것은 타인에게 어떤 가시적이고 객관적인 증거를 내어보일 수 없다는 점에서만 차이가 있을 뿐.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에베소서 4 13~14)

    

사실, 신앙의 문제가 아닌 경우에도 대부분 어떤 사실을 증명해야하는데 증거가 없을 경우 자신의 죽음으로써 증명을 하는 경우가 있듯이, 그렇게 믿음은 자신의 삶과 죽음으로써만 증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핍박을 이길 수 있는 믿음이라는 것은 얼마나 ""의 영역에 가깝게 다가갔느냐의 문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남은 이야기.

 

첫번째로, 위 책은 짐승의 표(666)을 어떤 형태의 칩(Chip)으로 보고 있다.

 

나는 이전 글에서도 밝혔듯이 그 견해에 동의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나는 그럼에도 어떤 견해에 대해서도 100% 동의하지도, 100% 부정하지도 않는다.

항상 여지는 남겨놓고 바라본다.

 

두번째로, 이 책은 "부분적 휴거설"을 채택하고 있다.

 

부분적 휴거설

 

부분적 휴거설(Partial Rapture View)

부분적 휴거설이란, 예수 그리스도께서 공중에 은밀히 재림하실 때 오직 승리한 신자들만 휴거되며 지상에는 대 환난이 있을 것이라는 견해이다. 환난전 휴거설의 한 변형이다. J. S. 싸이스, G. H. 랭 등이 주장했다.

이 견해의 근거로 다음과 같은 구절들이 제시되었다.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누가복음 21:36, )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자기를 간절히 기다리는 자들에게

죄와 관계 없이 두번째 나타나시리라.

(히브리서 9:28)

자녀들아, 이제 그 안에 거하라. 이는 주께서 나타내신 바 되면 그의 강림하실 때에

우리로 담대함을 얻고 그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요한일서 2:28)

그러나 이 견해는 다음 구절들에 의해 반박된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로마서 10:13 )

--> 구원과 멸망의 둘 중에 하나이지, 그 중간은 없다.

우리가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고린도전서 15:51)

부분적 휴거설은 마치 개신교적 연옥설과 같다.

 

한줄 요약 : 부분적 휴거설이란, 매우 신실한 성도는 휴거되고 나머지 좀 덜 된 성도는 남아서 환난을 겪다가 나중에 구원을 받는다는 이야기인데, 정통적인 견해로 볼수는 없다.

  

 

물론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그럴 수도 있겠다"고 바라본다.

 

하지만 나는 환난후 휴거설을 지지한다

 

환난후 휴거설

 

환난 후() 휴거설(Post-Tribulational Rapture View)

환난 후 휴거설이란, 대 환난 시대가 지난 후, 예수 그리스도께서 단일하게(단회적으로) 영광스럽게, 눈으로 볼 수 있게 다시 오실 때, 모든 그리스도인들이--죽은 자들은 부활하고 살아 있는 자들은 변화되어--하늘로 들리움 받아 다시 오시는 주님을 영접하게 된다는 견해이다. 이것이 성경적이며 역사적인 견해이다. 전통적 종말론은 어느 파의 것이든지 주의 재림의 단일성과 재림시의 휴거를 믿었다. 단지 세대주의적 휴거론의 등장으로 휴거에 대한 여러 견해들이 나뉜 것이었다.

그러므로 전통적, 성경적 신학에서 휴거는 특별한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

휴거는 성도들이 재림의 주님을 영접하는 사건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세대주의 신학에서처럼 '대 환난을 피하기 위한 들리움'이나 그런 의미에서의 복된 소망이 아니다.

예수의 재림까지 살아있는 성도들이 공중에서 예수를 맞게 되는 사건이 곧 휴거가 된다.

이는 주께서 친히 외치는 소리와 천사장의 목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와 함께 하늘로부터 내려오시며,

그리스도 안에 있는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아있는 자들은 저희와 함께 공중에서 주를 만나기 위하여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갈 것이며,

그리하여 우리가 주와 함께 항상 있을 것임이니라.

(데살로니가전서 4:16, 17)

저가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마태복음 24:31)

 

물론, 진리는 다수결이나 전통이 아닌 관계로 나는 다른 견해에 대해서도 어느정도 마음을 열어두고 있다.

 

 

 

송명희 표-대환난소설을 읽고 <신앙의 순수성을 회복하라>-갓피플 독자서평

 

 

요즘 들려오는 소식은 참으로 암울하기 그지 없다. 지진해일로 인하여 수십만명이 목숨을 읽고, 테러와 전쟁으로 수 많은 목숨을 잃고, 나아가 경제적인 어려움과 미움과 증오가 하늘을 찌르고, 마침내 우상주의, 스타주의로 온통 나라 안팎이 뜨거운 화두가 되는 이 시대에 정말 예수의 재림이 가까이 왔음을 짐작케 한다.

 

그러나 요즘 많은 신앙인들은 이런 예수재림신앙은 잊고 게으르고 나태한 신앙생활로 세상 속에서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수준에 이르렀음을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남을 탓하자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 한국교회와 이 나라 민족을 위해 기도하지 않은 것임을 스스로 반성해 본다.

 

이런 와중에 성탄의 계절 12 17일에 송명희 시인이 쓴 표-대환난소설(짐승표666)은 말세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떤 신앙자세를 가지고 살아갈 것인지를 알려 주고 있다.

 

이 소설은 요한계시록 13:8 짐승의 수 666을 근거로 하였고, 예수님의 공중재림과 교회의 휴거 그리고 7년 대환난을 배경으로 하여 쓰여진 것이다. 이것은 기존의 세대주의적 종말론자의 주장(성경에서의 종말을 문자적, 기계적으로 해석, 그래서 인류의 역사를 7세대로 구분하여 그 마지막 시기<서기2000>가 천년왕국 시작, 예수재림을 공중재림과 지상재림으로 나누고, 공중재림시 교회의 휴거 및 7년 대환난 후 예수지상재림을 거처 지상천년왕국 이룬다고 주장)을 따라 짐승표를 전자칩과 연결하여 소설화한 것이다. 본 소설이 다소 장로교 신학적 입장(역사적 전천년설과 무천년설을 말함. 예수의 재림은 현 시대를 거친 후 예수공중재림과 지상재림을 구분하지 않고, 홀연히 단번에 재림하여 성도들과 함께 천년왕국을 이루며 영원히 산다는 주장)과는 차이가 있다 할지라도 고난과 환난의 시대에 살아가는 우리에게 크나 큰 유익을 준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전자칩을 받는 것을 짐승표를 받은 것 즉 배교의 의미로 해석하면서 이것을 받지 않기 위한 등장인물(동일, 요셉, 아영)의 목숨 건 투쟁은 우리에게 얼마나 큰 감동을 주는 지 모른다. 바로 참 신앙의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다.

 

따라서 본 소설은 말세의식이 약화되고, 예수재림신앙이 식어지는 오늘의 시대에 근신하고 깨어있는 참 신앙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그리고 세상의 고난과 환난이 끊이지 않는 오늘의 시대에 세상의 핍박과 고난을 이겨내고 변함없는 신실한 신앙을 지켜 가라는 메시지도 준다.

 

특히 본 소설이 배교 라는 상징적인 표인 전자칩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다시 한번 신앙의 순수성을 깨닫게 해 주고 있다. 본인은 전자칩을 신앙의 포기, 타락한 세상을 향한 선택과 타협, 세상의 향락과 쾌락과 즐거움을 위해 살겠다는 불신앙을 뜻하는 것으로 보았다.

 

만약 그렇다면, 우리에게도 전자칩을 받으라는 미혹의 손길이 있지 않을까! 지금 나를 미혹하는 전자칩은 무엇인가? 혹시 나의 신앙을 방해하는 전자칩은 무엇인가? 내가 택한 전자칩이이 혹시 불신앙과 배교에로 이끌고 있지는 않은가! 나는 과연 순수한 신앙을 지키기 위해 전자칩과 세상과 맞서 싸우고 있는가? 등 많은 것을 우리에게 질문을 던져주고 있다. 우리는 이 물음에 순수한 신앙을 지키기 위한 노력과 바른 선택으로 우리의 신앙을 확고히 지켜나가야 할 것이다. 바로 오늘 이 시간 부터~~

 

송명희 시인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메시지-생명의말씀사 독자서평

 

시인 송명희의 말세와 주님의 재림이라는 영적 체험을 소설이라는 매체로 옮겨 적은 신앙 고백서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주님의 재림이 임박해 있다는 사실을 시대적 징조를 통해 우리에게 알려주고, 영적으로 침체되어 있는 한국 성도들에게 깨어 기도하여 주님의 재림의 때를 깨닫고 준비하자는 영적 각성을 촉구하는 메시지다.

 

 

혼탁해져 가는 사회, 세속화된 교회 그리고 깨져 가는 가정 속에서 많은 우리들의 젊은이들이 방황하고 자신을 세상에 내어 던지고 있는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의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한번쯤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독자 서평 

 말세에 꼭 읽어야 할 중요한 책입니다.

 

저도 소개받고 사봤는데, 정말 제대로 깨어 살아야겠다는 결단을 하게 했죠.

 

마지막 때의 극단적 상황과 요한계시록에서 알려주신

 

하나님의 역사를 계시를 통해 재구성한 소설입니다.

 

재림의 주님을 찬양하고 간절히 사모합시다...

 

정말 그러한 세상이 다가올까?-갓피플 독자서평

 

정말 그러한 세상이 다가올까?

그러한 세상이 오기전에 주님이 오시면 안될까?

책을 덮으면서 든 생각이었습니다. 언제나 이야기는 하지만

어느순간부터 금기시 되어온 종말론과 주님의 재림론.

종말론이 사회에 좋지 않은 문제를 야기시키면서부터

어느순간 우리에게는 이 문제가 금기아닌 금기가 되어 버린 듯한 분위기를 느끼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에 저자는 전자칩이라는 것을 이용하여

우리에게 이러한 심각성을 일깨워 줄려고 한 것은 아닐까 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지금 이 순간 우리가 휴거가 되더라도 이땅에 남아 있는 자들은

남아 있는 자들 나름대로의 주님의 뜻과 목적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한 뜻을 헤아리는 자와 헤아리지 못하고 배교를 하는 자!

이 소설은 휴거라는 소제를 이용하여 우리들 스스로

우리의 신앙을 배교하고 있지는 않는지를 뒤돌아 보게도 합니다.

사소한 문제로 우리는 주님을 떠나고 있지는 않는지, 또한 배교는 하고 있지 않는지 살펴보게 만듭니다.

전자칩을 받지 않을려고 목숨을 거는 순교도 마다않는 주인공들!

어느 나라에서는 전자칩을 시행할려고 한다는 내용의

기사를 언제가 언뜻 본 기억이 납니다.

하나님이 송명희 시인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시려고 하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영혼의 시를 써온 하늘의 시인인 저자가 하나님의 음성을

소설로 표현하고자 이 책을 출판하게 되었다고 집필동기에서

밝힌것처럼 뒤에 지나친 기독교적 마인드로 조종하는 적그리스도를

우리는 바로 알아야 할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시만 써 오던 저자의 작품인지라

간결하고 빠른 속도로 넘어가는 극본식의 소설로 조금 어색한 면도 없지 않으나 저자가 지금 우리에게 주고자 하는 메시지를

느낄수가 있었습니다.

차라리 그러한 간결한 문체와 빠른 진행이 군더더기 없어

시원한 면도 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우리 친구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선물을 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