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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의 창고/ 비전나리의 설교

2010년 4월 주일예배- 누우셨던 곳을 보라 마태복음 28장 1-10

by Peartree 2012. 12. 20.

누우셨던 곳을 보라

마태복음 28장 1-10

 

미국의 노부부가 성지순례차 고향 땅 이스라엘을 찾았다. 그런데 갑자기 아내가 심장마비로 숨을 거두고 말았다. 남편은 장의사를 찾아 시신 처리와 장례 절차를 물었다. 장의사는 두 가지 방법을 제시했다. 하나는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땅에 묻힐 경우 축복도 받고 비용도 150달러면 충분하다는 것. 다른 하나는 시신을 방부처리해 미국으로 공수하는 방식인데, 절차도 번거롭고 비용도 5000달러나 된다는 것이었다. 노인은 망설이다 결심했다. 비싸더라도 미국으로 시신을 옮겨 묘지에 묻겠다는 것이었다. 유대 땅에 묻히면 그 옛날 어느 분처럼 자기 아내가 부활할지도 모르는데, 그게 감당하기 어렵다는 '뼈 있는' 이유였다.

이렇게 부활을 잘 믿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무리 설명해도 부활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이땅에 더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믿든 믿지 않든 예수님께서 다시 사신 것은 아무리 부인하고 싶어도 역사적으로 분명한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영국의 한 젊은 변호사 프랭크 모리슨이라고 하는 사람이 죽은 자의 부활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반박하는 글을 쓰기 위하여 세밀한 조사와 연구 끝에 놀랄만한 사건이 발생하고 말았다. 그는 연구를 종합하여 책을 썼는데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사실을 송두리째 믿게 되었다는 것이다. 바로 그 책이 "Who moved the stone" "누가 돌을 옮겼나?"라는 유명한 책이었다.

 

오늘은 예수님께서 다시 사신 날입니다. 예수님께서 살아나셨는데, 여러분들 표정을 보니 전혀 기쁘지 않는 표정입니다. 오늘은 기뻐해야 하는 날입니다. 세상에서는 성탄절과 추수감사절에 대대적으로 행사를 하며 사람들로 하여금 지갑을 열어 선물 선동을 하도록 합니다. 그래서 블랙 프라이데이가 생긴 것입니다. 그날을 기점으로 대부분의 기업들이 적자에서 흑자로 들어선다는 뜻이랍니다. 다 세상사람들의 장사속입니다. 물론 기독교에서도 성탄절을 기뻐해야 합니다. 하지만, 성탄절보다 더 기쁜날은 부활절입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사시지 않았다면, 기독교 자체가 멸절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종교들이 생겨날 무렵, 불교나 마호멧교나 이슬람 같은 종교는 핍박이 없었는데, 유독 기독교만 핍팍을 많이 받았습니다. 사단은 초대 교회 때에는 기독교의 싹을 짜르려고 했습니다. 다른 종교같으면 그런 핍박이면 벌써 없어 졌을 텐데, 그러나 기독교는 살아남았습니다.

부활 신앙이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소망을 갖게 한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가 다른 종교와 틀린 것이 있다면 부활과 재림신앙입니다. 석가가 다시온다는 말 없습니다. 마호멧이 다시 온다는말 없습니다. 오직 주님만이 부활하시고 우리의 눈에 눈물을 닦아 주시기 위해서 다시 오실 것입니다.

 

그래서 초대교회시대 때 아우렐리우스 라는 로마의 16대 황제가 그의 친구에게 쓴 편지에서 당시의 기독교도들에 대하여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기독교는 정말 이해하기 힘든 새 종교 집단이다. 그들은 장례를 지내기 위해 묘지로 갈 때에도 마치 가벼운 소풍이 나가듯 노래를 부르며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라고 말하며 행진한다' 라고 썼다고 합니다. 맞습니다. 우리에게 죽음은 또 다른 새로운 삶의 출발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부활 하시는 기간동안에 어떠한 사건들이 생겼습니까? 성소 휘장이 찢어져 누구나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이것뿐이 아닙니다. 땅이 진동하여 바위가 터지는 지진이 있었고 무덤들이 열려 자던 성도들의 몸이 많이 일어나는 일도 생겼습니다. 마태복음 27장 53절 보시면 그때 무덤에서 다시 살아난 많은 성도들이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자신들의 몸을 보여주었습니다. 깜작 놀랄 일이죠. 성경은 그냥 많은 사람이라고 기록하고 있지만, 아마도 수 천명에 달하는 것으로 학자들은 추정합니다. 죽었던 사람들이 거리를 활보하며, 예수 그리스가 다시 사셨다라고 전하는 것을 상상해 보십시요. 그래서 종교 지도자들은 이 무리들을 그냥 이대로 두었다가는 유대교를 위협 할 것으로 예상하고 그때부터 핍박을 가하기 시작한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본문의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두려운 마음으로 안식후 첫날 (일요일) 새벽에 무덤을 보려고 왔습니다. 그때 지진이 나며 주의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와 무덤을 막고 있던 돌을 옮기고 그 위에 앉아 있습니다. 그리고는 천사가 여자들에게 너희는 무서워 말라 하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너희가 찾는 줄 내가 아노라' 라고 말합니다. 이후로 두 마리아는 처음에 무엇을 발견합니까?

 

  1. 빈 무덤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4대성인인 석가, 공자, 마호맷, 그리고 예수님입니다. 저는 4대 성인에 예수님을 같이 포함시킨다는 것 자체를 거부하는 사람입니다. 석가와 공자와 마호멧을 지으신 분이 예수님입니다. 그들은 피조물입니다. 그러나 예수님 그들을 창조한 창조주 입니다. 그런 분이 그들과 나란히 4대 성인에 속한다는 것이 맘에 들지 않습니다. 그들은 무덤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직도 땅속에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은 무덤이 없습니다. 묘비도 없습니다. 다시 살아 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이 빈무덤은 희망인 것입니다. 기쁨인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주와 함께 연합한자가 되었기 때문에 우리의 영혼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입니다. 혹시 주님 오시기전에 죽어 육신이 땅에 묻힌다 할지라도 둘째 부활에 잠다던 성도들을 먼저 일어난다고 말씀에 기록하고 있듯이 무덤 속에 있던 육신들은 새로운 몸으로 홀연히 변화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죽음에 대해서 이미 열어놓으셨습니다. 걱정할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 스스로가 무덤을 닫지만 않으면 승리하는 것입니다.

 

한때 석가모니의 뼈가 발견되었다고 인도를 위시한 불교국에서는 한동안 떠들썩 했었습니다. 석가모니의 이 유명한 뼈들은 잘 진열되어 수백 만 인도사람들의 경의속에 시가행진을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뼈 앞에 엎드려 있는 것을 지켜보고 있던 한 선교사가 그의 친구에게 "만약 저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뼈 하나라도 발견할 수 있었다면 기독교는 산산조작이 나고 말 것이다." 라고 했다. 기독교는 그들처럼 죽은 자를 믿는 종교가 아니요 산 자를 믿는 종교요, 죽을 수 밖에 없는 인간을 믿는 종교가 아니라 영원히 살아계시는 하나님을 믿는 종교이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날 새벽에 여자들이 향품을 예비해 가지고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가 예수님을 찾을 때 "어찌하여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나?"라고 하는 천사들의 책망을 들었다. 우리도 신앙 생활을 하면서 산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으려고 하는 때가 많은 것 같다. 주님을 죽은 자들 가운데서 찾으려고 하지 마지 살아계서서 우리의 가슴 속에서 살아서 역사하시는 주님을 발견하시기를 부탁을 드립니다.

 

  1. 갈릴리로 가야하는 사명을 발견합니다.

빈 무덤앞에서 부활을 확인한 막달라 마리아에게 천사는 빨리 갈릴리로 가라고 합니다. 부활의 기쁜소식을 전해야할 사명을 감당하라는 뜻입니다. 부활의 기쁜소식은 실망의 발걸음으로 갈릴리로 떠난 예수의 제자들에게 전해져야만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부활을 모르는 자들, 죽음을 두려워하는 자들, 실망하고 사는 자들이 살고 있는 갈릴리 마을로 전해져야 한다는것입니다.

 

지난주에 한국에는 큰 사건이 두 가지 있었습니다. 하나는 해군 함정 천안함이 폭파되서 바닷속으로 침몰됬습니다. 46명이 실종되었는데, 더욱 안타 까운 것은 그 실종된 장병들을 구하려다가 죽은 50세가 넘은 노장이 죽은 것입니다. 한쪽에서는 이렇게 한 사람이라도 더 살리려고 하다가 목숨을 잃는 한편, 다은 사건은 연예인 최진실씨가 작년에 자살하고, 이번에 그의 남동생이 자살한 사건입니다. 두개의 사건이 참 대조적입니다. 한쪽에서는 아직 살아있는 장병이 있을꺼야 하며 희망을 놓지 않고 있고, 한편은 모든 것이 끝이다 하며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에게 부활의 소망이 필요한 것입니다.

 

누가복음 24장 18절에는 슬픈 빛을 띠고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예수님은 나타나셔서 부활하신 것을 알게 하였습니다. 실망하며 좌절하며 모든 것이 끝났다고 고향으로 가는 그들을 예수님은 다시 일으켜 세워 소망을 주시기 원하신 것입니다. 요즘 우리 주의에 경제적으로 관계적으로 어려워하며 좌절하고 낙심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부활의 소망을 전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들이 예수님을 만나면 그들의 삶이 변화게 되어 있습니다. 희망을 갖게 된다는 것입니다.

 

  1. 예수님을 만나 평안하라는 위로를 듣습니다

부활의 기쁜 소식을 알려주기 위해 갈릴리로 달음질하는 두 마리아에게 예수님은 나타나십니다. 그리고 평안하뇨라고 하십니다. 마태는 이렇게 평안하뇨라고 말하고 있고, 누가와 요한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신다음 제자들에게 네번씩이나 평강이 있을 지어다. 평강이 있을 지어다 하셨습니다.

 

왜 예수님께서는 여러 번 그들에게 평강하라고 하셨을까요? 제자들이 두려워 하고 있어기 때문이죠. 종교 지도자들이 믿는자를 색출해서 죽일려고 모의를 하고 있는데, 특히 제자들은 얼마나 두려웠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께서 평강하라고 한 또 하나의 이유가 있습니다. '내가 세상을 이기었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두려워 할 것 없다는 것입니다.

 

미국의 한 방송국에서 이미 결과를 알고 있는 경기의 시청률조사를 했습니다. 방송국측은 농구팬이 무척많이 가지고 있는 UCLA대학이 이긴 경기를 녹화해서 경기가 끝난 이틀 후에 다시 방영을 해보았더니 시청률이 생방송과 차이가 없었다고 합니다. 이유인즉, 자기편이 이긴 경기는 조마조마한 긴장이나 불안 없이 마음을 푹 놓고 볼 수 있어 좋아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조사의 결과 승리를 미리 알고 있는 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편안하고 즐겁게 해준다는 사실이 증명되었습니다. 우리는 이미 이겨놓고 세상을 향하여 싸우는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부활하신 주님께서 이미 승리해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미국 매사추세츠 주의 한 교회학교에 나오는 여덟 살 짜리 소년 톰이 있었습니다. 그는 병이 많아 몸이 늘 아프고 힘이 들어서 늘 휠체어에 실려 교회에 나오는 소년이었습니다. 부활주일을 앞두고 톰의 교회학교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속이 비어 있는 플라스틱 계란을 주며 그 속에 무엇이든 생명이 있는 것을 넣어 오라고 했습니다. 부활절 아침, 아이들이 차례로 계란을 열어 보았다. 꽃이나 나뭇 잎, 곤충 등 아이들은 생명이 있는 여러 가지를 준비해 왔습니다. 톰 차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톰의 계란은 비어 있었습니다. 그걸 본 몇몇 아이들은 깔깔거리며 웃었지만 앓고 있는 톰을 동정해서 교사는 부드럽게 "준비하지 못했어도 괜찮아. 톰이 많이 아팠나 보구나."라고 위로하였습니다. 하지만 톰은 선생님께 이렇게 대답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선생님, 저는 생명을 준비 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무덤입니다. 예수님은 다시 살아났기 때문에 그 무덤이 비어 있지 않았습니까? 그것은 생명이 있는 살아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잖아요."
이 소년은 10개월 뒤에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의 장례식 날, 그의 관에는 꽃 대신 빈 플라스틱 계란이 놓여졌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은 누우셨던 무덤을 비우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주님의 부활은 우리의 부활을 예표하는 것입니다. 예표는 미리 보여주는 것을 말합니다. 예고편입니다. 언제가 우리도 주님과 같이 신령한 몸으로 홀연히 변화되어 부활되는 놀라운 사건을 경험할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 부활절을 맞이하여 부활의 소망을 가득 품고 그날을 소망살아 하루 하루 승리하며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2000년 죽음을 이기시고, 무덤을 열여 제치시고, 다시 살아나신 것을 선포하신 주님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