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의 믿음, 이삭의 순종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창세기 22:1-19
드디어 오늘 아브라함의 인생에서 최고의 크라이막스라고 할 수 있는 독자 아들 이삭을 모리아 산에서 하나님께 제물로 바치려고 한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지금까지 보시면 아브라함은 순종의 사람이었습니다.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라고 할 때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떠났습니다. 아들을 주시겠다고 하시고는 25년을 기다리게 했습니다. 그래도 순종과 믿음으로 100세까지 기다려서 귀한 아들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오늘 그 하나밖에 없는 독자 아들을 번제로 드리라고 말씀합니다. 이 성경구절을 가지고 성경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사람을 번제물로 받으시니 세상의 잡신과 뭐가 다른가? 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1절을 보시면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사" 라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실제로 사람을 번제로 받으시는 하나님이 아니시고 아브라함을 지금 시험보는 중인것입니다.
오늘 이 시험을 아브라함은 어떻게 치릅니까? 만약에 하나님께서 이 시험에 점수를 주셨다면 아마도 100점을 주었을 것 같습니다. 흠잡을 데가 한 군데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바치라고 할 때, 주저했더라면 5점 감점인데 한치의 주저함도 없이 3절을 보시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모리아 산으로 출발합니다.
또 칼이나 나무나 불 같은 것을 일부러 빼먹고 가서 '하나님 번제로 드리고 싶은데 칼을 가지고 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불을 가지고 오지 않았습니다' 라고 하며 핑계 거리를 댈 수 있었을 텐데 전혀 그러지 않았습니다.
아들을 죽이려고 작정한 사람처럼 6절을 보세요. "아브라함이 이에 번제 나무를 취하여 그 아들 이삭에게 지우고 자기는 불과 칼을 손에 들고 두 사람이 동행하더니"… 번제로 드릴 만발의 준비를 다 해서 떠납니다.
그리고는 9,10절을 보세요. "하나님이 그에게 지시하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곳에 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놓고 그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단 나무위에 놓고,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더니" 하나님께서 시험 보시는 중이지만 정말 이렇게 시험을 잘 치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마치 하나님께서 아들 이삭을 죽게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을 아는 사람처럼 태연하게 아들을 번제로 드리려고 하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아브라함이 왜 이렇게 태연하게 이삭을 죽이려고 했냐면 죽여도 하나님께서 다시 살리실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히브리서 11장 19절에 보시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저가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그러니까, 죽여도 다시 살리실 것을 알고 있던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우리도 다시 사는 것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육체는 이 땅에서 죽어도 우리의 영혼은 영원한 하늘나라에서 주님과 영원토록 함께 살 것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이 사건에서 우리는 아브라함이 대단한 사람으로만 알고 있습니다. 물론 위대한 믿음의 조상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더 위대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만 아들을 죽이라고 요구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 자신도 직접 하나 밖에 없는 독자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시험하지도 않으시고 십자가에 매달아 죽이셨습니다. 아브라함과 상대가 됩니까?
오늘 본문에 보시면 이삭도 어린 나이지만 대단합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의 사람이라면 이삭은 순종의 사람입니다. 10절에 보시면 아버지 아브라함이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더니"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는 이삭이 반항을 했다거나 '아버지 살려 주세요' 라고 했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기독교 전승에 의하면 아브라함이 이삭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아들아, 이 제단에 올라가 누워라, 너 하나님을 믿니? 네, 너 아버지를 믿니? 네, 그럼 이제부터 너를 번제로 드릴 건데, 반드시 하나님께서 다시 살리실 거다' 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이삭이 ' 네, 아버지의 뜻대로 하세요' 라고 했다고 합니다.
어디서 많이 들어보던 말이죠. 예수님은 순종의 아들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십자가에 죽으실 것을 다 아시면서도, 뭐라고 기도하십니까?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라고 기도하죠.
그래서 오늘의 이 사건은, 신약의 십자가의 사건과 같은 이야기입니다.
모리아산은 실제로, 주님이 죽으신 갈보리 산이라고 합니다.
여러분 오늘의 이 아브라함의 이야기에서 우리가 가장 배워야 할 것은 하나님은 분명히 믿고 순종하기만 하면 죽어도 다시 살리신다는 것입니다. 영원히 지옥에 가야 할 운명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순종의 길을 감으로 해서 영원한 천국에서 다시 사는 것입니다.
오늘도 아브라함의 믿음이 나의 믿음이 되게 해 달라고 고백하시며 하루 승리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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