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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의 창고/ 비전나리의 설교

로마서 개관 - 로마서 1:1-7

by Peartree 2012. 12. 26.

로마서 개관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로마서 1:1-7

 

오늘부터, 앞으로 몇 개월간, 로마서의 말씀을 가지고, 말씀을 나누기 원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설교라기 보다는, 로마서를 누가 기록했으며, 누구에게 보내는 서신이지, 그 당시의 사회적 배경은 어떠했는지, 또 로마서의 주제는 무엇인지…… 로마서를 소개하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로마서를 기록한 사람은, 사도바울입니다. 1절을 보시면,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 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여러 교회에게 편지를 쓸 때, 대서 를 하기도 하고, 친필로 쓰기도 했습니다. 로마서는 친필로 쓰지 않고 대서했습니다. 로마서 16:22절을 찾아 보겠습니다. "이 편지를 대서하는 나 더디오도 주 안에서 너희에게 문안하노라"…..

그러니까, 바울의 말을 더디오라는 사람이 받아 적은 것입니다. 그렇더라도, 우리는 더디오가 썼다고 말하지 않고, 바울이 썼다고 말합니다.

 

요즘 한국에는, 변호사 사무실이 참 많아 졌는데, 예전에, 제가 초등학교 다닐 때만 해도, 면사무소 옆에, 대서소라는 곳이 있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글을 모르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중요한 서류를 작성할 때, 그곳에 와서 작성을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서류를 작성하면, 누구의 서류가 됩니까? 글을 쓰도록 시킨 사람의 글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바울이 글을 쓸줄 모르는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가말리엘 문하생이었습니다. 지금의, 하바드나, 옥스포드 대 정도되는 최고의 학파출신이었습니다.

그러면, 글을 잘 쓸 줄 아는 사람이, 왜 다른 사람을 시켜서 로마서를 받아 쓰도록 시켰습니까?

시력이 좋지 않아서 그런 것입니다. 바울이 지병을 앓고 있던 것은 다 아시죠. 간질병이라고 하고, 또 심한 안질을 앓고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갈라디아서 6:11절을 보시면, 더 자세히 알 수 있습니다. 한번 찾아 보겠습니다. "내 손으로 너희에게 이렇게 큰 글자로 쓴 것을 보라" 이 갈라디아서는 바울의 친필 편지인데, 바울이 시력이 워낙 나쁘다 보니까, 글씨를 크게 써야, 겨우 쓸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더디오를 시켜, 로마서를 쓴 것입니다.

 

그럼, 이 로마서는 바울이 누구에게 쓴 것입니까? 수신자는, 로마교회 성도들 이었습니다. 본문 7절을 보시면, "로마에 있어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입고 성도로 부르심을 입은 모든 자에게"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 15절에도 나와 있습니다.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그러니까, 로마 교회 성도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쓴 것입니다.

그럼, 여러분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 전통 있는 로마교회 성도들이라면, 다 구원 받은 사람들 일텐데, 그들에게 '복음 전하기를 원한다' 라고 했다는 것이, 이상하지 않습니까?

로마교회의 성도들이, 바울의 이 편지를 읽고, 기분이 어떠했겠습니까?

 

'아니, 우리는 복음을 다 아는 사람들인데, 복음을 전한다니, 이 사람이 우리를 뭘로 보는거야!' 라고 했을 지도 모릅니다.

 

로마서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바울이 로마 교회에, 복음을 다시 듣게 한 이유에 대해서 여러 가지 학설을 주장합니다.

어떤 주장은 로마 교회에 전파된 복음이, 세월이 지나면서, 왜곡되어서 그 것을 수정해 주기 위해서, 다시 전하려고 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또 다른 주장은 새로 입교한 신자들이 제대로 된 복음을 듣지 못했으니까, 그들을 위해서, 다시 복음을 전하려고 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위에, 두 가지 중에, 첫 번째가 그래도 설득력이 있습니다. 사실, 복음이 왜곡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당시의 로마교회 성도들이 어떤 복음을 믿고 있었냐면, 짬뽕 복음이었습니다.

 

당시에, 기독교가 생겨나기 전에는, 유대교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당시의 로마교회 성도들은,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사람들이 거의 다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구원 받기가 너무 쉬운 거예요. 예수 그리스도만 믿으면, 구원을 받는 다고 하니까, 믿겨지지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서서히 교회 안으로 가지고 들어온 것이, 그들이 평생 동안 지켜왔던 율법을 교회 안으로 가지고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유대교의 율법과 기독교의 복음을 믹스해서 믿고 있었습니다. 구원은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받고, 이 구원을 잃어버리지 않고, 계속해서 유지하려면,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던 것입니다. 이것을 '갈라디아주의' 라고 합니다. 복음으로 구원은 받지만, 구원을 유지하려면,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사상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바울이 전한 복음이, 이상하게 변질된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다시 복음을 전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다시 복음을 전하려고 했던, 더 큰 이유를 우리는 성경에서 찾아 볼 수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 13절을 같이 보시겠습니다. "형제들아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한 것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치 아니 하노니 이는 너희 중에서도 다른 이방인 중에서와

같이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로되 지금까지 길이 막혔도다"

바울이 로마교회로 가서 복음을 다시 전하려고 했는데, 길이 막혀서 못 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로마로 가려고 한 이유를 "열매를 맺게 하려고" 했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니까, 이 로마교회가, 전통이 있었고, 성도의 숫자는 많아졌지만, 그 안에 열매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 열매는 삶 속에서 나타나는 변화의 열매를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다고는 하지만, 성도들이 변화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로마서 1:16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복음은 능력이라고 말씀합니다.

병고치는 능력, 예언하는 능력이 아닙니다.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능력" 입니다.

즉, 복음의 능력은, 사람을 구원하고, 변화시키는 능력을 말합니다. 지옥자식에서 천국의 자녀로 바꾸는 능력이 복음의 능력입니다.

 

그런데, 로마교회는 복음이 들어 갔는데도 불구하고, 삶 속에서의 변화의능력이 열매로 나타나지 않고 있었습니다. 복음이 들어갔으면, 뭔가 삶에 변화가 일어나야 하는데, 그대로 였던 것입니다.

 

21절을 보세요.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했다" 고 말씀합니다. 로마교회 성도들의 상태가 이런 상태라는 것입니다.

그뿐이 아니예요.

27절에, 복음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동성연애' 를 하고 있었습니다.

29절에는,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이러한 일들이, 로마교회 안에서 그대로 행해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복음을 듣고, 예수를 믿는 다고 하는 사람들이 말이죠.

그래서, 바울은 '다시 복음' 을 전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정말 복음을 제대로 이해한 사람들은, 동성연애 하지 못한다. 정말 복음을 제대로 이해한 사람은, 불의, 추악, 탐욕, 악의,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 수근수근,… 이런 거 하지 않는다. 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의 능력이 뭐냐면, 기적이 일어나고, 성도수가 늘어나는 것이 능력이 아니라, 성도들의 삶이 변하는 것이 능력입니다.

당시 로마교회의, 성도 수는, 최소한 몇 만명으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또 로마교회는 부자 교회였습니다.

이스라엘에서 로마로 이민 온 사람들이 세운 교회가 로마교회였습니다. 그래서, 경제적으로, 풍부한 사람들이 모인 교회였습니다.

겉으로 보기엔, 능력있는 교회처럼 보여졌을 지 몰라도, 바울의 눈으로 보니까, 저들의 삶 속에서 변화의 열매가 나타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진짜 복음은, 너희들의 삶을 변화시킨다' 라는 복음을 다시 전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서의 주제는 '복음의 능력' 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역대 유명한 신앙의 선배 중에, 로마서를 읽다가, 변화된 사람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지난 4세기에 뛰어난 지성과 인품을 가진 한 사람, 당대에 훌륭한 철학자였으며 교수였던 어거스틴, 그러나 그는 당시 마니교에 빠져서, 성적으로 아주 문란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어거스틴은, 이탈리아 밀라노 근처에 있는 한 친구의 저택 정원에서 우연히 아이가 부르는 노래 한 소절을 듣게 되었습니다. "톨레 레게 톨레 레게"(집어 읽어라 집어 읽어라)라는 노래였습니다. 그 순간 그는 자신도 모르게 이상한 감정을 느끼면서 성경을 집어들고 아무 곳에나 폈습니다. 그리고 그 성경을 읽어 내려가는데 로마서 13:13∼14의 말씀에 그의 마음이 붙들리고 말았습니다.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이 말씀 앞에 그의 삶은 바뀌고 말았습니다. 그는 변화되었고 기독교 역사상 가장 탁월한 신학자로 남은 생애를 살았습니다.

 

마틴루터(Martin Luther)의 이야기도 너무 유명합니다. 그의 영혼에는 늘 평안이 없었습니다.

신앙생활은 하고 있었지만 그의 마음에는 늘 해결하지 못했던 허전함이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자포자기한 상태에서 로마서를 집어 들었습니다. 그 순간 그에게 전율을 일으키며 다가온 한 구절이 있었습니다. 로마서 1:17절의 말씀이었습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그는 이 말씀으로 거듭났습니다. 그리고 그는 종교개혁 의 선봉에 서게 되었습니다.

 

이 뿐이 아닙니다. 요한 웨슬레(John Wesley)는 루터의 로마서 서론을 경청하다가 마음이 뜨거워져 회심을 체험하게 되었고, 성경책 다음으로 많이 팔렸다고 하는, 천로역정을 쓴 존 번연(John Bunyan)은 베드포드(Bedford)의 감옥에서 로마서의 말씀들을 묵상하다가 천로역정(Pilgrim) 이라는 책을 쓰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의 능력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이 복음의 능력을 믿습니까? 이 복음의 능력이 여러분에게도 체험되기를 소원합니다. 이 복음의 능력이 여러분을 새롭게 변화시키기를 소원합니다.

 

앞으로 우리는, 이 복음의 능력이, 넘쳐나는, '로마서' 를 가지고, 몇 개월 동안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그래서 이 로마서를 통해서, 능력있는 교회, 능력있는 성도로 변화되기를 소망하며,

바울이, 로마 교회를 향하여, 다시 복음을 전하고 싶었듯이,

이번에, 우리들도, 이 복음을 다시 들음으로, 우리 모두에게 이 복음의 능력이 체험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