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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의 창고/ 비전나리의 설교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 눅 5:27-32

by Peartree 2012. 12. 26.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눅 5:·27-32

 

미국에 이민 와서 사는 한국 사람들이, 두 나라의 문화적 차이 때문에 겪는 문제가 많이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아이를 때린다고 구속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미국은요. 아이 혼자 집에 두기만 해도, 큰 문제가 발생합니다. 제가 워싱턴에 살 때, 미국에 주재원으로 오신 분이 있었어요. 이분의 딸이, 에스더와 같은 학교를 다녔는데, 아이가 얼마나 착한지 몰라요. 그런데 한번은, 이 분이, 아이를 혼내 친다고, 골프채를 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밖에서 미국사람이 보고 신고를 한 거예요. 그래서, 경찰서에 끌려갔는데, 한국의 문화가 원래 그런 것이라고, 설명을 하고는, 다행히 풀려난 적이 있었습니다.

 

예전에는 미국으로 이민 오신 분들을 다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자녀들을 돌볼 새도 없이, 돈을 벌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부모님들이, 일하러 나가면서, '누가 문을 두드리면, 절대 열어주지 말라.' 고 교육을 시킨 다음에, 밖으로 돈 벌러 나갔습니다.

몇 년 전에, 이런 사건이 있었다고 합니다. 미국에서 홀로 아들 하나만 데리고 살던 한국 어머니가 일을 나갔다 들어와 보니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집안에서 사고로 죽어있었습니다. 어머니는 경찰에 신고를 했겠죠. 그리고 출동한 경찰 앞에서 이 어머니는 울면서 서투른 영어로, "내가 죽였어요."라고 말했다가 아들 살해혐의로 구속된 적이 있었습니다. 이런 현상은 우리나라와 미국의 문화 차이 때문에 겪는 어처구니 없는 일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무슨 문제가 생기면 이런 말을 자주 합니다. "다 내 탓이야, 내가 못나서 이런 일이 생긴 거야." 특히 자녀들이 잘 못 되면 우리 부모님들은 "다 못난 애비, 못난 어미 탓"이라고 하며 가슴을 칩니다. 이런 사고방식 때문에 이 한국 어머니는 자기가 일을 나갔다가 아들이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해서, "내가 죽인 것"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한국의 경찰서에서 이렇게 말하면, 한국은 구속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어머니, 너무 자책하지 마세요." 이렇게 위로를 해주죠. 하지만, 미국의 문화는 그렇게 받아 들이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국의 전통이 참 좋다라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어떤 문제가 생기면, 남 탓하기 전에, 내 탓이라고 인정하는 것이 얼마나 귀합니까? 그런데, 지금 시대는 한국이건, 미국이건, 사람들이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고, 어떻게든 합리화시키려고 하는 것이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시대의 현실인 것 같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는 알패오의 아들 레위라는 사람이 나옵니다. 이 사람을 마태복음 9장에서는 마태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마태는 세무 공무원이었습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IRS 고위관리직에 속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지금도 사업하시는 분들은, 세무직원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도움이 전혀 되지 않고, 어떻게든, 뜯어 가려고 하기 때문이죠. 당시에 세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국민에게서 돈을 뜯어 다가, 로마 정부에 상납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매국노였고, 죄인 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세리 마태를 예수님께서는 세관까지 찾아가, 만나 주시고, 구원해 주시고, 제자 삼아 주셨습니다. 그리고 마태는 구원받은 사실이 너무 감사하여 예수님을 초대하여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본문을 보시면, 세리 마태의 집에는, 예수님과 제자들만 초대 받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른 세리들과 다른 죄인들이 있었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초대 받지 않은 손님들이 있었는데, 이 사람들이,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과 제자들이,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는 것을 보고는, 왜 죄인들과 같이 앉아서 식사를 하냐고 비방했습니다.

'우리는 저 죄인들과 격식이 틀리고, 차원이 틀린 사람들이니까, 저들을 상대하지 말자' 라고 하면서, 예수님을 비판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때 예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의원이 쓸 데 있느니라" 하시면서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말씀하시죠.

 

사실, 지금 이곳에는 예수님만 빼놓고, 다 죄인들이었습니다. 세리도 죄인이고, 서기관과 바리새인들도 다 죄인들이었습니다. 의인은 한 명도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왜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고 말씀하셨을 까요? 이 말은, 의인이 있다는 말처럼 들립니다.

즉, 이 말은요, 다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의인인척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또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고 말씀하시는데, 이 말씀은, 스스로를 죄인으로 깨닫고, 죄인인 것을 고백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입니다. 자식이 죽은 것을 자기 책임으로 돌리며, '나는 죄인이라' 고 여기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나는 의롭고 경건한 사람' 이라고 하며, 의인인척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누구를 위해 오셨다구요? 스스로 죄인임을 고백하는 사람들을 위해 오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자격자는 누구입니까? 스스로를 가리켜 죄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이 말은 죄를 많이 지은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를 죄인으로 인정하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이 세상에,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다 죄인인 것이죠. 그러나, 세상에는 두 종류의 죄인이 있습니다.

스스로 죄인임을 인정하는 죄인들이 있고요. '나는죄인이 아니다.' 라고 인정하지 않는 죄인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예수님께서 만나 주시는 죄인은, 어떤 죄인인지, 본문에서 두 가지만 찾아보며, 말씀을 나누기 원합니다.

 

  1. 첫째로, 예수님께서 만나 주시는 죄인은, 병들어 있는 죄인을 만나 주십니다.

     

오늘 본문, 31절을 보시면,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나니" 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의원은 예수님이지요. 그리고 의원은 누구에게 필요합니까? 병든 자에게 필요합니다.

 

여러분, 만약에, 아주 세계적으로 유명한 의사가, 투산에 와서, 공짜로 진찰을 해주고, 병이 있으면 공짜로 수술해서 낫게 해준다면, 어떨 것 같습니까?

난리가 날 거예요.

어제 뉴스를 보는데, 뉴욕에, 이번 허리케인으로 인하여 Gas station 이 80%정도 문을 닫았다고 해요. 그래서 차들이 줄 섰는데, 1Mile 넘게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정도로, 그 의사를 만나려고, 난리가 날 것입니다.

지금 예수님께서 죄인을 부르러 왔다고 말씀합니다. 이 말은 죄인을 구원하러 오셨다는 말입니다. 지옥 갈 죄인을 천국에 가게 해 주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 앞에 가서, '예수님 내가 죄인입니다. 나의 영혼을 좀 진찰해 주시고, 나를 고쳐 주시옵소서' 라고 하며 찾아온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는 것입니다.

 

사람마다 자기를 죄인이라고 말하기를 싫어합니다. 그리고 '당신은 죄인입니다.' 라고 하면, 상당히 불쾌하게 생각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교회에 나오지 않습니다. 교회에 나오면, 목사가 죄인이라고 말하니까, 아예, 나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지금 이 시대는, 죄를 말하지 않는 교회가 인기 있습니다. 그런 교회는 수 만명씩 모입니다.

미국의 설교자 가운데 노만 빈센트 필이라는 분이 있습니다. 그를 가리켜 100만인의 설교자라고 했습니다. 얼마나 듣지 좋은 설교를 하는지, 그의 설교집이 불티나게 팔리고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그의 설교집을 읽었습니다.
그의 설교의 특징 중의 하나가 죄라는 말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 분에게서 영향을 받은 사람이, 캘리포니아의 수정교회의 담임 목사인, 로버트 슐러 목사입니다. 이 교회도, 죄를 말하지 않으니까, 엄청 모였습니다. 하지만, 교회가 죄를 선포하지 않으면 생명력은 떨어집니다. 지금, 이 수정교회는, 뱅크럽 됐어요. 그래서, 카톨릭교회에서 건물을 샀습니다. 그리고 로버트 슐러 목사님에게서 영향을 받은 사람이, 현재, 미국에서 제인 큰 레이크우드 교회의, 조엘오스틴 목사입니다. 이분도 죄를 말하지 않는 분으로 유명합니다.

이처럼, 죄를 말하지 않는 교회가 미국에서 제일 큰 교회입니다.

 

여러분, 어떤 병원이 있다고 가정해 보세요. 그런데, 그 병원이 환자를 치료하지 않고, 그냥 방치해 둔다고 해보세요. 병원이 잘 되겠습니까? 아마 그런 병원이 있다면, 한 명도 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죄를 그냥 방치하는 교회는 지금 메어집니다.

 

병원이 하는 역할이 무엇입니까? 환자를 살리는 곳입니다. 환자를 진단하고 문제점을 찾아내서, 수술할 것은 수술하고, 치료해서 살려내는 곳이 병원입니다.

교회가 하는 역할이 무엇입니까? 영혼을 살리는 곳입니다. 영혼을 진단하고, 문제점을 찾아내서, 살리는 곳이 교회입니다.

 

여러분 병원에 가셔서, 진찰 받아 보셨지요? 의사가, 환자를 진찰한 다음에,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여러분 어떻게 하겠습니까? '아니 돈을 내고, 진찰을 받았으면, 이 병의 증세가 무엇이지, 어디가 이상이 있는지, 말해줘야지 않냐? ' 라고 하며, 의사에게 따질 거예요. 서비스가 좋지 않다고 말이죠.

그런데 교회에서는, 내 영적인 문제가 도대체, 뭐냐고 하면서, 말해 달라고 하며, 따지는 성도는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듣기 싫어하기 때문에 그래요. 그런데 사실, 들어야, 살 수 있어요.

 

병원에 서도요. "당신은 암입니다." 라는 말을 듣고 싶어 하는 환자는 없습니다. 그러나 살기 위해서 또 진실을 듣고 싶어 합니다.

교회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목사님, 저의 영적이 문제가 무엇인지 알고 싶어요. 그래서 정말, 하나님 잘 섬기고 싶고, 예수님도 제대로 믿고 싶습니다.' 라고 하며, 듣고 싶어 하는 분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만나 주시는 사람은, 건강한 사람이 아니라, 병든 환자를 만나 주십니다. 스스로 죄인인 것을 고백하는 사람을 만나 주십니다. 스스로 죄인인 것을 고백하지 않는 사람은 절대로 구원 받을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주님께 여러분의 멍든 상처, 병든 마음, 고백하시길 바랍니다. 상처를 숨기고 있으면, 치료 받을 길이 없습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병든 상처들을, 의인인척 가리고 있는다 할지라도, 주님을 다 알고 계십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 스스로가 고백하기를 기다리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다 죄인입니다. 우리는 환자입니다. 여기 서있는 저도 환자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저와 여러분들을 고쳐 주시기 위해서, 지금도 기다리고 계신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우리의 연약한 것 주님 앞에 고백하고 내어 놓기만 하다면, '죄인을 부르러 왔다' 고 하신 주님께서, 나의 이 모습 그대로, 만져 주시고, 치료해 주시고, 회복시켜 주신 다는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이럴 때, 우리는, 구원 받았다라고 외치는 것입니다.

 

  1. 두번째로, 예수님께서 만나 주시는 죄인은, 사모함이 있는 죄인을 만나 주십니다.

 

본문, 28절을 보시면, "저가 모든 것을 버리고 일어나 예수를 좇으니라"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세리마태는, 세관에 앉아 있으면서,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다 듣고 있었습니다. 당시의 세관은 사람들이 가장 많이 통행하는, 길목에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세상 돌아가는 물정을 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마태는, 예수님에 대해서 다 듣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만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세리라서,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었을 거예요. 죄인이었거든요.

그런 세리 마태 앞에, 주님께서 나타나셨어요. 그리고는 "나를 좇으라" 라고 말씀하시죠. 마태는 이 한마디 정말 듣고 싶었는데, 실제로 주님이 이 말씀을 하시니까, 두번 생각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저가 모든 것을 버리고 일어나 예수를 좇으니라"……

 

마태가 이렇게 사모하고 있었던 것을, 주님은 다 알고 계셨어요. 그의 마음을 꿰뚫어 보시니까, 그 속에, 주님을 사모하는 마음이, 불 같은 거예요. 그래서 주님이 만나 주신 것입니다.

보세요. 마태가 얼마나 기쁘던지, "저가 모든 것을 버리고 일어나 예수를 좇으니라"…… 그리고는 29절에, 잔치를 벌립니다.

마태는, 지금 직업이 없어 진 것입니다. 백수가 된 거예요. 그런데도, 뭐가 그리 좋던지, 잔치를 벌리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렇게 사모하는 영혼을 주님을 찾아가 만나 주세요.

주님은, 세리건, 죄인이건, 간음한 여인까지도, 어떠한 죄인도 사모하기만 하면, 찾아가 만나 주시고 구원해 주신다는 거예요.

 

주님이 우리를 부르실 때에는 로마서 5:8절의 말씀대로,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 부르신 것입니다. 있는 모습 그대로 만나 주신 거예요.

요한복음 8장에, 간음하다 현장에서 들킨 여인을 만나 주시는데, 가장 수치스럽고, 가장 처참하게 내려 갔을 때 만나 주셨어요.

세리 마태를 만나 주실 때도, 마태가 세관에 앉아 있을 때, 만나 주셨어요. 마태로선 자기의 그런 모습을 가장 보여 주고 싶지 않을 때, 주님은 찾아 가신 것입니다.

베드로를 찾아가 주실 때도, 어부로서, 물고기 한 마리 잡지 못하고, 창피하고, 낙심하여 빈 그물 털고 있을 때, 찾아가 만나 주셨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살아가면서, 주님께 제일 숨기고 싶은 순간이 언제입니까? 술 한잔 하실 때 입니까? 아니면, 슬롯머신 앞에서, 버튼을 마구 눌러 댈 때입니까? 아니면, 사람들 사이에서 상처 받고, 낙심하고 있을 때입니까?

그때가, 주님이 찾아가 주시는 타이밍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내가, 탐욕적인 사람이든, 정욕적인 사람이든, 명예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이든 주님은 상관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 마음속에 내가 주님께로 나가야 할 텐데, 내가 주님을 위해서 무엇인가 살아야 할 텐데 하는 마음만 있으면 주님께서 찾아가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모하는 마음이 이렇게 중요합니다.

여러분, 어디서 무엇을 하든, 주님을 사모하는 마음만큼은 놓치지 않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그 마음만, 놓지 않고, 붙들고 있으면, 주님은요, 나를 특별하게 보십니다.

 

물고기 한 마리 잡지 못하고, 낙심하고 있는 베드로를 주님은 특별하게, 사람 낚는 어부로 보십니다.

간음하다 잡힌 여인을, 주님은, 특별하게 성녀로 보십니다. 세관에 앉아 있는 세리 마태를, 주님은 제자로 보셨어요. 주님께서 이들을 이렇게 보신 이유는 단 한가지 입니다. 그 안에, 주님을 사모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주님을 위해 산다고 하지만, 얼마나 주님을 위해 살 수 있습니까? 주님을 위해 밀리언 달러 헌금을 한다고 한들 주님을 위해 사는 것이 되겠습니까? 수만명을 전도 한들, 주님을 위해 사는 것이 되겠습니까? 그렇게 수 밀리언을 드리고 수 만명을 전도하면 주님이 기뻐하시겠습니까?

이런 것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것이, 주님을 사모하는 마음입니다.

과부의 두렙돈에 주님은 감동 먹으셨습니다. 쿼터 두개 드리는 과부의 사모하는 마음에 주님은 기뻐서 어쩔 줄을 모르셨어요.

 

여러분, 주님은 우리의 사모함을 받으십니다. 주일이면, 예배를 사모하며, 주님 만나기를 사모하는 마음을 주님은 받으시는 것입니다. 다윗이 왜 성군입니까? 주님을 사모하고, 예배하기를 즐겨 했기 때문에 성군인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죄인을 찾으시는 주님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었는데, 어떤 죄인을 찾으십니까? '주님 저는 약합니다. 저는 환자입니다. 주님 고쳐 주십시요.' 하며, 주님께 우리의 약함을 고백하는 죄인을 찾아가 만나주십니다.

또한 사모하는 영혼을 만나 주십니다.

내가 좌절하고 낙심하여 실의에 빠져 있을 지라도, 주님은 그 순간을 놓치 않고, 찾아와 다시 일으켜 세워 주신다는 것을 잊지 마시고,

죄인을 부르러 오신 주님인 것을 믿고 의지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