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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의 창고/ 비전나리의 설교

주님을 사랑한다면 - 요한복음 21 : 15-22

by Peartree 2012. 12. 26.

주님을 사랑한다면

 

요한복음 21 : 15-22

 

지난주에는, 두려워서 문을 꽉 걸어 잡그고, 두문불출하는 제자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나타나셔어요. 그리고는, 성령을 받으라고 하시며, "너희가 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카톨릭 교황이 하고있는, 죄사함의 권세가 아니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 권세는, 용서의 권세요, 이 권세는 사랑의 권세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을 받고, 세상에 나가서, 나를 핍박하는 그들을 향하여, 용서하고 사랑하면, 그들이 그들의 죄를 깨닫고, 예수를 믿어 구원을 얻게 된다는 말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드디어, 요한복음 강해 마지막 시간까지 왔습니다. 새벽예배는 한주에 세번이라, 진도가 그래도 빨리 빨리 나가지요. 그런데, 수요예배 강해는, 한 주에 한번식 다루다 보니까, 참 오래 동안 요한복음을 다룬 것 같습니다. 또 요한복음이, 성경 66권 중에, 가장 중요한 책이기 때문에, 좀 더디 오긴 했습니다

 

지난 시간에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숨어 있는 제자들을 찾아 가신 주님에 대해서 살펴 보았죠. 그리고 시간이 꽤 흘렀던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제자들이 두려워 떨지 않고, 자유롭게 고기를 잡고 있었던 것을 보면, 어느 정도, 죽음의 위협이 사라진 시점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을 보시면, 예수님과 제자들이 잡은 생선을 구워 드시면서, 사나이들의 우정을 쌓고 있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러나, 겉으로 보기에는, 우정을 쌓고 있는 장면 처럼 보여지지만, 제자들은 지금 죄책감으로,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다고 해야, 맞는 표현입니다.

지난 시간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20:21절에,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라고 말씀하셨는데, 지금 제자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물고기 잡고 있습니다. 주님은 사실, 사람 낚는 어부가 되라고 하신 말씀이었는데, 제자들은, 시골에 내려가 고기잡고 있었습니다.

 

21:3절을 보시면, 베드로가 다른 동료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수제자의 이 말을,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리더가 이런 말을 하면, 선동하는 것으로 들립니다.

다른 사람이 이런 말을 하면, 별 영향력이 없습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이런 말을 하면, 조직에 큰 영향력을 줍니다. 리더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어느 곳이든, 그 조직의 리더의 역할은 참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보세요.

베드로가 이 말을 하자, 동료 제자들이 뭐라고 합니까? 3절 중간에, "우리도 함께 가겠다 하고" 따라 간다니까요. 2절을 보시면, 베드로를 포함해서 6명이 어부의 생활로 다시 돌아갔습니다.

 

그렇게 해서, 주님께서 주신 사명은 까마득히 잊어 버리고, 돈 벌러 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끝까지 베드로와 제자들을 따라가, 사명을 다시 재확인 시켜 주시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사명을 일깨워 주시는 예수님 질문에, 베드로는 어떻게 응답하고 있는지 살펴 보기를 원합니다.

 

본문, 15절을 보시면, 예수님께서 조반을 다 드신 후에, 베드로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 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라고 같은 질문을 세번 연거푸 하시지요. 이 세번의 질문에 베드로는, 같은 대답을 세번을 번복하는데, 세번째 대답을 할 때는, '근심하며' 대답했다고 17절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베드로가 왜 근심하며 대답했을 까요?

 

여러분, 제가, 주님을 사랑하십니까? 라고, 여러분들에게 물으면, '내가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하고 대답할 수 있습니까?

 

여러분이, 지금까지 자신있게 대답했다면, 오늘 말씀을 살펴본 다음에도, 자신있게 대답할 수 있는지, 자신을 돌아보시기를 바랍니다. 아마도, 베드로처럼, 이 대답을 하는데, '근심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지금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라고 세번씩 물으셨을 것 같습니까? 베드로가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번 부인해서, 세번 물으셨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의 확고한 사랑을 요구하신 것입니다. 네가 정말 나를 사랑한다면, 다시는, 어부생활로 돌아가지 말아야 한다는, 책임감을 요구하신 것입니다.

 

만약에 베드로가 '예수님을 사랑합니다.' 라고 고백한 후에, 예수님을 사랑한 댓가로, 축복이나 성공이 온다면, 베드로는 근심할 필요가 없었겠지요.

베드로에게 있어서, '예수님을 사랑하는 대가' 는 죽음이었습니다. 순교였습니다.

 

본문 18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젊어서는 네가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치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베드로가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순간,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런 말입니다. " 베드로야! 네가 날 사랑 한다고? 그러면, 나를 사랑하는 댓가로, 너는 늙어서, 순교하게 될꺼야. 죽임을 당할 거야. 비참하게 죽을 거야" 라는 무서운 예언의 말씀입니다.

베드로는 이러한 죽음이 예수님을 사랑한 대가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선뜻 대답하지 못하고, 근심하며 대답한 것입니다.

 

여러분, 이래도,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습니까? 말로는 사랑한다고 할 수 있지만, 그러나 그 말에, 책임이 따른다는 것입니다. 그 말에, 의무가 있습니다. 그 말에, 삶의 규칙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이런, 책임이나, 의무나 삶의 규칙을 전혀 생각하지 않고, 그냥 말로만, 사랑합니다. 라고 대답할 수는 있지요. 그러나 그건 주님 앞에서 거짓말 하는 것과 같은 거예요. 그래서 베드로는 거짓말 할 수 없어, 근심하며 대답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십자가를 지는 삶을 살겠다는 표현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십자가의 길이요, 외로운 길이요, 좁은 길이고, 험한 길이며, 때로는 예수 믿기 때문에 핍박을 받을 각오도 해야 되고, 예수 믿기 때문에 비난 받을 각오도 해야 하고, 어려운 삶을 사는 것을 각오해야 합니다. 이렇게 각오를 한 다음에야, 비로서, 예수님 사랑합니다. 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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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주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한 베드로에게 주님은, "그러면 넌 순교 당할 거야!" 라는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하시죠. 혹시나 설마 설마 했는데, 역시나 주님이 그런 말씀을 하시니까, 베드로가 기가 막혔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질문 한 것이, 21절에, "이에 베드로가 그를 보고 예수께 여짜오되 주여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삽나이까?" 혼자 죽는 것이, 억울 했었는지, 저 요한도 순교당하나요? 이렇게 물은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22절에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너에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시죠.

참으로 찬바람이 휙 부는 듯한 쌀쌀한 답변입니다. 무 자르듯이 딱 자르는 말씀입니다. '상관 마라. 내가 요한을 내가 다시 하늘나라에 갔다가, 재림 할 때까지 살려 두던지 말던지 너는 상관 말아라. 그러나 너는 순교당할 꺼야' 라는 뜻입니다. 저는 참으로 궁금합니다. 이때 베드로의 표정이 어땠을지가 참 궁금합니다.

멍하니, 정신이 나갔을 것 같습니다.

 

예수님, 저는 수제자 잖아요? 아니, 주님을 세번 모른다고 부인했다고 해서, 이렇게 저는 죽는 것이고, 요한은 십자가 아래 까지 쫓아 갔다고 해서, 죽지 않는다고 하시고, 사람 이렇게 차별 할 수 있습니까? 라고 말 할 수도 있었겠죠.

 

그러나, 베드로는, 더 이상 예수님께 질문을 하지 않고, 요한복음 끝을 맺습니다.

 

결국, 베드로는, 예수님의 이 말씀에 순종했다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순종했는지 안했는지는, 사도행전을 보시면, 알수 있습니다. 그는, 철저히 순종합니다. 기독교 전승에 의하면, 베드로는 십자가에 거꾸로 메달려 순교를 당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하는 것은 이런 것입니다. 주의 말씀에 순종하면, 좁은 길을 가는 것이, 예수님을 사랑하는 증거입니다.

 

여러분 '쿼바디스(Quo Vadis)'라는 영화를 보셨습니까?

영화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주후 67년 7월 18일 로마에 대화재가 발생합니다. 폭군 네로 황제가 로마에 불을 지르고 그 불을 지른 범인이 기독교인들이라고 누명을 씌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 잔악하게 죽였습니다. 짐승의 밥이 되게 했습니다. 이때 베드로는 로마에 있었다고 전해지는데, 베드로와 같이 복음을 전하던 다른 제자들이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선생님, 선생님은 나가십시오. 이 로마를 빠져 나가 도망 가십시오. 우리는 죽어서 순교를 해도 선생님은 남으셔서 복음을 전해야 되지 않습니까? 그러니 어서 빠져 나가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그럴 듯하지 않습니까?

 

사실 자신이 도망치고 싶어서가 아니라 베드로는 복음을 더 전해야 된다는 생각으로 로마를 빠져 나와, 길을 떠납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 길을 막으십니다.

 

영화 '쿠오 바디스'의 마지막 장면 중에서 베드로가 로마를 빠져 나가는데, 주님이 나타나십니다. 그때 베드로가 '주여 어디로 가신이까?' 헬라어로, 쿼바디스 도미네 라고 묻습니다. 이 말이 영화의 제목이 되었습니다.

그때 주님께서, "네가 내 양들을 버리고 도망 가므로 내가 다시 로마로 돌아가서 십자가를 져야 되겠구나"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주님이 죽으시다니요. 제가 가서 죽겠습니다.' 하고 로마로 다시 돌아가, 결국 십자가에 죽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이 영화는, 예수님 당시의 역사학자, 유세비유스의 역사책에 기록된 데로, 역사적 사실을 영화화 한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여러분, 주님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그러면, 최소한 죽지는 않더라도, 성도의 길을 가면서, 사랑한다는 고백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이 사랑한 다는 말이, 이렇게 어려운 것인지, 알았기에, 근심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얼마나 쉽게 주님 사랑한다고 고백하고 있는지 않는지요. 왜 쉽게 대답합니까? 그 대답 뒤에, 십자가의 길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실,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받는 복도 많지만, 한편으로는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고난도 어려움도 있다는 것을 믿으셔야 합니다. 그래서, 정말,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가? 그 의미를 깨닫고, 주님 사랑하는 길을 가기로 결심하고, 주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시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