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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의 창고/ 비전나리의 설교

죄의 영향력 - 창세기 4:16-26

by Peartree 2012. 12. 26.

죄의 영향력

창세기 4:16-26

 

지난 시간에는, 인류최초의 살인사건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가인이 그만 동생 아벨을 쳐 죽였습니다. 그 이유는, 자기의 예배를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셨다고 해서, 동생을 질투하고, 죽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 죄의 대가로, 땅에서 유리 방황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그리고 오늘은, 동생을 죽인 가인의 후손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오늘 본문은 죄의 영향력이 얼마나 파괴적인가를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죄는, 사람의 영혼은 물론 육체까지 파괴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아담은 죄를 짓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고, 땀을 흘려야 먹고 살수 있는 저주를 받았습니다. 하와는 죄의 결과로 해산의 고통을, 뱀은 배로 기어 다녀야 하는 저주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가인은 어떻습니까?

12절을 보시면, "네가 밭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말씀하셨어요. 아담은 그래도, 밭을 갈아서 먹고는 살수 있도록 해주셨는데, 가인은 아무리 밭을 갈아도, 농사가 되지 않는 저주를 받았습니다.

요즘 말로 하면, 하는 일마다 망하는 거였습니다. 그러니까, 가인이 결국 농사를 짓지 못하고,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된다' 고 말씀합니다.

 

이때부터, 가인의 살인죄로 인한, 저주는, 그의 자녀 대에 까지 대물림 하게 되는데,

17절을 보시면, "가인이 성을 쌓고 삽니다" 그는 늘 쫓기는 신세였습니다. 늘 불안에 떨며 살았습니다. 그래서 살기 위해서 성을 쌓고 살았습니다. 이것이 불행입니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하죠. 사람과 사람끼리, 서로 대화를 하며, 서로 위로하며, 격려하며 사는 것이 사람이죠. 그런데, 그렇지 않고 살아간다면, 불행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21절을 보시면, 가인의 후손 중에 유발이라는 사람은, 수금과 퉁소 잡는 자의 조상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한마디로, 음악을 즐겨한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서 만족을 느끼지 못하니까, 음악을 통해서 만족을 찾으려고 했던 것입니다.

 

22절을 보시면, 씰라와 두발가인은, 동철로 각양 날카로운 기계를 만들었습니다. 무기를 만든 것입니다. 사람을 죽이는 칼을 만들고, 창을 만든 것입니다. 점점 하나님이 원하지 않는 것을 발명합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23절에 라멕이라는 사람이 나오는데, 이 사람이 이렇게 말합니다. '나의 창상을 인하여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을 인하여 소년을 죽였도다' 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창상이란, 날이 있는 물건에 의해 다친 것을 창상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앞에서 씰라와 두발가인이 발명한 무기를 가지고 서로 싸우다가, 다치니까, 라멕이 사람을 죽인 것입니다.

23절 하반절을 다시 보시면, "상함을 인하여 소년을 죽였도다" 라고 말합니다. 이제는 어른 아이 할 것이 없이, 짐승처럼, 닥치는 대로 사람을 죽였다는 말입니다. 칼과 창을 쓰지 못하는, 어린 소년까지 죽이는 잔인한 사람들로 변했다는 말입니다.

 

죄가 이렇게 무서운 것입니다. 하나님과 담을 쌓고 살더니, 결국에는 무기를 만들어, 닥치는 대로 사람을 죽이는, 죄악세상으로 변해 버린 것입니다. 사람을 죽이는 것이, 죄중에 큰 죄죠. 그런데 왜 큰 죄인지 아세요.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든 작품입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의 작품을, 죽인다는 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큰 죄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이 만든 세상을 그렇게 쉽게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25절을 보시면, 죽은 아벨 대신, 다른 아들을 주셨는데, 그의 이름이 셋입니다. 그리고 그 셋이 아들을 낳았는데, 이름이 '에노스' 입니다.

 

26절 보시면, "그때에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라고 말씀합니다. 비로소, finally……….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창조하신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의 입에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게 하기 위해서' 우리를 만드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살지 않은 것입니다.

이사야 43:21절에 더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해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함이니라" 이것이 우리를 이땅에 보내신 이유입니다.

 

그런데 죄를 짓고, 하나님과 담을 쌓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셋이라는 다른 아들을 주셔서, 결국,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게 하셨습니다.

 

지금 이 시대에도,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불러야 함에도 불구하고, 부르지 않는 사람들이 무수히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하나님을 찬양하며, 살아야 하는 것이, 우리가 이땅에 태어난 목적인데 말이죠. ….

 

원하옵기는, 이 한 새벽에 나오신 우리 꿈의교회 성도님들은, 끝까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다가, 넉넉히 천국에 들어가시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