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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의 창고/ 비전나리의 설교

빈 배의 은혜 - 누가복음 5:1-11

by Peartree 2012. 12. 26.

빈 배의 은혜

누가복음 5:1-11

 

오늘 본문을 보시면, 베드로가 예수님을 만나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만나기 전 까지는, 물고기 잡는 어부였습니다. 평생 배운 거라곤, 갈릴리 바닷가에서, 물고기 잡는 것 밖에 아는 것이 없는, 아마도 조상 대대로, 이 직업을 가업으로 이어온, 어부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날이 있다고, 지난밤에 밤새 그물을 던졌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그리고는 오늘 본문 2절을 보시면, '배에서 나와서 빈 그물을 씻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빈 배가 축복의 배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날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만약 그날에 베드로가, 배에 물고기를 가득히 싣고, 만선으로 돌아왔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얼른 생선을 시장에 내다 팔아야죠. 지금처럼 냉장고도 없는 시대인데, 한시라도 서둘러야죠. 주님을 태우고,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설교를 듣고 앉아 있을 시간이 어디 있습니까?

싱싱한 물고기를 빨리 손질해서 wholesale 에다 넘겨야죠. 예수님께서 '배를 좀 빌려 탈 수 없겠냐?' 고 물으시면, "예수님, 죄송합니다! 물고기가 상하기 전에 가지고 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상품 가치가 떨어집니다." 라고 하면서 거절했을 거예요.

 

하지만, 오늘 베드로의 배는 빈 배였습니다. 그리고 그 빈 배에, '주님의 은혜' 가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빈 배의 은혜' 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기 원합니다.

 

오늘 본문3절을 보시면, "예수께서 한 배에 오르시니 그 배는 시몬의 배라 육지에서 조금 뛰기를 청하시고 앉으사 배에서 무리를 가르치시더니"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지금, 베드로의 배는 빈 배였기 때문에, 주님을 태울 수 있었습니다.

베드로가 물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했기 때문에, 주님이 그 배에 올라 타신 것입니다.

그리고 베드로도, 빈배로 돌아와, 할 일이 없으니까, 주님을 배에 태우고, 설교를 끝까지 들을 수 있었던 거예요.

 

그렇지 않고 물고기가 가득한 배로 돌아왔다고 해봐요. 손에 몇 푼의 돈은 거머쥐었을지 모르죠, 그러나 주님을 태우지는 못했을 거예요.

그래서 우리의 인생이 주님에게 내어드릴 조그만 공간도 없이, 다른 무엇인가로 꽉차 있다면, 주님은 결코 우리 인생에 들어오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베드로에게 있어서, 비록 빈배로 돌아와 주님을 태운 것은 엄청난 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빈 배가 축복일 수 있습니다. 너무 많이 물고기 잡아봐요. 더 분주하죠, 더 바쁘죠. 성공하면, 성공할 수록, 주님을 태울 시간은 점점 없어집니다. 왜냐하면, 바쁘거든요. 할 일이 점점 많아지거든요.

 

그래서, '예수님의 딜레마' 란 책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딜레마' 란 한국말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아주 난처한 상황' '딜레마'라고 하는데, 그 책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우리 크리스천들이, 기도를 많이 한다는 거예요. 그리고 기도 제목도 여러 가지가 있는데,

어떤 사람은, 직업을 달라는 기도를 합니다. 어떤 사람은 물질의 축복을 구하는 기도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좋은 배우자를 만나게 해달라는 기도를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는, 그 기도를 다 들으시고, 응답해 주고 싶어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직업을 달래서 직업을 주었는데, 주일에 일을 해서, 딜레마라는 것입니다.

물질의 축복을 구해서, 물질의 축복을 주었는데, 그 물질을 죄 짓는데 사용하니까, 그것이 딜레마라는 것입니다. 또 좋은 배우자를 주었더니, 그 배우자와 함께 세상 재미에 빠져서, 주님과 멀어지니까, 그것이 딜레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책의 제목이 '예수님의 딜레마' 입니다.

기도를 들어 줄 수도 없고, 들어 주지 않을 수도 없는 그런 상황 때문에, 예수님께서, 곤란하시다는 내용입니다.

 

오늘의 말씀도 사실 딜레마 입니다.

베드로에게 빈배는, 실패였습니다. 그런데 그 배에 주님을 태우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빈배로 살아야 하는지, 아니면, 물고기를 배에 가득히 채워야 하는지, 딜레마 인 것입니다. 물고기를 가득 채우게 되면 주님을 태울 수 없으니 말이죠.

 

그래서 제가 생각해 낸 것인데, 물고기를 잡은 큰 회사를 만들는 거예요. 그래서 물고기는 직원들이 잡고, 나는 빈 배로 주님을 태우고 다니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얼마나 좋겠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기까지, 하루 아침에 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누구나 빈 배의 아픔을 경험합니다. 빈 배의 실패를 맛보지 않은 사람은 이 땅에 한 명도 없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런 일들이 우리 앞에, 일어나지 말라는 법은 없습니다. 그러나 또한 걱정하지 마세요. 베드로를 회복시키신 주님께서, 우리도 회복시켜 주신 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왜 회복시켜 주셨는지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1. 첫째로,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회복시키신 이유는, 배가 텅 비어 있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베드로는 평범한 어부였습니다. 특별히 배운 것도 없고 재물이나 명예도 없었던, 그가 단지 가지고 있었던 것은 배와 그물, 그리고 고기잡는 기술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날 밤 물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는 것은, 베드로에겐 큰 충격이었을 것입니다. 만약에 이런 일이 계속되면, 큰일인 것이죠. 다른 거 뭐 할 수 있는 것이 있어야죠? 배운 게 어부인데 말이죠.

오죽했으면, 5절에, '밤을 새가며 그물을 던졌겠습니까?' 그런데도, 한 마리도 잡지 못하고 헛 탕을 쳤습니다. 그리고 베드로의 배는 텅 비어 있었습니다.

 

여러분 베드로와 같은 경험을 해 보셨습니까? 아니면, '지금 내 삶이 베드로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라고 생각하십니까?

힘든 이민생활 가운데, 지금 돌아보니까, 내 배가 텅비어 있지는 않습니까?

힘들어도 자녀들 바라보고, 살았는데, 자녀문제도 텅비어 있지는 않습니까?

그렇다고, 신앙 생활을 알차게 했나, 내 심령을 보니까, 심령도, 텅비어 메말라 있지는 않습니까?

그래도, 이 투산에서, 인간관계는 잘 하려고 했는데, 그것도 신통치 않습니까?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우리의 삶이 베드로와 별반 다른 것이 없습니까?

 

그렇다면, 너무 서두르지 마십시요. 주님께서 찾아 오실 타임입니다. 베드로의 빈배를 찾아오셨던 주님이, 우리의 텅빈 인생의 빈배도 반드시 찾아 오신 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너무 조금할 것 없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상황이 닥치면, 마음이 조급해 지고, 오히려 강팍해 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더 바쁘고, 분주해집니다. 그러나 오늘 베드로는 어떻게 하고 있었습니까? 그물을 씻고 있었습니다.

그물을 씻고 있었다는 것은, 휴식을 갖겠다는 것입니다. 물고기 잡지 못했다고 해서, 바다로 다시 나가지 않았습니다. 그물을 씻으며, 다음 번에 잘 해야지! 하며 반성하고 있었을 거예요.

그 때에 예수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우리 주님은요. 빈배에 더 관심을 가지셨습니다. 왜입니까? 빈배가 주님이 타시기에 더 쉽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앞에서도 말씀 드렸듯이, 무엇인가로 가득 찬 배는, 주님이 들어가실 틈이 없습니다.

여러분, 인생을 살면서, 아무리 바쁘고 분주하더라도요, 주님을 태우실, 공간 만큼은 남겨두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그물이 찢어지도록 물고기를 잡는 기적이 일어나든지 하지요.

만약에, 베드로가, '주님 시간이 없습니다. 바쁩니다. 이 빈 배를 보세요. 다시 나가서 물고기 잡아야 합니다. 주님! 이 배 말고, 저기 있는 요한의 배를 빌려 타시지요.' 라고 하며, 거절했다면, 그런 기적을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얼마나 바쁜 시대인지 몰라요. 아주 분주한 시대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농담 삼아 말하기를, '죽을 시간도 없다' 라는 말을 합니다.

여러분 한번 세상에 나가서 사람들에게 '주일에 교회에 나오세요' 라고 전도해 보세요. 그러면, 10명중에 9명은, '나갈 시간이 없다' 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면서, '여유가 생기면 그 때 나가겠다' 고 합니다. 그런데요. 그 여유 있는 시간이 언제 오냐는 거예요. 그러다가 만약에, 영영 오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여러분, 여유 있는 시간이 언제 옵니까? 잘 오지 않습니다.

마틴루터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승리하는 비결은, 우리의 빼앗긴 시간을 사단에게서 다시 찾아 오는 것이다' 라는 말을 했습니다. 마귀는, 우리를 자꾸 바쁘게 만들어, 하나님과 멀어지게 한다는 것입니다. 바쁘다, 바쁘다 하면, 마귀에게 끌려 다니는 거라는 것입니다.

 

원하옵기는, 베드로처럼, 앉아서 그물을 씻는 시간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혹시, 내 삶이 지금 빈 배 같다고 생각되십니까? 그러면, 주님을 나의 인생에 배에 어떻게 태워야 할지, 그물을 씻으며, 생각해 보세요.

괜히 분주하게, 사단에게 끌려다니시지 마시고요.

그러면, 반드시, 베드로를 찾아가 주셨던 주님이, 우리의 삶에 찾아 오실 것입니다. 그래야, 빈배가 채워지는 것입니다.

 

  1. 두번째로,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회복시키신 이유는, 베드로가 모든 것을 다 내려 놓았기 때문에, 회복시켜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밤새 헛 그물질 하고, 빈배로 돌아와 빈 그물을 씻는 베드로는 연상해 보십시요. 불쌍한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연민이 가지 않습니까?

아마 지금 베드로의 마음은, 그 빈 배처럼, 공허했을 거예요.

빈손으로 집으로 돌아가는 그의 축 처진 어깨와 무거운 발걸음을 생각하니까, 주님이 찾아가지 않으면 안 되는 그런 분위기였습니다.

우리 주님은, 그런 사람, 그대로 지나 칠 수 없는 그런 성품을 가지셨습니다. 어떻게라도, 베드로의 빈 배를 채워 주고 싶으셨던 것이 우리 주님의 마음입니다.

 

그래서, 일부러 베드로의 빈 배를 빌려 타신 것입니다. 그리고는 깊은데 그물을 내리라고 말씀하셨는데, 베드로의 대답이, 100만불짜리 대답이었습니다.

5절에 보시면,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맞도록 수고 하였으되, 얻은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리나이다" 자신의 실패, 자신의 무능함을 주님께 철저히 인정합니다.

주님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지금까지 저는 고기 잡는 전문가 인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였습니다. 주님이 전문가십니다. 주님이 내리려고 하는, 깊은 곳에 그물을 내리겠습니다.

주님 앞에, 자존심도 다 내려 놓았습니다.

자기의 의지도 내려 놓았습니다. 사실, 갈리리 바다는, 지금도 깊은 곳에 물고기가 살지 않는다고 합니다. 제가 여렸을 때, 냇가에서 물고기를 잡을 때에도, 물고기가 가장자리에 있더라구요. 그런데, 지금 주님께서 깊은 곳에 그물을 내리라고 하는 것은, 어부의 상식으로는 완전 납득이 가지 않는 말입니다.

그런데도, 베드로는, '네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라고 합니다.

 

지금 베드로는, 다 비웠습니다. 자손심도 내려 놓았습니다. 그나마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 까지, 아무것도 아님을 인정했습니다.

 

여러분, 나의 이런 연약함을 고백할 때, 주님이 채워 주십니다.

'주님 저는 왜 그렇게 못됐을까요? '주님, 저는 왜 이렇게, 성질이 급합니까?'

'주님, 저는, 저의 자녀들을 잘 키울 수가 없습니다. 주님 저는 믿음이 없습니다. 등등…내가 할 수 있다는 것 내려 놓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다음부터는 주님께서 일하십니다.

 

여러분! 우리가 우리의 것을 비울 때, 그때부터는 주님이 일하십니다.

그러면요, 우리가 할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습니다. 베드로가 자기 힘으로 고기 잡아 봤자, 얼마큼 잡을 수 있었겠습니까? 주님이 하셔야, 풍성함이 있습니다. 내가 하면, 한계가 있습니다.

 

제가 가끔 하는 말이 있습니다. 내 힘으로 돈 버는 거는 한계가 있습니다. 주님이 부어주셔야, 풍성함이 있습니다. 부지런함으로 버는 거는 한계가 있어요. 주님이 하시면, 거기에는 말할 수 없는 기쁨과 기적이 있습니다.

주님이 하시면, 나만 복 받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본문 7절을 보시면, "이에 다른 배에 있는 동무를 손짓하여 와서 도와 달라 하니 저희가 와서 두 배에 가득 잠기게 되었더라" 말씀합니다. 이렇게 주님이 하시면, 나로 인해서, 이웃이 복 받고, 교회가 복을 받는 것입니다.

 

이렇게 주님께 쓰임 받는 사람들이 되고 싶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실패하고 인생이 텅 비어 있는 것 같아 보여도, 너무 분주하지 마시고, 조급해 하지 마시고, 이 때야 말로, 주님께서 내 삶 속에 들어 오실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 것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좀, 바쁠수록, 주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지 원합니다. 바쁘면, 영락없이, 주님과 멀어지는 거 말고요. 바쁜 중에, 주님을 찾아보세요. 그래야 풍성함 있습니다.

 

그리고 내 인생이 빈 배처럼, 아무 것도 없다고, 부끄러워 하거나, 숨기지 마시고, 나의 연약함, 부족함 있는 그대로, 주님께 내려 놓으십시요.

그러면, 그 순간부터, 주님께서 일하시기 시작 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볼펜 중의 하나가 바로 모나미 볼펜입니다. 이 볼펜을 보면 "153"이라는 숫자가 쓰여 있습니다. 지금도 그럴꺼예요. 모든 볼펜에 153이라는 숫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다 그 이유가 있습니다.

이 회사 사장이 볼펜 사업을 하다가 그만 폭삭 망해 버렸습니다.

어렸을 때에는 신앙생활을 잘 하던 사람이었는데 사업이 잘 되니까 하나님을 떠나, 잊고 살게 되었습니다. 세상과 짝짓고 세상의 것이 최고인 냥 살아 가다가 그만 사업이 망하게 된 것입니다

그는 나중에 실패의 원인을 깨닫고는 하나님 앞에 손들고 돌아옵니다. 기도원에 올라가서 눈물/ 콧물 다 흘리면서 "주여 제가 잘못했습니다."하고 회개했습니다.

간절히 금식 기도를 하며 기도하고 있는데 어느 날 꿈인지 환상인지 모르지만 하나님께서 그에게 153이라는 숫자를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사장은 이 숫자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몰라서 목사님께 찾아가 물었습니다.

"목사님! 제가 153이라는 숫자를 보았는데 이 숫자에 대한 의미를 설명해 주세요?"

그런데 목사님도 처음에는 153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몰랐다고 합니다.

그래서 "제가 기도하고 연구한 뒤에 알려드리겠습니다."하고 그 사장을 돌려 보냈습니다.

그 후 목사님은 성구 사전을 찾아보고는 요한복음 21장에서 이 숫자를 찾아냈습니다. 그리고서 즉시 그 성도를 불러 설명해 주었습니다.

"성도님, 153은 제자들이 배 오른편에 그물을 던져서 잡은 물고기 숫자입니다. 우편, 즉 주님 편으로 방향을 돌려서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살아가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153의 넘치는 복을 내려주실 것입니다."

이 해석에 은혜를 받고 사장은 모든 삶의 방향을 주님편으로 돌렸습니다.

 

그때부터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고 자신을 비우는 삶을 살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동안 세상에 욕심을 냈던 모든 것을 내려놓고 마음을 비우기 시작합니다.

그리고는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하며 믿음으로 살아갑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이 성도에게 큰 복을 주셔서 볼펜 사업이 잘되게 됩니다. 그래서 이에 감사하여 이 볼펜위에 153이라는 숫자를 새긴 것입니다.

 

사랑하는 우리 꿈의 교회 성도님들도, 바쁜 중에, 삶의 방향을 주님께로 향기를 소원합니다. 바쁜 삶 속에서도 주님을 태울 수 있는 공간 남겨 두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주시는 풍성한 일들이 일어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