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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의 창고/ 비전나리의 설교

소발과 욥의 쟁론 - 욥기 11:1-11, 12:1-8

by Peartree 2012. 12. 26.

소발과 욥의 쟁론

욥기 11:1-11, 12:1-8

 

오늘은, 욥의 세번째 친구인 소발과 욥의 쟁론입니다. 지금까지, 욥의 세 친구들이, 고난 당하고 있는 욥에게 와서 한마디씩 했습니다. 처음에는 엘리바스였는데, 지적인 사람처럼 하나님을 들먹이며 변론을 했습니다. 두번째는 빌닷이였는데, 이 사람은 정죄하는 스타일이었습니다. '네가 하나님께 무엇 무엇을 잘못해서 얻어 맞는 것이다" 라고 정죄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소발은 오만한 사람처럼 보입니다.

 

7절에 보시면, "네가 하나님의 오묘를 어찌 능히 측량하며 전능자를 어찌 능히 온전히 알겠느냐" 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 잘못해서, 얻어 맞는 주제에, 전능하신 하나님을 네가 어찌 안다고 하느냐?' 이말입니다.

8절에도, "하늘보다 높으시니 네가 어찌 하겠으며, 음부보다 깊으시니 네가 어찌 알겠느냐" 라고 말합니다.

 

소발은 계속해서, "네가 어찌 알겠느냐?" 라고 말하며, 너는 나보다 하나님을 잘 알지 못한다. 이 말을 하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하나님을 잘 모릅니다. 하나님을 잘 아는 사람도 없습니다. 욥도 잘 모르고, 욥에게 '넌 하나님을 잘 모른다고 핀잔을 주는' 소발도 잘 모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앞에서는 누구든 오만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소발은, 오늘 욥 앞에서, '너는 하나님을 잘 모른다' 고 핀잔을 주며, 은근히 자기가 더 하나님을 잘 안다고, 오만한 모습을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런 건방진 소발에게 그동안 참았지만, 오늘 세차게 반박을 합니다.

 

12:2절을 보시면, "너희만 참으로 사람이로구나, 너희가 죽으면 지혜도 죽겠구나" '너희만 사람이냐, 너희만 지혜가 있느냐, 그렇지 않다, 너희가 말하는 지혜는, 얼마든지, 나도 알고 있다.' 이런 말입니다.

3절을 보시면, "나도 너희같이 총명이 있어 너희만 못하지 아니하다" 고 말합니다.

 

오늘 욥이 단단히 화가 난 것 같습니다.

7절을 보시면, "이제 모든 짐승에게 물어 보라 그것들이 네게 가르치리라 공중의 새에게 물어 보라 그것들이 또한 네게 고하리라" 지금 네가 말하는 것은, 짐승도 알고 있고, 새도 알고 있는 내용이다. 이 말입니다. 아주 기본적인 것이다. 그러니까, 그만 가르쳐 들지 말고, 내가 처한 상황을 한번 보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그런 지혜롭다 하는 말을 해도, 내 귀에는 들리지 않는다. 왜냐하면, 나는 아프다. 그런거 들을 정신이 없다. 내 몸에는 구데기 기어 다니는데, 그런말 하려면, 그 시간에 차라리, 내 몸에 구데기가 떼어 달라' 이 말입니다.

 

소발을 비롯해서, 욥의 세친구들이 놓치고 있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리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번 시간에도, 상대방의 입장은 하나 전혀 고려하지 않고 빌닷이, 뭐라고 그랬습니까? '자네 자식들이 죽은 것은 죄를 지어서 그렇다' 고 말을 했죠.

 

우리는 항상 사람을 대할 때, "내가 저 사람의 처지에 놓인다면?" 이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야 합니다. 그리고 그 상황에 맡는 말을 해야합니다. 그렇지 않고, 자기의 지혜만 믿고, 정죄하는 것 처럼 말하면, 아무리 하나님의 이름을 대가며 말을 한다 할지라도, 상대방의 귀에 전혀 들어가지가 않습니다.

 

오늘 보세요. 그렇게 과묵한 욥이 듣다 못해, '네가 말하는 것은, 짐승들도 알고, 새도 알고 있는 것이다' 라고 말합니다.

 

사실, 욥의 세 친구들은, 처음에는 욥을 위로 한답시고, 찾아 온 것입니다. 그러다가, 이 고난이 어디에서부터, 비롯된 것인지, 쟁론을 하다가, 서로에게 상처만 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고난을 당하면, 이 고난이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이지, 쟁론할 필요가 없습니다. 본인이 더 잘압니다. 하나님께서 본인에게 먼저 말씀해 주십니다.

그래서, 고난 당하는 성도가 있으면, 원인을 생각하기에 앞서, 그 고난을 잘 이겨 낼 수 있도록, 그를 위해서 기도해주고, 염려해 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짜 사랑인 것입니다.

 

오늘도, 힘든 삶 가운데, 서로 서로 돌아보아, 혹시 내 곁에 힘들어 하는 성도나 이웃이 있다면, 정죄하기 보다, 그를 위해서 기도해주고, 염려해 주는 귀한 사랑이 넘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