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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의 창고/ 비전나리의 설교

내 안에 계신 성령님 - 요한복음 14:13-20

by Peartree 2012. 12. 26.

내 안에 계신 성령님

요한복음 14:13-20

 

지 지난주에는 예수님께서 '아버지 집' 으로 가신다고 하니까, 도마가 '주여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삽나이까?' 라고 물었습니다. 그리고 지난주에는, 빌립이,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라는 질문을 했습니다. 이 질문에 주님께서 무엇이라 말씀하셨습니까?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고 하셨습니다. 예수님 자신이 곧, 하나님이라는 말씀을 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는 우리 주님께서, 떠나가시면, 남아 있는 제자들이, 걱정이 되고, 안심이 안되었는지, 14절에 보시면,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말씀을 하셨습니다.

한 마디로, '무한정 쓸 수 있는 보증 수표' 를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 할 때, 항상 어떤 말로 끝을 맺습니까?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요즘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렸습니다." 라고 하기도 합니다. 영어로는 'In Jesus Name'이라고 하죠.

왜 이렇게 합니까? 오늘 14절의 말씀대로,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면, 내가 시행하신다" 고 하셨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이름에는, 어마 어마한 권세가 있습니다. 다른 이름에는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의 이름에만 이런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복음서를 보시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누가복음 10:17절을 보시면, 칠십인이 주께 돌아와 이렇게 말합니다. "주여 주의 이름으로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 하더이다" 라고 보고를 합니다.

 

이토록, 예수님의 이름은, 무한정 쓸 수 있는 백지 수표 같은 것입니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아버지 집' 으로 가신다고 하니까, 너무 불안해 하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안심시키기 위해서, "예수님의 이름" 을 사용하면, 세상을 능히 이겨 낼 수 있다는 약속을 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이름을 사용하는 행위를 우리는 '기도' 라고 말합니다.

 

몇 년전에, 베스트셀러였던, '야베스의 기도' 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 책에 천국을 체험한 존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존이라는 사람이 천국에 가서 베드로의 안내를 받습니다. 황금 길을 걷습니다. 아름다운 저택들을 봅니다. 천사들의 노래에 황홀해 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어느 곳을 가니까, 창문이 하나도 없고, 출입문만 한 개 있는 아주 이상하게 생긴 거대한 창고 하나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베드로에게 물었습니다. "베드로님, 저 창고가 무슨 창고인지 안에 들어가 보면 안될까요?" 그러자, 베드로는 '안 보는 게 더 나을 것 같다' 고 합니다. 그래서 너무 그 안을 보고 싶어서, 존은 베드로에게 '저 창고 안을 좀 보여 달라' 고 졸랐습니다. 그러자, 마음이 약해진 베드로가 문을 열어 주었는데, 그 거대한 건물 안에, 온통 선반에는 빨간 리본으로 묶여진 하얀 상자들이 아주 깔끔하게 잘 정돈되어 있었고, 이름이 적혀 있었습니다. 존은 자기의 이름이 적힌 상자를 찾아서 빨간 리본을 풀고 뚜껑을 열었습니다. 그 안에는 존이, 세상에 살아 있을 동안에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시려고 준비해 두었던 복들이 가득하게 들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총 23개의 특별한 복을 주시기로 준비해 놓으셨는데, 존은 하나만 구해서 누리고, 나머지 22개는 구하지 않아서, 상자 안에 그대로 있던 것이었습니다. 존은, 기도하지 않아서, 받지 못한 축복이 상자 안에 그대로 있는 것을 보고, 가슴을 치며 후회했다고 합니다.

 

5만번 기도응답 받은, 죠지 뮬러 목사님도 이런 말을 했습니다. '천국은 후회라는 것이 전혀 없는 곳이다. 그러나 딱 한가지 후회 할 일을 찾는 다면, 기도하지 않아서, 받지 못한 복이, 천국에 그대로 있는 것을 보고는 후회할 것이다.' 라고 했습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받아야 할 복을 다 준비하시러, '아버지 집' 에 가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내 이름' 으로 무엇이든지 구하기만 하면, 천국에서 그대로 시행 할 것이라고 약속해 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그런데도, 기도 않하시겠습니까? 무한한 백지 수표 들고, 그 수표에, 아무것도 적지 않으시겠냔 말이예요.

 

요즘은, 세상이 참 좋아졌습니다. 특히 좋아진 것 중에 하나는, 스마트폰이라는 것이 생겨서, 세상이 얼마나 편리한지 모릅니다. 앞으로는, 지갑도 없어질 거라는 예측도 합니다. 스마트 폰으로 결재를 하고, 스마트 폰으로 메모를 하고, 전화도 하고, 그거 하나면 다 되는 세상이, 실제로 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핸드폰이 없으면, 불안합니다. 그리고 이 핸드폰 때문에, 위급한 상황에서, 목숨을 건진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인공위성에서 발신자 추적을 해서, 납치 되었다가, 살아난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핸드폰보다, 더 유용한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 '기도 입니다.'

위급할 때, 핸드폰은 911에서 듣지만, 기도는 '하나님께서 들으신다는 거예요'

 

인터넷에 기도와 핸드폰의 차이라는 재미있는 글이 있습니다.

핸드폰은 부재중일 때는 받는 사람이 없지만, 기도는 하나님께서 항상 기다리고 받아 주신다.

핸드폰은, 배터리가 다되면 사용할 수 없지만, 기도는 사용하면 할수록, 더 강력하다.

핸드폰은 요금을 내야 사용할 수 있지만, 기도는 한 번 가입하면, 평생 무료통화다.

핸드폰은 공공장소에서 사용할 수 없지만, 기도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우리 주님께서는, 최고로 편리하고, 빠르고, 쓰면 쓸수록 강력한, '기도' 라는 무기를 우리에게 주시고 가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 이름으로 구하는 기도' 만 주시고 가셨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도 안심이 안되셨는지, 16절에 보시면,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보혜사 성령님' 을 우리에게 맡겨 주고 가셨습니다. 위탁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한 표현입니다.

위탁이란 표현은, 쉽게 말하면, 이런 것입니다.

 

어떤 엄마에게 자녀들이 11명이 있었습니다. 하루는 이 엄마가 이 11명의 자녀들의 쓸것을 사러, 시장에 가야 했습니다. 그런데, 집에 그냥 놓고 가기가 걱정스럽고, 안심이 안되는 것예요. 그래서 이 어머니가, 수소문한 끝에, 아이들을 돌보는 전문가 한 분을 알게되고, 그분에게 11명의 자녀들을, '내가 없을 때 좀 맡아 달라' 고 부탁을 합니다. 그리고 어머니는 자녀들의 쓸 것을 사러, 시장에 가죠.

이것이, 위탁인 것입니다. 더 나은 사람에게 안심하고 맡기는 것이 위탁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들을, 더 안심하고 맡길 수 있는 '보혜사 성령님' 께 맡기고 '아버지 집' 으로 가셨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성령의 시대' 라고 말씀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보혜사' 를 헬라어 원어로, '파라클레토스'라고 합니다. 이 뜻은, '변호사, 위로자, 상담자, 협조자' 라는 뜻입니다. 영어 성경으로도, '보혜사' 를 'Counselor' 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Counselor' 가 뭐하는 사람입니까? 나의 고민을 들어주고, 내가 바른 길로 가도록 조언을 해주고, 때로는 따끔한 충고도 해주고, 그래서 결국엔, 내가 성공적인 삶을 살도록 유도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 'Counselor' 입니다.

 

16절을 보시면, 우리의 'Counselor' 이신 '보혜사 성령님' 께서 언제까지 우리와 함께 있습니다.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18절에는,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보혜사 성령님' 께서 우리를, 눈동자 처럼, 보살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보디가드' 처럼 말이죠.

 

여러분, 이런 '보디가드' 한 명씩 있으면, 참 좋겠죠? 그런데 걱정하지 마십시요. 지금도 성령님께서, 우리 속에 계십니다.

17절을 보세요.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말씀합니다. 우리와 함께 계시고, 우리 속에 계신다고 말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한다' 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성령님이 그 안에 있지 않다는 말입니다. '보디가드' 가 없다는 말입니다.

'보디가드' 가 없으면, 어떻게 됩니까? 위험에 처할 때, 구해 줄 수가 없습니다. 천국의 심판대 앞에서, '변호해 줄 사람' 이 없습니다.

변호해줄, 변호사가 없으면, 재판에 어떻게 됩니까? 재판에서 질 확률이 높습니다. 세상재판에서는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심판대에서는 '변호해 줄 사람' 이 없으면, 무조건 지게 됩니다.

 

좀전에, 말씀드렸죠. '보혜사' 는 헬라어로 어떤 뜻이라고요? "상담자, 변호사" 란 뜻입니다. 천국에 가는 길을 끝까지 나를 떠나지 않고 상담해 주십니다. 그리고 천국문 앞에서, 저와 여러분들을 대신해서 변호해 주시는 분이, 성령님이십니다. 이렇게 성령께서 변호해 주셔야만, 천국에 넉넉히 들어가는 것입니다.

 

영국의 최고의 설교자라고 일컬어지는 찰스 스펄전 목사님은, '그리스도인이라면, 반드시 'Yes' 라고 답해야 할, 세가지 질문이 있다고 했습니다. 이 질문에, 'Yes' 라고 답 할 수 있어야, 천국에 들어 갈 수 있다고 말하면서, 설교 중에, 종종 이런 세가지 질문을 던졌다고 합니다.

 

첫째는, 당신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했습니까?

둘째는 당신은 성령을 받았습니까?

셋째는 당신은 성령으로 충만하십니까?

 

이 세가지 질문에, '예' 라고 답 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첫번째와 두번째는 자신있게 답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했습니까? 성령을 받았습니까? 물론 예수님을 영접하는 순간, 성령님이 우리 속에 거하게 되기 때문에, 이 두 질문은, 예수님을 '내 삶의 주인과 왕으로 영접' 하면, 해결이 됩니다. 그런데, 이 세번째, 질문이 문제입니다.

 

당신은, 성령으로 충만하십니까? 사실 성령으로 충만하면, 앞에 두개의 질문은, 질문 하나 마나 입니다. 성령으로 충만하면, 성령은 받았으니까, 충만 한 것이고, 성령으로 충만하면, 예수님을 영접했으니까, 충만할 수 있는 있는 것입니다.

 

그럼 성령 충만을 무엇으로 알 수 있습니까? 방언을 말하고, 귀신을 좇아내는 것이 성령 충만한 것입니까? 예전에 순복음에서는 그렇게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지금도 그렇게 한다면, 순복음이 아닙니다.

 

이 성령 충만에 대해서, 에베소서 5장 18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술 취하지 말고 성령을 충만히 받으라" ……

이 한 구절에, 성령 충만한 상태가 어떤 상태인지 우리는 유추해 낼 수가 있습니다.

 

술 취한 다는 것은 어떤 상태를 말합니까? 술을 취한다는 것은 알코올의 지배를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처음에는 사람이 술을 먹습니다. 그 다음에는, 술이 술을 먹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술이 사람을 먹습니다. 결국엔, 사람의 마음과 영혼까지 알코올에 던져 버리고는 파멸하게 되죠.

마찬가지로, 성령 충만은, 성령의 지배를 받는 것입니다. 술에 취한 사람이 술에 지배를 받고 통제되는 것처럼, 당연히 성령 받은 사람은, 성령의 지배와 통제를 받아야 합니다. 이것이 성령 충만입니다.

 

그래서 성령의 지배를 받으면, 생활이 변화게 됩니다.

예수중심, 교회 중심으로 삶이 변합니다.

술이 지겹도록 싫어 집니다. 남을 험담하고 욕하는 것도 싫어 집니다. 왜냐하면, 내 속에서, 성령님이 그런 것을 싫어하니까, 그렇습니다.

 

성도와 다투었습니다. 그런데, 자꾸 내 속에서, 이런 생각이 납니다. '가서 사과하라' 내 안에서 성령님이 나를 'Counsel' 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은 두 가지 반응을 합니다.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아니요, 싫습니다'

여기서, 성령의 충만한 상태가 어떤 상태인지,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성령 충만은, 내 안의 성령님의 지배를 받고, 통제를 받는 것이 성령 충만인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번째 질문에, 성실하게, '예' 라고 답을 하지 못하고 사는게 지금 교회의 현실입니다.

 

원하옵기는, 우리 꿈의 교회 성도님들 모두가, 성령님의 지배를 받으시며, 사시다가, 성령님의 변호로 인하여, 넉넉히 천국문 통과하시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