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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의 창고/ 비전나리의 설교

빼앗길 수 없는 믿음의 기업 - 왕상 21:1-26

by Peartree 2012. 12. 26.

빼앗길 수 없는 믿음의 기업

왕상 21:1-26

 

인도에 전해지는 설화가 있습니다. 어떤 마술사가 쥐 한마리를 주의 깊게 관찰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까, 쥐기 벌벌떨고 있는거예요. 그래서 쥐에게 '왜떨고 있냐?' 고 묻었습니다. 그러나 '저 고양이 때문' 이라고 말합니다. 그 말을 듣자 마술사는 그럼 내가 '고양이로 만들어 주지!' 하고 고양이로 만들어 주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쥐가 고양이로 변한 다음에도 계속 떨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또 "왜 떠냐?' 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개 때문' 이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마술사는 고양이를 개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런데도 계속 떠는 거예요. 그래서 '왜 떠냐?' 고 묻으니까, 호랑이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또 호랑이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런데도 계속해서 떠는 거예요. '왜 떠냐?'고 묻자, '사냥꾼 때문' 이라고 말합니다.

결국 마술사는, 너는 아무리 주어도, 안정을 찾지 못하고, 욕심만 가득하구나, 하고, 다시 쥐로 만들어 줬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우리 사람도 마찬가지 인 것 같습니다. 걱정하는 사람은 항상 걱정하며 살아갑니다. 그런가 하면, 평안한 사람은 어떠한 일에도, 평안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느니라" 말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죄에 대해서 근심하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죄를 짓지 않을까, 어떻게 하면, 죄를 멀리할까, 이런 근심은, 해도 괜찮다는 것입니다. 이런 근심은 결국엔, 구원에 이르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근심은 사망이라고 말합니다.

 

오늘 본문에 보시면, 세상 근심에 때문에 사망에 이른 한 사람이 나옵니다. 이 사람이 아합왕입니다.

최소한 왕이라면, 어떻게 하면, 백성을 잘 다스릴까? 어떻게 하면, 이 나라를 하나님 잘 섬기는 나라로 만들까? 해야 하는데, 이 아합왕은, 왕궁 옆에 나봇이란 사람의 포도원을 가지지 못해서 근심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참, 사람 욕심이 한도 끝도 없습니다. 당시에 왕이라면, 천하를 다 가진거나 진배 없습니다. 아무리 왕궁 옆에, 나봇의 포도원이 있다고 해도, 왕은 그 나라의 주인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그것을 빼앗지 못해서 병이 났습니다. 5절 보세요. 그 포도원을 가지고 싶어서, 밥도 안먹고, 아이처럼 투정부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결국에는, 자기 아내, 이세벨을 통하여, 나봇을 죽이고, 그 포도원을 차지하게 됩니다. 얼마나, 못된 왕입니까?

 

그래서, 하나님께서 얼마나 화가 나셨는지, 엘리야를 시켜서, 21절에, "재앙을 내릴 것이라" 고 말씀합니다. 네 아내, 이세벨이 죽고, 그 피를 개들이 핥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너에게 속한 사람들은, 죽어서 개들이 먹고, 공중의 새들이 먹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스라엘의 역대 왕중에, 이렇게 악한 왕이 없었고, 왕비중에 이렇게 악한 왕비가 없었습니다. 두 부부가, 정말 악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악한 두 사람은, 사단이었습니다. 성도를 파괴하는 사단 마귀였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봇이 포도원을 왕에게 팔지 않아, 결국엔 죽임을 당했는데, 팔지 않는 이유가 3절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내 열조의 유업을 왕에게 주기를 여호와께서 금하실 찌로다"

4절에도, "내 조상의 유업을 왕에게 줄 수 없다" 고 말합니다.

이 말은, 조상 때부터, 내려오던 기업을 지켜야 한다는 말입니다.

사단이, 믿음을 버리라고 , 강요하고, 돈을 주며 팔라고 해도, 그리고 더 좋은 포도원을 준다고 하며, 아무리 사탕발림으로 설득을 해도 넘어가지 않습니다. 절대로 조상부터 전해온 이 기업 만큼은, 버릴 수 없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도 이 기업이 있어야 합니다. 이 기업은 믿음의 기업입니다. 이 믿음의 기업을 자녀들에게 잘 물려 주어야 합니다. 그러면, 그 자녀는, 오늘 나봇처럼, 어떤 시련이 와도, 믿음을 지킨다는 것입니다. 설사, 죽음이 온다 할지라도 말입니다. 우리가 지금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은 이유도, 이 믿음의 기업을 잘 물려 받은, 나봇 같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2000년이 지났어도, 지금까지, 복음을 듣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나봇은 구약의 순교자입니다. 믿음의 기업을 지키다가 순교한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우리 꿈의 교회 성도님들도, 이제 믿음을 붙들었으니까, 끝까지, 이 믿음 놓치지 마시고, 자녀들에게, 믿음의 기업을 잘 물려 주어, 여러분 자녀 대에서, 나봇 같은 믿음의 사람들이 많이 나오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