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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의 창고/ 비전나리의 설교

잔칫집의 사람들 - 요 12:1-11

by Peartree 2012. 12. 26.

잔칫집의 사람들

요 12:1-11

 

지난주 수요일에는, 나사로와 마르다, 그리고 마리아 이렇게, 세 남매에 대해서 살펴 보았습니다. 베다니라는 아주 작은 시골 동네에, 부모도 없이, 세 남매가 서로 의지하며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지, 오빠 나사로가 병들어 아프기 시작하더니, 갑자기 죽었습니다. 그 행복했던 가정에, 슬픔이 찾아온 것입니다. 그러나 능력 많으신 주님께서 죽은 지 나흘이나 지나, 시체 썩은 냄새가 나는데도 불구하고, 나사로의 무덤을 찾아가서, 다시 살려주셨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런 일이 있은 후, 예수님께서는 11:54절을 보시면, '에브라임' 이란 동네에 가셔서, 제자들과 함께 거기 머무시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유월절이 되자,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목에 베다니란 동네를 들르셨습니다. 다시 살아난 나사로도 볼 겸 들르셨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나사로의 집은, 예수님의 방문으로 인해 잔칫집이 되어 버렸습니다. 큰 잔치가 벌어진 것입니다. 그 나사로의 집에는, 예수님 혼자서 가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과 예수님의 12제자들을 포함해서, 최소한 남자 13명을 대접하는 자리였습니다. 또 그뿐만이 아닙니다. 9절을 보시면, '유대인의 큰 무리가 예수께서 여기 계신 줄을 알고 왔다' 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나사로의 집에서, 동네 잔치가 벌어진 것입니다.

 

여러분, 이 '잔치' 라는 단어는 듣기만 해도 기분이 좋지 않습니까? 무엇보다도, 잔칫집에는 사람도 많고, 기쁨이 넘치며, 음식이 많다는 것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에는, 거의 대부분의 잔치는 집에서 했습니다. 저희 아버지 회갑 잔치도, 그냥 저희 집에서 했습니다. 집에서 하면, 집안 식구들만, 음식 해대느라, 힘만 들죠. 그런데, 요즘은 거의 식당에서 합니다. 손에 물 묻히지 않아도 됩니다.

그래서 전 어렸을 때, 동네에 잔치가 있는 날이면, 가고 싶어서, 엄마한테 '나도 데려가 달라고?' 고 졸랐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면 그때 마다, 저희 어머니는 '오지 말라' 고 하셨습니다. 얼마나 야속한지, …그리고는 잔치에서 돌아오면서, 음식을 싸오곤 했습니다. 그때, 그 잔치 음식이 어찌나 맛있었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잔치 좋아하고, 잔치 음식 좋아하는 사람은, 반드시 예수를 믿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천국은 잔칫집 같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22:2절에도, "천국은 마치 혼인 잔칫집 같다" 말씀합니다.

요한 계시록 19:9절을 보시면,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들이 복이 있다" 고 말씀합니다.

천국의 생활은 잔칫집 같은 생활입니다. 그래서, 복음서 보시면, 예수님께서는, 집도 없으셨고, 가진 재산도 없으셨지만, 잔칫집 같은 분위기를 자주 만드셨습니다. 빈들에서 5000명 먹이실 때도, 상상해 보십시요. 완전 잔치분위기 였습니다.

왜 그러셨습니까? 예수님은 천국에서 오셨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천국의 삶이 잔칫집 같은 삶이었기 때문에, 이 땅에서도 잔칫집 같이 사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뭐라고 불렀냐면,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 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신앙생활이 힘들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가진 인상을 쓰며, 세상 고생 다 짊어진 사람처럼, 살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도, 여우도 굴이 있고, 참새도 제 집이 있는데,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 하면서도, 잔치 하는 기분으로 살았습니다.

그래야 사람들이 모여드는 것입니다.

 

교회도, 잔치하는 교회처럼, 늘 기쁨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믿지 않는 사람들이, 무슨 일인가? 하고 호기심으로 교회에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잔치를 하려면, 그냥 쉽게 잔치가 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잔치에 초대 받는 사람은, 가서 먹고, 마시고, 즐겁기만 하지만, 그 뒤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힘들게 일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헌신하고, 희생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잔치가 되는 것이고, 그 안에 기쁨이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럼 오늘, 본문에, 기쁨이 넘치는 잔치를 만들기 위해서 누가 어떻게 헌신하고 있는지 살펴 보기는 원합니다.

 

  1. 첫째는, 마르다의 헌신이 있었습니다.

 

본문 2절을 보시면, "거기서 예수를 위하여 잔치할 새 마르다는 일을 보고 나사로는 예수와 함께 앉은 자 중에 있더라"

 

오늘 본문 2절에 짧게 한마디 언급되는 이 말씀 "마르다는 일을 보고" 'Martha served' 라는 이 구절은 별로 우리 눈에는 잘 띄이지 않는 구절입니다. 길게 언급하지도 않았습니다. 아주 간단해요. '마르다는 일을 보고'……

이 말은, 마르다는 사람들 눈에 잘 띄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부엌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마르다가 없으면, 잔치가 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잔치에서 가장 중요한 음식을 만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교회 안에도 이런 봉사의 손길이 있어야, 그 사람으로 인하여, 잔치가 되는 것이고, 기쁨이 넘치는 것입니다.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의 한 교회가 제2차 세계대전 때 폭격을 맞고 크게 부서졌습니다.그리고 그 전쟁으로 인하여, 예수님의 조각상이 있었는데, 그 조각상의 두 손이 떨어져 나갔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한 조각가가 그 예수님의 조각상을 보고는, 손을 만들어 붙이자고 교회에 건의했고, 교회는 그 건의로 인하여 회의를 했습니다. 그리고는 결론이 나기를 '손을 만들어 붙이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러면서, 손을 만들어 붙이지 않는 이유를 이렇게 기록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없어진그 손을 다시 만들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자신이 바로 손의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라고 썼다고 합니다.

그 후로, 이 교회는 교회에 일꾼이 넘치며, 기쁨이 넘쳐서, 크게 성장했다고 합니다.

교회는 이렇게 일하는 손에 의해서 움직이는 것입니다. 이날 마르다가 없었다면, 잔치가되었겠습니까? 아마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교회는 이름없이, 빛도 없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헌신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움직이고, 성장한다는 것입니다.

  1. 두번째는, 나사로 같은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기쁨의 잔치가 된 것입니다.

다시 2절을 보시면, "거기서 예수를 위하여 잔치할 새 마르다는 일을 보고 나사로는 예수와 함께 앉은 자 중에 있더라"

여기 2절 말씀을 자세히 보시면 나사로는 아무 것도 안 한 것 같습니다. 그냥 예수님과 앉아 있기만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엄청난 헌신이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나사로는 앉아 있기만 해도 큰일을 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죽었다가 살아난 자입니다. 죽은지 사흘 되는 날에, 완전히 죽어 썩어 가는 그를 주님이 무덤에서 살려내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예수님 옆에만 앉아 있어도 사람들이 그를 보고는, 예수님이 생명의 주요,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증거해 주는 역활을 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앉아 있기만 해도 예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사람인 것입니다.

 

사람들이 예수님 옆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어떻게 생각했겠습니까? '아! 저 나사로를 그 옆에 앉아계신 예수님이 살리셨지!' 굳이 전도하지 않아도 전도가 저절로 되었습니다.

그래서, 나사로 같은 사람은, 예수님 옆에 앉아 있는 것이 도와 주는 것입니다.

 

보세요. 11절을 보시면, "나사로 까닭에 많은 유대인이 가서 예수를 믿음이러라"

 

우리 한번 11절을 다시 읽으시는데, '나사로' 라는 이름 대신에 나의 이름을 넣어서 한번 읽어보시겠습니다. "000 까닭에 많은 유대인이 가서 예수를 믿음이러라"

 

그런데 보시면, '나사로'가 대단히 큰일 했습니까? 그렇지 않았습니다. 마르다 처럼 일을 많이 했습니까? 아니면, 마리아처럼, 300데나리온이나 되는, 향유를 바쳤습니까?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나사로가 한거라곤, "죽었다 살아난 것"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저와 여러분들이, 모든 죽어 지옥에 가야 하는 인생이었는데, 예수 믿고 구원 받고, 다시 살아난 사람들입니다. 완전히 새 사람된 사람들입니다.

 

그런 저와 여러분들을 보고, 믿지 않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것이 가장 큰 전도 방법입니다. 밖에 나가서 전도 할 때, 여러 말 할 것 없습니다. 변화된 나의 모습이 전도입니다. 그래서 믿지 않는 사람들이 '내가 왜 예수를 믿어야 하는데?" 라고 물으면, 성경을 모르시면, "야, 나 변한거 봐봐! 예전에 내가 아니잖아, 예수 믿고, 기쁨이 있고, 천국의 소망이 있잖아" 라고 하세요.

그러면, "그래 맞아, 너 변하거 보면, 예수가 있긴 있나보다." 하고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1. 세번째는, 마리아와 같은 헌신자가 있었습니다.

 

본문 3절을 보시면,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씻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

 

그 향유의 값은, 계산에 빠른 가롯 유다의 평가에 의하면 300 데나리온이라고 말합니다.

 

지금 돈으로 약 몇 만불 정도 되는 엄청난 액수입니다. 그 엄청난 향유는 마리아의 전 재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런데 그 마리아는 예수님께 아낌없이 그 향유를 부어 주를 기쁘게 대접합니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요? 이유는 죽었던 오라비 나사로가 다시 살아 났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아깝지 않았던 것입니다. 사실, 죽었다 살아난 은혜를 무엇으로 갚을 수 있습니까? 돈으로도 갚은 길이 없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구원받은 그 은혜를 돈으로 갚을 수 있습니까? 어림도 없습니다. 그래서 돈으로 갚지 않는 것입니다.

구원의 은혜를 예수님께서 돈으로 갚으라고 하셨다면, 우리는 죽어라 돈 벌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됩니다. 주님은, 주님을 사랑하면 그것으로 만족해 하시는 분이세요.

그래서 마리아의 향유 옥합도, 탐심이 가득한, 가룟유다의 눈으로 보니까, 돈으로 보였지, 사실 정성을 드린것입니다.

 

그래서, 기쁨이 넘치는 잔치는, 정성에 의해서 만들어 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꿈의 교회 성도 여러분,

주님은, 지금도, 주님 나라의 잔치에, 일할 일군을 찾으십니다.

마르다처럼 숨어서 봉사하는 사람도 찾으시고, 나사로처럼, 사람들에 변화된 모습으로 전도하는 사람도 찾으시고, 마리아처럼 정성을 다하여, 헌신하는 사람도 찾으십니다.

 

나사로처럼 죽었던, 저와 여러분을 구원하신, 주님의 사랑에, 주님은 많은 것으로 갚으라고 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단지, 그 은혜를 기억하고, 주님이 오시면, 그냥 초대하셔서, 그 분과 함께, 기쁨으로, 하루 하루 살아가시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루 하루, 잔칫집 같이, 기쁨과 감사가 넘치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