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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의 창고/ 비전나리의 설교

지금보다 나중이 - 왕상 15:9-23

by Peartree 2012. 12. 26.

지금보다 나중이

왕상 15:9-23

 

젊은 시절에 좋은 신앙을 가지고 살다가, 나이가 들어서도 여전히 성숙한 신앙인의 모습을 보인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성경의 다니엘 같은 사람은, 젊은 시절에 너무나 귀한 신앙의 사람으로 살아가다, 나이가 많이 들었을 때에도 역시 더욱 성숙한 신앙의 모습을 보여 주었던 사람이지요. 그러나 성경에 보면, 젊은 시절에 그래도 한때는 신앙이 괜찮은 것 같았는데, 나이가 들면서 영 추한 모습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살펴 볼 아사왕이 바로 그런 왕입니다.

 

아사왕은 젊었을 때는, 최초의 종교개혁을 단행할 정도로,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11절부터 보시면, 아사왕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한 왕이었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12절에는, 남색하는 자를 그 땅에서 쫓아내고, 우상을 없애버렸습니다. 여기서 남색하는 자는, 남창을 말하는 것입니다. 또 그뿐만이 아닙니다. 13절을 보시면, 아사왕의 모친의 이름이 마아가인데, 이 왕의 어머니가, 아세라 목상을 만들었다는 이유로, 태후의 위를 폐하고, 우상은 찍어서 기드론 시냇가에 불살라 버렸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태후의 위를 폐했다는 말은, 사극을 보시면, 왕의 어머니를, 대왕대비마마라고 부르죠. 이 대왕대비정도면, 권력이 막강합니다. 왕의 어머니니까요. 그런데, 우상을 만들었다는 이유로, 대왕대비의 자격을 박탈한 것입니다.

하나님 기뻐하지 않는 일을 하면, 가차없이, 어머니라도, 자격박탈이었습니다.

 

여기까지는 얼마나 멋있는 왕이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23절 하반절을 보시면, "그러나 저가 늙은 때에 발에 병이 있었더라"

여기서 '그러나' 라는 접속사는 앞에 있는 모든 말을 뒤집어 엎을 때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예를 들어요, 이 사람은 참 멋있고, 훌륭하고, 선한 왕이다. '그러나' 사랑은 없었다. 라고 할 때, '그러나' 는 앞에 열거한 모든 것의 반대를 말할 때 쓰입니다.

 

아사왕은 참, 종교개혁을 이루고, 우상을 불태워 버리고, 남창들을 내어 쫓은 아주 훌륭한 왕이었지만, '그러나' 늙을 때에 발에 병이 있었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발에 병이 생긴 것이, 우연히 생긴 병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는 일을 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주신 병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사왕의 말년이 어떠했길래, 하나님께서 죽을 때까지 발의 병으로 인하여, 고통스럽게 하셨는지 살펴보면은요………

 

역대하 16:7절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말합니다. "왕이 아람 왕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아니한 고로"

 

젊어서 왕이 되었을 때는, 부족한 것이 너무 많으니까,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그런데, 정치를 40년 정도 하다보니, 노련미가 생긴거예요. 그래서 전쟁이 나면, 하나님께 구하지 않고, 이웃나라와 손을 잡고, 동맹을 맺고, 전쟁을 정치적으로 풀어나갔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하나님이 필요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선견자가 찾아가서 '아람왕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라고 하며 바른 소리를 하니까, 역대하 16:10절에 보면, "아사가 노하여 선견자를 옥에 가두었으니"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하나님께서 선견자를 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선견자를 옥에 가두었다는 것은, 더 이상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않겠다는 말입니다. 내 힘으로 살아보겠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치셨는데, 발에 병이 생기게 해서, 남은 인생 걷지 못하다가 죽은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은, 끝까지 가는 것입니다. 흔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다니엘처럼 말이죠.

그래서 바울도, 신앙을 마라톤에 비유합니다. 처음에는 1등으로 달렸어도, 가다가 주저 앉으면 소용없는 것이 마라톤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우리 꿈의교회 성도님들은, 한번 붙잡은 믿음, 놓치 마시고, 변하지 마시고, 끝까지 잘 달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