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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의 창고/ 비전나리의 설교

죽음과 부활 - 요한복음 11: 17-27

by Peartree 2012. 12. 26.

죽음과 부활

요한복음 11: 17-27

 

복음서에서, 예수님께서 가장 사랑하고, 측은하게 여겼던 가정이 있다면, 당연 나사로의 가정이었습니다. 일찌감치, 부모를 여의고 나사로와 마리아, 마르다 이렇게 세 남매가, 베다니라는 촌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가정을 얼마나 사랑하셨나면, 예수님께서 그곳을 지나실 때마다, 그 집에 들러, 자주 음식을 잡수셨습니다. 누가복음 10:39절을 보시면, 예수님께서 이들의 집에 들르셨을 때에도, 마르다는 음식을 만드느라, 정신이 없었고, 마리아는 얄밉게도 예수님의 발 아래에 앉아 말씀을 듣고 있었습니다. 그때, 마르다가 예수님께 이렇게 말합니다. '주여, 나 혼자 부얶에서 일하고 있는 것이 안 보이십니까? 마리아에게 저를 도와 주라고 , 말좀 해 주세요.' 라고 말하죠. 예수님과 이 정도 대화 할 정도면, 허물이 없는 사이입니다. 그 정도로, 예수님으로부터, 아주 각별한 사랑을 받은 가정이었습니다.

아마도, 부모 없이, 세 남매가 힘들게 살다 보니까, 주님께서 오매, 가매, 들르셔서, 위로해 주시고, 말씀도 전해 주시고, 식사도 하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주님으로부터 각별한 사랑을 받아 왔던, 그 집에, 불행이 닥친 것입니다. 막내 남동생, 나사로가 며칠 동안 앓다가, 갑작스럽게 죽은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바로 알아야 할 것은 주님께서 사랑하는 사람들도 병들고, 죽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사람이 병이 들거나, 고난을 당하면, 일단 색안경을 끼고 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 사람이, 필경 하나님께 어떤 죄를 지어서, 저런 어려움을 당하는 걸꺼야!' 라고 생각 한다는 것입니다.

 

지난달에도, 예수님께서 길 가시다가 소경의 눈을 뜨게 해주시는 기적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때, 예수님의 제자들도, 이 소경을 볼 때, 색안경을 끼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질문하죠. '예수님, 저 사람이 소경으로 난 것이, 뉘 죄로 인함이오니이까, 자기오니이까? 그 부모이오니이까?' …… 저 사람이 소경이 된 것은, 어째든, 죄의 결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어떤 죄를 지어서 저렇게 된거라는 것이죠.

그런데 주님이 뭐라고 하셨습니까? '죄 때문이 아니다, 저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여러분! 꼭 죄를 지어야 병들고, 죄를 지어야, 고난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주님의 특별한 관심을 받는 사람도, 병이 들 수 있고, 고난을 당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래 전에 한국에, 믿음도 좋고, 머리도 좋았던 한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대학을 졸업할 무렵 갑자가 몸에 이상이 생겼습니다. 온 몸에서 기운이 빠지고, 근육이 약해지는 병인데, 루게릭은 아니고, 한국말로 '근육 무기력증' 이라는, 희기하고 무서운 병이었습니다. 거의 치료가 불가능한 병이었습니다. 나중에는 연필도 들 힘이 없을 정도로 악화되었는데, 할 수 있는 거라곤, 방안에 누워서 고쳐달라고 기도하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5년을 기도했는데도, 하나님은 침묵하셨고, 5년이 지나서야, 하나님께서 고쳐주셨는데, 그는 나중에 이런 고백을 했다고 합니다.

'5년 이란 시간은, 결코 허송세월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에 대한 계획을 갖고 계셨는데, 내가 미처 몰랐던 것 뿐입니다.'

그리고 그는, 나중에 성공적인 기업 경영인이 되었는데, 이 사람이 바로 그 유명한 '이랜드 그룹''박성수' 장로라고 합니다.

이 '이랜드 그룹' 은, 국세청에서, 아무리 조사를 해도, 먼지 하나 나오지 않을 정도로, 너무 투명하고, 성실하게 세금을 보고해서, 유일하게 국세청이 '세무조사' 를 하지 않는 회사로 유명합니다.

 

그래서, 병이 들고, 고난을 당하면, 꼭 죄 때문 만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에 의해서 고난을 허락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 입니다.

 

오늘 본문, 2절을 보시면, 이 남매들은 죄 때문에 고난 당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마리아는 향유를 주께 붓고 머리털로 주의 발을 씻기던 자요, 병든 나사로는 그의 오라비더라"

베다니라는 아주 촌 구석에서, 부모도 없이 고아로, 아주 가난 하게 살던, 이 마리아가, 비싼 향유 옥합을, 주님의 발에 부을 정도면, 얼마나 믿음의 여인이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런 걸 봐서라도, 죄 때문인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러면, 왜 나사로가 죽었습니까?

 

4절을 보시면, "예수께서 들으시고 가라사대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로 이를 인하여 영광을 얻게 하려 함이라 하시더라"

무슨 말입니까? 죽을 병이 아닌데, 죽게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하나의 영광을 나타내려고, 주님께서 '셋업' 해 놓으셨다는 것입니다.

일부러 상황을 이렇게 만들었다는 말입니다.

6절을 보시면, 더 자세히 알 수 있습니다. "나사로가 병들었다 함을 들으시고 그 계시던 곳에 이틀을 더 유하시고"

지금 사랑하는 나사로가 병들었다는데, 찾아가지 않고, 일부러, 이틀이나 계시던 곳에 더 있다가 출발하셨다는 말입니다.

다른 말로, 나사로가 죽기를 기다렸다는 말입니다. 죽어서 냄새가 풀풀 날 때까지, 주님께서, 일부러, 지체했다는 말씀이예요.

 

분명 주님께서 이렇게 하신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오늘은 그 이유가 무엇이지 살펴 보기를 원합니다.

 

  1. 첫째는, 죽음이 무엇이지 가르쳐 주기 위해서, 일부러 나사로를 죽게 내버려 두신 것입니다.

 

당시에 예수님을 좇아 다녔던 많은 사람들은, 사실상, 예수님께서 기적을 베푸시면, 떡이나 얻어 먹고, 병이나 고치려고 좇아 다닌 것입니다.

그래서 저 예수가 왕이 되면, 이 지긋 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나 보려는 속셈으로 예수님을 따라다녔습니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왕이 되면, 한자리 차지하려고 좇아 다닌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이땅에 오신 목적은, 그저 떡이나 먹이고, 기적이나 베풀고, 저들의 가난이나 해결해 주려고 오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나사로가 병들어 죽게 생겼다는 말을 듣고, 예수님께서 '올커니, 이때다.' 라고 생각 했을 것입니다. 지금 이 때야 말로, 저들에게 죽음이 무엇이며, 슬픔이 무엇이며, 그리고 부활이 무엇이지, 가르쳐 줄 수 있는 절호의 찬스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나사로를 일부러 죽을 때까지, 내버려 두신 것입니다. 교육의 샘플로 삼으시기 위해서 말이죠. 시청각교육을 하시기 위해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당시에 예수님은 만났던 사람들은, 거의 다가 팔자를 고쳤습니다. 죽었던 사람이 다시 살아나고, 소경이 눈을 뜨고, 문등병을 고침받고, 귀신이 떠나고, 빈들에서, 생선과 떡까지 얻어 먹었습니다. 그래서, 저들의 마음속에는 '예수님만 믿으면, 고통, 슬픔, 죽음도 없을 것이다.' 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사람이, 죽음의 문턱을 넘어서, 천국에 들어갔을 때를 말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이 땅에 살 때에는 여전히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시련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인생을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가는 길' 이라고 말했습니다.

또 예수님께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이 가는길' 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욥은, '인생은 고난을 위하여 태어났다' 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이 땅에서의, 수고와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면, 어떤 부작용이 있냐면, '예수 믿었더니, 별거 아니구나, 여전히, 돈이 없이 고민하고, 질병으로 인하여 고통 받고, 달라지는 것이 없구나!' 라는 생각을 하고, 주님에게서 멀리 떠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예들이 성경이 참 많이 나와있습니다.

출애굽 할 때, 얼마나 놀라웠습니까? 하나님께서 바로왕에게 열가지 재앙을 쏟아 부으시는 기적을, 이스라엘 백성들은, 형장 실습을 통하여, 눈으로 똑똑히 보고 들었습니다. '와! 이런 능력있는 하나님이라면, 걱정할 것이 하나도 없다.' 고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만 믿고, 무작정 광야로 따라 나왔습니다. 그러자, 며칠 되지도 않아서, 홍해의 시련이 앞을 가로 막았습니다. 뒤에서는 바로의 군대가 추격해 오는 압박이 있었습니다. 꼼짝없이 죽음을 목전에 둔 것입니다. 그렇게 되자, 이들이 뭐라고 말합니다.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우리를 여기까지 나오게 해서,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 원망하고 불신했습니다.

 

그래서요. 기독교의 본질을 모르고, 그저 예수 믿으면, 복 받는다고 하며, 믿었던 사람들은, 고난이 오고 시련이 오면, 떠날 확률이 높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예수님께서는, 가장 사랑하는 나사로의 가정을 통하여, 죽음이라는 고통을 주시고, 그러한 가운데서, 믿음을 잃지 않는, 마르다와 마리아를 소개하면서, 이들의 믿음이, 진짜 믿음이라는 것을 알려 주시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슬픔과 죽음에도, 주님을 의지하는 믿음이 진짜 믿음인 것입니다.

 

  1. 둘째는, 부활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시기 위해서, 일부러 나사로를 죽게 내버려 두신 것입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제국을 다스렸던 알렉산더 대제도 자기의 죽음을 생각하면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하루는 원정 중에 있던 알렉산더 대왕은 병사들을 모아놓고 씨름판을 벌렸습니다. 한 병사가 씨름판의 장수들을 하나둘씩 다 넘어 뜨렸습니다. 이제는 아무도 그와 맞수가 되어 싸울려는 사람이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알렉산더 대왕이 그 병사와 맞수가 되어 씨름을 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시선이 대왕의 거동으로 집중되었습니다. 모든 병사들은 숨을 죽이고 씨름을 지켜봤습니다.

하지만 이번마저도 대왕이 벌떡 모래판에 나가 떨어져 버렸습니다. 모두가 깜짝 놀라 대왕을 지켜보았습니다. 대왕은 모래밭에 누운 채로 눈을 감고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대왕의 눈에서는 눈물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대왕을 넘겨뜨린 병사는 초죽음이 된채로, 얼어 붙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대왕은 한참만에 일어나 입을 열었다고 합니다. '내가 씨름에 져서 운 것이 아니라 나의 죽음을 생각하며 슬피 울었노라."

이렇게 세계를 정복해도, 죽음 앞에서는, 나약한 인간이 되어, 슬퍼할 수 밖에 없던 것입니다. 그런 일이 있은지 얼마 후 그는 마침내 죽음의 길로 가고 말았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왜 죽음을 무서워 하냐면, 그걸로 끝이지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끝을 보지 않기 위해서, 파라밋을 쌓고, 시체가 썩지 않게 두면, 언젠가, 다시 살아날 것을 믿었습니다.

진시황의 불노초도, 영원이 끝을 보지 않고, 숨쉬기를 바래서, 불노초를 찾은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이 죽음을 해결했습니까?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아니고는,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무덤에서 3일이 넘게 있다가 다시 살았다고 하는 사람은, 인류역사상, 나사로와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삼일은 완전한 죽음을 말합니다. 죽었다가 깨어나는 것이 아니라, 시체가 썩어서, 냄새가 풀풀 나는 상태에서, 다시 살아나는 것이 진짜 부활인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죽었다 할지라도, 예수를 믿으면, 다시 살아날 것을 가르쳐 주시기 위해서, 나사로를 죽게 버려 두신 것입니다.

 

본문, 25절을 보세요.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오늘 본문을 보시면, 예수님께서 각별히 사랑하셨던, 한 가정의 남매들은, 죽음이라는 고통을 맛보았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그렇게 많이 받는 사람도, 시련은 있다는 것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큰 기적을 체험한 사람은 누구였습니까? 죽어서, 시체가 완전히 썩었다가 다시 살아난 사람, 나사로였을 것입니다.

 

나사로가, 죽은지 나흘이나 되었는데, 그 동안 어디에 갔다 왔을까요. 아마도, 천국을 구경하고, 하늘의 신비를 맛보고 왔을 거예요. 그러니 나사로와 남은 가족들이, 남은 인생 어떻게 살았겠습니까?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죽음 저 너머에는, 형용할 수 없는, 천국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살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2:11절을 보시면, "나사로 까닭에 많은 유대인이 가서 예수를 믿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이제부터는, 진짜 예수님은 바로 알고 믿게 된 것입니다. 그저, 떡이나 주고, 기적이나 일으키는 주님이 아니라, 우리의 죽음의 문제까지 해결하시고, 천국의 소망을 주는 예수님으로 바로 알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우리 꿈의교회 성도님들도, 주님께서 이땅에 오신 목적이 무엇인지, 바로 알고, 이 땅에 것 만이 아니고, 우리의 영혼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오신 주님이신걸 깨달으시고,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