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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의 창고/ 비전나리의 설교

그날을 기다리며 이날을 성실하게 - 마 24:44-51

by Peartree 2012. 12. 26.

그날을 기다리며 이날을 성실하게

마 24:44-51

 

오늘을 끝으로, '마지막 때 나타날 현상들 시리즈, 일곱 번째' 말씀을 나누기 원합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의 제목은 '그날을 기다리며, 이날을 성실하게' 라는 제목으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주의 날이 심히도 가까운 시대임에는 틀림이 없는데, 그런 이 시대 가운데,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은 어떻게 이날을 살아가야 하는지, 본문에서 찾아보며,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세상에서는 저와 여러분들을 '그리스도인들' 이라고 부릅니다. 이 '그리스도인' 이라는 말이 언제 생겨났냐면, 지금으로부터 2000년 전, 초대교회 시대부터 불리워졌다는 것입니다.

불리워지게 된 배경은 아주 간단합니다.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사람들' 이라는 말이, 줄어서, '그리스도의 사람들', 그래서 '크리스천' 이라는 단어가 생겨난 것입니다.

왜냐하면, 당시의 모든 성도들은, 주님을 기다리며 살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크리스천이라고 하면, 주님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크리스천이라고 하면서, 주님을 기다리지 않는 사람들은, 크리스천이 아닌 것입니다.

 

2000년전, 예수님께서 공중으로 다시 올라 가시면서, 내가 다시 올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 다시 오실 때는, 공중에서 '어린양의 혼인 잔치' 가 있을 것인데, 예수님께서 신랑이 되시고, 지구상에 있는 모든 성도들은 신부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랑을 기다리지 않는 신부 보셨습니까? 아마 그런 신부는 없을 거예요. 만에 하나, 그런 신부가 있다면, 신부의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신랑은 그런 신부를 신부로 맞아 들이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신부라고 하면, 다른 것은 몰라도, 최소한 신랑을 기다리는 신부가 최고의 신부인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 안에서 가장 많이 듣는 소리가 아마도 '믿음' 이란 단어일 것입니다. 그런데 믿음 이란 단어는 그 단어 안에, 두 가지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첫째는, 주님의 나의 죄를 지시고, 십자가에서 대신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을 믿는 믿음을 말하는 것이고,

둘째는, 다시 살아나신 주님이, 다시 오셔서, 저와 여러분들 데리고, 올라가실 거라는 것을 믿는 믿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으십시요' 라고 하는 말속에는 이 두 가지가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소망이 있다면, 주님을 만나는 것이 최고의 소망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날을 소망하면서, 하루 하루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짜 그리스도인은, 마지막 '그때' 를 염두에 두고, 지금의 '이때' 를 사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인들인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마지막 '그날' 을 믿음으로 바라보며, 또 지금의 '이날' 을 결코 소홀히 여기지 말고, 성실하게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인들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많은 이단들의 문제점이, '마지막 그날' 은 기다리며 살았는데, '지금의 이날' 은 소홀히 여겼기 때문에 이단이 된것입니다.

그래서 그날만 생각하고, 모든 재산 다 팔아, 산속으로 들어가고, 아이들도 학교에 보내지 않고, 잘 다니던 직장도 집어치우고, 공동생활을 한 사례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런 일들이, '그날' 만 생각하고, '이날' 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아서 그런 것입니다.

 

지금도 많은 교회들이, '그날' 만을 생각하고 '이날' 을 무시해서, 이단으로 정죄받는 교회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그 날이라는 것은요. 이날을 살아야 그날이 오는 것입니다.

오늘이 없이는, 내일이 오지 않습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이순간, 성실하게 하루 하루, 믿음으로 살아야, 그날에 주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44절에도 보시면, 주님께서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올거라고 말씀하시며, 산속으로 들어가 살라고 하시지 않았습니다. 이날은 상관 없고, 그날만 중요하니까, 직장 그만 두고 공동생활하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본문45절을 보시면, 충성스럽고 지혜로운 종처럼, 있는 그 자리에서, 종이 되라고 말씀합니다.

종은, 어디를 떠날 수가 없습니다. 종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종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지막 그날을 기다리면서, 이날을 충성스럽고 지혜로운 종처럼 살아야 하는데, 어떻게 살아야, 충성스럽고 지혜로운 종처럼 사는 것인지 살펴 보기를 원합니다.

 

  1. 첫째로, 충성스럽고 지혜로운 종이 되려면, 맡은 자리를 떠나지 말아야 합니다.

 

본문 45절 중반에 보시면,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줄 자가 누구뇨?" 라고 주님이 묻고 계십니다.

이런 주님의 질문에, '네 주님, 제가 그런 종이 되겠습니다.' 라고 기꺼이 대답할 수 있습니까? '주님 제가 떠나지 않고, 주님이 맡기신 일 끝까지, 충성할 것입니다.' 라고 할 수 있냐는 거예요.

 

여기서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줄 자가 누구뇨?' 라고 할 때, '그 집 사람들' 은 주인의 가족들을 가리킵니다. 주인의 아내나 자녀들 그리고 주인의 수하의 여러 종들까지, 주인에게 속한 모든 사람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 그들에게 때를 따라 식사를 제공하는 것이 이 충성스런 종의 사명이었습니다.

여기 보시면,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줄 자" 라고 말씀합니다. '때를 따라'… 끼니를 거르지 말고, 하루에 세 번 정한 시간에 맞춰 음식을 장만해 내야 하는 직분이, 당시의 종의 사명이었습니다.

 

때로는, 하기 싫을 때도 있을 거예요. 때로는 몸이 힘들 때도 있을 것입니다. 예기치 않은 개인적인 사정도 있겠지요. 하지만, 이 종이 하지 않으면, 끼니를 굶어야 하는 사람들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쉬고 싶어도 쉬지 못하고, 눕고 싶어도 눕지 못하고, 음식을 장만하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이 충성스런 종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래서 충성은 나를 희생하지 않으면, 충성할 수가 없습니다.

 

주님은 마지막 시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이런 종이 되라고 말씀합니다. 때로는, 하루 집에서 쉬고 싶을 때도 있으시죠. 그때마다, 주님께서 종이 되라고 하신 말씀을 기억하시고, 있어야 할 자리를 지키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이 충성이란 단어는, 영어로는 'faithful' 입니다. 한국어로 '신실함' 이란 말입니다. 이 신실함이란, 말은 변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신실하신 하나님' 이라고 할 때, 그 말을 '변치 않으시는 하나님' 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이 충성은, 변치 않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항상 있어야 할 그 자리에, 서 있는 것을 말합니다.

 

주후 79년에 이탈리아의 폼페이시 근처의 베스비우스 산이 폭발했습니다. 이 폭발로 폼페이시가 폐허가 되었습니다. 훗날, 고고학자들이 폼페이 시가지를 발굴했습니다. 발굴하면서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화석이 나왔습니다. 그것은 폼페이 성문을 지키는 한 보초병의 화석입니다. 용암이 흘러내라고 화산재가 날라 오는데 무기를 손에 들고 부동자세로 꼼짝하지 않고 최후를 맞은 것입니다.

보통은, 살기 위해서 몸을 웅크리고 죽는 법인데, 있어야 할 그 자리를 끝까지 지킨 것입니다.

여러분, 일의 시작보다 중요한건 일의 끝입니다. 하나님은 일의 시작보다 일의 끝을 보십니다. 왜냐하면, 충성은 일의 시작에서 드러나는 게 아니라 일의 끝에서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46절을 보세요. 언제까지 충성해야 합니까? "주인이 올 때까지" 입니다. 그때까지 충성하고 있으면, " 그 종이 복이 있는 종" 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음 붙들었으면, 끝을 봐야 하는 것입니다.

따라 하면 좋겠습니다. "처음보다 끝이 좋은 사람이 됩시다"

 

  1. 두 번째는, 주인이 맡긴 물질을 잘 관리해야 합니다.

 

47절을 보시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모든 소유를 저에게 맡기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가진 모든 것들이, 주님이 맡겨주신 거라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말씀을 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 말씀을 보면, 참 서운한 생각 들지 않습니까? 아니 내가, 지금까지 어떻게 해서 벌은 건데, 주님의 것이라니, 말도 안돼! 라고 하실지 모르지만, 여러분 '우리가 가진 모든 것들이 다 주님의 것' 입니다. 하지만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요.

왜냐하면, 주님은, '내 것이기 때문에, 가져오라' 라고 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47절을 자세히 보세요. '모든 소유를 우리에게 맡겨 주셨습니다.' 고 말씀합니다. 그러니까, 주의 것이지만, 주님이 오실 때까지 우리가 관리하는 것입니다.

다만, 우리는 이 모든 것들이, 주님의 것임을 인정하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조차,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세상에 너무나 많죠.

 

옛날에, 자기를 주의 충성스러운 종이라고 큰소리 치는 농부가 있었다고 해요. 그는 주님을 위해서라면 그 어떠한 것이라도, 심지어는 자신의 목숨까지도 다 바치겠다고 큰소리를 치곤 했습니다. 하루는 이웃 마을의 친구가 찾아와서 그에게 넌지시 물어보았습니다. "만일 자네에게 소 열 마리가 있다면, 그 가운데서 한 마리는 주님께 바칠 수 있겠는가?" 농부는 자신있게 대답했습니다. "그럼! 바치고 말고! 다 주님의 것인데" 친구는 또 물었습니다. "그럼 이번에는 말 열 필이 있다면, 그 가운데 한 필을 십의 일조로 바칠 수 있겠는가?" 농부는 이번에도 큰소리를 쳤습니다. "아무렴, 바치고 말고! 한 필 분인가? 열 필이라도 다 바치겠네. 다 주님의 것이지 않나" 친구가 세 번째로 또 물었습니다. "자네에게 돼지 열 마리가 있다면 그 가운데 한 마리를 하나님께 드릴 수 있겠는가?" 그 소리를 들은 농부가 갑자기 얼굴색이 변하며, 친구에게 화를 벌컥 내며 이렇게 말합니다. "아니, 자네는 내가 돼지 열 마리가 있는 것을 도대체 어떻게 알았는가?" 하며 화를 냈다는 거예요.

사실 그에게는 소나 말은 한 마리도 없었고 돼지만 열 마리 있었기 때문에, 화를 낸 것입니다.

왜냐하면, 소나 말은 없기 때문에, 드릴 걱정이 없었는데, 돼지는 있기 때문에, 대답은 하지 못하고, 화만 낸 것입니다.

 

우리는 말로는 다 주의 것이라고 말하지만, 그래도 마음 한구석에, 내가 가진 것을, 주님의 것으로 인정하지 못하고 산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종은, 주의 것을 인정합니다. 그렇게 살아야, 이 땅에 미련 같지 않습니다. 이 땅에 있는 것이, 다 내 것이라고 생각하는 동시에, 우리는 하늘의 소망을 버립니다. 이 땅에 것을 사랑하는 동시에, 우리는 주님을 기다리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물질이 있는 곳에, 네 마음도 있다고 하셨거든요.

그러므로 우리는, 롯의 아내처럼, 소금기둥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는 종이라는 생각을 늘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종은, 주인이 맡겨 주신 것 가지고, 잘 관리하다가, 주인이 오면 그분에게 소유권을 다시 드리면 되는 것입니다. 이땅에 있을 때에는, 우리는 관리자입니다. 청지기 입니다.

그래서, 내 은행 Account 에 있는 돈도 다 주님의 것입니다. 열심히 벌어서, 관리하고 있을 뿐입니다. 나의 자녀들 까지도, 심지어는 내 몸도 주님의 것입니다. 그래서 내 몸도 주의 것이기 때문에, 몸도 잘 관리해야 합니다.

어제도 어느 shop 에 갔는데, 젊은 사람이 귀에다 piercing 을 했는데, 손가락이 들어갈 정도로 뚫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코에다, 혀에다가, 눈에다가, 구멍을 내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몸도 주의 것이기에, 함부로 다루면 안 된다는 거예요.

그러므로, 사실, 내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는 빈손으로 왔다가, 주님이 맡겨 주시면, 그것 관리하며 살다가, 주님 앞에 가는 날에, 하나도 가져가지 못하고, 다 내려 놓고 가는, 종들인 것입니다.

 

어떤 종에게는, 좀 많이 맡겨 주시고, 어떤 종에게는 적게 맡겨 주시는, 그 차이점만 있을 뿐이지, 내 것은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정말 신실한, 종들은, 세가지 없었다고 합니다.

첫째, 내 것이 없습니다. 시간, 몸, 물질, 생명까지 모두 주인의 것입니다. 과거에도 보시면, 주인의 한마디에, 종의 생명이 달려 있었습니다.

둘째, 내 뜻이 없습니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것입니다. 오직 주인의 뜻대로, 주인의 지시대로 움직여야 합니다.

셋째, 내 영광이 없습니다. 아무리 종이 영광스러운 일을 했을지라도 결단코 그 영광을 종이 받지 못합니다. 오로지 종은 주인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마지막 시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종' 이 되라고 말씀하시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악한 종은 어떻습니까? 주님은 기다리지 않습니다. 자기가 가진 것은 다 자기것이라고 생각하고, 맘대로 삽니다.

48절을 보세요. "악한 종은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49절을 보세요. '동무들을 때리며, 술친구 들로 더불어 먹고 마십니다' 그러다가 생각지 않은 날에 주인이 오면, 바깥 어두운 곳으로 쫓겨나, 거기서 슬피울며, 이를 갊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오늘날 이 세상이 얼마나 급하게 돌아가고 소란한지 정작 예수님 오실 날을 잊고 살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예수님 오실 날이 심히도 가까이 왔다는 사실입니다.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이와 같이 도무지 오실 것 같지 않을 것 같은 그 때, 생각지 않을 때, 마치 예고 없이 예수님께서 오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 주님이 오시더라도 기쁨으로 맞이할 수 있도록 충성스럽고 지혜로운 종들이 다 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충성스런 종들이 되어 있을 때, 주님이 오시면, 그 종들은 복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저와 우리 꿈의교회 성도님들은, 주님께서 맡겨주신 모든 것, 잘 관리하다가, 주님 맞이하는 복 받는 성도들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