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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의 창고/ 비전나리의 설교

내 양을 내 말을 듣고, 나를 따른다 - 요 10:19-28

by Peartree 2012. 12. 26.

내 양을 내 말을 듣고, 나를 따른다

요 10:19-28

 

지난 시간에는 '선한 목자' 라는 제목으로, 양의 특징을 살펴 보면서, 선한 목자는 어떤 목자인지 살펴 보았습니다.

복습을 해보면, 양은, 아주 나약한 동물이고, 고집이 아주 센 동물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래서 한시라도 목자가 돌보지 아니하면, 굶어 죽을 수 있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러면서, 선한 목자는 자기 양들의 이름을 다 알고 있으며, 양들을 위해서 목숨까지 버릴 수 있는 목자가 선한 목자라고 말씀을 드렸는데, 실제로, 예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을 위해서, 십자가 위에서 목숨까지 내어 주셨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19절을 보시면, "이 말씀을 인하여 유대인 중에 다시 분쟁이 일어나니"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선한 목자다' 라고 하시니까, 당시에 바리새인과 장로들이 '저가 귀신에 들려 미친 소리를 한다, 저의 말을 듣지 말라' 고 합니다. 그러니까, 21절에 보시면, 이 바리새인과 장로들의 말을 듣고 있던 어떤 사람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저가 정말 귀신에 들렸으면, 어떻게 귀신이 소경의 눈을 뜨게 할 수 있느냐?' 라고 말합니다. 다른 복음서를 보시면, '귀신이 어떻게 어떻게 귀신을 내어 쫓을 수 있냐?' 라고 예수님께서 답변하신 기록도 있습니다. 이렇게, 사람들이, 그는 귀신에 들린 것이 아니라, 어쩌면 그의 말대로 , '선한 목자' 일 거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정체성에 대해서, 사람들 사이에 다툼이 벌어진 것입니다.

한쪽에서는, '선한 목자' 다, 또 다른 한쪽에서는 '귀신에 드렸다' 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복음서를 보시면, 참 아이러니 한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은 덮어 놓고, 예수님을 귀신에 들렸다고 말한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그래도 예수님을 알려고 좇아 다닌 사람들은, '선한 목자' 로 금새 알아차린다는 것입니다.

지금 이 시대도 어쩜 그렇게 또 같은 지 모릅니다.

교회에 한번 나와 보지도 않고, 예수님을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은, 덮어 놓고, 예수님을 욕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조금이라도, 아는 분은, '선한 목자' 로 분명히 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정체성에 대해, 한쪽은 '선한 목자' 로 알고, 한 쪽은 '귀신에 들렸다' 고 하니까, 24절을 보면,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에워싸고 이렇게 묻습니다. "언제까지 우리의 마음을 의혹케 하려느냐, 그리스도여든 밝히 말하시요" 라고 말합니다.

'네가 진짜, 그리스도면, 분명히 밝혀라' 라는 말입니다.

 

이런 유대인들을 예수님은 보시고, 정말로 이들이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고 싶어서 묻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말 가운데, 꼬투리를 잡아, 함점에 빠뜨리려고 묻고 있다는 것을 알아 차렸습니다.

 

그래서 25절에 이렇게 말씀하시죠. "내가 너희에게 말하였으되 믿지 아니하는도다" 라고 하셨습니다.

내가 그 동안, 얼마나 많이 '내가 선한 목자' 라고 말하지 아니하였느냐, 또 얼마나 많은 증거를 보여 주었느냐? 그런데도, 믿지는 않고, 왜 자꾸 '네가 누구냐?' 고 묻기만 하느냐? 이 말입니다.

 

여러분, 정말로, 믿는 사람들은, 잘 묻지 않습니다. 그냥 믿어버립니다. 그러나 믿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들은, 자꾸 토를 달고, 묻고, 따지기만 하지, 믿지 않는 다는 거예요.

 

그래서, 오늘은, 어째서, 이 똑똑한 바리새인들, 장로들이 왜 예수님을 믿지 못하고, 자꾸 따지기만 하는지, 그 이유를 찾아 보며 말씀을 나누기 원합니다

 

  1. 첫째로, 저들이 믿지 않는 이유는, 내 양이 아니기 때문에, 저들이 믿지 않는다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아주, 무서운 말씀입니다.

더 쉬운 말로 하면, '예수님께서 택하지 않았다는 말씀' 과 같은 말입니다.

 

예전에, 이 '택하지 않았다' 는 이 말씀으로 인해 성도들이 겁은 먹는 적이 있습니다. '열심히 믿고, 신앙생활 하면서도, 혹시 내가 택함 받지 않은 사람은 아닌가 의심한 적도 있었습니다. ' 그런데 그런 걱정 할 필요가 없습니다.

여기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내양이 아니라' 는 말씀은 택하지 않았다는 말씀과 같은 말이긴 하지만,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세요.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을 향하여, 내 양이 아니라고 말씀합니다.

지난주 토요일, 새벽 성경공부시간에도 말씀을 나눈 적이 있는데, 어떤 임금이 아들의 혼인잔치를 배설하고, 종들을 보내서 손님을 청함니다. 그런데, 잔치에 오기를 거절합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은 것이라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다시 종들을 보내면서, 사거리에 나가, 악한자든 선한자든 아무나 다 데리고 오라고 명령합니다. 그런데도, 오지 않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중에 그 복음을 듣고, 잔치에 참석한 사람이 있었다는 거예요.

예수님께서 이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뭐라고 하시냐면, 청함 받은 사람들은 많되, 택함 받은 사람은 적다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택함 받은 사람이 누구입니까? 복음을 듣고, 그 복음에 반응한 사람입니다. 그 복음에 순종하고 믿은 사람이 택함 받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오늘도 똑 같은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내 양이 아니기 때문에, 믿지 않는 거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다 예수님의 양인 것입니다.

 

'조셉 얼라인' 이란 목사님은, 그의 책 '돌이켜 회개하라' 라는 책에서 택함 받지 못한 사람의 특징을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택함 받지 못한 사람의 특징은 하나님을 두려워 하지 않는 다는 것이다.

둘째로, 택함 받지 못한 사람의 특징은, 끝까지 회개하지 않고 죽는 다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 중 하나라도 해당하면, 분명히 택함 받지 못한 사람이 틀림이 없을 것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예를 들어 가룟유다를 보세요. 예수님을 팔았다 하지라도, 돌이켜 회개하면, 택함 받을 수 있었지만, 끝까지 회개하지 않고, 자살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자살은 회개 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양편에 두 강도 중에, 한편 강도는, 끝까지 회개하지 않았지만, 다른 한편 강도는 죽기 전에, 회개했습니다. 그렇게 회개하면, 택함 받은 사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에게 와서 따지는 바리새인들과 장로들에게 예수님께서 '너희는 내 양이 아니라' 고 말씀하신 이유는, 예수님을 믿지 않기 때문에 그런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지난 시간에도, 내 양이 다른 양의 무리에 섞여 있을 때, 내 양을 찾는 방법에 대해서 말씀 드렸습니다.

길 잃은 양 한 마리를 가운데 세우고, 양쪽에서 목자가, 서로의 양의 이름을 부르면, 그 양은 목자의 음성을 듣고, 따라간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러면 그 재판은 끝나는 것이라고요. 27절을 보세요. '내 양은 내 음성을 듣는다' 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오늘, 주님이 '너희는 내 양이 아니라' 고 하신 이유는, 너희는 원래부터, 내 음성을 알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왜 주님의 음성을 알지 못합니까? 평상시에 듣지 않았기 때문에요. 듣지도 않고 믿지도 않았기 때문에, 자기 목자의 음성을 알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당연히 그 양은 내 양이 될 수 가 없는 것입니다.

 

주님이 다시 오실 때도, 나팔을 불면서 오실 텐데, 주님의 자녀들은, 나팔 소리가 들릴 것이고, 믿지 않던 사람들은, 이 나팔 소리를 듣지 못할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양이 되고, 주님의 자녀가 될 려면,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며,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1. 두번째로, 그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는 이유는, 예수님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에 믿지 못한 것입니다.

 

앞에서도 말씀 드렸듯이, 가운데 양 한 마리를 세워놓고, 양쪽에서 목자가, 자기 양의 이름을 부르면, 그 양은, 자기 목자의 음성을 듣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자기 목자의 음성을 듣고 따라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주인이 자기 양을 앉고 집으로 돌아 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에, 분명 주인의 음성이긴 음성인데, 꿈쩍하지 않고 제 자리에 서 있으면, 주인은 저 양이 내 음성을 듣지 못한 걸로 간주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복음을 들었으면, 듣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복음에 반응해야 합니다. 듣고 따라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27절을 보세요. '내양은, 내 음성을 듣고, 나를 따르느니라' 라고 말씀합니다.

 

조셉 얼라이언 목사님의 '돌이켜 회개 하라' 는 책에 보시면, 구원 받은 백성들은 두 가지 특징이 있는데,

첫째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믿게 됩니다. 또 둘째는, 예수님을 따르게 됩니다.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복음서를 보시면, 예수님께서, '나를 따르라' 고 수 차례 말씀하신 것입니다.

 

만약에 양이, 목자를 따라가지 않는다고 해 보세요. 아마도, 일 주일도 살 수 없을 거예요. 눈이 좋지 않아, 길을 잃거나, 늑대에게 잡혀 먹힐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양을 목자를 바짝 따라가야, 좋은 꼴을 얻고, 안전한 것입니다.

 

28절을 보세요. 그렇게 바짝 따라가는 사람은, '영생을 얻고, 멸망치 않고, 저희를 내 손에서 빠앗을 자가 없느니라' 라고 말씀합니다. 주님을 바짝 따라가는 사람이 받을 축복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누가복음 22:54절에, 예수님께서 끌려가시는데, 베드로가 멀찍이 따라갔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태, 마가복음에도, '멀찍이 따라갔다' 고 기록하고 있어요. 그냥 따라갔다고 하면 되는데, 굳이 '멀찍이' 따라 갔다고, 왜 썼냐면, 그 후에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번 부인하는 사건' 을 더 부각 시키기 위해선 것입니다.

그러니까,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번 부인하게 된 이유는, 베드로가 예수님을 '멀찍이' 따라갔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주님을 멀찍이 따라가면, 그 멀어진 만큼, 믿음도 내려가게 되 있습니다. 부부 사이에도, 멀어지면, 사랑이 식어가는 것 처럼 말이죠.

 

세계에 여러 선교기관 가운데 '위클리프 성경 번역회'라는 선교기관이 있습니다. 그들은 신앙에 투철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어학에 특별한 재능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남미나 아프리카나 조그마한 나라 부족들이 모여 사는 곳에, 쓰는 말은 있어도 글이 없는 그들에게 언어를 만들어줍니다. 그래서 그 언어를 가지고 성경을 번역합니다.

한 사람이 마태복음을 번역하고 죽으면 누군가가 뒤를 이어 다시 그곳에 가서 마가복음을 번역하고 또 죽으면 다음 사람이 가서 사도행전을 번역합니다.

한번은 이 선교회에서 일하고 있는 선교사 한 사람이 남미의 어떤 마을에 들어가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성경 번역을 하다 보니까 그 마을 언어 가운데 '순종' 이라는 단어를 어떻게 번역할 것인가 하는 것이 고민이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그 마을에 어떤 아버지가 아들에게 심부름을 시키는 장면이 눈에 띄었습니다. 그 일을 꼭 하라고 하면서 "네 모든 마음으로" 라고 강조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심부름 가는 아들의 뒤에서 아버지가 "네 마음을 나누지 말라"고 소리를 지릅니다.

그래서 이 선교사님이 '순종'이라는 단어를 번역하기를 "마음을 나누지 않고 모든 마음으로 따라가는 것"이라고 길게 번역했다는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우리 꿈의교회 성도님들도, 마음이 나누이지 않고, 주님을 온 마음으로 좇아가는 귀한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