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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의 창고/ 비전나리의 설교

선한 목자 - 요 10:1-18

by Peartree 2012. 12. 26.

선한 목자

요 10:1-18

 

'목자는 시편 이십삼편을 본다' 라고 하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에 저자인 '필립켈러' 란 분은 팔년 동안 목장주인으로 생활한 경험을 토대로 해서 양에 대해서 나름대로 연구를 해서, 양의 특성에 대해서 기록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양의 특징을 한마디로 말하면, 참으로 나약한 동물이라는 것입니다. 뿔도 없고, 물어 찢을수 있는 송곳니도 없고, 뱀같은 독도 없다는 거예요. 또, 다른 짐승처럼 사나운 발톱도 없고, 자기보다 작은 동물한테도 꼼작 못하고 먹혀 죽는 그야말로 순하고 착한 동물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양에 또 다른 특징이 있는데, 양은 고집이 센 동물이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양은 같은 길로 만 다닌다고 합니다. 풀을 뜯어 먹을 때도, 한 군데서만 뜯어 먹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근처의 풀을 다 뜯어 먹으면, 다른 곳으로 움직여야 하는데, 다른 곳에 가지 않고, 한 곳에서만, 풀 뿌리까지 다 뜯어 먹는다고 합니다. 그러면, 땅까지 못쓰게 되고, 그 다음에 풀이 자라지 않는다고 합니다. 거기서 조금만 움직여도, 맨 풀 투성인데 말이죠. 이렇게 고집세고, 미련한게 양입니다.

그래서, 양은, 목자가 없으면, 풀이 많은데도, 굶어 죽는 것이 양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목자가, 지키고 있다가, 푸른 초장으로 인도해 주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 11절을 보시면, 예수님께서 "나는 선한 목자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저와 여러분들을 무엇입니까? 양이라는 것입니다.

앞에서 말씀 드린 것 처럼, 참으로 나약하고, 고집세고, 목자의 돌봄이 없으면, 죽을 수 밖에 없는 양이 저와 여러분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을 나의 목자로, 영접한 사람들은 생명을 얻는 것이고, 주님을 목자로 영접하지 않고, 내가 주인이 되어, 맘대로 사는 사람은, 결국에, 영혼이 말라, 죽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양은 선한 목자되신 주님을 만나야 살 수 있습니다.

 

또 양의 특징에 대해서 몇 가지 더 살펴겠습니다.

 

양은 멀리 보지 못한다고 합니다. 저번에도, 모든 동물들의 시력이 0.2 – 0.3밖에 되지 않고, 모든 동물들은 다 색맹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양은 더합니다. 양의 시력은 -10이라고 합니다. -10이 어느정도냐면, 기껏해야, 5M 밖에 볼 수 없다고 합니다. 상당히 나쁜 것입니다. 그러니까, 늑대가, 살금 살금 5M 까지 접근해도, 전혀 눈치채지 못한 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목자가 없으면, 죽은 목숨이나 다름 없는 것이죠.

또 그렇게 시력이 안 좋으니, 풀이 있는 다른 장소로 이동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데요, 시력이 그렇게 나쁜 대신, 청력은 너무 좋다고 합니다. 그래서 양이 목자의 음성을 듣고, 쫓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한치 앞을 내다 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며 따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또, 양은, 독립적이지 못합니다. 양은요, 무리를 지어서 살도록 되어 있습니다. 혼자서는 살지 못합니다. 혼자서 살았다간, 다른 짐승에게 잡혀 먹히고 말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교회 공동체 안에서, 서로 의지하며, 서로 위로하며, 서로 세워주며,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교회에 속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신앙생활 잘 할 수 있다고 하지만, 그렇게 하면, 얼마나 위험하겠습니까?

목자없이, 혼자 있는 양을 생각해 보세요. 언제 늑대가 와서 잡아갈지, 그러다가 정말 늑대가 오는 날에는, 완전 무방비 상태입니다. 꼼짝없이 잡혀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그래도 교회 안에 머물러 있는 것이, 가장 안전한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은, 이렇게 나약하고, 눈도 잘 보이지 않고, 고집센 이 양들을, 주님은 선한 목자가 되셔서, 푸른 초장으로 인도해 주시는데, 선한 목자는 어떤 목자인지 살펴 보기를 원합니다.

 

  1. 첫째로, 선한 목자는, 자기 양을 아는 목자이십니다.

 

본문 14절을 보시면 "나는 선한 목자라 내가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안다" 고 말씀합니다. 선한 목자는 양을 잘 안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안다'는 것은 그저 겉모습만을 보고 아는 정도를 말하지 않습니다.

히브리적 사고에서 '안다' 라고 할 때는 깊은 것 까지 아는 것을 말합니다. 거의 부부간에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에 가서 '내가 당신 아내를 알고 있습니다.' 라고 말하면, 큰일납니다.

그 곳에서 '안다' 라는 표현은, 그 사람에 대해서, 속속들이 알고 있다는 말입니다.

 

오늘 주님은, '자기 양을 안다' 고 말씀합니다.

이 말은, 주님이, 나의 연약함도 알고, 성품도 알고, 비밀도 안다는 것입니다. 나의 과거도 다 알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철저히 아십니다. 우리의 중심을 알고, 우리의 약함을 아시고, 우리의 죄성을 다 아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요구가 무엇이며, 우리가 고민하고 있는 문제가 무엇인지를 다 아십니다. 우리의 질고도 아시고, 우리의 고통도 아시고, 가슴속에 숨겨진 아픔도 다 아십니다.

모든 것을 아시는 예수님은 우리를 향해 '내 양'이라고 말씀합니다.

 

너는 내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소유권이 양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목자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죄와 허물을 다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너는 내것' 이라고 말씀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당시에 새끼양이 태어나면, 목자는 그 양에게 이름을 붙여 주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그렇게 하지 않죠. 오늘 본문 3절을 보세요.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양의 이름을 각각 부르신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저와 여러분의 이름을 각각 아시고, 부르시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소유권의 표시였습니다. 당시에는 목자들이, 초장에서 양들을 칠 때, 실수로, 양들이 섞일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면, 그 양이 내 양인지, 다른 목자의 양인지, 구분을 할 수 없게 됩니다. 그때, 그 양 한 마리를 가운데 놓고, 양쪽에서 두 목자가 양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그러면, 그 양은, 주인의 음성을 듣고, 주인쪽으로 가게 되죠. 그것으로 재판이 끝나는 것입니다.

 

여러분, 마지막 때에도 그럴 것입니다. 주님의 음성을 듣고, 주님을 따라가던 사람들은, 목자의 음성을 듣고, 양의 우리로 들어 가겠지만, 그렇지 않고, 주인의 음성을 듣지 않던 사람들은, 누가 우리 목자인지 알지 못하고, 양의 우리에 들어가지 못하고, 도살장으로 끌려 갈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인의 음성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1. 둘 째로, 선한 목자는, 생명을 주시는 목자이십니다.

 

본문 10절을 보시면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고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다른 이유가 없습니다. 더 자세히 말씀 드린다면, 십자가에 죽으시기 위해서, 하늘 보좌 버리고, 이 땅 위에 오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말이죠.

이렇게 양을 위해서, 생명을 버리는 목자가 진짜, 참 목자요, 선한 목자입니다.

11절을 보시면,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린다." 고 말씀합니다.

양들을 위해서, 목숨을 걸고 지키는 것이 진짜, 선한 목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삯군은 그렇지 않습니다.

본문 12절 보세요. "삯군은 목자도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늑탈하고 또 헤치느니라"

13절을 보세요. "달아나는 이유는, 저가 삯군인 까닭에 양을 돌아보지 아니한다" 고 말씀합니다.

 

목자도 두 종류의 목자가 있습니다. 삯을 받고 남의 양을 치는 삯군과 주인이 자기 양을 직접 치는 참 목자가 있습니다. 삯군은 목자가 아닙니다. 양도 자기 양이 아니니까? 양무리의 형편을 전혀 모릅니다. 양의 이름도 모릅니다. 그저 날만 떼우고 품삯만 받아 가면 끝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 양을 치는 목자는 그렇지 않습니다. 양 무리를 위해서 자기의 생명을 받칩니다. 양이 태어나면, 그 양의 이름을 지어주고, 커 가는 것을 지켜 봐왔기 때문에, 각각의 양을 속속들이 알고 있습니다.

 

주님은 선한 목자입니다. 선한 목자는 자기양의 이름을 압니다.

그런데 삯군은 양의 이름을 알 턱이 없습니다.

 

또 선한 목자는 4절을 보시면, 항상 양 무리들을 앞서갑니다.

주님이 앞서 가셨습니다. 모범을 보이셨습니다. 사랑하라 말씀하시고, 실제로 목숨을 버리면서 사랑하셨습니다.

 

그런데, 세상에 이렇게 한 목자는 없습니다.

불교의 중심사상이 자비입니다. 부처가 자비를 베풀라고 하고, 제자들에게 자비를 베풀었습니까?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냥 말로만 가르쳤습니다. 실제로, 본을 보이며, 앞서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라고 하시고 실제로,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생명을 주셨습니다. 말로만 하지 않고, 실제로 본을 보이면서 앞서 가셨습니다.

 

그런데, 세상의 수많은 종교 중에, 극락이 있다고 하고, 파라다이스가 있다고 하는 종교의 지도자들이, 실제로 극락에 들어간 증거가 있습니까? 없습니다. 왜 없습니까? 지옥에 갔기 때문에 없는 것입니다.

주님은, 앞서 가시면, 양들이 보고, 듣고, 따라 하도록, 손수 본을 보이셨습니다. 그리고 너희들이 이와 같이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모습이 선한 목자의 모습인 것입니다.

 

여러분, 양은 목자 없이 살 수 있습니까? 없습니다. 눈이 안 좋아, 길을 잃어 버리기 십상이고, 눈이 안 좋아, 푸른 초장으로 갈 수도 없습니다. 고집이 세서, 목자가 인도하지 않으면, 있는 자리에서 굶어 죽을 수 있습니다.

이런 양의 모습이, 저와 여러분들의 모습입니다.

주님께서 인도하지 않으면, 우리는 다 죽을 수 밖에 없는 약한 양 같은 존재들입니다.

 

그래서 , 주님은 우리의 이름을 부르시면서, 목자의 음성에 귀 만 기울이면, 살 수 있다고 말씀하신다는 것입니다. 그 주님은 우리의 선한 목자이십니다.

 

오늘도, 위험한 세상 가운데, 원수 마귀 사단이는, 호시 탐탐 우는 사자같이, 삼킬 자를 찾아, 두루 찾아 다니는 이 시대 가운데, 주님의 음성에 귀를 바짝 세우시고, 그분이 가자는 데로, 잘 따라가, 우리 모두가, 양의 우리에 넉넉히 들어가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