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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의 창고/ 비전나리의 설교

마지막 때 주님의 경고의 메시지 - 마태복음 24:14-20

by Peartree 2012. 12. 26.

마지막 때 주님의 경고의 메시지

마태복음 24:14-20

 

오늘도 계속해서, '마지막 때 나타날 현상들 시리즈로 다섯 번째' 말씀을 나누기 원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마지막 때 주시는 경고의 메세지' 이라는 제목으로, 환난의 때에, 세상이 성도들을 어떻게 핍박할 것이며, 또한 그 시대를 사는 성도들은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말씀을 살펴보며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 역시, 불신자에게 전하는 말씀이 아니라, 예수를 믿는 다고 하는, 교회 안의 있는 성도들에게 전하는 메세지입니다.

 

오늘 본문, 15절을 보시면, 예수님께서, 선지자 다니엘을 언급하며, 이렇게 말씀합니다. '다니엘이 말 한 것처럼,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이라고 말씀합니다.

이 거룩한 곳이, 어디냐면, 앞으로 예루살렘에 세워질, 제 3의 성전입니다. 다 준비되었고 말씀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Blue print도 나와 있고, 모형도 만들어져 있고, 그 성전안에, 쓰여질 성전 기구며, 기명들이 다 준비 되어졌고, 그 성전 안에서, 봉사하게 될, 제사장들도 다 훈련시켜 놓았습니다. 지금은 성전을 어디에 지을지, 성전터를 연구 조사하고 있습니다. 이 터만 확정되어지면, 짓는데, 3개월도 채 안 걸린다고 합니다.우리는 이렇게 긴박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렇게 그 성전이 다 지어지면, 그 성전에, 가증한 것이 설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적그리스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왜 그렇게 중요하냐면, 이 일로 인하여, 이방인에게 확짝 열렸던 은혜의 문, 복음의 문이, 닫히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방인은, 유태인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을 말합니다. 저와 여러분이 다 이방인입니다.

지금은, 이방인의 시대입니다. 그래서, 지금 유태인들은 예수님을 안 믿지만, 이방인들은 얼마나 많이 믿고 영접합니까? 고린도후서 6:2절의 말씀대로,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지금이 바로 그런 시대입니다. 사도행전 14:27절에도, 바울과 바나바가, '가는 곳 마다, 교회를 세우고,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 믿음의 문을 여신 것을 고했다' 고 기록합니다.

 

'여러분, 우리 이방인들은 소망도 없고, 빛도 없고, 흑암가운데 살다가, 다 지옥으로 가야 하는 존재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저 유대인들이 완악하게 되어, 그 복음이 우리 이방인들에게 넘어 왔습니다. 그러니까, 이때가 기회입니다. 이때가 은혜 받은 만한 때고, 이때가 구원의 때입니다. 그런데 이 때도 언젠가는 닫히게 됩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제발, 기회를 놓치지 마십시요.' 라고 복음을 전한 것이, 바울의 전도핵심 내용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방인에게 확짝 열렸던, 이 은혜의 문이, 언젠가는 닫힌 다는 것입니다. 그 때가 언제냐면, 로마서 11:25절에,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예수님께로 돌아오기까지" 입니다. 여기서 이방인의 충만한 수는, 이방인들 모두가 예수님을 믿는 다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만이 아시는 그 숫자가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 숫자가 몇명이나 되는지 알 필요는 없습니다. 하나님만이 아시는 숫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른 방법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이, 예루살렘 성전이 세워지고, 그 곳에,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는 그때입니다. 이 일이 이루어지면, 우리는 '아하,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드디어 찾구나! ' 라고 생각하시면 되는 거예요.

 

그리고 그 후에는 이방인에게 열렸던 구원의 문이 닫히고 누구에게 열립니까? 유태인들에게 다시 열립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처럼, 여러가지 환난과 핍박을 통하여, 2000년 전에, 그들이 못 밖아 죽였던, 예수님이 메시야였다는 것을 깨닫게 하시고, 그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믿게 만든 것이 하나님의 계획인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이방인의 문이 닫히면, 그 때에는, 사실상 전도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때 가서, 예수님을 믿을 사람 같았으면, '구원의 문이 활짝 열렸을 때, 은혜의 시대' 에 이미 믿었을 것입니다. 은혜의 시대에도 예수 믿지 않았는데, 문이 닫힌 후에 예수 믿을 수 있습니까? 절대 믿지 않습니다. 버스는 떠난 것입니다.

그래서, 나중에 예수 믿겠다는 사람은, 이방인에게 열린 구원의 문 닫히기 전에, 어서 예수님 믿어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지금이 은혜 받을 때고, 지금이 구원의 날" 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예수 믿는 성도들은, 그 시대에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구원의 문이 닫혔으니까, 복음 전하는 것 보다, 자신의 영혼을 준비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예수님께서는, 그때에는, 빨리 전도해서, 한 명이라도, 더 천국에 데라고 가자! 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때에는 산으로 도망가라고 말씀합니다. 그 때에는, 물건을 가지러 집 안을 내려가지도 말고, 일하다가도 겉옷을 가지러 뒤로 돌이키지도 말라고 말씀합니다.

아주 긴박한 시대인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 생각할 시간이 없습니다. 내 영혼 간수하기도 벅찬 시대입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우리에게, 알려주신, 그 시대를 살아가는 몇 가지 경고의 사인을 살펴보며,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1. 첫째로, 16절을 보시면, 그 때에는 산으로 도망가라고 말씀합니다.

 

산은 상식적으로 재난이나 핍박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아주 유리한 장소입니다. 성경의 엘리야가 이세벨을 피하여 도망한 곳이 호렙산이었습니다. 또 창세기 19장에 보시면,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 땅을 불로 멸망 시키실 때도, 롯에게 산으로 도망가라고 일러주셨습니다.

이차 세계대전 중에, 일본의 오노다 소위는 필리핀 루방섬에 주둔하고 있는 부대의 정보장교였습니다. 1945년 2월 연합군이 루방섬을 점령하면서, 포로로 잡히거나, 총에 맞아 죽을 때, 그는 정글 깊은 곳으로 숨어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산속에서 29년 간이나 숨어 살았습니다. 22세에 조국을 떠난 청년이 52세가 되어 돌아왔고, 돌아올 때에, 그는 영웅대접을 받았다고 합니다. 산은 이렇게 위험을 피할 수 있는 아주 좋은 장소입니다.

 

또 성경에서도 보시면, 산은 빼놓을 수 없는 아주 중요한 장소였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산을 통해서 많을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인류최초의 아담과 하와를 에덴 동산에 두셨습니다. 또 아브라함에게, 모리아산으로 가서 이삭을 바치라고도 말씀하시기도 하시고, 모세를 만날 때도, 호렙산에서 만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산에서 설교를 자주 하셨고, 감람산을 마지막으로 하늘로 승천하셨습니다.

그래서 옛날에 이방 잡신들을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산의 신' 이라고 불렀습니다. 왜냐하면, 모세가 십계명을 받을 때에, 하나님께서 시내산 꼭대기까지 올라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 "아하, 저들이 믿는 하나님은, 산에 살고 있구나!" 라고 믿었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주님은, 마지막 그 때가 되면, 적그리스도가, 핍박하기 시작하거든, 산으로 도망가라고 말씀하시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냥 산으로 도망가면, 살아 남을 수 있습니까? 실제로, 산으로 피해 달아나면, 살아 남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잘하면, 목숨을 건질 수 있겠죠.

 

그런데, 우리 투산에 있는 성도들은 어떻게 합니까? 모두가 다 레몬 마운튼이나, 치리카와 마운틴으로 도망갈 수도 없고 말이죠. 이 말씀속에는 깊은 영적 진리가 숨겨져 있을 것입니다. 산으로 도망하라는 것은, 세상에 속해 있지 말라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떨어지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계신 곳으로 도망가라는 것입니다. 주님에게로 피하라는 것입니다.

 

복음서 보시면, 제자들이 예수님을 찾으려면, 어디로 갔습니다. 산으로 갔습니다. 그곳에 주님에 가면, 기도하고 계시기도 하고, 편히 쉬시기도 하셨습니다.

 

여러분, 마지막 그때에, 예루살렘 성전이 세워지고, 멸망의 가증한 것이, 그 성전에 서거든, 주님은 피하라고 말씀하시는데, 산으로 피하라고 말씀합니다. 그 산은 하나님이 계시는 곳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 산은 주님의 계시는 곳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시대가 혼란한 수록, 주님과 더욱 가까워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산으로 피하는 방법인 것입니다.

찬양에도 있지요. 하나님의 나의 산성이요. 나의 피난처시라.

 

  1. 두번째로, 마지막 그 때에는, 내려가지 말아야 합니다.

 

17절을 보시면, "지붕 위에 있는 자는, 집 안에 있는 물건을 가질러 내려가지 말라" 고 경고합니다.

 

이스라엘의 지붕은, 투산의 집같이, 평평한 지붕입니다. 그리고 집안에서 바깥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습니다. 그래서 한낮의 더운 공기가 위로 모여서, 밖으로 내 보낼 수 있도록 설계한 집입니다. 그리고, 그 옥상이 어떤 용도로 쓰였냐면, 기도하는 장소로 쓰였습니다.

사도행전 10:9절을 보시면, "베드로가 기도하려고 지붕에 올라가니, 제 육시더라"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당시에, 유대인들은 옥상에 올라가, 예루살렘 성전 쪽을 향하여, 하루 세 번씩 기도했는데, 이 옥상이 기도하는 장소로 사용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 장소에서 내려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것을 쉬지 말라는 말입니다. 영적으로 후퇴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기도하는 그 자리가 피난처입니다. 기도하는 그 자리가 가장 안전한 곳입니다.

 

실제로, A.D. 70년 로마의 티투스 장군이 예루살렘을 불태우고 학살 할 때, 환난을 피해 지붕으로 올라간 사람들이 살아남았다는 이야기가 많이 있습니다.

주님은 마지막 때에, 기도하는 그 자리를 떠나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에 집중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아마도 집안일 때문에, 그리고 집안에 있는 물건의 소유 욕심 때문에, 기도에 소홀하지는 않습니까?

 

너무 세상에 집착해서 살다보면요. 롯의 아내처럼 됩니다. 내가 그토록 아꼈던 살림살이, 보물들이 집안에 있는데, 그 것들을 뒤로하고, 떠난다고 생각하니, 너무 아까운 거예요. 그래서 뒤를 돌아 보았다가, 소금기둥이 되어 버렸습니다. 마찬가지 일 거예요. 주님은, 그토록 아끼던, 물건 가질러 내려가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는 있는 그 자리에서, 기도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기도하는 그 자리가 가장 안전한 곳입니다.

 

마지막 때에는 정말, 피할 곳도 없고, 숨을 곳도 없을 것입니다. 재물이 날 구해주고 못하고, 친구가 날 구해 주지 않습니다. 그때에는 정말 있는 그 자리에서 믿음 지키다가 죽는 수 밖에 없을 거예요.

 

어느 탈북자가 기독교방송에 나와 실제로 있었던 사건을 간증한 이야기입니다.

북한에는 지하에 숨어서 예배 드리는 지하교회가 많은데, 어느 날, 정부에서 공사를 하기 위해서 땅을 파는데 그만, 그 지하굴이 발각된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들 모두가 끌려 나와 인민재판을 받고는 사형을 당하게 되는데, 가장 먼저, 그 지하교회에 목사님 부부와 딸을 사형하였다고 합니다. 사형을 하는데, 공산당원들이 일부러, 목사 부부가 보는 앞에서 딸부터 처형을 하는데, 딸의 목에 줄을 걸어 사형시키려고 하자, 어린 딸이 무서워 벌벌 떨면서, '엄마, 아빠 살려주세요' 라고 했다고 합니다.

이때, 목사의 부인인 사모님이 "딸아, 우리가 버텨온 신앙이 바로 이때를 위함이 아니더냐, 주님을 생각하며, 기쁘게 순교하거라" 라고 했다고 합니다.

 

여러분, 지금의 북한은, 마지막 때의 거울입니다. 미리 체험하는 연습장소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마지막 때의 환난이 안 온다고요. 이미 지금도, 지구촌 곳곳에서는 그 보다 더 끔찍한 일들이, '예수 믿는다.' 는 이름으로 곳곳에서 핍박과 살인이 행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가장 안전한 장소는 어디겠습니까? 믿음을 지키며, 기도하는 그 자리입니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절대 예수님 부인하지 않는 그 자리가, 구원의 자리 인 것입니다.

 

  1. 세번째로, 그때가 되면, 뒤를 돌이키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본문 18절을 보시면, "밭에 있는 자는 겉옷을 가질러 뒤로 돌이키지 말지어다" 라고 경고합니다.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겉옷에 미련을 갖지 말고 주어진 사명에 최선을 다하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이렇게 생각할 거예요. '겉옷 한나 쯤이야,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 아닙니까?' 라고 하실지 모르지만, 예수님 당시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유대인들의 개인재산목록 제1호가 겉옷이었습니다. 낮에는 더위를 피하느라 꼭 있어야 하는 것이고, 밤에는 이불 대용으로 사용했습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22:11절에도 보시면, 혼인잔치에, 입고 갈 만한, 예복 한 벌 없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 정도로, 겉옷은 중요했습니다. 때문에, 잡고 있던 쟁기를 얼마든지 팽개치고, 뒤를 돌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놓치 말라는 것입니다.

그것 때문에 하던 일 포기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롯은 뒤를 돌아보지 말고, 앞만 보고 가라는, 천사의 말에, 순종하고, 앞만 보고, 달려가 구원을 받았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마지막 시대에, 우리에게 일러주신 구원의 방법은, 롯의 때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붙잡고 있던 사명, 붙잡고 있던, 믿음, 붙잡고 있던 열심, 놓치 말고, 앞만 보고 가라는 것입니다. 뒤에서 새끼들이, 젖 달라고 울어도, 앞만 보고, 벧세메스로 가는 암소처럼 말이죠.

 

이런 모습이 종말의 시대를 사는 성도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러면 종말의 때에 우리 믿는 성도들이 세상의 일에 매이지 않고 사는 것은 어떻게 사는 것입니까? 20절을 보시면, "너희가 도망하는 일이 겨울에나 안식일에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

 

환난 날에 겨울은 도망하기 어려운 계절입니다. 또,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안식일은 5리 이상 여행할 수 없도록 법으로 아예 규정해놓았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안식일과 겨울에 환난이 오면 꼼짝없이, 멀리 도망갈 수 없기 때문에,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겨울이나 안식일에 환난이 오지 않도록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환난은 반드시 오긴 오는데, 그때를 조금 조정해 달라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겨울 말고, 가을이나 봄에, 안식일 말고, 월요이나, 목요일에, 그래서 그 환난의 때에, 너무 고생하지 않고, 무사히 잘 넘어 갈 수 있게 말이죠.

 

여러분, 우리도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의 영적인 계절이 꽁꽁 얼어붙은, 겨울이 오지 않도록 말이죠. 또, 하나님과 멀어지고, 세상과 짝하여 살다가, 겉옷에 눈이 멀어, 겉옷을 가지러 뒤로 가는 일이 없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그때, 환난이 오면, 꼼짝없이 주님 부인하고, 목숨을 구걸 할 수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옥상에서 기도하지 않고, 집안의 소유의 욕심 때문에, 집안으로 내려 갔다가, 올라왔다가, 내려 갔다가 할 그때에, 오지 않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의 영적 상태가, 꽁꽁 얼어붙어 겨울 잠 자고 있을 때가 아니라, 맡은 소명 잃어버리지 않고, 쟁기를 굳게 잡고, 앞만 보고 묵묵히 가고 있을 그 때에, 어떠한 환난도 능히 이겨내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우리 꿈의 성도님들은, 영적으로 차가운 겨울을 만나는 성도 하나 없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늘 뜨거운 마음으로 주님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피난처 되신 주님과 늘 동행하시기 바랍니다. 세상 겉옷에 마음 빼앗기지 마시고, 맡은 사명 붙들고, 앞만 보고 묵묵히 걸어가, 어떤 환난이 와도, 믿음으로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